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에이브만 죽자고 읽고 왔다는 이야기.
그 놈의 책 나하고 동갑이더라.

우리 집에 있던 에이브는 이가 제법 빠진 물건이라 내가 못 읽은 게 상당히 많다.
그 중 하나가 오늘 내가 읽은 <먼 황금나라>인데 이거 분명히 아동용인데 웬 호모들의 슬픈 치정극이 벌어지는 걸까.

주인공인 쿠시는 잉카 귀족집 아들네미인데 주워온 애다. 쿠스챠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둘이 눈이 맞는다; 남녀커플 근친물인가 싶지만 저 커플링이 설득력이 떨어지게 만드는 강적이 있었으니, 황제의 둘째아들이자, 잉카의 마지막 황제인 사람. 학교생활부터 등장하는데 외모묘사부터 눈빛이 형형하고 어쩌고 아주 찬양을 해 마지 않는데, 쿠시가 친하지도 않은 황자님 죄를 뒤집어 쓰고 얻어맞을 정도로 매혹될 만큼 사람이 괜찮다고 묘사된다.
그러더니 저 황자님이 분홍색 바탕에 흰 줄이 몇 개 들어간 예쁜 돌을 쿠시에게 준다.
"이 돌은 우리 어머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면 좋다고 하신 돌이다. 너에게 줄테니 네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거든 줘라."
.......쿠시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돌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준 돌이라잖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기서 아무 느낌도 없냐 넌?
후에 저 놈이 여동생 좋아한다고 삽질하다 황자에게 저 돌을 돌려주자 용기가 없는 남자라고 질책하면서 돌을 돌려주는 대인배 황자님. 심의검열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무튼 쿠시는 제 1황자 밑에서 일을 하는데 황자가 쿠시보고 자기 있는 데 오라고 난리도 아니다. 막 보고 싶은 티를 팍팍 내면서. 그러니까 제1 황자가 그런 말을 한다.
"그렇게도 동생이 좋은 게지" 저 대사가 끝나고 한참 후에 대놓고 동생이 밉다는 말도 한다. 난 여기서 얘 놓고 전쟁 일어날 줄 알았다. 결국 형제간에 전쟁이 나고 동생은 형을 몰아내고 자신이 황제가 된다. 쿠시는 이미 여동생과 결혼하고는 귀족 때려치고 농민이 되어서 살고 있는데, 피사로가 와서 황제를 감금한다. 황제의 측근인 동생이 형을 설득하러 온다. 옥에 갇혀 눈빛도 스러지고 긍지도 잃은 왕이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쿠시를 보는 것이라고. 지금 유일한 소망은 그거라고. 이 놈은 농민으로 산다던 말이 무색하게 바로 황제에게 달려가서 그를 살리기 위해 금을 모으러 어느 마을에 갔다 죽어버린다. 그 후 황제도 교수형을 당했고.

황제에 대한 넘치는 빠순심과 호모스러움에 표지를 다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일본 여자였다.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거다. 팬픽 쓰다 애정이 북받쳐 오르는데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이야기를 막 우겨 넣어서 그렇다. 여동생 이야기 빼고 황제와의 절절한 호모극으로 묘사했으면 완성도가 훨씬 높았으리라.

다행이다. 유치원 때, 국민학교 때 저걸 안 읽어서.

그 외에 읽은 것 : 한밤의 아이들이라는 음울한 스웨덴 청소년소설. 애들이 가난 때문에 범죄에 접근하고 있는 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이 사실적이었다. 스웨덴 책에 대한 편견 생길 지경이다. 린드그린 여사 빼곤 다 음울한 거 아냐?
밀림의 북소리라는 아프리카의 야성성과 매혹을 보여준 동화. 읽고 나니 왜 팜이 생각나나.
이를 악물고-어려서 재미없다고 때려치운 책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프리드리히를 읽고 나니 저게 시시하더라. 뭐 소년들 간의 우정은 좋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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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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