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하루

12월 잡상

유안. 2008. 12. 24. 22:37

올 한 해 사고 안 치고 버닝 잘 하고 열심히 살아서 장하다고 나에게 선물을 했다. 체리티 님 파푸와 동인지. 손 빠르게 이걸 구한 나 자신을 매우 칭찬하고 싶다. 매번 장터에 나올 때 마다 누가 사가고 없더라고. 다음에 레밍들을 만날 때 들고 가겠어요.

덕질로 JLPT 합격하는 동인녀들이 신기했는데 내가 그렇게 됐다 OTL 뭐 그래봐야 2급이지만. 이제 일본어 공부 제대로 해야겠다 좀 체계적으로. 솔직히 시험칠 땐 외국어능력보다 국어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실제 실력 자체는.......

생각해 보면 수능 끝나고 집에 틀어박혀 죽어라 책만 파대던 이후로 가장 마음이 평온한 겨울이다. 그 해 겨울은 자가치료를 목적으로 일부러 책만 읽었고(나중에 독서치료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사람 마음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요 몇 년은 오덕질 안 했으면 1년 어떻게 보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웬일인지 2009년이 오건 말건 아무 생각이 없다. 이런 건 국민학교 들어가고 처음이라 되게 신기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까 그거였다. 아, 나이 먹어서 그렇구나. 이제야 사람 비슷한 게 되려나보다.
......사실은 바빠서 제정신 아니라서 새해 따위 오건 말건 아무 생각 없음. 크리스마스? 그거 뭐하는 건데요? 제발 전자결재 되는 건 인쇄해서 결재하지 말고 그냥 넘기지? 치사하게 마침표 찍네 안 찍네 그런 걸로 심각하게 논쟁하지 말고.  

그러고보니 어릴 때 일인데 나는 성탄절, 크리스마스란 건 외국 말이고 동화책을 봐도 외국 애들이 챙기는 거니까(동화 치고는 너무 무서웠던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 등등) 우리 한국인은 그런 거 안 챙기는 줄 알았다. 외국 동화엔 추석도 설도 나오지 않듯. 그런데 유치원 입학하니까 다섯 살 때 다니던 유치원은 선교원이어서 크리스마스에 연극도 하고 선물도 주는 거다. 신기했다. 종교가 뭔지는 몰랐는데 집에서 기도하면 아버지 싫어하시고.....아 기도하는 동네는 크리스마스 챙기는구나. 그럼 나랑은 상관없네, 하고 있는데 여섯 살 때가 문제였다. 우리 주인집에 가니까 딸네미가 트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인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집에 만들고 있지? 굉장히 이상해서 구경하고 있으니까 요 망할 계집애가 너네 집은 왜 저런 것도 안 하냐고 웃긴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저 계집애 나 되게 싫어했다. 나 따돌린 거 너 맞지. 세 산다고 텃세하는 건 줄 내가 어떻게 아냐 난 전세 개념도 없었는데.) 안 그래도 반짝반짝 하는 게 붙은 게 참 예뻤고 그 계집애 비아냥도 싫고, 그래서 집에 와서 물었다. 우리 집은 트리 안 해요, 라고.
아버지는 아주 무뚝뚝한 어조로 서양 명절 안 챙긴다고 말씀하셨다.그래서 어렸던 나는 아아 우리 한국인은 서양 문물 따위 숭앙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살았는데 일곱 살 크리스마스 때 자고 일어나보니 동생이랑 내 머리맡에 과자랑 장갑이 놓여있지 않은가. 옆엔 엽서도 있었다. 글자를 못 읽는 동생을 위해 낭독하다 보니 서명이 좀 이상하다. 산타 아저씨 아줌마?
......아니 그 전에 이거 우리 셋째 이모 필적이잖아. 그럼 아줌마는 이모고 아저씨는...... 그 남자친구 같은데. 시치미를 떼고 지금은 이모부가 된 아저씨한테 가서 아저씨 산타는 할아버지 아니에요? 아줌마 아저씨도 있어요? 하니까 그 분이 근엄한 얼굴로 할아버지 있는데 아저씨 아줌마는 없겠냐고 하는 거다.

나는 그 길로 네 살 먹은 동생에게 달려가서 속삭였다. 이거 이모랑 아저씨가 준 거야. 동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길로 유물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는 사촌동생을 붙들고 산타가 있을 리 없다고 차갑게 말해서 어린 애들을 울리고 다니는 나쁜 오빠가 되었다. 자기도 국민학생이었으면서 참 잔인도 하지.
평생 유일한 크리스마스 추억. 적고 보니 이상한데 나는 저거 생각하면 되게 재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