한문을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한자도 사실 많이 모릅니다......) 불가사의하게도 중, 고등학교 다닐 때 한문 성적은 늘 좋았습니다. 지금도 한문을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땐 혼자 한문과 전공수업을 들으러 간 적도 있었고요. (답안 나름대로 잘 썼다 자부하는데 성적은 잘 안 줘서 서러웠습니다만.) 그 때 흥얼흥얼 몸 좌우로 흔들면서 동몽선습 읽던 게 참 재미있었는데 말이죠.
남들보다 한문에 조금 흥미를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어릴 때 부터 한문이 나오면 유심히 읽긴 했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땐 어머니께 기초적인 한자를 조금 배우기도 했고(여담인데, 그 때 多자를 가리키며 이게 뭘까, 라고 물으시길래. 깜깜할 석자라고 했다가 야단맞았습니다. 夕 자가 두 개니 어두컴컴한 거 아닌가요- 처음 배울 때 한자 제자원리를 조금 배워서, 모르는 글자길래 추리해서 말 했을 뿐-) 한문 시간에 그거 해석하는 게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게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뭔가 처음부터 한자에 흥미를 가질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그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게,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사 오신 책이 원인이었나봐요. 어린이용 명심보감,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노란 표지에 서당에서 글 읽는 애들 그림이 표지에 들어가 있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실 저 기억이 정확한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목도 사실 명심보감이 아닐지도 몰라요. (명심보감을 안 읽어서 잘 모릅니다.) 삽화도 조금 들어 있고 우리 말로 뜻풀이를 해서 죽-적어놓고 밑에는 한자를, 읽으라고 토씨를 달아서 조그맣게 적어놓았지요.
우리 말로 적은 글은 열 줄이 넘는데, 한자는 두 세줄 밖에 안 되는 겁니다. 무슨 글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긴 소리를 몇 줄로 짧게 적을 수 있다는 게 제일 신기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뭐 적는 걸 싫어하는 게으른 인생이어서 오, 이거 배우면 뭐든 금방 읽고 쓸 수 있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죠. 그런데 읽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습니다.
초나라 왕이 어쩌고 하는데, 그 왕의 이름이 유비더라고요. 유선이더라고요. 유비가 실존인물이더라고요. 삼국지 읽으면서 제갈공명과 조운이 좋아서 공명이 죽는 다음부터는 진도도 잘 안 나갔는데 그 사람들이 어쩌면 다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니 그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옛날에는 제갈공명도 지구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게 기뻤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제는 관포지교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 때는 누군지도 몰랐던 어려운 이름을 가진 중국 사람들이 뭐라고 뭐라고 해 주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어요. 가끔 낯익은 이야기다 싶은 걸 읽으면 그 때 읽었던 내용일지도, 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 책은 제가 한자 따라한다고 크레파스나 볼펜으로 마구 그어놓은 선으로 가득했고,(따라 그리다 보면 외울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양이 다른 글자가 어찌나 많던지요.) 그래서인지 국민학교 2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그 책은 없어졌습니다만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나면 우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