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비번은
다카스기 신스케가 연주하는 악기. 영타로 두고 한글로 치세요.

은혼 관련 글 비번은 전부 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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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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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전반적으로 15금 정도입니다. 야하진 않은데 가끔 저질개그나 심란한 설정이 들어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 손

2. 목소리

'3. 다리'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후미코의 발>에서 따왔습니다.
일부 표현은 책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제가 변태가 아니고 작가가 변태 중의 변태입니다.








>오늘은 신파 주의




>저질개그 주의.






9.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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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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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장애물

사자자리 Ⅱ와 천칭자리 Ⅱ인 당신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두 사람은 대체로 좋은 관계를 맺지만, 사실 감정적·심리적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특히 허락하거나 금지함으로써 규정되는 서로 간의 역할 속에서 이런 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승인 혹은 금지라는 판단을 내림으로써 상대방의 심리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으려고 하지만, 이건 그다지 바람직한 전략이라고는 볼 수 없다. 둘의 기질적 차이는 두 사람의 신경질적인 면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하지만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유쾌함과 재치가 사자자리 Ⅱ의 기분을 가볍게 만든다. 반대로 그는 당신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서로간의 깊은 심리적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당신은 사자자리 Ⅱ에게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 대한, 그리고 이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당신은 그와의 관계에서 당신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에 대해 너무나 자주 불만을 갖는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 양면적인 감정 때문에 이 관계에 대해 계속 주저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공허함 속에 버려지기 쉽다. 결혼 역시 우울증과 불안감을 이겨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상대방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려는 태도를 피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그런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적인 태도와 의지를 길러야 할 것이다.
형제 및 친구관계에서는 사자자리 Ⅱ의 육체적인 힘과 당신의 사교적 능숙함이 혼합되어 서로 보호해 주는 특성을 보인다. 두 사람은 어려운 때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정기적으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자자리 Ⅱ는 불의 원소를 지녔고 당신은 공기의 원소를 지녔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현실적 능력과 효율성을 상징하는 흙 원소의 지배를 받는다. 서로의 차이를 양보할 수 있다면, 동료로서 일할 때 맡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동업자나 기업의 공동 경영자로서는 관계의 사적인 면이 불안을 조성하게 되기 쉽다. 따라서 그 관계는 좋지 않다.

조언 한마디 :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라.
기분에 휘둘리지 마라.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의를 다져라.
긍정적인 목표를 세워라.

두 사람의 관계 :
강점-재미있다, 통찰력이 있다, 효율적이다.
약점-혼란을 준다, 과민해진다, 우울하다
행복한 만남-형제
힘겨운 만남-사랑

출처 : 내 별자리의 비밀언어 : 10월 3-10일. 천칭자리 Ⅱ. 사회성의 주간, 게리 골드 슈나이더/주스트 엘퍼스, 2002, 북&월드

한 글자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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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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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새 오프닝 엔딩에 대한 말들이 여러 가지로 오가는 와중, 적과 흑, 까마귀, 검은 고양이 같은 수상쩍은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척 봐도 에드거 앨런 포우를 연상시키는 수상쩍은 분위기 하며, 다 아시다시피 여러 일러스트에서 까마귀는 다카스기 신스케의 상징이었죠. '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가 다카스기 신사쿠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불길하고 음울한 건 다카스기 신스케한테 잘 어울리죠. 어느 엔딩을 봐도 불길하게 웃고 있잖아요.
두려움에 떨며 오프닝을 봤습니다.


전례 없이 긴상이 혼자 음울한 얼굴로 스쿠터를 타고 있습니다. 핏빛 노을을 배경으로요. 아이들과 떨어져서 음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긴상 표정이 좋긴 좋은데; 그 다음이 걸립니다. 불길한 핏빛 노을과 가부키쵸를 돌아다니는 까만 고양이. 심지어 놈과 긴상은 눈이 마주칩니다. 오른 눈이 클로즈업 되었어요. 무슨 뜻입니까 이거.
고양이가 돌아다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로즈야 세 명은 모두 뭔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죠. 너네 지금 뭐 하니? 그리고 까마귀가 계속 하늘을 날고 있고요.
종말의 이미지를 팍팍 풍기는 오프닝은 처음 봅니다. 은혼이잖니 개그만화잖니. 이러지 말아.

