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 취미/동인녀문학개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30 7월 잡상
  2. 2008.05.13 독자반응비평의 한 예 4
  3. 2008.05.13 [문학개론]문학비평용어사전(私典)

1. 이안 매큐언의 '속죄'를 읽었다.

읽고 잠을 설쳤다. 내가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글탕아들에게 일독을 권함. 저 작자 작품은 다 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2. 박영희와 김기진이라고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ㅎㅁ 커플이 있었다.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둘이 너무 친해서 방학 때 헤어지면 못 견뎌 매일매일 편지를 썼다고. 그래 보다 못한 김기진네 어머니가 박영희가 어떤 계집애이기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난리냐고, 어서 실토하지 못할까 하며 아들을 족쳤다고.
저 둘은 당시 시대조류에 맞게 훌륭한 문학청년이 되었는데 김기진이 박영희에게 당시 새로운 문학조류를 소개해서 박영희는 김기진 덕에 사상까지 바꾸고는 둘이서 지인들과 동인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과 다른 모임(염군사, 불꽃 무리라니 이름 한 번 끝내주지.)이 합쳐져서, 대한민국 20년대 문단을 뒤집어놓는 단체가 탄생했다.
이쯤가면 저 애들이 어떤 노선을 밟았는지 다들 짐작하시겠지. 그게 그 유명한 카프.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가 동맹이다. 좀 조악한 표현을 쓰자면 낭만주의(를 빙자한 요즘말로 중2병 병맛. 아니 진짜 그당시 시 보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노선 열심히 달리다가 어머나 새세상이로구나 하며 우르르르 카프로 달려갔다고 보면 될지도. 그 카프가 20년대 조선문단을 지배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다 내용·형식논쟁이라 이름 붙은 논쟁이 발생한다. 김기진이 박영희의 글을 비판하며 '소설이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얹어 놓은 건축이 있는가?'라고 말을 하자
.......이 놈이 삐쳤다.
바로 되받아쳤다. 프롤레타리아의 전문화는 건축물이라 하면 우리의 예술은 그 구성물 중 하난데 서까래도 되고 기둥도 되지 뭐가 문제냐, 아직은 예술적인 문제는 시기상조니 열심히 투쟁하자 뭐 그런 이야기로. 이 사건은 김기진의 사과로 끝났다. 그래서 나는 박영희 수를 밀었었다.......만 박영희 공을 지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후로 카프 1차 방향전환론도 뭐 어찌어찌 지나가고(김기진 때문에 박영희가 발끈해가지고는 김기진과 신경향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사건이 생겼다. 아무튼 그래서 동경파랑 국내소장파랑 대판 싸우다가 전부다 결론이 김기진 박영희 너네가 나쁘다......는 쪽으로 갔다.) 잘 있었는데 김기진이 '낙동강'이라는 작품을 극찬했다. 카프는 이런 걸 원했다는 식으로. 그랬더니 한 비평가가 지금 예술이 문제냐 목표는 투쟁이다 하면서 또 물고 늘어진 거다.  그리고 한참 뒤에 대중화 논쟁이라고, 우리도 통속소설을 좀 본따서 일반대중들이 읽기 쉬운 걸 만들어야 하지 않냐는 김기진의 발언 때문에 임화랑 김기진이 한 판 붙은 사건이 생겼는데 중요한 건 김기진이 제깍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린놈들한테 머리 숙이기 싫어서였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박영희한테처럼 쉽게는 안 나왔다는 거.

그런데 제일 문제는 그래놓고 전향은 박영희가 먼저 했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 어쩌고 하는 유명한 멘트와 함께. 저 작자 저 멘트 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프는 해산했다.

그 후 둘의 연애노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공부가 부족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상상의 여지는 풍부하다. 저래놓고 원작실제로는 안 저랬다, 그럼 할 말 없는데, 좋지 아니한가. 서로 보낸 편지만 해도 일렬로 놓으면 현해탄을 왕복할 수 있는 남자들 둘이서 나름 알콩달콩 연애질하다가 이념 때문에 갈라서는 거다. 난 저 상황에서 더 미련 많고 애착 있는 놈이 수가 되는 걸 좋아하는 고로 김기진 수를 지지한다. (저렇게 팔랑팔랑 가벼운 놈을 수 시킬 수 없다.) 물론 한국 근대사 최고의 ㅎㅁ 커플이 이상과 김유정이라는 데 절대 이의는 없는데(저것들은 왜 저래놓고 결혼은 여자랑 하고 연애는 여자랑 하려고 시도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난 박영희 찌질공에 김기진 미련수를 적극 지지한다.

