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 취미/감상

5월 동안 읽고 본 것들+조금 더

유안. 2007. 6. 4. 23:18

읽은 책 정리 :

켈트 옛 이야기 : 켈트 민담을 정리한 책. 어릴 때 읽었던 것과 중복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동화 중 임금님 뱃속에 들어간 짐승인지 걸귄지를 떼내겠다고 들려주는 음식과 음식과 음식의 향연 이야기 참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맛있게 들리긴 한다만 유제품과 고기 뿐이니 참으로 느끼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는 버섯도 좋아하고 나물도 좋아하거든. 두부도 정말정말 좋아하고. 여담이지만 국수와 두부를 처음 만든 인간이 천국에 안 가면 누가 천국에 간다는 거야. 인류에게 얼마나 큰 기여야 저게.(개인적인 생각이니 국수와 두부가 싫으신 분은 안 읽으신 셈 치세요, 죄송합니다.)
이 쪽 동화를 읽다보면 이 동네에 왜 히스풀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아니 히스풀이 많은 걸 보니 동화를 알겠다고 해야 맞겠지. 마비노기가 참 맥락은 잘 잡았어.

에이브 - 칼과 십자가
칼이 녹슬고 무디어졌지만 그래서 십자가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에 나왔던 칼이 그런 비유로 쓰이다니 역시 이 책을 읽고 자란 애들이 글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유와 상징을 몸으로 깨칠 수 있지 않나. (어째 과장이 심한 듯 하나 넘어갑시다.)
아이가 여러 가지 사고로 종교적 조직에 흘러들어가게 되고, 삶의 부조리를 배우고 조직 자체에, 신에게 의문과 분노를 품게 되고, 그러다 죄를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줄거리는 흔하지만 마다의 이야기에는 흡인력이 있었다.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람이 어떻게 다시 돌아갈 것인가, 이런 걸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성이었달까. 역시 밑바닥에 떨어져 본 사람은 삶을 안다. 주인공 마다의 이름은 여우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우라니 연상되는 바가 있어 즐거웠으나 마다는 켈트인, 그 사람은 슬라브계. 하여간 내가 식은 것처럼 보여도 식은 게 아니라니까.

카스테라, 박민규
이 사람이 그려내는 루저들은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카스테라에서는 으응, 하다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중 ‘수학은 되지 못하는 나의 산수’라는 대목에서 정말 속에서 뭐 튀어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수학은 되지 않고, 그나마 산수라고 제대로 하기나 하면 또 말도 안 하지. 오리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나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고시원 이야기는 과장 좀 섞어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기분을 알지.아침 해 뜨는 거 창문으로 볼 수 있는 방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고시원 자체가 워낙 막장에 루저스러운 곳인지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며 거기서 겪는 이야기는 모두 슬펐다.
이렇게 먹먹한 마음을 그려내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세태를 모른다, 자기한테 매몰되었다고 말하는 평론가,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살림지식총서, 양주 이야기
술 공부하려고 봤다. 위스키며 브랜디며 하는 거야 워낙 유명하다만, 스카치위스키나 코냑은 아주 상표별로 설명도 적어놨더라. 내가 이름만 들었지 제대로 술 맛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마셔봤을 리 없잖은가. 덕분에 공부가 되었다. 마시기 편한 술은 다 위스키였구나.

