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예 님 리퀘였습니다. 리퀘 내용은 맨 끝에 적어놓을게요.

----------------------------------------------------------------------


히지카타가 서류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다.
예산 지원 신청서, 경위서, 등등의 제목이 붙은 서류가 결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내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서류일 거다. 가게 하나를 날려먹고 신문에 얼굴이 난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사고였는데. 이 인간은 그냥 한숨을 푹 쉬고 한참 잔소리를 하더니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니 동생이냐.
대체 저 인간은 내가 무슨 사고를 쳐야 나한테 진지하게 화를 낼지 모르겠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설교를 하고 야단은 쳐도 화는 내지 않으니 뭐 저런 병신이 다 있나 모르겠다. 심지어 이것 좀 보라지. 어지간히 졸렸는지 볼펜으로 입 주위를 그어놨다. 입술 한 귀퉁이에 괴상한 검은 도형을 그려놓고도 속편하게 잘도 쳐자네. 얼굴에 뭐가 묻어도 꼭 저렇게 웃기고 폼 안나게 묻는 것도 재주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킬킬거리는데도 깨질 않는다. 자는 얼굴은 참 평온해 보인다. 평소엔 미간에 주름 잡고 인상 구긴 얼굴밖에 못 하면서. 이 인간은 계속 나나 곤도 씨, 떨거지 새끼들이 치는 사고나 수습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이렇게 자는 게 일상이지. 이번엔 어디 가서 머리를 숙이고 어디 가서 수습할 거리를 조달해 왔을라나. 나로선 짐작도 안 가는 일이다.
아마 계속 이런 식일 거다. 그리고 요령 없는 인간에겐 사람 화를 돋구는 데가 있다.
굳이 내가 S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 내가 S라서 더 화가 나는 거겠지. 그게 맞을 거다. 이 인간은 사람이 멍청할 수 있는 한 멍청하게 구는 꼴을 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멍청한 짓을 해 댄다. 그러라고 치는 사고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화를 좀 내 봐라 제발. 진지하게 나한테 화를 내 보라고.
그냥 충동적으로 달려든 거다. 그리고 마침 입술에 난 볼펜 자국이 어지간히 짜증나던 참이었다. 그래서 물어뜯었다. 순간 히지카타가 신음 반 비명 반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 손으로 내 등짝을 후려갈겼다. 심심하면 나가서 애들하고 놀 일이지 뭐 하냐고 그런다. 이 인간 봐라.
입술에 피가 벌겋게 맺혀 있는 걸 입으로 닦아줬더니 이젠 굳었다. 그리고 정확히 6초 후에 폭발했다. 그 순간에도 검집에서 칼을 뽑지 않고 달려드는 덴 정말이지 질렸다. 이러니 내가 이 인간을 괴롭히고 싶지 않겠냐고. 언제고 진검을 뽑아들고 날 죽일 자세로 덤빌 때까지 집요하게 괴롭혀 주마. 평생이 걸리더라도. 다음엔 좀 더 세게 물어뜯어봐야지. 그런데 왜 내가 하필 입술을 물어뜯었을까, 에잇 모르겠다. 생각하기 귀찮다.

---------------------------------

리퀘는 원래, 오키히지 키스신이었습니다.
......저것들이 첫키스는 레몬맛☆ 이러고 있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오키타는 자기가 히지카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도 못 할 거예요. 그런 놈 치고 저만하면 진도 많이 나가지 않았어요? (딴청)
Posted by 유안.
,
-가져가세요, 홍보해 주세요. 부디, Please, お願い!
카페 6.9 카운터 앞에 B4 사이즈의 종이가 수북히 쌓였다. 그리고 그 앞에 이상한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동글동글한 글자체로 적힌 작은 팻말이었다.
"뭐야 이거. 포스터? .......금홍아 금홍아? 밴드 이름이 왜 이러냐?"
"아 어때서, 곱잖아요! 운율도 살아있구만."
수북히 쌓인 종이 중 한 장을 집어든 효석이 종이에 적힌 문구를 읽자 이상이 버럭 화를 냈다. 효석은 한숨을 푹 쉬고, 포스터를 끌어안고 쉿쉿거리는 이상은 무시한 다음, 바로 유정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 아가씨가 그 아가씨?"
"......부탁이니 아무 말씀 마시고 포스터 가져가세요. 안 가져가면 해경 형 낙심한단 말이에요."
유정은 먼 산을 쳐다보았다. 13장이 줄어서 남은 포스터는 487장.