3. 내일이 31일이죠. 올렉 아저씨 생일 축하해요.

제발 음반 좀!

Posted by 유안.
,
연수 받으면서 끄적끄적. : 2007년 1월 22일 씀. 2008년 5월 13일 수정.


최근의 독서이론에 따르면 읽기는 독자의 독서 목적, 독자가 처한 환경, 독자의 배경지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독서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 한 동인녀가 있습니다. 이 동인녀는 남성과 남성 간의 커플링이며 BL에 대한 이해도가 당연히 이 쪽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높습니다. 그녀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그녀가 고른 책은 요즘 (특정 바닥에서)유행하는 18세기 문인들의 소품이로군요. (소품이란 요즘 말로 하면 수필에 가깝습니다. 그 당시 기준으로 정전이 아닌 글이고, 문체도 꽤나 파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꽤나 진지한 책입니다. 잘 읽고 있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특정 대목에서 붙박힌 듯 멈춰 버리는군요.
에, 대강 요약하자면 두 학자의 평생에 걸친 교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눈을 빛내더니 그 대목에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빌려 어디론가 사라지는군요.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러고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자기 블로그에 접속해서는 뭐라고 막 씁니다. 여러분, **와 **는 평생 서로만 생각하며 살았나봐요. 진짜 뜨거운 우정, 아니 애정이에요!
왜곡이라고요? 똑같은 글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게 저 이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그녀가 남자 간의 우정을 어째서 애정으로 읽어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만 그래도 노파심에 한 마디.
커플링이란 것은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만 대개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캐릭터고 개연성만 있다면 둘을 맺어주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저 개연성입니다. 대놓고 연애를 하는 작가공인 커플부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나 팬들이 밀어주는 커플까지. 특히 작가가 일절 언급을 하지 않음에도 둘이 커플임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행간에 없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능력을 공력이라는 말로 불러도 무방합니다. 행간에 없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야 말로 배경지식과 독서 목적의 힘이지요. 자신이 평소 커플링을 다양한 매체에서 접했고, 그것을 배경지식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학술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책을 읽으면서도 그간 쌓은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글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대목만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인질, 커플링은 현재의 독서이론 상 매우 타당한 활동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글 자체가 왜곡으로 차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읽으시는 분이 필요한 부분만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학에서는 독자반응비평이라는 해석방법이 최근 인기를 좀 끌었습니다. (더 나아가 수용미학이니 어쩌니 하는 골때리는 소리도 나온 것 같은데 저건 좀 치우고) 글읽기의 주체가 중요하다고 해서 문학 작품의 객관성 보다는 작품에 대한 독자의 반응과, 해석,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변적인 현상을 기술하려고 하는 거죠.
형식주의라고 작품 내부의 언어를 따져대는 비평이 있는데(시어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게 저거의 좋은 예입니다.) 거기서는 독자의 개인적 반응을 의도론적, 영향론적 오류라고 부르거든요.
독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주체적으료 형성하려고 하지만 해석의 공동체, 텍스트의 관습을 잘 인지하면 그만큼 공동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읽기를 할 수 있다 합니다.
최근 독서교육에서 많이 응용하는 방법이지요. 10학년 국어교육과정 읽기 영역 중 본질 면을 보면 읽기가 의사소통 행위임을 안다, 는 내용이 있으며 각 대단원별 학습 내용 중에서는 작가 작품 독자의 관계를 작품 수용에 능동적으로 활용한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만 해도 매년 읽기란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는 말이 거의 되풀이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동인질을 부추기는 겁니다.
독자의 재해석을 중요시하는 학습활동이 교과서에 널려있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읽고 시점을 바꾸거나 결말을 바꾸는 활동은 이제 당연한 수업의 한 순서로 들어가 있지요. 재해석에 익숙한 학생들이 자라서 훌륭한 2차창작을 할 생각을 하면 참으로 기쁩니다.