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이 작가가 혹시 팜에 인용된 그 문장을-Everything was beautiful, and nothing hurt. - 쓴 그 작간가? 했는데 그 작가다. ........저거 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문장이었다? 학교 다닐 때 안 한 것 중 가장 후회가 남는 것이 외국 문학 하나 부전공해보지 않은 것인데 일문학이나 중문학, 하다 못해 영문학이라도 부전공했으면 내가 문학을 보는 시선은 지금과는 또 달랐을 것이고 내가 접할 수 있는 작품 수도 굉장히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애 치기 따위 이래서 쓸모없다.
서술방식이 독특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작가의 시각도 마음에 들었다. 전에 썼듯이 큰 두뇌 따위 있어봐야 지지고 볶고 하는 데나 쓰이는 거 아닌가. 인류의 진화 방향에 대한 시각도 재미있었고, 하필 원폭의 영향으로 인류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니 남 이야기가 아니더라. 점점 항생제가 듣지 않는 몸이 되는 거나 뭔 차이가 있겠어. 그리고 서술자의 아버지가 언젠가 어딘가에 나올 줄 알았다. 꼭 나오기를 바랐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다음에는 위의 저 문장이 나왔다는 제 5도살장을 꼭 읽어야겠다. 진짜 취향이다. (결국 주문했음)
덧. 그리고 마이클 네거트. 독일계였지. 혹시 그런 이름이었냐, 혹시 했건만 역시나였다. (서점에서 판타스틱 2호 보는데 마침 저 이야기가 나와서 책에 뭐 뿜을 뻔 해다.)

살림지식총서. 학계의 금기를 넘어서
문화비평이나 근대화 이야기나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쓴 책인 듯 한데 글쎄 사실 논문 형식에 사로잡혀있다거나 비판이 없다거나 스승을 건드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사실 맞다. 그래도 근대화에 대한 탐구가 일본의 아류건 뭐건 그걸 탐구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은 거 아니겠나. 문화비평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사실 잘 실감이 안 갔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야 쥐가 왜 계속 글을 썼고 나는 왜 레코드점 아가씨를 만나고 헤어졌는지 이해가 가는 기분이다. 이 사람 글에서 죽은 자는 자라지 않는다는 대목을 볼 때 마다 철렁한다. 내가 저런 부분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하지. 그나저나 요즘 쓴 거 한 번 읽어봐야 되는데.

오란고교 호스트부 10권.
어이구 카오루 이 불쌍한 놈아. 좋아한다는 걸 자각하는 캐릭터의 자기고백은 언제 봐도 참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 경우는 진짜 뜨끔했다. 너무 시기 적절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확 터뜨려 버리다니.

누나는 짱, 1-15권
바람의 빛 작가의 작품. 이 작품을 보고 패턴을 알았다. 작가분 히지카타 같은 남자 좋아하시죠? 그런데 여주인공은 오키타 같은 남자랑 엮어 주시는 거죠? (사이토 같은 남자는 나오지도 않는다는 게 너무나 마음아프다.) 완벽주의자에 얼굴은 완전 히지카타 판박이에 속으론 어린애면서 아닌 척 하는 게 참 히지카타더라. 같이 아이돌 뛰는 애는 영 감정표현 서투르고 여자한테 말로 상처주기 좋아하고 둔한 게 오키타랑 비슷하더만. 내가 오키타는 나오지도 않는 만화 보면서 왜 기시감을 느껴야 하는 거냐 이 작가!
아이돌 그룹 이야기이면서 설득력도 굉장하고, 여전히 연출은 멋지고, 급전개 좋아하는 것도 똑같고; 바람의 빛도 앞으로 어떤 급전개가 나올지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겠다.

이 외에도 읽은 거 제법 되는데 뭐 읽었는지 기억이 막 가물가물한다. 큰일났다.

본 것들

오오쿠 : 드라마 오오쿠다. 요시나가 후미가 드라마 열심히 본 티가 난다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건 원작이 드라마인 패러디만화였던 거다. 그 와중에도 어라 교토 말이라고 말꼬리가 다 ~どす는 아닌가보네 했던 나. 사츠마 사투리는 동막골에 나오는 강원도였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는 강원도의 힘이었던 것이다. 여하간 여자들이 기를 쓰고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건 재밌다. 성에 갇혀서 낙이라고는 오로지 먹는 것과 입는 것 뿐이라는 대사에서 이래서 요즘 여자들도 일에 지치면 지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닥터후 3시즌을 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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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이시영의 한 눈에 반하다를 보는데 한새라는 남자애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있더라. 참고로 어제 저 책을 사왔다. 너무 웃겼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한 눈에 반하다를 꾸준히 읽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