"해경아, 이거 어디서 구했어?"
"인쇄소 아저씨한테 부탁했어요. 500장만 더 뽑아달라고."
"어떻게 알고 부탁했냐......돈은 네가 내고?"
"우연히요. 뭐 어때요, 예쁘잖아. 태원 형도 가져가요. 회사에도 붙이고, 응?"
"아니 그건 좀......"
이상은 단골들에게 포스터를 강제로 안기기 시작했다. 지용이 서른 장을 들고 갔고, 효석은 내가 이걸 왜 붙여야 되냐며 투덜거리며 들고 갔으면서 연구실 입구에 곱게 붙여주었는데 이상에게는 붙였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구본좌, 아니 본웅은 즐거워하며-그러나 포스터를 이상이 가져온 것 자체는 대놓고 짜증을 내며 포스터를 들고 가 미술과 연습실을 도배해놓고 후배들에게 공연 관람을 종용했다. 구본좌는 법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울고 불며 후배들은 표를 샀다.
그리고 공연 사흘 전.
"네 카페 6.9입니다. 네? 네.......아, 네. .......네, 죄송합니다. 철거할게요. 예, 다음엔 그러지 않게 주의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정이 심각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고, 커피를 손으로 쥐어짜던 이상을 노려보았다.
"해경이 형."
"왜, 왜 그래?"
유정의 등 뒤에서 묘한 오라와 기백이 피어오르는 것을 이상은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옥 바닥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포스터 말인데."
"포스터? 그게 왜?"
"금홍 씨한테 이야기했어? 형이 그거 홍보하는 거 알고 있냐고. 말하고 들고 온 거 맞아?"
"......아."
이상이 무릎을 쳤다.
"형은 도대체가!"
이 뒤는 여백이 없어 적지 않노라......가 아니고, 유정이 수라로 변신하는 장면을 묘사할 수 없어 적지 않는다. 아무튼 포스터는 모두 수거했다. 이상이. 울면서. 끗.

그리고 덤.
"다 수거한 거죠?"
"응, 철거된 거랑 지용이가 가져간 거 빼고."
"그러고 보니 지용이가 서른 장 들고 갔죠, 걔 왜 그렇게 많이 들고 갔대?"
"지용이도 금홍 씨 좋아하나?"
"세상 남자가 다 해경이 형 같은 줄 알아요? 적당히 하지?"
".........그래, 미안타."
"아니 다행이네."
유정에게 사흘 정도 은근히 볶이느라 진이 다 빠진 이상은 반박 한 마디 못 해보고 풀 죽은 목소리로 금방 사과했다. 그러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왜 서른 장이지?

"지용아, 너 그 포스터 다 어쨌냐?"
"아 그거요?"
학교 앞 자취생의 모범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비치된 브라운 슈거를 사탕처럼 먹고 있던 지용은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자취방이 우풍이 심해요. 그래서 창문 막는다고. 형 그거 종이가 두꺼워서 그런가, 문 막아놓으니까 바람도 안 들고 되게 따뜻해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이상은 지용을 한참 응시하다, 얼른 뒤돌아서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한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뛰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끗.

'저는 잘 쓰고 싶었어요 > 1차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6.9]  (8) 2010.07.28
꽃구경 하는 밤  (2) 2010.04.23
[T.A]그녀의 논리 2  (2) 2009.04.12
일단 제목 미정  (2) 2009.01.21
[T.A]행사장의 삼돌이  (0) 2008.11.25
Posted by 유안.
,
노동요를 모아놓았습니다. 일관성은 없고 그냥 듣고 싶은 것만 쭉. 지금 현실도피중이라서 그러는 건 아니고.

11월 27일-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고향에 살어리랏다, 유통기한,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추가

 
Posted by 유안.
,
하이쿠란 것은 5. 7. 5의 음수율을 원칙으로 하는 정형시입니다. 본래 일본에는 5. 7. 5. 7. 7. 의 정형시인 와카라는 것이 있었고, 중세에 와서 와카를 여럿이 이어 읊는 렌가(連歌라고 합니다. 한자를 보면 아시겠죠. 이어 부르는 노 래)가 대유행했어요. 한 수씩 읊는 게 아니고 5. 7. 5 한 수 읊으면 7. 7 하나 부르고 이렇게 주욱 시를 이어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렌가라는 것이 종류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일본 고전 문학 강의가 될 거 같고 아무튼, 중세 지나 근세 오면서 하이카이가 유행합니다. 렌카의 개그 버전이에요. 패러디 버전이기도 하고. 형식은 같은데 까다로운 와카에 비해서 좀 더 널널하고 소재도 개그를 많이 써요. 그런데 앞쪽 5. 7. 5를 홋쿠(發句)라고 합니다. 이게 독립된 것이 하이쿠예요. 하이쿠라는 이름은 마사오카 시키라는, 메이지 시대 시인에 이르러 처음 생긴 이름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가 있어야 하며, 짧은 시라서 기레지(切字), 즉 끊어읽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당장 다음의 하이쿠를 봅시다.

