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봐야 아밍 손바닥
당근 하나 완료!
유안.
2006. 4. 21. 18:20
모종의 계약에 의해 완수한 것으로 쓰기는 예전에 썼으나 새로 쓰면서 양이 두 배가 된 물건입니다. 어디 게시판에 암호 걸어 올릴까 싶습니다만 일단 참을래요.
다카마츠 이야기로, 1인칭 다카마츠가 감상적인 신파조 대사를 읊조리는 걸 보실 수 있으니 가급적 보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종의 계약을 완수하고 계신 자매님들, 우리 워크스가 아밍 워크스가 되어가고 있으니 맏이이신 윈디 언니도 함께 하시는 것이 마땅하다 봅니다. 지금 사비, 피아, 미니, 토르 모두 열심히 그리고 쓰고 있지 않습니까. (파푸와 뿐만이 아닙니다. 칠협오의도 있어요!)
바쁘시면 어쩔 수 없지만 기왕이면 좋은 글을 더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자, 윈디 언니도 함께 쓰시면 좋겠다 싶으신 분 손!
저는 다음 리퀘를 받기 어려울 듯 합니다만......혹시 이런 게 보고 싶다 싶으신 거 있으면 말씀하셔요. 어린왕자 쓰고 여력이 생기거든 해보겠습니다.
전에 정리해 둔 기록을 찾으려고 창고를 뒤지다 먼지가 잔뜩 앉은 낡은 앨범을 한 권 발견했다. 나는 앨범 한 권이 될 만큼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고, 루저 님이 찍어주시거나 루저 님과 찍은 사진은 모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더군다나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그려놓은 노란 앨범 같은 걸 살 이유도 없다.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표지를 넘기자 가족사진인 듯, 금발 남자 하나, 소년 둘, 아이 둘이 찍혀있다. 전 총수와 그의 아이들, 즉 매지크 총수님과 하렘, 서비스, 루저 님. 그랬다, 서비스가 십여 년 전에 나한테 맡기고 간 그 앨범이다.
나는 창고에서 나와 앨범에 달라붙은 먼지를 닦아내고 그 앨범을 들고 사실로 갔다.
앨범 속에서 조금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는 소년은 자기가 한 행동 탓에 다친 동생을 보고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껴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죽으러 간 전쟁터에서 소원대로 죽어버렸고, 그 소년의 옆에서 카메라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선, 볼이 통통한 어린 꼬마는 동생이 둘째 형의 행동에 상처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서 형이 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사진에서 어린 동생들을 한 팔에 하나씩 안고 조금 무거운 듯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그래도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는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은 더 이상 형제들이 서로 미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모든 걸 묻었다. 그리고 다음 사진에 찍힌, 형들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장 소중한 친구의 죽음과 둘째 형의 죽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창고에 던져넣고 몇 년 동안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츠!
-네?
-다카마츠!
언제 들어오신 건지 군마 님이 내 등을 톡톡 건드리면서 나를 부르고 계셨다.
-다카마츠~ 뭘 보고 있어?
-아, 앨범이에요. 군마 님.
-앨범? 오래된 거야?
군마 님은 실로 흥미롭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손에 있던 앨범을 쳐다 봤다.
-보고 싶으세요?
-응. 원래 그런 건 같이 봐야 재미있는 거래.
-하지만…….
-왜, 보여주기 곤란한 사진이라도 있어?
-아, 아뇨.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만.
-그럼 됐네, 보여 주는 거지?
생긋 웃으며 군마 님은 내 손에서 앨범을 뺏아 들고는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서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헤, 아버지랑 삼촌들 사진이네. 다카마츠 거 아니었어?
-예. 루저 님 거예요. 지금은 제가 보관하고 있지만.
-그래? 왜 다카마츠가 가지고 있어?
-서비스에게 남기신 겁니다만 감마단 본부에 나타나는 일이 드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대신 그 분 물건을 몇 가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우와앗, 정말 오래된 사진이네. 이거 하렘 삼촌이지? 볼 통통한 것 좀 봐~ 삼촌도 이렇게 귀여웠을 때가 다 있었네~
군마 님은 정말 즐거운 듯, 사진 한 장 한 장 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평가를 하면서 앨범을 구경했다.
-다카마츠, 이거 어디서 찍은 사진이야?
-아, 그건 하렘과 서비스의 열다섯 살 생일 사진이에요. 여기 봐요, 날짜가 적혀 있잖아요.
