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감상
1월 23일 3시. 박은태 모차르트, 윤형렬 대주교 공연.
보고 난 직후의 감상과 보고 시간이 지난 후의 감상은 다르다는 걸 전제로 하고, 주로 단점 위주로 감상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요 최근 이래저래 피폐해져서(여름을 잘못 보내고 사람이 엄청 까칠해졌다. 사람을 산에 가둬놓고 하기 싫은 일을 시키니 이 모양인 거다.) 정치적 공정함이고 온화함이고 다 산에다 파묻고 왔으므로 말이 좀 험할 수 있다. 미리 양해 구한다. 물론 해석은 내 마음이지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거 안다.
그렇지만 이건 꼭 말하고 싶었다.
다 때려치우고. 첫번째 불만. 왜 아마데를 보고 사람들이 귀엽다는 소리를 하는 건데?
그 꼬맹이는 사실 말이 꼬맹이지 볼프강의 다른 자아인데 세상에 다른 자아가 자기 자신하고 사이 좋은 경우 봤냐고. 일찌기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에서 삭아가는 백골로 자신의 자아를 묘사하신 바 있고 이상은 거울 속의 나에게 대화요청을 했으나 장렬히 씹힌 바 있다. 자아분열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인 경우 갈 길은 보통 두 가지다. 화해하느냐, 불화하느냐.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자아=자신의 천재성과 불화한 자연인 모차르트가 어떻게 파국을 맞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무대 장치로 아이가 들고 있는 상자며 계속 볼프강을 따라다니는 아마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내가 그래도 아주 헛다리를 짚지는 않았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건데, 자기랑 불화하는 자아가 귀여워 보일 수 있나? 주인공은 볼프강이고 우리는 그에게 공감하면서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볼프강의 눈에 점점 자신과 멀어지는 주제에 아직도 자기 발목을 잡고 있는 어린 자아가 사랑스러울까, 웬수로 보일까?
암만 지가 나는 단조요 장조요 화음이고 멜로디라고 노래해 봐라. 그놈이 자기 천재성과 일치하는 삶을 산 건 어릴 때가 다다. 자연인으로서의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혁명과, 가족과 좀 더 잘 해 보고 싶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으로서 살려고 할 때마다 꼬맹이가 나온다. 꼬맹이가 안 나오는 건 대주교랑 맞짱 뜰 때 정도임. 그건 음악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 사회와 맞설 때니까. 그 꼬맹이가 자연인으로서의 볼프강은 인정하지 않아서, 볼프강을 압박하고 압박해서 말려 죽이는 게 마지막 장면 아니었냐고. 심장에 남은 피까지 짜내서 곡 쓰고 죽는 거잖아. 자연인인 볼프강이 왜 내가 많은 걸 희생했다고 하는데.
근데 꼬맹이가 반짝이는 피아노 타고 샤랄랄라 날아가니까 "우리 하늘이 내리신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지상에서의 힘든 삶을 용케 버티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영혼이 천국에서도 빛나기를 기도합시다 할렐루야!" 로 보일 수도 있는 문제가 생긴다니까. 아니 어쩐지 모차르트의 삶이 팬시하게 보이잖아. 결국 남은 건 천재로서의 모차르트와 그의 곡일 뿐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사라졌습니다, 는 점은? 연출 문제라고 본다. 꼬맹이는 할 수 있는 한 성실히 연기했고 볼프강은 아이와 잘 지내다가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 놈 악마요. 사람 종자 아니라니까. 좀 더 섬뜩하게! 애가 좀 더 섬뜩하게 모차르트를 쥐어짜는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다.
여담인데 우리 어머니께선 그 꼬맹이가 제일 무서운 놈인데 그걸 이해 못 하다니 말이 되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하지만 감상 이야기 들어보니까.........세상에 이 극의 주제가 묻혔다더라. 이래도 되냐?
그럼 도대체 이거 주제는 뭐냐고. 아버지와 대주교와 싸우는 청년의 자아 확립기? 무슨 자아탐색 시간이냐 중학교 도덕 시간이냐 어?
그건 연출에서 이런 점이 강조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가족애.
한국에서 극을 연출할 때 가족의 소중함 어쩌고 부성애 어쩌고 끈적끈적한 소리 안 하면 죽은 어머니가 무덤에서 일어나 내가 떡을 써는데 너는 왜 게임이나 쳐하냐고 두들겨패기라도 한다더냐.