일단 봄.
落花枝にかえるとみれば胡蝶かな
낙화, 가지로 돌아가나 봤더니 나비였구나(모리다케)

마지막 구의 かな같은 것이 기레지입니다. 시를 끊어주며 여운을 주지요. 계절어는 나비. 다 져서 떨어져 썩은내를 풍기는 꽃인 줄 알았는데 꽃이 살랑거리며 일어나 날아가 가지에 앉은 겁니다. 자세히 보니 꽃이 아니고 나비인 거죠. 시취를 풍기는 꽃인지, 이미 죽어버린 뭔가인지 아무도 모를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썩어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비였어요. 시체에서 피어난 나비가 가지로 돌아가 이쪽을 향해 무심한 듯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행간에서 그 나비에게 마음을 뺏긴 티가 나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죠? 그럼 계절별로 하나씩 봅시다.

여름
雨後の月誰そや夜ぶりの脛白き
비 개인 달밤 누가 밤낚시하나 하얀 종아리(부손)

장마도 끝날 무렵, 비가 그쳐 맑기는 맑은데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밤, 더워서 물가에 나왔는데 밝은 달 아래 누군가 물 속에 다리를 걷고 앉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종아리가 선명하군요.대체 누구를 무얼로 낚아 뭘 하려는 걸까요. 낚시대도 없이 하얀 발목으로 낚을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을
我星はどこに旅寝や天の川
내 별 어디서 한뎃잠 자고 있나 은하수 저쪽(잇사)

부모의 마음이랄까. 누군가와 떨어진 사람이 쓴 하이쿠임에 틀림없습니다. 내 새끼 잠은 잘 자고 끼니는 안 거르는지, 한뎃잠 자며 추워하진 않는지. 먼 하늘을 보며 청승을 떨고 있군요. 여러분의 눈에도 보이십니까. 밤하늘을 우러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청승을 떠는, 자기가 보호자인 줄 아는 흑장발 청년의 모습.

夜窃ニ虫は月下の夜を穿ツ
한밤에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바쇼의 시를 응용해 보았습니다. 원래 밤(夜)이 아니고 밤(栗)이었는데 고쳤습니다.
흉흉한 달빛 아래, '빛에 모여든 벌레'가 밤을 갉고, 세상을 갉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게 하이쿠의 기본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여러분도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숱한 하이쿠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동인질에는 여러 방법이 있어, 스스로 창작이 안 되면 남이 지은 작품을 내 망상에 대입하는 법도 괜찮습니다.
Posted by 유안.
,
"유진이, 밥 안 먹나."
천 오백 짐승들이 급식실을 향해 콧김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환란의 급식시간에도 신유진은 움직이지 않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신유진, 밥 먹어라."
"늦으면 반찬 없다. 가라. 안 나갈거니까 열쇠 놔두고."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유진을 보고 이태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먹으면 이따 보충 때 힘들다."
"니가 우리 엄마가, 놔두고 가라니까."
문단속을 한다고 마지막에 나가려다 친구가 밥도 안 먹고 책이나 파고 있는 답답하고 옳지 않은 꼴을 본 이태일 군은 화를 내며 유진의 어깨를 쳤다.
"아 좀!"
어깨를 맞은 유진은 화를 내며 태일의 손을 뿌리쳤다.
"귀찮다고! 굶는다고 안 죽는다."
"귀찮으면 가서 앉아있기만 해라. 내가 밥 받아줄게."
"선생님이 내일까지 이거 읽어오라고 하셨단 말이다. 놔라!"
"선생님도 니 밥 굶으면서 책 읽는 건 안 바라신다."
"......"
유진은 한숨을 쉬고 책갈피를 끼운 다음 책을 덮고 일어섰다. 유진을 제압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태일은 의기양양하게 유진의 손목을 끌고 급식실로 향했다.
"근데 책은 왜 못 읽었는데."
"몰라. 김시은한테 물어봐라."
"또 싸웠나."
"싸운 게 아니고 그 새끼가 일방적으로 엉겨붙어서 귀찮게 하는 거다."
"맞나."
태일이 무심하게 대답하고 유진은 얼른 말을 돌렸다.
"근데 오늘 반찬 뭔데."
"나도 모른다."
"미역국이면 안 먹는다. 살다 살다 그래 맛없는 미역국은 처음 봤다."
"맞제. 조선간장 안 쓰고 진간장으로 간 한 거 같더라."
"두 개 다르나?"
"천지차이다. 국은 진간장으로 간하면 망한다."
"태일이 별 걸 다 아네."
"남자도 부엌일에 신경 쓰는 게 요즘 선비의 자세라고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태일이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날 급식은 다행히 미역국은 아니었으나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생선까스였고-타르타르 소스가 지독하게 기름져서 어지간한 놈들도 먹고 나면 속이 이상하다고 아우성을 치기 일쑤였다-유진은 소스 냄새를 맡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밥 안 먹겠노라 버티는 걸 달래고 두 사람 몫의 밥을 받아오고 수저를 챙기고 먹기 편한 자리를 잡아다가 앉히고 반도 못 먹고 남긴 밥에 대해 잔소리를 퍼부어 준 다음 잔반 처리에 뒷정리까지 다 한 것은 태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 밥을 받아온 다음 행복한 얼굴로 후식으로 나온 딸기맛 요구르트를 먹다 말고 그 꼴을 보고 인상이 구겨진 김시은은 애꿎은 축구공을 작살내고 축구골대를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르다 지나가던 학생부장 겸 체육교사에게 걸려서 혼났다. 신유진은 교실에서 그 꼴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성질머리 봐라 저거."