-잘 아네.
-제가 찍었으니까요.
-그래도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던데. 다카마츠 기억력 좋구나~
앨범을 보다 군마 님이 나타났을 땐, 앨범을 숨겨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혼자 울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 아버지다. 여기, 서비스 삼촌 손 잡고 있는 사람 아버지지?
하지만, 사진을 보면서 슬퍼하는 건 군마 님 보다는 내 쪽인 것 같다. 군마 님은 계속 이것 저것 묻고, 내 대답을 들으면서 웃고, 사진 한 장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면서 참으로 편안하게 자기 윗대의 사람들을 보고 있다. 내 걱정은 확실히 기우였던 것 같다. 군마 님은 언제나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고 계신다. 마음에 뭘 담아두시긴 해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고, 갚아주겠다고 하셔도 그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즐거우세요?
-응! 이런 거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은 처음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네 사람이 함께 모여서 웃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네 사람이 함께 모여서 웃는 걸 본 기억이 군마 님께 있을 리 없다. 군마 님이 태어나기 전에 루저 님이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라는 말은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겨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물고기들이 물을 찢고 튀어나오듯 떠올랐다.
-다카마츠?
내 얼굴빛이 어두워 진 걸 보고 군마 님이 앨범을 내려놓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그래? 얼굴이 하얘.
-제 얼굴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뭐가 좀 생각나서.
군마 님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입꼬리를 올리면서, 나에게 앨범을 가져다 준 십여년 전의 서비스를 떠올렸다. 눈에 난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가린 핼쓱한 얼굴.
이 앨범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남은 형제들이 이 앨범을 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매지크 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렘과 서비스는 이 앨범을 가져가기를 거부했다.
'네가 가지고 있어.'
'왜 그래요, 서비스? 형의 유품이잖아. 이런 걸 나에게 맡겨도 괜찮은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관리를 하는 게 좋겠지. 잘 가지고 있어.'
'그래도!'
'다카마츠.'
서비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진이라고 해도, 형들 얼굴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것도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는 얼굴은.'
청의 일족은, 강하고 아름답고 처연하고,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건 생각하지 않건, 매우 비극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루저 님은 어이없이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이런 식으로 상처를 핥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루저 님께 무언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되지 못했고, 머리로는 그들 형제를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다. 지금도 루저 님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돌아가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살, 완벽한 자살이다. 그 분은 그렇게 돌아가셔서는 안 되는 분이었고 그 원인이 된 남은 형제들을 편한 얼굴로 볼 수도 없었다. 과학자로서의 이성은 그게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를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되지 못한 마음이 이성과 타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군마 님을 루저 님의 아들로 만들었고, 그 분의 아들처럼 최선을 다해 교육시키고 보살폈다. 나는 군마 님에게나 서비스에게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가해자이고, 신타로 님께도 어느 정도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유일한 구원이고, 내 마음이 무언가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내가 바꿔치기 한 아이다. 하지만 이런 비뚤어진 인간이 키운 아이인 군마 님은 바르고 곧고, 평안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계신다.
-자, 군마 님. 차를 드실 시간이에요. 그만 나가십시다. 오늘은 얼마 전에 연구를 끝낸 식물군에서 몇 가지를 추출해 차를 만들어 봤습니다만, 어떠세요?
-와, 다카마츠가 끓여주는 차! 마실래, 마실래! 과자는 단 걸로 부탁해!
-그럼요. 안 그래도 준비는 다 되어 있답니다.
군마 님은 앨범을 덮고 폴짝폴짝 뛰어서 방을 나갔고 나는 앨범을 다시 창고에 집어넣기 위해 방을 나갔다.
그러니까 군마 님. 당신만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아무 것도 속에 담아두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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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법칙 : 자급자족 원칙에 의거하여 만든 2차 창작물……인데 왜 하필 다카마츠?
군마는 청의 일족 답지 않게 맺힌 데도 없어보이고 심하게 발랄해서 좀 적응이 안 되는 캐릭터예요. 애가 그렇게 자란 건 다카마츠가 키웠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의 일족의 과거를 모두 아는 사람이고, 군마와 신타로, 킨타로에겐 가해자이기도 하고. 루저를 사랑하기도 했고. (전 다카마츠가 루저를 사랑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더 이상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다카마츠는 서비스와 학교 동창이니까 서비스 님껜 존칭을 안 썼을 거고요, 친구의 형제인 하렘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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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일. 처음 쓴 파푸와 팬픽. 2005년 1월 수정.