......레오폴트가 아들 사랑하는 거 맞고 볼프강이 아버지한테 의지하는 거 맞고 난네를이 동생과 아버지를 위하는 거 맞긴 맞음. 인정한다. 볼프강이 콘스탄체를 사랑한 것도 인정한다.
근데 난네를은 희생하는 누나 아니지 않나. 자기는 여자고, 이미 재능이 퇴화해서, 자기 대신 천재였던 동생이 음악가로서 날리기를 바라는 거 아니었나? 시장에서 노래 부를 때나 아버지랑 대화할 때 보면 애가 현실에 안 붙어있고 지면에서 최소한 5cm 정도는 둥둥 떠 있는 캐릭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모차르트 편 들어주는 건 결국 자기 꿈을 동생에게 투사해서 동생이 더 큰 세계로 나가라고 하는 거지. 솔직히 동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 안 했을 걸? 그 놈이 나갔다가 지 인생 말아먹을 놈인지, 자기 재능에 눌려 질식할지 안 할지엔 관심 없었다에 한 표.
레오폴트도 솔직히 아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학원 뺑뺑이 돌리고 애 과보호하면서 나는 이 애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한국 정서랑은 다른 거 아닌가? 감상하면서 자꾸 저 생각이 났단 말이다. 레오폴트의 사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애지중지하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위 주인과 흡사한 데가 없던가 하고. 그래서 끝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다가 환상 속에서까지 아들을 준엄하게 꾸짖게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아니 여기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인물이 있긴 하던가. 콘스탄체? 결국 모차르트와 불화했잖아. 쉬카네더? 흥행할 수 있는 예술가로서 모차르트에게 관심이 있지. 남작부인? 그 분 아마데랑 한통속이심.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개화시키기 위해서 있는 분이라서 그렇게 무대에서 위엄과 관록이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는 거다. 자연인 따위는 인정하지 않는 신의 대리인이니까.
사랑하는 건 이해하는 거라고 노래하기는 한다. 하지만 절대 그거 실천하지 않는다. 이 공연 합창단이 합창을 하되 서로 어긋나는 소리를 해 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서로 이해하는 인물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다들 그냥 개인일 뿐이다.
그리고 더 열받는 건. 산만해. 쿤사마(작사자 미하엘 쿤체를 한국 팬들이 저런 애칭으로 부른다) 팬을 자처하는 몸으로 알아서 콩깍지 씌어서 보러 간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기왕 그럴 거면 차라리 무대에서 예술을 하란 말이다. 좀 더 음침해야 할 부분은 음침하게, 밝아야 할 부분은 미친 듯 밝게. 이도 저도 아니니까 산만하게 보이는 걸수도 있다고 본다.
가사는.......솔직히 이야기해서, 내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말이 많았던 부분은 고치기는 했더라마는, 의미 전달이 잘 되었으면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은 가사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거 아닌가. 원 가사가 시적인 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이 안 살아서 매우 슬펐다. 특히 별에서 떨어진 황금. 내가 모차르트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인데.......
그리고 배혜선 씨 목 많이 간 것 같더라. 1막에서 표가 더 나던데. 얼른 회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굽신굽신) 박은태 씨는 2막에서 목 풀림. 앞으로 공연은 잘 되기를 빕니다. 모차르트의 개초딩다움을 중1 남자애처럼 표현한 점은 꽤 재밌었다. 다만 모차르트들이 너무 순해서 주교랑 붙을 때 주교한테 밀린다. ......걔 또라이라고. 그냥 중1이 아니고 또라이. 그것도 연출 문제인가.......다음엔 박건형 모차르트 보러 가는데 그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마이크 사고 두 번. ......이게 흔한 건 아니겠지. 다음엔 별 일 없기를 빈다.
엄청 기분나빠하면서 봤던 거 같이 보이지만, 배우들은 열심이었고, 합창단도 제법 그럴싸했으며(미하엘 쿤체의 뮤지컬에서 합창이 안 살면 그 무대 반은 실패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 봤다. 처음 공연이라 아직 약간 어수선하지만 배우들 연기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봤고, 어머니께 공연 보여드린 걸 후회하지 않았다. 다음에 보러갈 때를 기대할 정도면 괜찮게 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