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동생을 둔 누나의 입장에서 좀 생각해 봤다.
(절대로 열한 시 반 부터 여섯 시까지 밥 한 술 못 먹고 화장실 한 번 못 가고 죽어라고 앉아서 일만 했기 떄문에 그런 건 아니다. 건물 출입구 봉쇄하고 핸드폰 차단한 상태에서 미친 듯 읽고 읽고 읽고 고치고 고치고 고쳐나가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일하고 돌아오면서 직장 사람들이랑 총체적 뻘짓의 집합체를 봤다고 씹어대서도 아니다.)

씻다가 갑자기 라일이 꼭 닐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생각해 봤다.
내 경우 세 살 터울지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 놈이 어떤 경우에도(나 때문에 죽도록 화가 나거나 내가 하는 삽질이 답답해서 돌아가시기 일보직전까지 가거나)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걸 잊지 않는다. 어려서는 당연하다 싶었는데 커서 남자애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별로 당연한 경우가 아닌 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야, 다른 남자애들은 누나랑 싸울 때 누나 이름 막 부르고 야, 너 그러는데 넌 꼬박꼬박 누나라고 그러네?
그러자 동생이 말했다. 그럼 누나를 누나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 그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거랑 똑같은 거야.
설명을 돕기 위해, 우리 남매가 어떤 관계냐면......나 아는 분들은 다 내 동생을 알고; 나를 브라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 동생은 어려서 자기가 시스터 컴플렉스라 자인한 적이 있다. 여덟 살 주제에.
태어나자마자 내가 동화책 읽어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자취할 땐 내가 먹여준 거 맞다. 10대 때도 주말엔 내가 밥 해서 먹였고. 동생아 오늘은 볶음밥이다, 내일은 감자 튀길 거다. 떡볶이 먹을래?) 뭐든 가르쳐줘서(가엾게도 누나 때문에 락에 손 대고 만화책에 손 댄 것도 그 일환이다) 좀 끈끈한 편이다. 동생 여자친구까지 가세해서 끈끈하게 잘 논다는 건 여담이고. 동생이 나한테 의지하는 부분도 좀 있고 나도 동생 일이라면 이래저래 신경 많이 쓰고......당신이 엄마냐 동생이냐는 소리를 아들 둔 엄마한테까지 들어봤다 OTL

어쨌건 남매간 서열화는 확실한 편이고, 의도한 적 없음에도. 저렇게까지 되면 동생도 형을 만만하게 막 대하긴 어렵고 형도 동생한테 냉정하기 어렵다. 형의 입장에서 보면 동생은 꼭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그러니까, 라일도 그런 기분이었을 거다, 아마도. 형은 형 이외의 무엇도 아니었을 거다. 어려서부터 닐 디란디를 형이라고 불렀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거 때문이다. 형을 동년배 부르듯 닐이라고 부르기는 어쩌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동생이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 상황에 굉장히 심한 저항감을 느끼듯. 태어나자마자부터 자기보다 훨씬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자신과 동급으로 여기기는 힘든 법이다. 내 동생이 자기가 더 우위인 상황에 놓일지라도 절대 내 위치를 넘보지 못하듯.
그러나저러나 남매 관계가 이러할진대 형제 관계에서 저 정도 서열화가 이루어지려면 도대체 어떤 과거가 필요한지 참 궁금하다. 닐도 분명히, 형제간 서열화를 짓기 위해 뭔가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텐데.

...........그러니까 사실은, 닐 디란디가 왜 키다리 아저씨 짓 했는지 좀 이해는 간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데,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비슷했을 거야. 피보호자를 싸고 도는 짓이긴 한데, 어떤 상황에 있건 동생은 동생이고 내가 꼭 돌봐줘야 할 대상이거든. 게다가 14세 이후로 어떤 사정으로 떨어져 살아야 했고, 더 자라선 동생한테 걸리면 참 민망하게도 테러범이 되었다. 얼굴은 절대 못 보이지. 그래도 동생은 꼭 돌봐줘야 하고.
아니 물론 내가 너를 위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테니까 너는 그 세상에서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평범하고 안온하며 유복하게-즐겁게 살거라, 하는 경지는 진짜 브라콤인 나조차 따라가지 못할 머나먼 경지라고 보지만.

아니 내가 왜 이런 웃기고 뻘한 가족사를 포스팅하고 있느냐면, 이제 이 경험을 살려서 쌍둥이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하여간 글 쓴다는 것들은 글러먹었다고 머리를 쥐어뜯다 피식 웃었기 때문이다.

+건담에는 뉴타입이라는 게 나온다는데, 더블오에도 뉴타입이 있다면 티에리아랑 아뉴가 진짜 뉴타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노베이터이면서 인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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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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