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전에 이것부터 먼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객석에서 본 뮤지컬이지만, 기립박수가 나왔고, 공연 끝나고 스테이지 도어로 달려가서 수줍어하면서 싸인까지 받을 만큼 즐겁게 봤습니다. (애니멀테라피와 이 공연으로 저는 저희 레밍워크스 전원을 죽인 파푸와 66화의 충격에서 금방 벗어났지 말입니다.)
사실 전 JCS에 대해 잘 몰라요. 전 공연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노래 몇 곡 들어서 전체적인 순서도 모릅니다. (그래도 유다의 죽음이나 겟세마네, HOTM은 좋아하는 곡입니다.) 제 감상은 그런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십시오. 그래서 뭐가 나쁘고, 뭐가 안 좋은지는 잘 말할 수가 없어요. 비교대상이 없으니까요. 제가 받은 좋은 인상에 대해서만 쓰겠습니다. 가사 빼고.
이혁 유다는 사춘기 소년 같았습니다. 무대 구석에 혼자 비딱한 자세로 서 있는데, 꼭 느낌이 그랬어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한 사춘기 소년이었어요. 그의 지저스에 대한 마음도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혁 유다를 많이 걱정했어요. 제 이혁에 대한 이미지는 예전에 본, 망사스타킹을 신고 퇴폐적이고 도발적인 눈빛을 던지던 그게 다라서 말이죠. 그런데 괜히 걱정했다 싶더라고요. 2막에서 목이 더 풀렸는지, 유다의 죽음에서 참 좋으셨답니다. 그리고 지저스가 갇힌 감옥 옆에 앉아있던 모습도요. 비딱하고 반항적인 소년이라 정말로 어떻게 그를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태경 지저스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임태경 씨가 피곤해 보이는 게 아니고 지저스가 3년 세월에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는 거지요.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랑 붙는 모습도,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도, 정말 3년이 30년 같았으리라는 말과 잘 어울렸습니다. 자기를 낫게 해 달라며 다가오는 환자들에게 둘러싸일 때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팬이신 모 님의 글을 보니 이 날 공연 때 컨디션이 아주 좋으신 편이 아니었던 듯 합니다. 최고 출력이실 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더라고요.
마리아 님은 조오금 제 취향과 멀었습니다만(좀 더 억척스럽고 신산한 삶을 살아온 티가 더 나는 분이 제 취향이라서요.) 유다가 그 분을 밀칠 때와, 예수가 잡혀가자 그를 지켜보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유다가 밀칠 때 절대로 유다에게 밀리지 않으셨어요. 그래요, 이 뮤지컬이 삼각관계죠(...) 그 분이 노래하는 마리아는 사랑 하나로 살아가는 젊은 여자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 제 취향의 마리아가 나오셨다면 저 두 분과 맞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다른 분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합니다, 암요.
그리고 시몬과 베드로, 시몬 님 루케니 해도 재미있을 듯 하던데요. (사실 세르칸이 이 뮤지컬에 나와서 시몬을 했으면 그냥 무대를 다 장악하고 지저스가 템플 어쩌고 할 거 없이 무대를 싹 엎고 새 예루살렘을 건설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드로는 무대에서 아무 말도 없을 때에도 저 사람이 베드로이겠구나, 하고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자기 파트가 없는데도, 중심을 잡고 연기를 하셨어요. 꼭 30년대 룸펜 같은 느낌이었는데요(안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무너지는 부분이 좀 그랬어요.
안나스 님, 가야바 님, 제사장님드을. 저 안나스 님 나올 때 부터 극에 완전 몰입해 버렸지 말입니다. 1막 마치자 마자 뱉은 감상이 안나스 님! 이었군요 그러고 보니......유다를 확 밀쳐내는 안나스 님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절절하신 빌라도의 고뇌, 예수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듯, 노래를 부르지 않으셔서 좀 슬펐습니다만.
헤롯 님의 탭댄스, 잊지 않겠습니다.
커튼콜에서 행복했습니다. 제사장 님들 어쩜 그렇게 깜찍하게 손을 흔들면서 춤을 추실 수 있어요? 게다가 빌라도 님의 경례며, 처음엔 그냥 얌전한 척 앉아서 박수 치다 결국 기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스테이지에서 사인 받으면서, 제가 좀 심하게 떨어대서 이정용 씨 앞에서 선글라스에게 존칭을 붙일 뻔 했습니다;; 부끄러운 실수였습니다. 특히 이정용 씨가 알아차리셔서 더; 현순철 님께 사인 받으며 공연 잘 봤다고 인사했을 때, 그 분이 저희가 더 고맙다고 해 주셔서 기뻤어요. 사진 찍을 때 눈을 감아 제 얼굴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만, 기뻤습니다.
가사가 안 들리는 건, 원래 제가 가사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우리말로 된 곡이라도 그래요. 하지만 그래도 너무 번역이 ......했습니다. 그걸 빼면 정말 좋은 공연이었어요. 앙상블이 부르던 호산나도 좋았고요. 이런 공연이라면 정말 몇 번은 더 볼 수 있어요. 또 보러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