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 장소에서 나와서 충무아트홀로 가서 루시엔 님 만나고 쓰릴 미를 봤답니다. 가는 길에 작별인사를 보냈더니 어택답문을 보내셨지만 사람에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 호호호. 저한테 그 쪽은 이미 완결된 세계라 2차창작을 못 한단 말이지요. 물론 막시민과 조슈아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쓰릴 미 감상은 간단히 남겼는데, 좀 더 보충하자면 저는 네이선이 정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요. 리처드는 나쁘고 뭐고 그냥 찌질이니까 개념이 탑재되면 닥치고 찌그러져서 반성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아니면 패닉에 빠져서 꺅꺅거리다가 제 손목을 긋던가- 그런데 지난 일을 회상하는 네이선에게 반성의 기미는 없었습니다. 단지 그 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는 열망 정도? 흑백인 자기 인생에 유일한 색채였던 과거에 대한 회상 정도? 아니 제 눈엔 딱 저렇게 보였어요. 저 인간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때는 리처드랑 함께 했었던 때였겠죠. 최대한 내용 누설은 피하려고 하다 보니 말이 좀 애매한데, 아무튼 마지막에 자유라면서 혼자 중얼거릴 때도 정말 기쁘다기 보다 그가 없는 공간을 떠나는 게 기쁘다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제 자기 혼자 마음 편히 환상에 잠길 수 있겠죠. 결국 이 이야기의 교훈은 나 좋다고 달려드는 놈은 조심하고 보자, 인 걸지도 모르죠.
대본은 좀 마음에 안 찼어도 저는 저 이야기에서 건드리는 지배-피지배 관계나 심리 묘사는 마음에 들었답니다. 숱한 연애담에서 알 수 있듯 사실 진짜 지배자는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아요? 사람은 지배하지 못해도 관계는 지배할 수 있죠. 그래서 이 이야기는 2인극인 거라고 봐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니까요. 네이선에게 살해당한 애 같은 게 중요하겠습니까; 그런 거 알 놈이면 동생 말고 다른 애를 죽이라고 옆에서 그러고 있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리처드는 네이선을 사랑했을까요? 전 걔는 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둘만의 관계에 한정지어 보면(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빼고) 리처드 피해자잖아요. 본인이 자기는 피해자라 생각하고 감옥에 갔을 거라는 게 참 슬픈 일이죠. 게다가 호모포비아로 보였는데 그 호모랑 자기까지 했어.......나중에 그에게 유해진 건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마음 기댈 데가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잡힐 줄 몰랐다면서요.

반지동맹 시절 이야기하다 그 때 좋았던 것들 싫었던 것들 뭐 그런 거 이야기하고 있었죠. 생각해보면 그 때가 분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저 자신이 얼마나 찌질했는지를 볼 기회가 생긴 셈이니까요. 지금은 마이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몸살 조짐이 보였나봐요. 계속 기분이 좀 저조하더라니. 결국 필로우맨을 보러 가서는 온 몸이 쑤시고 떨려서 그 다음 날 집에 갈 일은 고사하고 그 날 저녁에 이모 댁으로 가는 것까지 좀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결국 지금까지 이 꼴이지만;
결국 이래저래 짜증을 내서 루시엔 님이 불편하셨을 거예요. 한 며칠 짜증을 내다가 좀 쉬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오네요. (제정신 돌아온 애가 위에 저런 글 쓰냐면 글쎄요;) 루시엔 님 그 날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정말 고맙습니다. 나중에 뵈면 저 날의 은혜를 갚지요.

필로우맨을 볼 때 옆자리엔 일본인 두 분이 있었어요. 필로우맨이면 마쿠라오토코네? 그러는데 어째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럼 우리나라 말론 베개인간이잖아요. 베개인간도 웃기지 않아요? 그 옆엔 한 커플이, 그리고 그 뒤엔 문학청년 필의 극작가지망생인 듯한 아가씨들. (특정 배우가 나올 때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에 그 배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봤어요. 장르는 블랙유머? 메타문학?

필로우맨은 작가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이순원 씨 강연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 분이 모 소설을 출판하셨을 때 지존파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러자 언론에서 지존파가 이 소설을 보고 여기 나온 대로 사람을 죽였다, 고 떠들어댔다고. 그 때 생각했던 게 있었어요. 작품에 사회적인 책임을 돌리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결국 부끄러워 질문은 못 했지만서도요. (그 날 찌질한 애들이 질문을 너무 해서 마음도 상했고. 기껏 작가가 왔는데 작품에 대해 물으란 말이다 인간들아!) 일단 그것, 작품과 사회의 관련 하나- 하필 사회도 전체주의 사회더라고요. 딱이지 않아요? 사회는 작가를 탄압하고 작가는 빠져나가려고 애쓰고. 그리고 작가와 이야기의 끈적-한 관계 하나. 작가에게 이야기는 뭘까요? 자전적인 이야기에 미친 작가는 찌질하죠. 하지만 누구나 자전적인 이야기 하나쯤은 쓰기 마련이고요. 카투리안이 자기 이야기가 아닌 척 하고 쓴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도 다른 이야기에는 다 그가 투영되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는 미친 변태살인마인가요, 그건 아니잖습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 이걸 보신 분과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tsuzuku18@hotmail.com 으로 누가 좀;
아이를 작가로 만들기 위해 부모가 한 실험이라거나 카투리안이 마지막에 들려준 이야기라거나 카투리안의 성향이라거나, 제가 보면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꾼, 드롯셀마이어 영감이랍니다. 패턴도 비슷하네요. 이야기를 위해 죽다니. 분명 드롯셀마이어 영감의 후손들이 영국으로 이주를 한 거예요. 그 중 일부가 현지화한 이름을 지은 겁니다. 맥드롯셀마이어. 그게 변형되어서 맥도너가 되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거 없네요.
하여간 나중에 루시엔 님과 이야기한 거지만 영국은 안 돼요.

전 DT가 그거 했을 생각 하면 좋아 죽겠습니다. 애초에 DT가 했던 연극, 이라고 해서 보러 간 거였거든요. (이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뜻대로 하셔요마저 예사롭게 보이지 않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맨발에다가 고문도 당하고 무릎도 꿇고.......가만, 저는 언제부터 이런 가학적인 애정을 DT한테 품고 있는 겁니까? CE는 고문씬이 있었는데 DT는 없어서 이러는 걸까요?

다음 후기는 5월 7일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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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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