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 나는 동화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국민학교 들어갈 때 까지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던 나는 책과 놀고 책에서 말을 배웠다. 어린 마음에도 라스무스 이야기, 엘리너 파전의 동화, 막다른 집 1번지 같은 책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마해송씨가 쓴 바닷가에 핀 꽃과 별의 연애담도 좋아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와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에 버닝했고, 안네 읽고 안네의 일기를 샀다가 안네랑 페터랑 키스하는 거 보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으며(여덟 살 짜리한테 그게 얼마나 충격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야동을 처음 본 충격에 비할 만 하다.) 두 번째로 다닌 도서관에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공상과학소설을 읽고 세 번째로 다닌 초등학교 옆의 도서관에서 플롯시, 아나스타샤, 꼬마 흡혈귀에게 버닝했다.
그 때도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 버릇은 여전했다면 그래도 생각해보면 저 때 참 즐겁게 책을 읽었다.

어른들은 책 읽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도 잘 할 것 같고 그냥 뛰어다니는 애들보다 뭔가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겠지. 그래서 어려서 어른들은 이 집 애는 책 많이 읽어서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댁 애는 운동 잘 해서 좋겠다고 답해주고 싶다. 아침독서 10분은 하면서 왜 아침운동 10분은 안 하냐 어릴 때 안 뛰면 언제 뛴다고. 게다가 애는 애답게 커야 한다. 친구들이랑 유치한 장난도 하고 싸우고 울고 뛰어다니고. 음흉하게 어린 것이 책 읽으면서 이상한 상상 굴리고 있는 거 생각하면 퍽이나 좋겠네.
며칠 전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 몇 개를 바탕으로 나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1. 책으로 말을 배워서 나는 삼천리를 [삼철리]라고 읽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애국가를 부르자 온 집안 식구들이 폭소했고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안 들어간 애한테 자음동화를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가엾은 우리 아버지, 억양도 좀 이상한데다, 결정적으로 말이란 게 책을 읽는 속도를 따라갈 리가 없으니 자연 말이 빨라지거나 어순이 묘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내 억양은 학교 들어가서 경상도 억양을 학습한 결과다. 중학교 때까지 분명 경상도 말인데 잘 들어보면 전국 어느 곳의 억양도 아닌 아주 독특한 말씨를 썼으니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국민학교 2학년 때는 무려 간첩 소리까지 들었단 말이지. 반 남자애들이 간첩이라고 놀리고 빨리 너네나라 가라고 그러는데 나는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였고, 간첩이란 말은 한 마디로 존재의의를 격하시키는 수준의 단어였던 거다. 오타쿠만큼이나 무서운 욕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말하는 걸 싫어한다. 적절한 말은 너무나 어렵다.

2. 작은 아씨들을 보면 에이미가 유서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에이미의 허영심(이랄까 생각해 보면 그냥 평범한 여자애일 뿐인데 청교도들이란)에 꽤 도움이 되겠지 싶어 넣은 장면인 모양인데,
당시 여섯살이던 나는 당장 굴러다니던 공책을 잘 펴서 색연필로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본따 공책을 잘 보이게 펴 놓고 놀러 나갔다 와 보니 당시 한 집에 살던 이모들이 배를 잡고 웃고 계셨다.

유서의 내용인즉
에이브 문고는 *윤이 주고, (내 남동생이다.)계몽사소년소녀문학도 *윤이 주고 역시 계몽사에서 나온 만화로 된 과학책, 세계지리책도 *윤이 주고 36색 크레파스 *윤이 주고 얼마전에 산 책상 *윤이 주고 옷은 (치마라서 *윤이 못 주니까) 윗집 애 주라는 소리였다고 기억한다. 저건 그 당시 내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동생 걱정되어서 유서는 어떻게 썼냐고 온 집안 식구들이 웃었다. 그러고보니 윗집이 주인집이고 우리집이 셋집이라 내가 걔 옷 얻어입은 적도 있는데 당시 나는 뭔 생각을 했던 걸까.

2-1. 책에 나온 건 따라해 보고 싶어했다.
라스무스처럼 종이에 들러붙은 과자를 떼 먹어보고 싶어했고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지도에 나오는 큰 글자는 정말 못 읽나 싶어서 지명 찾기 게임에서 미국 불렀다가 바보 취급 당했으며(그 후 나는 혼자 너무 컸나, 를 중얼거렸다.) 2차대전 당시 물자가 부족해서 먹었다는 식물 뿌리 끓인 물-커피 맛이 난다-을 먹어보고 싶어했으며 보리밭에 가면 보리를 손에 쥐고 나와 어딘가 심어보고 싶었다. 머리엔 방울이나 고무줄 대신 리본을 묶어보고 싶었고.......
그러다가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 졌는데 그걸 알려면 죽어야 한다는 걸 알고 굉장히 무서웠다. 죽은 뒤라는 게 상상이 안 갔으니. 우화를 읽으며 늑대가 안 죽으려면 고기를 안 먹으면 될 텐데, 고기를 안 먹으면 아무도 안 죽을 수 있는데 하고 생각하다, 사실 채소를 먹는 것도 누군가의 생명을 먹는 거니 아무 것도 안 먹으면 좋지만 그러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정말로 무서웠다.

3.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나는 어려서 친구가 거의 없었다. 애들하고 할 이야기가 없어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에 놀러온 애가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 말씀으론 그렇게 산만한 애는 처음 봤다는 거다. 요즘말로 하면 발달장애겠지. 그러니까 마이너한 애들끼리 놀았다는 이야기다. 어려서 마땅히 배워야 할 걸 못 배웠으니 사교성이 있을 리 없다.
지금도 사교성은 바닥이다.

3-1. 친구 집에 갔다 친구는 안보고 책 읽다 쫓겨날 뻔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나마 내 친구들이 개념인들이었고 본인도 책에 미친 인간들이라 곱게 이해는 해 줬다만 저거 완전 그거잖아. 난 너보다 책이 더 좋거든. 이런데 어느 인간이 예쁘다고 좋아해 주겠냐;
지금도 어지간하면 남과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일은 안 한다. 가면 실종되거든, 내가. 찾아보면 어느 책꽂이 근처에서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어. 이 꼴을 누굴 보여주냐.

4. 어려서 이상한 어휘를 사용하고 다녔다.
새로 살 집을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 간 여섯 살 먹은 나. 그 자리에서 네 살 난 주인집 아들을 보고 외쳤다.
"얘 참 유별나게 생겼네요."

난 저 말 뜻이 그렇게 나쁜 줄 몰랐다. 그래도 그 집에 이사 가서 제법 즐겁게 살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성격을 형성한 게 다 저놈의 책이고, 책 읽는 인간치고 사교적인 인간을 별로 못 봤다. 그렇다고 불만은 없지만. 에이브 같은 거 읽고 자라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데. 모든 부모들이 애를 책 읽는 애로 키우는 건 사실 개인적으로 기쁘긴 한데(책덕후들이 모여 이야기해도 안 어색한 세상) 그래도 모두 이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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