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님이 보고 계셔 1
설정이 조금 바뀌어서 리킷드나 신생감마단원들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혹시 이상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역사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 감마 여학원. 이곳은 여러 가지 기준과 조건으로 걸러내고 걸러낸 미소녀들이 비석님의 가호 아래 불철주야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는 아름다운 배움터이다. 여러 가지 조건을 거쳐 입학한 미소녀들은 이곳에서 전 세계를 한 손으로 쥐고 흔들 수 있는 강한 여성으로 자라난다.
이 어마어마하고 독특하기 그지 없는 학교에서 얌전하게 수련을 쌓던 릿코, 감마 여학원 중등부 3학년, 취미는 가사 전반, 특기도 가사 전반. 그녀에게 크나큰 시련이 닥쳐온 것은 5월의 어느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아침이었다.
"세계정복합시다."
"세계정복합시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인사가 오고 가는 등교 시간. 릿코는 1교시부터 지각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는 중이었다. 지각생은 노르웨이의 차가운 바다 속에서 특훈을 받지 않으면 안 되기에 목숨을 걸고 달린다. 그러나 아무리 늦어도 비석님께 인사를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 인사를 안 하면 분노한 비석님들이 자기들끼리 화를 못 이겨 학교를 두 쪽으로 갈라 싸움을 벌인다는 무시무시한, 사실 대놓고 말하자면 믿기 어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비석님들의 가호 아래서 오늘도 강하게 살게 해 주세요, 라고 잠시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어이, 거기 너.
-예,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얼어붙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공포감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지만 거기서 도망가지 않은 것은 강하게 살도록 교육받은 지난 몇 년 간의 가르침 덕분. 릿코는 일단 파랗게 굳은 얼굴을 풀려고 노력했다. 어쨌건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이러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그리고 그 사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굴만 돌리고 말을 했다간 예의 없다고 트집을 잡혀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무슨 일이신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조용히 살고 싶답니다. 제발 그냥 지나가 주세요!! 아무리 속으로 기도해도 기도는 먹히지 않고 그 사람은 싱글싱글 웃으며, 긴 혀를 날름거리면서 다가온다
-너, 교복 타이 다시 매야 될 것 같은데?
곱게 잘 묶여 있는뎁쇼, 도대체 뭘 다시 매라는 거야? 릿코는 잠시 뒤에 자신에게 닥칠 일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큰 손이 릿코의 앞섶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풀린 타이를 다시 묶을 생각도 못 하고 릿코는 멍하니 서 있었다.
감마 페티다, 통칭 시시마이 하레코 님. 감마 여학원 고등부 2학년, 특기는 온갖 싸움, 취미는 음주와 도박, 전교에서 싸움을 즐기기로 유명한 학생들을 모아 특전부대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둥 옆의 심전여학교도, 중학교 학생회 소속 신생감마단에서도 당한 적이 있다는 둥, 아무튼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그 무서운 사람이, 이 무슨 엄청난 사건이란 말인가.
-어, 릿쨩 어디 아파?
릿코가 터덜터덜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한 반 친구인 초코 로망스가 쪼르르 달려와 말을 걸었다.
-초코오오오오~~
릿코는 초코 로망스의 손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글썽였다.
-와악?! 릿쨩 왜 이래? 정말 어디 아파? 누가 나쁜 짓이라도 했어?
-초코, 초코 스루가 고등부의 회지 편집장이셨지? 학생회 사람들에 대해 아는 거 없어?
-학생회? 글쎄에, 그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어떻게 일일이 하냐? 누구 이야긴데?
-그게, 저기, 귀 좀 빌려줘.
호기심에 차서 초코는 릿코에게 귀를 기울였다. 릿코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초코에게 들려주었다. 말하기 무서운 몇몇 부분은 살짝 넘어가면서.
잠시 후, 초코 로망스는 책상을 탁,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소리질렀다.
-뭐어, 감마 페티다가?
떠들던 애들이 순간 조용-해지더니 릿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뭐야, 감마 페티다? 감마 페티다께서 뭘? 반 애들의 눈빛이 1.2초 만에 위험수위 직전까지 다다르자 릿코는 초코 로망스를 끌고 허둥지둥 교실을 빠져나가 복도 끝으로 갔다.