다카마츠 이야기로, 1인칭 다카마츠가 감상적인 신파조 대사를 읊조리는 걸 보실 수 있으니 가급적 보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종의 계약을 완수하고 계신 자매님들, 우리 워크스가 아밍 워크스가 되어가고 있으니 맏이이신 윈디 언니도 함께 하시는 것이 마땅하다 봅니다. 지금 사비, 피아, 미니, 토르 모두 열심히 그리고 쓰고 있지 않습니까. (파푸와 뿐만이 아닙니다. 칠협오의도 있어요!)
바쁘시면 어쩔 수 없지만 기왕이면 좋은 글을 더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자, 윈디 언니도 함께 쓰시면 좋겠다 싶으신 분 손!
저는 다음 리퀘를 받기 어려울 듯 합니다만......혹시 이런 게 보고 싶다 싶으신 거 있으면 말씀하셔요. 어린왕자 쓰고 여력이 생기거든 해보겠습니다.
전에 정리해 둔 기록을 찾으려고 창고를 뒤지다 먼지가 잔뜩 앉은 낡은 앨범을 한 권 발견했다. 나는 앨범 한 권이 될 만큼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고, 루저 님이 찍어주시거나 루저 님과 찍은 사진은 모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더군다나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그려놓은 노란 앨범 같은 걸 살 이유도 없다.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표지를 넘기자 가족사진인 듯, 금발 남자 하나, 소년 둘, 아이 둘이 찍혀있다. 전 총수와 그의 아이들, 즉 매지크 총수님과 하렘, 서비스, 루저 님. 그랬다, 서비스가 십여 년 전에 나한테 맡기고 간 그 앨범이다.
나는 창고에서 나와 앨범에 달라붙은 먼지를 닦아내고 그 앨범을 들고 사실로 갔다.
앨범 속에서 조금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는 소년은 자기가 한 행동 탓에 다친 동생을 보고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껴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죽으러 간 전쟁터에서 소원대로 죽어버렸고, 그 소년의 옆에서 카메라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선, 볼이 통통한 어린 꼬마는 동생이 둘째 형의 행동에 상처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서 형이 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사진에서 어린 동생들을 한 팔에 하나씩 안고 조금 무거운 듯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그래도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는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은 더 이상 형제들이 서로 미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모든 걸 묻었다. 그리고 다음 사진에 찍힌, 형들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장 소중한 친구의 죽음과 둘째 형의 죽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창고에 던져넣고 몇 년 동안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츠!
-네?
-다카마츠!
언제 들어오신 건지 군마 님이 내 등을 톡톡 건드리면서 나를 부르고 계셨다.
-다카마츠~ 뭘 보고 있어?
-아, 앨범이에요. 군마 님.
-앨범? 오래된 거야?
군마 님은 실로 흥미롭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내 손에 있던 앨범을 쳐다 봤다.
-보고 싶으세요?
-응. 원래 그런 건 같이 봐야 재미있는 거래.
-하지만…….
-왜, 보여주기 곤란한 사진이라도 있어?
-아, 아뇨.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만.
-그럼 됐네, 보여 주는 거지?
생긋 웃으며 군마 님은 내 손에서 앨범을 뺏아 들고는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서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헤, 아버지랑 삼촌들 사진이네. 다카마츠 거 아니었어?
-예. 루저 님 거예요. 지금은 제가 보관하고 있지만.
-그래? 왜 다카마츠가 가지고 있어?
-서비스에게 남기신 겁니다만 감마단 본부에 나타나는 일이 드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대신 그 분 물건을 몇 가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우와앗, 정말 오래된 사진이네. 이거 하렘 삼촌이지? 볼 통통한 것 좀 봐~ 삼촌도 이렇게 귀여웠을 때가 다 있었네~
군마 님은 정말 즐거운 듯, 사진 한 장 한 장 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평가를 하면서 앨범을 구경했다.
-다카마츠, 이거 어디서 찍은 사진이야?
-아, 그건 하렘과 서비스의 열다섯 살 생일 사진이에요. 여기 봐요, 날짜가 적혀 있잖아요.
-잘 아네.
-제가 찍었으니까요.
-그래도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던데. 다카마츠 기억력 좋구나~
앨범을 보다 군마 님이 나타났을 땐, 앨범을 숨겨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혼자 울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 아버지다. 여기, 서비스 삼촌 손 잡고 있는 사람 아버지지?