그리고 엔딩. 오가타 코린 풍으로 한다더니 정말이었습니다. 무로마치 말을 대표하는 일본화가인데 매우 장식적인 화풍이 특징입니다. 처음 보시면 어라 클림트? 하실지도.  게다가 일본화 풍이라더니만 은근히 카츠시카 호쿠사이 그림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저 이제 오가타 코린과 호쿠사이가 닥터 타디스 얻어 타고 21세기로 와 엘리자베스 안의 옷상과 죽이 맞아서 엔딩 원화 작업 하며 신나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떡해요?

아 일단 보세요. 화려한 일본화의 향연입니다.

 

일본 속담에 남자는 사무라이, 꽃은 벚꽃이라 하였으니 긴상은 벚꽃이죠.
즈라는 대쪽 같은 테러리스트니까 대나무. 사카모토는 반딧불. 공기 같이 날아가서 반딧불입니까? 곤도는 매. 저래뵈도 두령이죠. 히지카타는 5월 5일 생이니 창포.오키타는 등나무 꽃(오키타 소지가 자를 후지와라 카네요시라고 썼던 거 같지만 넘어갑시다.그럴 리 없잖아요.)......몇 개는 농담인데, 아무튼 주로 저런 꽃들입니다.아무튼 각자 나름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그렸습니다. 심지어 카무이는 산수화예요 그냥.
그런데 거기 다카스기. 혼자 희고 붉은 모란꽃? 남들 죄다 한색이나 수묵화톤일때 왜 너 혼자 남화? 게다게 웬 모란? 화중지왕이 왜 저기 있는 겁니까? 너님 최종보스라 이겁니까. 왜 군왕의 꽃이냐고요 아우 정말;
아니 그건 좋아요. 하지만 일본엔 모란에 대한 이런 시가 있습니다.

 牡丹散て打かさなりぬ二三片 -蕪村
모란꽃 지니 부딪히고 겹쳐진 꽃잎 두세 점 -부손

이 이미지가 다카스기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크흑. 그리고 저 모란 그림, 호쿠사이 그림 중에 비슷한 거 있어요;;
그리고 호랑나비 뭐죠. 일본은 아니지만 속미인곡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범나비 되어다가 님의 옷에 앉으리라.
......범나비가 여성의 상징이므로 정철의 동성애적 욕망이 무의식중에 어쩌구 하는 논문 있습니다.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이능우 선생이라고 국문학계 원로의 논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저 보자마자 그것부터 떠올렸습니다. 아니 모란에 호랑나비를 그리는 게 보통인 거 같긴 하지만;
모란에 나비를 같이 그리는 건 동양화에서 남녀간의 화합을 뜻하는 그림입니다. 뭐 하자는 거냐. 그리고 화중지왕인 모란이므로, 절세미인도 상징합니다. 아 열받아. (시엘 님 제보 감사합니다.)

감독 신났더군요. 성토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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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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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다시 시작합니다.

나의 제인 에어는 이러치 아나ㅠㅠ 하며 화내실 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KISARA 님 제보로  I Walked with a Zombie라는 옛 영화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제인 에어에서 차용한 게 많은 영화고 제인 에어를 가장 잘 살린 패러디(...)물이라는 말을 듣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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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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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여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소개하려고요. 글도 안 써지고
오다니 미사코(小谷美紗子)의 불의 강(火の川)입니다.



가사는 제 맘대로 해석하고 의역했으니까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카테고리 분류가 은혼인 이유는 알아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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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李賀 : 790~816)는 '시귀(詩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염세적인 시풍으로 생전부터 유명했던 만당기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반적 중국시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미주의적 상징성을 띠고 있고,  낭송보다 읽기 위한 시를 썼다. 중국에서는 보들레르, 키츠와 비교되기도 하고 만당기 시파에 대해 분류할 때 이하를 따로 한 개의 시파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연구성과는 미미한데, 현재 학위 논문 한 편이 발표된 것 이외에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찾아볼 수 없다. 한시 특유의 다중적 해석과 함께 난해성이 강한 시풍 때문에 한국어 번역이 어려워 두 편의 선집이 출간된 것이 전부였던 점1)과 연관지어 볼 때

1) 2007년에 완역 시집이 출간되었다.

