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 2008년 5월 13일.
매번 기록을 추가, 수정할 때마다 날짜가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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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이입, 공감 : 한 작품을 대할 때 작품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작중 인물이 웃으면 웃고 울면 우는 것이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가 einfeuhlung이란 말을 처음 썼다는데 그건 됐고 아무튼 이들에 의하면 의인법, 비유가 모두 감정이입의 결과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건담이다’에서 화자는 자신의 정서를 건담에 옮기고 있다.
공감은 주로 인간끼리 동류의식을 갖는 것으로 즉 알렐루야를 보며 내가 감정적으로 알렐루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로서 그의 공기화를 동정하는 것이 공감인 것이다. 공감을 못하면 작품을 읽을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대개 공감 또는 반감을 사도록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공감은 지적이고 사상적인 것인 반면, 감정이입은 본능적이다.
작품의 전달을 위해 두 가지 모두 필요한데, 감정이입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암시성 강한 말을 골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할 것이고 공감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독자의 반응도 저 틀을 따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십이국기> 1권의 요코를 보며 그녀의 어둡고 찌질한 면에 공감을 하는 사람은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어 읽을 것이며 작가인 오노 후유미도 어느 정도 의도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요코, 쇼케이, 스즈 등의 인물을 통해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읽는이로 하여금 작중 인물의 행동을 비판, 혹은 동정하게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사람 낚는 데 효과는 좋다.
객관적 상관물 : 엘리었이 말하기를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때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들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개인의 감정이 문학작품에 액면 그대로, 예술적 객관화를 거치지 못하고 노출되면 문학의 재료가 요리되지 않고 재료로 머무르는 것이니까 그 감정과 상식적으로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심상, 상징 사건에 의해 구현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블오 2기 엔딩에 나오는 떨어진 가위는 인물들의 상실감을 환기시켜주는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혹은 루피가 샹크스에게서 물려받은 모자는 루피의 결의, 의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로 볼 수 있다.
관습 : 문학에서 오래 계속하여 사용 또는 응용한 결과로 말미암아 고정된 관습처럼 되어버린 형식, 문체, 주제, 소재 등을 말한다. 형식, 문체의 관습은 애니는 거의 13화 한 쿨로 끝나는 등 판별이 용이하지만 주제나 소재의 관습은 좀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남성향 애니에서 나타나는 거유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예를 들어 소재에 있어 문학적 관습인 것이며 야오이에서 덩치가 작은 쪽이 수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일종의 문학적 관습이다.
어떤 관습이 너무 친숙한 것이면 작가도 독창성을 발휘할 수 없고 독자도 신선감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 간의 공통의 영역을 마련해 주므로 의사소통이 원활해 진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에서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큰 눈 캐릭터들이 손가락에 조그만 렌즈를 올리고 있는 것도 불합리하지 않다는 묵계적 관습 등 불변하는 관습도 많다. 궁극적으로 기본장르들도 부동의 장르인 셈이다. 남성향, 여성향이라는 장르 틀 안에서 동인들은 각 장르에 맞는 작품을 쓰는 것이 관습이다. 점프계, 메카닉, 보이즈러브계 등 제각각의 관습이 있으며, 이 안에서 가변적 관습을 변형시켜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점프 출신 주제에 점프계의 관습을 뒤엎는 성인향 작품 은혼이 좋은 예이다.
