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와 죽음

엘리자베트 개관

유안. 2010. 2. 11. 01:21

이제 입문하시는 T님과 올렉 죽음으로 낚았음에도 마테에게 버닝하시는 W님을 위한 올렉파의 발악입니다. 우리 올렉파는 다른 사람들 입에서 오 너네 아저씨 괜찮다 소리가 나와야 흡족한 사람들이거든요.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포인트만 소개할 겁니다. 여기서 이게 재미있으시면 다른 데로 넘어가셔도 좋아요. 루케니라던가 루케니라던가 루케니라던가. 제가 루케니 참 좋아하는데 여기선 다 못 썼지 뭡니까;

시씨=엘리자베트는 다 알다시피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예요. 지금도 관광지에서 저 언니 사진 같은 거 팔고 다닐 만큼 얼굴 알려진 언니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이름이 높았죠. 본래 언니랑 결혼했어야 할 황제랑 어쩌다 선자리 따라가서 눈 맞아 결혼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탄생에 기여하긴 했는데 그 순간에도 죽음이랑 줄다리기 하고 있고, 하이네 덕질하고, 아킬레우스랑 헥토르 가지고 동인질하고, 헝가리어랑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덕질은 좋은 겁니다.) 황후이면서도 세상과 불화해서 여행을 빙자한 방랑생활을 하고,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문제 있는 중2병이었고, 아들이 마리 베체라랑 눈맞아서 마이어링에서 동반자살하고, 본인은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았음에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제만 빼고)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한테 칼 맞아죽은 스펙터클한 인생이면 뭐 유명할 만 하기는 합니다.

저 언니가 글연성러였어요. 하이네 빠여서 그런 시를 쓰려고 했는데 암튼 중요한 건 죽음을 예찬하는 시가 아직 좀 남아있단 겁니다. 거기서 나온 게 이 뮤지컬이죠. 쿤사마는 똑똑하고 지적이고, 예쁘고 자기한테 목 맨 삼돌이 같은 남편도 있고, 모든 걸 갖고 있었는데도 인생이 견딜 수 없이 허무했던, 사실 가끔 좀 엎어놓고 패 주고 싶은 여성으로 엘리자베트를 재구성했습니다. (아니 연성러 입장에서 예민하긴 죽도록 예민한데 자기는 글 재주 없을 때 세상 살기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는 아는데 말입니다; 저 사람은 그것도 아니거든요?)허무하다 보니까 세상 어떤 것도 좋아할 수가 없었고 세상 무엇과도 서로 소통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도. 그래서 평생 모든 것을 피해 도망다닌 거고요.
아무튼 죽음을 동경한 우울한 중2병 환자인 엘리자베트의 이야기가 이 뮤지컬입니다. 혹은 와까리아우 좆망이라고도 합 처음 나왔을 땐 세기말이어서 세기말 특유의 음산하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아주 쩔었어요.

2006년 9월 26일 슈투트가르트 막공 영상입니다.

der letzte Tans= 마지막 춤
서양에는 죽음의 춤이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퓌센 가면 벽화도 있으니 기회 되면 보시고요 선행학습으로 진중권 씨의 춤추는 죽음을 읽고 이걸 보면 이해가 아주 잘 됩니다.


요 앞에선 아직 10대라 중2병의 정점에 있던 시씨가 혼자 놀다가 떨어져 죽을 뻔 해서 죽음이랑 만난 적이 한 번 있었어요. 그때 쟤가 어쨌냐면 죽음을 보고 왕자님이라는 둥 꼭 에드워드 만난 벨라 같은 뻘소리를 주워섬기는데 루케니가 옆에서 비웃어요 ㅋㅋㅋㅋ 위대한 사랑이네요 ㅋㅋㅋㅋ 하면서;
그리고 쟤가 황제랑 결혼하는데 찾아와서 저러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쳐 봐야 결국 마지막 춤은 나하고 춰야 되는데 너 지금 뭐 하냐 하며 비웃고 있어요.
......어 가사는; 계속 하일트 님 댁에서 무단 전제하자니 매우 찔리지만...............



인생에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건 그 인생 뒤에 죽음이 버티고 있어서라며 루케니가 말하듯, 도대체 되는 게 없는 인생이었지만 시씨는 나름 자기가 원하는 걸 찾아내요. 그리고 싸움에서 승리하고요.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도 항상 죽음은 시씨 뒤에서 음침하게 중얼거려요. 그래봤자 넌 내 거라고.

이 장면이 꽤 의미심장하죠. 싸움에서 이겨서 나는 나만의 것! 이라고 외치는 시씨와 합창하는 죽음은 너는 나만의 것! 이라고 노래해요.




나는 내 인생과 싸워 이겼고 내 삶에서 내가 춤출 장소와 때와 방법은 내 마음대로 정한다고 노래해도 안 됩니다. 게다가 저게요 이 뮤지컬에서 무려 사랑한다는 소리 하고 다니는 남주와 여주가 부르는 듀엣입니다. 근데 목숨 걸고 캬르릉 거리면서 싸우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주제에 긴장감은 또 장난 아니라는 게 포인트고.


결국 시씨는 인생은 죽도록 허무하기만 하다는 걸 압니다. 계속 모든 걸 피해 도망만 다니고요, 아들이 자신을 도와달라고 매달릴 때도 아들을 피해요.(루돌프는 자유주의자라 황제인 아버지와 꽤 부딪히는 걸로 나옵니다.) 결국 아들은 어려서부터 내가 니 친구다 드립을 치던 죽음하고 키스해버려요.
버전에 따라 죽음은 마리 베체라의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뭐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죠. 그리고 우리 죽음님은 아들 죽고 죽음에게 날 데려가라고 울부짖는 엘리자베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겁니다만 뭐 일단 넘어갑시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결국 루케니는 엘리자베트를 찌르고, 이 뮤지컬은 주인공이 죽으면서 모든 불화가 끝나는 듯 하지만, 죽어가는 순간에도, 죽음이 득의만만하게 너는 나만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와중에도 시씨는 나는 내 거라고 오만하게 선언합니다. 무려 죽음에게요.


뭔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데 일단 여기까지. 이까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는 세기말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세상 따위 가라앉게 내버려두라는 대사와 저 죽음의 모습에 반해 뮤지컬 판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