참고문헌
이하, <<시귀의 노래>>, 홍상훈 역주, 2007,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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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 못 해. 때려쳐.
제가 왜 저 짓을 했을까요. 드디어 날씨가 추워지니 뇌세포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과제에 쩔어 지냈더니 쓰는 것마다 저 모양이에요.
아무튼 시귀 이하의 시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별명이 저래요. 귀신이 드글드글하는 시를 쓰는 게 취미였습니다. 생긴 것도 가냘프고 마르고 손가락이 길었대요.(눈썹이 눈좀 갈매기 눈썹인 건 이야기 안 할랍니다. 로망이 사라져......) 영락한 왕족이고, 10대 때부터 알려진 시인이었음에도 과거는 말도 안 되는 핑계 때문에 무효화되어서 썩을 세상 카악 퉤......가 아니고 계속 저런 시나 쓰다 스물 일곱에 요절했는데 죽은 다음엔 글재주가 승하니 하늘에서 어여삐 보고 상량문 쓰게 하려고 데려갔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무려 저 이야기로 전(傳)을 지은 사람도 있다고요. 이상은이라고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인데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유명한 <소소소묘>나 <장진주>-한자 쓰기 귀찮습니다.-도 좋지만 오늘 소개할 시는 그거 아니에요

咽咽學楚吟
초사 가락 읊으며 우울해하다
病骨傷幽素  
병든 몸에 마음도 아주 상했네
秋姿白髮生
낙엽처럼 흰머리 돋아나니
木葉啼風雨
나뭇잎이 비바람에 울어대네
燈青蘭膏歇
등불은 파리하니 향초 기름이 말라가고
落照飛蛾舞
꺼져가는 불빛을 향해 나방이 춤추며 나네
古壁生凝塵
낡은 벽에 이는 먼지 쌓여가고
羈魂夢中語
한 맺힌 혼이 꿈속에서 말을 거네. 

분위기 좋죠? 제목은 <傷心行>이라고 합니다.

다음 시 갑니다. 이 시도 인지도가 꽤 있는 시네요. <神絃曲>. 즉 귀신에게 제사하는 노래입니다.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에 해 저물고 동쪽 산이 어둑해지면
旋風吹馬馬踏雲
회오리바람 불어 아지랑이 일고 귀신이 구름을 밟으며 온다
畵絃素管聲淺繁
비파 소리 피리 소리 귀가 따갑고
花裙綷縩步秋塵
무녀가 보얀 먼지, 바스락 소리 일으키며 춤을 추면
桂葉刷風桂墜子
계수나무 잎사귀 바람에 쓸려 열매마저 떨어지고
靑狸哭血寒狐死
질린 살쾡이가 피토하며 울고, 겁먹은 여우가 죽어가고
古壁彩虯金帖尾
낡은 벽에 그려진 금빛 꼬리 이무기를
雨工騎入秋潭水
우레의 신이 타고 찬 연못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百年老梟成木魅
백년 묵은 올빼미마저 나무 귀신이 되어
笑聲壁畵巢中起
킥킥대는 웃음소리,푸른 도깨비불 둥지에서 일어난다

이게 귀신소환이지 어디 신을 부르는 노래냐고요.
뱀신의 무녀님이자 '죽은자들의 여왕'인 다카스기를 망상하며 놀기 때문에 실은 건 아닙니다.

아니 뭐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贈陣商>의 첫 두 구이긴 합니다.

長安有男兒 장안에 남아 하나,
二十心已朽 나이 스물에 이미 마음이 썩어문드러졌다

오에도에 남아 하나, 나이 스물에 이미 마음이 썩어문드러졌다, 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누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긴토키고 카츠라고 다카스기고 어느 한 놈 멀쩡한 놈이 없으니. 다들 그다지 정상은 아니잖아요.

일단은 여기까지. 해석은 제가 마음대로 했습니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기녀들에 대해 쓴 어쩐지 분내나는 시며 남녀의 운우지정을 암시한 시구도 있습니다만 그건 귀찮군요;;

아니 뭐 하나만 추가할게요. <蝴蝶飛>입니다.

