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 2006. 8. 12. 05:03
공연 끝나고, 셔틀버스는 못 타고 동대입구역까지 타박타박 걸어가서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고기 씨네로 이동했습니다. 마중 나와 주셔서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장을 보는 도중에 고기 씨 묻기를
"술은 뭐가 좋으세요?"
"예, 음, 뭐가 좋을까(한참을 보다가)........소주요."
"소주요?"
"네."
만난 지 네 번째; (맨 처음 만났을 때는 기억이나 나실려나,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 때;) 저는 처음 가는 집에 들어가면서 소주를 요구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사가길 잘 했죠. 그거 없었으면 저 그 밤이 꽤나 괴로웠을 거예요.
아무튼 고기 씨네서 대작하면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주 맛있었어요. 오스트리아 최고의 초콜릿 장인 모짜르트를 기리기 위한 초콜릿도. (음하하)
주로 이야기 한 쪽은 고기 님이고 제가 들을 이야기야 빤하죠. 여행 후기. 이야기 하던 중 풍경 하나.
나 : ......잠깐만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소주병을 찾아 기울인 다음 한 잔 마시고 숨을 돌리고)
고기 씨 :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나 : 네.
(저를 흥미있게 지켜보던 고기 씨) : 얼굴 빨개졌어요.

좋아하는 사람이건 물건이건 영화건, 뭐건 애매모호하고 일방적인 애정이 갑자기 그 대상이 정말 눈 앞에 나타났을 때의 반응- 쉽게 이야기해서 빠순이 오빠 접견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하죠? 지금이야 이야기를 다 들었고 고기 씨네 블로그에 사진도 올라오고 해서 익숙해졌지만 그걸 다녀온 사람한테 직접 들어봐요. 그거 그냥 들을 게 못 됩니다. 그 표정이라든가 직접 사진을 보면서 하는 설명이라든가. 더군다나 말이죠 공연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이 이야기해 주는 무대 위의 배우란 여기서 보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어요. 무려 올렉 씨 죽음에서 초딩개그스러운 요소를 찾을 수 있다니 멋진 일 아니에요?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라고요. 그 광소가 무대를 보고 나면 다르게도 보일 수 있다니.
여튼 흥미진진한 여행후기였습니다. 자세한 건 저 분 블로그에서. 공연 후기를 빼고 크리스티앙 뮐러 씨 이야기나 우베 팬텀 이야기며 외강내유 우베 씨와 외유내강 올렉 씨 이야기며, 술상을 물리고 나서도 제르가디스(쿠션 이름)랑 돈까쓰(쿠션 이름) 끌어안고 하는 베갯머리 토크까지. 창 밖이 훤히 밝아오는 걸 보고 나서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