'망상은 취미 > 동인녀문학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 잡상  (0) 2008.07.30
[문학개론]문학비평용어사전(私典)  (0) 2008.05.13
Posted by 유안.
,

최근 수정 : 2008년 5월 13일.
매번 기록을 추가, 수정할 때마다 날짜가 바뀝니다.
--------------------------------

<ㄱ>
감정 이입, 공감 : 한 작품을 대할 때 작품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작중 인물이 웃으면 웃고 울면 우는 것이다. 독일의 헤르만 로체가 einfeuhlung이란 말을 처음 썼다는데 그건 됐고 아무튼 이들에 의하면 의인법, 비유가 모두 감정이입의 결과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건담이다’에서 화자는 자신의 정서를 건담에 옮기고 있다.
공감은 주로 인간끼리 동류의식을 갖는 것으로 즉 알렐루야를 보며 내가 감정적으로 알렐루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로서 그의 공기화를 동정하는 것이 공감인 것이다. 공감을 못하면 작품을 읽을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대개 공감 또는 반감을 사도록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공감은 지적이고 사상적인 것인 반면, 감정이입은 본능적이다.
작품의 전달을 위해 두 가지 모두 필요한데, 감정이입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암시성 강한 말을 골라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할 것이고 공감에 역점을 두는 작가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독자의 반응도 저 틀을 따를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십이국기> 1권의 요코를 보며 그녀의 어둡고 찌질한 면에 공감을 하는 사람은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어 읽을 것이며 작가인 오노 후유미도 어느 정도 의도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요코, 쇼케이, 스즈 등의 인물을 통해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읽는이로 하여금 작중 인물의 행동을 비판, 혹은 동정하게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사람 낚는 데 효과는 좋다.

객관적 상관물 : 엘리었이 말하기를 ‘어떤 특별한 정서를 나타낼 때 공식이 되는 한 떼의 사물, 정황, 일련의 사건들로서, 바로 그 정서를 곧장 환기시키도록 제시된 외부적 사실들’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개인의 감정이 문학작품에 액면 그대로, 예술적 객관화를 거치지 못하고 노출되면 문학의 재료가 요리되지 않고 재료로 머무르는 것이니까 그 감정과 상식적으로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심상, 상징 사건에 의해 구현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더블오 2기 엔딩에 나오는 떨어진 가위는 인물들의 상실감을 환기시켜주는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혹은 루피가 샹크스에게서 물려받은 모자는 루피의 결의, 의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로 볼 수 있다.

관습 : 문학에서 오래 계속하여 사용 또는 응용한 결과로 말미암아 고정된 관습처럼 되어버린 형식, 문체, 주제, 소재 등을 말한다. 형식, 문체의 관습은 애니는 거의 13화 한 쿨로 끝나는 등 판별이 용이하지만 주제나 소재의 관습은 좀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다. 남성향 애니에서 나타나는 거유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예를 들어 소재에 있어 문학적 관습인 것이며 야오이에서 덩치가 작은 쪽이 수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일종의 문학적 관습이다.
어떤 관습이 너무 친숙한 것이면 작가도 독창성을 발휘할 수 없고 독자도 신선감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 간의 공통의 영역을 마련해 주므로 의사소통이 원활해 진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에서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큰 눈 캐릭터들이 손가락에 조그만 렌즈를 올리고 있는 것도 불합리하지 않다는 묵계적 관습 등 불변하는 관습도 많다. 궁극적으로 기본장르들도 부동의 장르인 셈이다. 남성향, 여성향이라는 장르 틀 안에서 동인들은 각 장르에 맞는 작품을 쓰는 것이 관습이다. 점프계, 메카닉, 보이즈러브계 등 제각각의 관습이 있으며, 이 안에서 가변적 관습을 변형시켜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점프 출신 주제에 점프계의 관습을 뒤엎는 성인향 작품 은혼이 좋은 예이다.
관습을 모르면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가 많다. 점프계에서 남성 대 남성의 불타는 우정은 여성향 2차창작에서 끈끈한 에로스로 해석되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그들이 2차창작에서 특별히 의도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관습은 하나의 문법인 셈이다.