그리고 다음날.
"니 일부러 밥 안 먹었제?"
"뭐라카노. 개소리 말고 책이나 봐라."
"어제 밥 안 먹었잖아."
"어제 이야기를 오늘 하는 이유가 뭔데."
주말에는 시은의 양부 송인호 교수가 집으로 온다. 그러면 어김없이 태일이와 유진이, 가끔 마원용도 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 읽고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 셋이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다 간식거리를 준비하느라 잠시 송인호 교수가 자리를 비우고, 일을 돕겠다며 태일이 부엌으로 따라간 틈을 타, 시은이 유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태일이가 니 밥 안 먹는다 카면 그래 나올 걸 몰랐다고."
시은이 미간을 찌푸리자 유진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내한테 시위하나?"
"니가 뭐라고 내가 니한테 시위하는데? 니도 참 웃긴다."
한참 유진을 노려보던 시은이 한숨을 쉬었다.
"니 성질머리도 참 더럽다."
"니 성질 더러운 거 알고 하는 소리가."
그때 사과가 참 달다며 한 접시도 아니고 한 쟁반을 깎아온 송인호 교수의 등장으로 대화는 일단 끝이 났으나 시은과 유진은 토론 내내 날선 대화를 주고받았다. 송 교수는 얘네가 싸웠나 하고 잠시 걱정했으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고 금방 잊었다.

------------------------------------
은혼으로도 알콩달콩한 걸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다만 한국으로 옮겨와 학원물패러랠을 하는 이중의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Posted by 유안.
,
성역에는 노동권 같은 현대적인 인권 개념은 없다, 특히 황금들에겐.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없다. 설령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들었다 쳐도 그걸 자기들에게 적용할 용자는 없다. 현 교황 아이올로스에게 개길 용자도 없거니와 개기기 이전에 아이올로스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전 교황 시온부터 사이비교황 사가나 성역의 한 송이 꽃인 알데바란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만에 하나 간이 땡땡 붓다못해 푸아그라화한 어느 황금이 아이올로스에게 반항이라는 이름의 소심한 건의를 할 마음을 먹었다 쳐도, 성역에는 아이올리아가 있다. 그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아, 내 인생은 괜찮은 인생이었구나. 저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세인트의 귀감을 두고 내가 감히 교황께 그런 걸 요구할 마음을 먹다니 반성하자. 구체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나에겐 제자도 있고 시베리아의 벌판도 있지/나에겐 거해궁의 유령들이라도 있지/나에겐 이야기할 노사라도 계셨지/난 그래도 형한테 대들기나 했지 저놈은, 크흑- 아무튼 저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황금들은 오늘도 착취당한다. 그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것은 성역의 일부에서 아이올리아 효과라고 불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작 나머지 황금들이 짠한 눈으로 보거나 말거나 아이올리아는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누군가 아이올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힘들지, 불평해도 돼, 라고 말한다 쳐도 아이올리아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황금으로서 내 삶에 만족합니다. 라고 말할 거다. 사실 아이올리아는 만족이 뭔지 모른다. 평생에 한 번도 제대로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형이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라고 인정해 줬을 때 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불평이 뭔지, 불만이 뭔지, 회의가 뭔지 모른다. 특히 형에 관한 일이라면 더 그렇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이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
트위터에 올린 글 수정했습니다. 중국어와 싸우는 마스라오 님 힘내시라고 쓴 건데 힘이 나셨을까나;
제목이 저 지경인건 요새 보는 글이 죄다 저래서입니다 크흑.
Posted by 유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