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08 시귀 이하를 탐구한다.
  2. 2010.12.07 까만 공단 리본이 진리죠, 압니다.

이하(李賀 : 790~816)는 '시귀(詩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염세적인 시풍으로 생전부터 유명했던 만당기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반적 중국시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미주의적 상징성을 띠고 있고,  낭송보다 읽기 위한 시를 썼다. 중국에서는 보들레르, 키츠와 비교되기도 하고 만당기 시파에 대해 분류할 때 이하를 따로 한 개의 시파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연구성과는 미미한데, 현재 학위 논문 한 편이 발표된 것 이외에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찾아볼 수 없다. 한시 특유의 다중적 해석과 함께 난해성이 강한 시풍 때문에 한국어 번역이 어려워 두 편의 선집이 출간된 것이 전부였던 점1)과 연관지어 볼 때

1) 2007년에 완역 시집이 출간되었다.

참고문헌
이하, <<시귀의 노래>>, 홍상훈 역주, 2007,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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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 못 해. 때려쳐.
제가 왜 저 짓을 했을까요. 드디어 날씨가 추워지니 뇌세포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과제에 쩔어 지냈더니 쓰는 것마다 저 모양이에요.
아무튼 시귀 이하의 시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별명이 저래요. 귀신이 드글드글하는 시를 쓰는 게 취미였습니다. 생긴 것도 가냘프고 마르고 손가락이 길었대요.(눈썹이 눈좀 갈매기 눈썹인 건 이야기 안 할랍니다. 로망이 사라져......) 영락한 왕족이고, 10대 때부터 알려진 시인이었음에도 과거는 말도 안 되는 핑계 때문에 무효화되어서 썩을 세상 카악 퉤......가 아니고 계속 저런 시나 쓰다 스물 일곱에 요절했는데 죽은 다음엔 글재주가 승하니 하늘에서 어여삐 보고 상량문 쓰게 하려고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무려 저 이야기로 전(傳)을 지은 사람도 있다고요. 이상은이라고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인데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유명한 <소소소묘>나 <장진주>-한자 쓰기 귀찮습니다.-도 좋지만 오늘 소개할 시는 그거 아니에요

咽咽學楚吟
초사 가락 읊으며 우울해하다
病骨傷幽素  
병든 몸에 마음도 아주 상했네
秋姿白髮生
낙엽처럼 흰머리 돋아나니
木葉啼風雨
나뭇잎이 비바람에 울어대네
燈青蘭膏歇
등불은 파리하니 향초 기름이 말라가고
落照飛蛾舞
꺼져가는 불빛을 향해 나방이 춤추며 나네
古壁生凝塵
낡은 벽에 이는 먼지 쌓여가고
羈魂夢中語
한 맺힌 혼이 꿈속에서 말을 거네. 

분위기 좋죠? 제목은 <傷心行>이라고 합니다.

다음 시 갑니다. 이 시도 인지도가 꽤 있는 시네요. <神絃曲>. 즉 귀신에게 제사하는 노래입니다.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에 해 저물고 동쪽 산이 어둑해지면
旋風吹馬馬踏雲
회오리바람 불어 아지랑이 일고 귀신이 구름을 밟으며 온다
畵絃素管聲淺繁
비파 소리 피리 소리 귀가 따갑고
花裙綷縩步秋塵
무녀가 보얀 먼지, 바스락 소리 일으키며 춤을 추면
桂葉刷風桂墜子
계수나무 잎사귀 바람에 쓸려 열매마저 떨어지고
靑狸哭血寒狐死
질린 살쾡이가 피토하며 울고, 겁먹은 여우가 죽어가고
古壁彩虯金帖尾
낡은 벽에 그려진 금빛 꼬리 이무기를
雨工騎入秋潭水
우레의 신이 타고 찬 연못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百年老梟成木魅
백년 묵은 올빼미마저 나무 귀신이 되어
笑聲壁畵巢中起
킥킥대는 웃음소리,푸른 도깨비불 둥지에서 일어난다

이게 귀신소환이지 어디 신을 부르는 노래냐고요.
뱀신의 무녀님이자 '죽은자들의 여왕'인 다카스기를 망상하며 놀기 때문에 실은 건 아닙니다.

아니 뭐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贈陣商>의 첫 두 구이긴 합니다.

長安有男兒 장안에 남아 하나,
二十心已朽 나이 스물에 이미 마음이 썩어문드러졌다

오에도에 남아 하나, 나이 스물에 이미 마음이 썩어문드러졌다, 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누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긴토키고 카츠라고 다카스기고 어느 한 놈 멀쩡한 놈이 없으니. 다들 그다지 정상은 아니잖아요.

일단은 여기까지. 해석은 제가 마음대로 했습니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기녀들에 대해 쓴 어쩐지 분내나는 시며 남녀의 운우지정을 암시한 시구도 있습니다만 그건 귀찮군요;;

아니 뭐 하나만 추가할게요. <蝴蝶飛>입니다.