-쉿! 조용히 해. 자기 이야기 하는 거 듣고 나타나면 어쩌려고?
-얘는, 감마 페티다가 귀신이야?
-귀신이면 차라리 덜 무섭겠다! 아무튼 도대체 이거 무슨 뜻이야? 어쩌라는 거지?
-널 마음에 들어하시는 거 아냐?
-설마! 내 어디가? 내가 특전부대에 들어갈 인물로라도 보인다는 거야?
-뭐 그건 모르지. 하지만 하레코 님이 아무한테나 그러시는 게 아니라는 건 알거든. 전에 중등부 2학년짜리 애 하나가 하레코 님한테 말 붙이려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울면서 쫓겨난 적 있잖아.
그러고보니 릿코의 머리에도 떠오르는 게 있었다. 감마 페티다나 기간티아나 카니나가 자신이 관심없는 것에 손을 댄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감마 키넨시스가 참 고생이 많으시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한 동급생이 그 다음날 뒷산에서 발견되었댔지.
-릿쨩 굳었네~ 으음, 정 걱정되면 감마단으로 찾아가 봐. 직접 물어보는 거야.
-싫어! 갔다간 입에 못 올릴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몰라!
릿코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펄쩍펄쩍 뛰었으나 이대로 떨면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고 진상을 밝히는 쪽이 낫지 않느냐는 초코의 집요한 설득에 점차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포는 여전하다.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가도 괜찮을까?
-응, 사실은 지금 언니가 감마단에 갔거든, 담판지을 게 있어서. 그러니까 릿쨩 이야기는 바빠서라도 금방 들어 주실거라고 봐.
감마 여학원에는 선배가 후배를 애정으로 인도하고 후배는 선배를 목숨 걸고 따르는 스루, 라는 대대로 이어진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학원의 학생회는 고등부 학생들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생회 간부인 네 명의 여학생이 어마어마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 권한과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통솔하고 감독한다. 현 학생회 간부진은 감마 기간티아 사비코, 감마 페티다 하레코, 감마 카니나 루자와 회장격인 감마 키넨시스 매지코. 폭풍의 4자매라는 별칭 답게 매일매일 학교를 술렁이게 만들곤 하며, 각자 타고난 카리스마로 전교생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별히 학생회 간부진의 스루를 꽃봉오리라는 뜻의 부통이라는 단어를 붙여 감마 기간티아 앙 부통, 이라는 식으로 부른다. 이번 학기 학생회 간부진은 네 명이 자매라서, 그녀들을 추종하는 학생들은 네 자매를 청의 일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말은 덤으로 추가.
학생회 간부들은 매일 아침 모여 학교 행사며 학생들의 생활태도며 이것저것 할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다, 고는 하지만 사실 모여서 매지코 님의 특제 카레를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는 일이 더 많다. 매지코의 옆에 루자와 그녀의 스루 마치가 앉아 있고 건너편에 사비코가 찻잔을 들고 앉아 있다.
-감마 페티다는 오늘도 지각이냐?
-뭐 어쩔 수 없지요.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나요.
-감마 카니나 앙 부통은 남의 이야기 하기 전에 제게 4만엔부터 갚으시지요.
-어, 그러고 보니 감마 기간티아 앙 부통은?
-학교 안에서 길 잃었대요.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과학자가 되려나.
그녀들이 우아하게 담소를 주고 받으면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데,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쾅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감마신문 편집장, 고등부 1학년 티라 양이었다.
-감마 페티다, 제발 부탁이니 그만 제 체육복 바지 좀 돌려주세요!!
-체육복?
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라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방 안을 둘러보고 감마 페티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잠시 얼굴을 숙이고 뭐라 중얼거리다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감마 키넨시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감마 페티다의 횡포 때문에 더 이상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체육복 바지를 들고 간 탓에 전 체육이 든 날마다 전교를 돌면서 체육복을 빌려야 한다구요! 게다가 체육복 바지를, 바지를……!
-일단 진정하고 좀 앉아라. 정신사나워 듣기가 어려워.
