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시야가 밝아진다. 눈을 깜박거리니 조금 보기가 낫다. 짙은 녹색 그늘 사이로 듬성듬성한 하늘이 보였다. 흐릿한 하늘이 눈 앞에 있다니 지구가 돌았나. 아니, 내가 누워 있는 거지. 그런데 이마가 왜 축축하고 머리 밑은 왜 푹신하고 왜 목이 마를까. 그 전에 왜 누워있지. 눈 앞에 까만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분명히 하룻밤 새워 서류업무를 마치고 8월 염천에 양이지사 놈들 때문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과 태양빛을 한 몸에 받고 뛰어다니고 또 하룻밤 새워 애들이 친 사고 뒷수습을 좀 하고 나서 이 더위에 바깥에서 구르다 퇴근하는 길에 담배 사러 가던 길이었던 것까진 알겠는데. 히지카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의식하며 멍하니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이마에서 축축한 기운이 가시더니 동시에 하얀 머리카락과 빨간 눈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 이제야 깼냐 요녀석아. 덕분에 긴상은 다리에 쥐가 나기 직전입니다, 아니 이미 났지만. 아오오오 다리 아파!” 그제야 자신이 뭘 베고 있었는지 깨닫고 벌떡 일어났지만, 일어나자마자 세상이 잠시 어두워졌다. 시야가 가운데서부터 점점 밝아지며 누군가 뒷목을 잡아 땅으로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든 순간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등 뒤에서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빈혈이냐? 제 때 좀 먹지 밥 안 먹고 잠 안 자고 밤에 뭐 하길래 빈혈? 야동 봐? 긴상도 좀 보여주고 그래라. 치사하게 혼자 보냐.” “……쥐났다던 놈이 빠르기는.” 쓰러지려는 자신을 뒤에서 붙잡고 있었으므로, 해결사의 목소리는 굉장히 가까이서 들렸다. 말이랑 행동이 다른 게 하루 이틀 일이랴만. 한 대 맞은 듯 멍해진 머리를 붙들고 겨우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더니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쯧. 그나저나 뭐 했길래 이렇게 노곤노곤하게 풀렸냐. 아주 풀리다 못해 갔구나 갔어? 한 이틀 밤 새고 하루 땡볕에서 뛰어 다닌 거 같잖아.” 정곡. 히지카타의 반응을 바로 캐치한 긴토키가 짜증섞인 말투로 투덜댔다. “어이쿠 안 봐도 비디올세 이거. 이 애 진짜 안 되겠어. 긴상 바쁘다고. 바쁜 긴상이 이 쪄죽게 더운 여름에 혼자 걷기도 힘든데 시커멓고 큼직한 사내놈까지 끼고 걸어야겠냐?” “그러게 왜 주워왔냐.” 툴툴대면서도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부축해서 벤치에 기대어 앉히고 물에 적신 손수건을 털어서 머리에 얹어주고 있었다. 서늘한 손수건에 서늘한 그늘이 더위에 지친 몸에 꽤 기분 좋게 느껴졌지만 죽어도 인정할까보냐, 히지카타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얼씨구? 얘 말 하는 것 좀 봐. 너 길에 쓰러졌었다? 캑 하고 엎어졌다? 긴상 아니었으면 나쁜 아저씨들이 주워 갔을 거라니까? 세상에 가까이 가 보니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애가 흐늘흐늘하니 길바닥에 들러붙어 있지 뭐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긴상이 냉큼 주워 왔지요. 자 그러니까 어서 칭찬해라, 금전으로.” 뻔뻔스럽게 내민 손이 어이가 없기 그지없었다. “야 이 새끼가, 이러려고 주워왔냐. 먹고 죽어도 넌 안 줘 임마. 퇴근하기도 바빠 죽겠구만 거.” “긴상이 너 뭐 이쁘다고 주워왔겠냐, 그렇게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은 나눠야 피부도 고와지고 눈매도 고와진댄다. 거기 인상 더러운 경찰 아저씨도 협조해라.” “됐다 그래......” 