<ᄃ>
대화이론 : 러시아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은 담론, 특히 문학적 담론에는 저자의 말이 단독적으로 미끈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사람의 서로 충돌하는 말들이 동시에 진행되든가 병치된다고 보았다. 그는 우선 하나의 텍스트가 오랜 역사적 발전을 통하여 성립된 여러 다른 담론들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특정 텍스트 속에서 다른 가닥들이 얽힌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바흐친이 주로 예로 드는 게 도스토예프스키와 라블레인데(16세기 프랑스 소설가. 대표작 가르강튀에와 팡타그뤼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서로 다르면서, 충돌까지 하는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다성적 구조라고 부르며, 다성적 구조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똑같이 중요하다. 단성적 구조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과 반대되는 예이다. 라블레의 작품은 카니발적 구조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사회 구성원 전부에게 사회적 제약, 규율 없이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부여된 무질서상태인 것이다. 당시 사회의 논의, 행동이 자유롭게 얽히며 전개되는 양상을 그리려고 했다는데 하필 라블레를 든 이유는 바흐친이 이것을 근대소설의 전형으로 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건담 더블오에서 셀레스티얼 빙 소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민간인을 대표하는 인물인 사지, 루이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는 것도 그것에 대한 좋은 예이다. 그리고 유니온, 인혁련 등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주 다성적이라고는 말을 못 해도, 한 목소리가 주도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다성성의 예로 들고 싶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이 다성성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아마도 현대사회인가보다 싶다. 다성적인 작품은 저자의 목소리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점프계 격투에스컬레이터물은 단성적 구조를 가진 작품의 예로 적절하다. 혹은 ‘안녕, 절망선생’ 같은 작품도 있다. 단성적 목소리가 특정주의사상만을 가진 인물이 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한 가지 목소리가 나 홀로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학작품 같으면 이광수가 좋은 예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작품인 것이다.

<ㅇ>
알레고리 : 원어의 의미는 '다른 것을 말함'으로 풍유, 우유라 번역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인물, 배경, 행동 등 우리가 아는 이야기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데, 그 이야기 배후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구체적인 심상 전개와 함께 추상적 의미층이 배후에 동반된다.
예를 들면 건담 더블오는 이오리아 슈헨베르그라는 인물의 외양을 역사상의 인물인 레닌과 매우 흡사하게 설정하여 무력개입이라는 구체적인 내용 전개와 함께 그 전개에 대한 추상적인 의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구에서 알레고리의 기본방법은 관념을 사람처럼 꾸미는 것이다. 한 예로 죽음과 같은 관념을 사람처럼 꾸며 죽음과 생존본능이라는 관념을 <Wann Ich tanzen will>이라는 노래에서 죽음과 엘리자베트의 관계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의인화된 관념은 특정한 면만이 강조된 인물로서 그 관념의 정신적 작용을 나타낼 만한 행동을 취한다.
이 바닥에서 알레고리 안 쓰인 데가 없는 것 같지만 그나마 하나 골라보자면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에서 소년이 여러가지 이름을 사용하다 끝내 자신의 본래 이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자아의 성장 과정을 본딴 알레고리 전개를 찾을 수 있다.
한 작품이 이야기하는 구체적 사실을 어떤 고정된 정신적 의미(교훈 또는 철학 사상)로 해석하는 사람은 그 작품을 알레고리로 이해하는 것이며, 작금의 애니매이션 오타쿠 층이 이 방면에 매우 능한 것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오타쿠 대왕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 극장판에서 아예 다 죽여놓고 오타쿠들을 낚은 바가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사건이다. 또한 작가가 한 뚜렷한 사상, 교훈을 말하고자 하여 그것을 한 인물의 행위에 가탁하고자 하면, 그는 알레고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건담 더블오에서 주인공 세츠나가 쿠르드인인 것도 이것의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현대의 정신분석학과 신화학은 종래의 교훈주의와는 달리 문학을 무의식의 작용 및 인간의 잠재적 신화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것도 작품을 표면과 심층의 양면성에서 다루는 만큼 알레고리식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참고서적
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2004, 민음사
사실 참고 정도가 아니고 싸그리 갖다 붙였습니다. 저작권 위반입니다. 뭐 학부 1학년 발제할 때 책 한 권 타이핑하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어여쁘게 봐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엄밀히 말하면 저는 문학도도 아니고 현대문학을 전공한 적도 없는 관계로 믿으시면 매우 곤란합니다. 제 문예이론에 대한 상식은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전혀 획득하지 못했지 말입니다.

'망상은 취미 > 동인녀문학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 잡상  (0) 2008.07.30
독자반응비평의 한 예  (4) 2008.05.13
Posted by 유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