楊花撲帳春雲熱
버드나무 꽃 장막에 부딪히자 봄 구름이 뜨겁고
龜甲屛風醉眼纈
귀갑 병풍 속 화려한 무늬옷 입은 사람
東家蝴蝶西家飛
동쪽 집 나비 서쪽 집으로 날아드니
白騎少年今日歸
흰 말탄 청년 오늘 중으로 돌아오리라

보통 봄날 설레는 여인의 마음(이라고 쓰고 봄바람났다고 읽으면 됩니다)을 노래한 시라고 하는데, 문제는요 화려한 무늬옷 입은 사람 성별을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크흠. 누구누구 씨는 여성용 기모노 입고 다니고 드레스니 고스로리니 치파오니 하는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소화했죠.

그러고보니 다카스기 신사쿠가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시인이 되었을 거라죠, 그랬다죠. 신스케가 시 쓰면 이런 걸 쓸라나?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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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케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비상금을 털어 저잣거리로 나가는데 긴토키가 따라왔다. 골라주겠다나. 나보다는 그런 걸 훨씬 잘 알테니 뭐 괜찮겠지. 긴토키는 골목골목을 지나 천인풍의 물건을 파는 가게 문을 열었다. 이런 가게에 신스케에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더니 있단다. 가게 안은 알록달록하고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긴토키는 그 중 가늘고 긴 천 속에서 검은 것을 잡았다. 붕대냐고 물었더니 날 걷어찼다. 가게 안에서 물건을 구경하던 처자들이 그것을 머리에 묶는 걸 보고서야 감이 왔다. 길 가는 처자들이 그걸로 머리를 하나로 묶고 걸어가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보드라운 천이 나풀나풀 휘날리는 게 머리에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와 같았다.
꽤나 곱지 않은가.
신나게 그걸 들고 가서 신스케에게 내밀자 신스케의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질 줄 그때는 몰랐다. 그게 여성용인 줄 내가 알았나, 그저 고우니 들고 왔지. 긴토키 네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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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묶는 거냐?"
"모르면 하지 말라고! 야, 머리 뽑힌다니까! 놔!"
긴토키가 검정 공단리본을 양손에 들고 신스케의 머리를 얽어매고 있었다. 한 마 반 정도 되는 긴 리본이 머리카락과 뒤엉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야, 그냥 니가 매 주면 안 되냐?"
"죽고 싶으냐?"
"아 왜."
"여자 리본을 내가 왜 매?"
다카스기가 발을 냅다 휘둘러 등 뒤에 선 긴토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파 죽겠다고 폴짝폴짝 뛰는 동안 다카스기는 머리에 얽힌 리본을 풀었다. 머리카락이 몇 올 리본에 얽혀있는 걸 보자 어이가 없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즈라가 사 왔잖아, 좀 매 봐라."
"싫다니까."
"까다롭긴."
긴토키가 입이 댓발이 나와 툴툴거렸다.
"그러게 누가 이런 거 사 오래?"
"그치만 묶어놓으면 까만 나비 같아서 잘 어울릴 거 같았는데."
들으란 건지 듣지 말란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긴토키는 다카스기의 손에 들린 리본을 뺏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카스기가 리본을 잡은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줬다가 뺏는 법이 어딨냐?
"안 묶을 거잖아."
다카스기가 손을 머리 뒤로 갖다대더니 잠시 꼼지락 거리고 손을 풀자 손에 있던 리본이 목덜미께에서 달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자 됐냐? 아 진짜 그 놈 참."
긴토키는 다카스기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걸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자, 까만 리본이 길게 늘어져 하얀 뒷목에 그림자를 떨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까맣고 날개가 큰 나비처럼.
".......야 이 미친 새끼야, 떨어져!"
긴토키가 갑자기 어깨를 잡은 손을 앞으로 뻗어 다카스기의 어깨를 끌어안더니 목에 얼굴을 묻었다. 다카스기는 쩌렁쩌렁 교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고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카츠라는 치고 받는 두 아이의 머리를 들고 있던 양동이로 한 대씩 때려 싸움을 멈추게 했다.
"야 목에 얼굴 좀 묻은 게 어때서!"
"거기서 그걸 왜 하냐고!"
이걸 선생님께 일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카츠라는 그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이번에는 주먹으로 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긴토키의 머리는 딱 소리가 나도록, 다카스기의 머리는 톡 소리가 나도록.

"리본으로 목이라도 조르지 그랬나."
"미쳤냐, 이 예쁜 걸로 저 재수없는 백발 목을 조르게."
싸우는 도중에도 리본만은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은 걸을 카츠라가 지적하자 다카스기는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툴툴대며 방을 나섰다.
"그 녀석, 선물로 준 게 내심 기쁜가 보군."
카츠라가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문 밖에서 즈라는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으라는 요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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