하지만, 사진을 보면서 슬퍼하는 건 군마 님 보다는 내 쪽인 것 같다. 군마 님은 계속 이것 저것 묻고, 내 대답을 들으면서 웃고, 사진 한 장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보면서 참으로 편안하게 자기 윗대의 사람들을 보고 있다. 내 걱정은 확실히 기우였던 것 같다. 군마 님은 언제나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고 계신다. 마음에 뭘 담아두시긴 해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고, 갚아주겠다고 하셔도 그게 오래 가지는 않는다.
-즐거우세요?
-응! 이런 거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은 처음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네 사람이 함께 모여서 웃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네 사람이 함께 모여서 웃는 걸 본 기억이 군마 님께 있을 리 없다. 군마 님이 태어나기 전에 루저 님이 돌아가셨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함께라는 말은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겨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물고기들이 물을 찢고 튀어나오듯 떠올랐다.
-다카마츠?
내 얼굴빛이 어두워 진 걸 보고 군마 님이 앨범을 내려놓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그래? 얼굴이 하얘.
-제 얼굴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뭐가 좀 생각나서.
군마 님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입꼬리를 올리면서, 나에게 앨범을 가져다 준 십여년 전의 서비스를 떠올렸다. 눈에 난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가린 핼쓱한 얼굴.
이 앨범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남은 형제들이 이 앨범을 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매지크 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렘과 서비스는 이 앨범을 가져가기를 거부했다.
'네가 가지고 있어.'
'왜 그래요, 서비스? 형의 유품이잖아. 이런 걸 나에게 맡겨도 괜찮은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관리를 하는 게 좋겠지. 잘 가지고 있어.'
'그래도!'
'다카마츠.'
서비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진이라고 해도, 형들 얼굴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것도 그렇게 즐겁게 웃고 있는 얼굴은.'
청의 일족은, 강하고 아름답고 처연하고,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건 생각하지 않건, 매우 비극적인 사람들이다. 나의 루저 님은 어이없이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이런 식으로 상처를 핥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루저 님께 무언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되지 못했고, 머리로는 그들 형제를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다. 지금도 루저 님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돌아가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살, 완벽한 자살이다. 그 분은 그렇게 돌아가셔서는 안 되는 분이었고 그 원인이 된 남은 형제들을 편한 얼굴로 볼 수도 없었다. 과학자로서의 이성은 그게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를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되지 못한 마음이 이성과 타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군마 님을 루저 님의 아들로 만들었고, 그 분의 아들처럼 최선을 다해 교육시키고 보살폈다. 나는 군마 님에게나 서비스에게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가해자이고, 신타로 님께도 어느 정도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겐 유일한 구원이고, 내 마음이 무언가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내가 바꿔치기 한 아이다. 하지만 이런 비뚤어진 인간이 키운 아이인 군마 님은 바르고 곧고, 평안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계신다.
-자, 군마 님. 차를 드실 시간이에요. 그만 나가십시다. 오늘은 얼마 전에 연구를 끝낸 식물군에서 몇 가지를 추출해 차를 만들어 봤습니다만, 어떠세요?
-와, 다카마츠가 끓여주는 차! 마실래, 마실래! 과자는 단 걸로 부탁해!
-그럼요. 안 그래도 준비는 다 되어 있답니다.
군마 님은 앨범을 덮고 폴짝폴짝 뛰어서 방을 나갔고 나는 앨범을 다시 창고에 집어넣기 위해 방을 나갔다.
그러니까 군마 님. 당신만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아무 것도 속에 담아두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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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법칙 : 자급자족 원칙에 의거하여 만든 2차 창작물……인데 왜 하필 다카마츠?
군마는 청의 일족 답지 않게 맺힌 데도 없어보이고 심하게 발랄해서 좀 적응이 안 되는 캐릭터예요. 애가 그렇게 자란 건 다카마츠가 키웠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의 일족의 과거를 모두 아는 사람이고, 군마와 신타로, 킨타로에겐 가해자이기도 하고. 루저를 사랑하기도 했고. (전 다카마츠가 루저를 사랑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더 이상 그런 걸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다카마츠는 서비스와 학교 동창이니까 서비스 님껜 존칭을 안 썼을 거고요, 친구의 형제인 하렘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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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일. 처음 쓴 파푸와 팬픽. 2005년 1월 수정.
by 유안 | 2005-01-17 03:20 | 뱀딸기-2차창작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