어쩐지 어지러워서 머리를 감싸쥐자 긴토키가 넉살좋게 쏟아내던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마에 얹혀진 손수건이 떨어지고 옆자리에서 사람이 일어나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수돗물이 별로 안 차서 손수건도 안 차갑다니까, 쳇.” 손수건을 들고 수돗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폼이 꽤 그럴싸했다. 그러고보니 꽤 그늘이 짙게 진 자리다. 저놈이 안 하던 짓을 하니 이게 말세의 징조인가보다. 늘어져서 멍하니 위를 보고 있자니 “혹시 뜨뜻미지근해지면 말해라.” 이마에 서늘하고 축축한 게 얹혔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자신이 가던 길에서 좀 떨어진 공원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날 시원한 데로 데려와서 제 무릎에 눕히고 찬 걸로 이마를 식혀주고, 이걸 간호라고 부른다고 그러던데 설마 저 놈이 날 간호했다고. 무서워서 확인해보고 싶지 않다. 옆을 슬쩍 돌아보니 “이 쪄죽게 더운 날에 까만 제복 입고 걸어가는 놈이 흔하냔 말이지. 근데 그게 비틀비틀 거리잖아? 그러더니 갑자기 흐늘흐늘하더니 픽 쓰러지잖아? 어이가 없어요. 너네 고릴라한테 말해서 제복 좀 바꿔라.” “남이사 뭘 입건!” 취소, 분명히 재밌어서 들고 왔을 거다, 이 놈은. 날 보면서 피식피식 웃고 있어. 히지카타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데, “긴짱 여기서 뭐 하냐.” 저 앞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서 보니 해결사네 짱깨 꼬맹이였다. “어라 카구라야, 아까 나갔는데 그새 집에 가는 길이냐?” 긴토키의 인사를 들은 척 만 척 카구라가 긴토키 옆의 히지카타를 보고 바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저거 마요네즈 아니냐, 야 마요, 너네 애새끼는 성질이 왜 그 모양이냐? 그거한테 다음에 만나면 땅에 거꾸로 묻어버린다고 전하라해.” 오키타와 또 싸웠는지 어린 소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애가 애를 보고 애새끼라니까 꽤 웃긴지 긴토키가 피식피식 웃고 있다.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해결해.” “애 아니다해, 그런데 뭐 좋은 일 있냐?” “응?” “긴짱 눈이 웃고 있다.” “아니 이건 웃겨서 그런 거고.” 소녀가 갑자기 투덜대기 시작했다. “이건 사기다해, 내가 기분이 더러워 돌아가시겠는데 왜 긴짱 넌 기분 좋아 보이냐? 얼굴 풀어진 거 봐라 이거 정말 기분 더럽다해. 저녁에 밥을 두 배로 먹어버리겠다.” “야, 인간이 거기서 더 먹을 수 있다고? 요새 수입도 바닥인데 확 요걸 TV에 내보내버려? 카구라야 너 가서 출연료 좀 벌어오련?” “오 좋다좋다. 가면 방송국에서 밥 주나해?” 둘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동안 히지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토키의 머리에 손수건을 던졌다. 이마에 떨어지기 직전에 손수건을 잡아챈 긴토키가 인상을 썼다. “거기 부장씨는 넌 유치원에서 사람한테 물건 건네는 법도 안 배웠냐?” “유치원 안 다녔다 왜. 그나저나 내가 쓰러져 있으니까 좋아 죽겠지?” “오냐 그래 좋아 죽겠다. 거 근데 벌써 일어나도 괜찮냐?” “괜찮고 뭐고 시끄러워서 간다.” 그리고 저놈 좋아하는 꼴도 더 보고 있기 끔찍하여 먼저 일어나련다. 대체 뭐가 즐거운 거야. 히지카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다리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긴짱, 마요가 어쩐지 좀 이상하다해.” “냅둬라~ 하여간 저 바보는 잘 해 줘도 문제야.” 등 뒤에서 들리는 대화는 대충 무시했다.
수면부족/과로/일사병 등등 요인이 겹쳐서 나가떨어진 부장을 툴툴대며 주워가는 긴상 써주십쇼 그리고 툴툴대며 챙겨주고 내심 속으로는 졸랭 흥겨워하고 있음 <-
저 조건에 맞는 물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썼습니다. 자정 전에 올린다고 했으므로. 무사히 은혼 보고 오시길 기원합니다 마스라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