매지코는 한 마디로 티라를 제압하고 빈 의자에 앉혔다. 마치가 차를 가져다 주었으나 티라는 차 한 잔을 다 비우고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래서 티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편집장답지 않게 상당히 횡설수설했고, 듣는 사람들은 정리가 어려워서 애를 먹었다.
-그러니까, 너는 체육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디서 감마 페티다가 나타나서 네 체육복바지를 가로채 갔다, 는 거지?
-네, 감마 키넨시스!
-이상하네, 페티다가 왜 네 체육복바지를 들고 갔을까?
-감마 기간티아, 그, 그건요……
-뭐, 감마 페티다가 협박하고 싶은 게 있었나보죠. 편집장이니만큼 감마 페티다의 이런저런 모습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테니.
마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감마단원들은 순진한 애가 체육수업도 못 하게 체육복바지를 들고 간 페티다가 나쁜 거니까 바지는 꼭 돌려주도록 하겠다고 티라에게 말했고, 티라는 눈물 젖은 눈으로 웃으며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했다. 그 찰나에 갑자기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앉아있던 루자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티라?
-네, 감마 카니나?
-체육시간이 끝난 뒤였다면서. 바지 입고 있었을 거 아냐. 어쩌다 뺏긴 거지?
순간 학생회실 안에는 묘한 침묵이 돌았다. 티라의 얼굴이 확 빨갛게 물들더니 파래졌다 다시 빨개졌다. 왜 빨개질까, 하는 표정으로 루자가 티라를 빤히 쳐다보자 이번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루자, 그런 거 묻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감마 키넨시스, 전 왜 입고 있던 바지를 뺏긴 건지 정확히 알고 싶어요.
매지코가 루자를 말렸으나 루자는 듣지 않고 생긋 웃으며 티라를 바라보며 다시 바지를 뺏긴 경위를 물었다. 티라는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어서 고개를 아예 책상에 박다시피하고 앉아있었고 마치는 난처한 얼굴이긴 했지만 루자에게 별 말을 않고 앉아서 티라를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으며 사비코는 난 그런 거 모른다는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때,
-어~미안하게 됐다. 좀 늦었나?
사건의 장본인 등장. 티라는 후환이 두려웠는지 얼른 인사를 하고 학생회실을 빠져나갔다. 루자 님이 나 아직 이유 못 들었어, 라고 말하는 건 못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어? 분위기가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감마 페티다……. 아주 잘 하는 짓이로구나!
-티라 저게 일러바쳤구나!
매지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레코가 인상을 무섭게 일그러뜨리고 외쳤으나 이미 도망가고 없는 티라를 지금 무슨 수로 잡아서 괴롭혀줄텐가. 게다가 매지코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상황에서.
-언니는 또 왜 이래?
-이럴 때만 언니 찾냐! 너 정말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냐?
-아니,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거라고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그럼 나쁜 짓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건 언니로서, 학생회 간부로서 하는 말이다! 학교 애들 좀 그만 괴롭히고, 대놓고 경마 한다고 학생회 경비 날리지 말고!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매지코는 하레코를 마구 다그쳤다.
-하레코, 욕구불만이구나.
-루자 넌 끼어들지 마!
-그러니까, 스루를 만들라는 거지. 우리가 너한테 언제 무리한 요구를 한 적 있니?
하레코가 신경질을 내건 말건, 루자는 우아하게 말을 이었다.
-스루가 없으니까 괜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싸우고, 일을 만드는 거 아니겠니. 전엔 뭐라더라, 별명도 붙었지? 사비코, 그게 뭐였더라?
-나마하게라던데요.
사비코가 피식 웃으면서 하레코의 별명을 입에 올렸다.
-사비코 저게!
-싸울거면 나가서 싸우거라! 그리고 루자 말이 맞다. 스루가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 아니냐!
-그럼, 스루가 있으면 뭐 좋은 거라도 있나?
-당연하지. 우리 신쨩을 보렴. 얼마나 귀엽니?
-중등부 다니는 애한테 손 뻗친 변태회장님은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 저리 많으실까? 요즘도 언니는 신쨩 배게 안고 자우?
-……너 티라한테 그 말 들으려고 바지 뺏은 거냐?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이러다가 이 사람들 또 거하게 한 판 싸워서 학교 신문에 나오는 거 아닌가, 하고 마치가 뒷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누가 학생회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