관습을 모르면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가 많다. 점프계에서 남성 대 남성의 불타는 우정은 여성향 2차창작에서 끈끈한 에로스로 해석되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그들이 2차창작에서 특별히 의도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관습은 하나의 문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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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이론 : 러시아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은 담론, 특히 문학적 담론에는 저자의 말이 단독적으로 미끈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의 서로 충돌하는 말들이 동시에 진행되든가 병치된다고 보았다. 그는 우선 하나의 텍스트가 오랜 역사적 발전을 통하여 성립된 여러 다른 담론들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특정 텍스트 속에서 다른 가닥들이 얽힌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바흐친이 주로 예로 드는 게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인데(16세기 프랑스 소설가. 대표작 가르강튀에와 팡타그뤼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서로 다르면서, 충돌까지 하는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다성적 구조라고 부르며, 다성적 구조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똑같이 중요하다. 단성적 구조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과 반대되는 예이다. 라블레의 작품은 카니발적 구조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사회 구성원 전부에게 사회적 제약, 규율 없이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부여된 무질서상태인 것이다. 당시 사회의 논의, 행동이 자유롭게 얽히며 전개되는 양상을 그리려고 했다는데 하필 라블레를 든 이유는 바흐친이 이것을 근대소설의 전형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건담 더블오에서 셀레스티얼 빙 소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민간인을 대표하는 인물인 사지, 루이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는 것도 그것에 대한 좋은 예이다. 그리고 유니온, 인혁련 등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주 다성적이라고는 말을 못 해도, 한 목소리가 주도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다성성의 예로 들고 싶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이 다성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아마도 현대사회인가보다 싶다. 다성적인 작품은 저자의 목소리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점프계 격투에스컬레이터물은 단성적 구조를 가진 작품의 예로 적절하다. 혹은 ‘안녕, 절망선생’ 같은 작품도 있다. 단성적 목소리가 특정주의사상만을 가진 인물이 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한 가지 목소리가 나 홀로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학작품 같으면 이광수가 좋은 예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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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 : 원어의 의미는 '다른 것을 말함'으로 풍유, 우유라 번역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인물, 배경, 행동 등 우리가 아는 이야기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데, 그 이야기 배후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구체적인 심상 전개와 함께 추상적 의미층이 배후에 동반된다.
예를 들면 건담 더블오는 이오리아 슈헨베르그라는 인물의 외양을 역사상의 인물인 레닌과 매우 흡사하게 설정하여 무력개입이라는 구체적인 내용 전개와 함께 그 전개에 대한 추상적인 의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구에서 알레고리의 기본방법은 관념을 사람처럼 꾸미는 것이다. 한 예로 죽음과 같은 관념을 사람처럼 꾸며 죽음과 생존본능이라는 관념을 <Wann Ich tanzen will>이라는 노래에서 죽음과 엘리자베트의 관계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의인화된 관념은 특정한 면만이 강조된 인물로서 그 관념의 정신적 작용을 나타낼 만한 행동을 취한다.
이 바닥에서 알레고리 안 쓰인 데가 없는 것 같지만 그나마 하나 골라보자면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에서 소년이 여러가지 이름을 사용하다 끝내 자신의 본래 이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자아의 성장 과정을 본딴 알레고리 전개를 찾을 수 있다.
한 작품이 이야기하는 구체적 사실을 어떤 고정된 정신적 의미(교훈 또는 철학 사상)로 해석하는 사람은 그 작품을 알레고리로 이해하는 것이며, 작금의 애니매이션 오타쿠 층이 이 방면에 매우 능한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오타쿠 대왕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 극장판에서 아예 다 죽여놓고 오타쿠들을 낚은 바가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사건이다. 또한 작가가 한 뚜렷한 사상, 교훈을 말하고자 하여 그것을 한 인물의 행위에 가탁하고자 하면, 그는 알레고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건담 더블오에서 주인공 세츠나가 쿠르드인인 것도 이것의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현대의 정신분석학과 신화학은 종래의 교훈주의와는 달리 문학을 무의식의 작용 및 인간의 잠재적 신화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것도 작품을 표면과 심층의 양면성에서 다루는 만큼 알레고리식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참고서적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2004, 민음사
사실 참고 정도가 아니고 싸그리 갖다 붙였습니다. 저작권 위반입니다. 뭐 학부 1학년 발제할 때 책 한 권 타이핑하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어여쁘게 봐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엄밀히 말하면 저는 문학도도 아니고 현대문학을 전공한 적도 없는 관계로 믿으시면 매우 곤란합니다. 제 문예이론에 대한 상식은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전혀 획득하지 못했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