楊花撲帳春雲熱
버드나무 꽃 장막에 부딪히자 봄 구름이 뜨겁고
龜甲屛風醉眼纈
귀갑 병풍 속 화려한 무늬옷 입은 사람
東家蝴蝶西家飛
동쪽 집 나비 서쪽 집으로 날아드니
白騎少年今日歸
흰 말탄 청년 오늘 중으로 돌아오리라

보통 봄날 설레는 여인의 마음(이라고 쓰고 봄바람났다고 읽으면 됩니다)을 노래한 시라고 하는데, 문제는요 화려한 무늬옷 입은 사람 성별을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크흠. 누구누구 씨는 여성용 기모노 입고 다니고 드레스니 고스로리니 치파오니 하는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소화했죠.

그러고보니 다카스기 신사쿠가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시인이 되었을 거라죠, 그랬다죠. 신스케가 시 쓰면 이런 걸 쓸라나?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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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케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비상금을 털어 저잣거리로 나가는데 긴토키가 따라왔다. 골라주겠다나. 나보다는 그런 걸 훨씬 잘 알테니 뭐 괜찮겠지. 긴토키는 골목골목을 지나 천인풍의 물건을 파는 가게 문을 열었다. 이런 가게에 신스케에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더니 있단다. 가게 안은 알록달록하고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긴토키는 그 중 가늘고 긴 천 속에서 검은 것을 잡았다. 붕대냐고 물었더니 날 걷어찼다. 가게 안에서 물건을 구경하던 처자들이 그것을 머리에 묶는 걸 보고서야 감이 왔다. 길 가는 처자들이 그걸로 머리를 하나로 묶고 걸어가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보드라운 천이 나풀나풀 휘날리는 게 머리에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와 같았다.
꽤나 곱지 않은가.
신나게 그걸 들고 가서 신스케에게 내밀자 신스케의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질 줄 그때는 몰랐다. 그게 여성용인 줄 내가 알았나, 그저 고우니 들고 왔지. 긴토키 네 이놈.

--------------------------
"이거 어떻게 묶는 거냐?"
"모르면 하지 말라고! 야, 머리 뽑힌다니까! 놔!"
긴토키가 검정 공단리본을 양손에 들고 신스케의 머리를 얽어매고 있었다. 한 마 반 정도 되는 긴 리본이 머리카락과 뒤엉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야, 그냥 니가 매 주면 안 되냐?"
"죽고 싶으냐?"
"아 왜."
"여자 리본을 내가 왜 매?"
다카스기가 발을 냅다 휘둘러 등 뒤에 선 긴토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파 죽겠다고 폴짝폴짝 뛰는 동안 다카스기는 머리에 얽힌 리본을 풀었다. 머리카락이 몇 올 리본에 얽혀있는 걸 보자 어이가 없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즈라가 사 왔잖아, 좀 매 봐라."
"싫다니까."
"까다롭긴."
긴토키가 입이 댓발이 나와 툴툴거렸다.
"그러게 누가 이런 거 사 오래?"
"그치만 묶어놓으면 까만 나비 같아서 잘 어울릴 거 같았는데."
들으란 건지 듣지 말란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긴토키는 다카스기의 손에 들린 리본을 뺏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다카스기가 리본을 잡은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줬다가 뺏는 법이 어딨냐?
"안 묶을 거잖아."
다카스기가 손을 머리 뒤로 갖다대더니 잠시 꼼지락 거리고 손을 풀자 손에 있던 리본이 목덜미께에서 달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자 됐냐? 아 진짜 그 놈 참."
긴토키는 다카스기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걸 어깨를 잡아 몸을 돌리자, 까만 리본이 길게 늘어져 하얀 뒷목에 그림자를 떨구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까맣고 날개가 큰 나비처럼.
".......야 이 미친 새끼야, 떨어져!"
긴토키가 갑자기 어깨를 잡은 손을 앞으로 뻗어 다카스기의 어깨를 끌어안더니 목에 얼굴을 묻었다. 다카스기는 쩌렁쩌렁 교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고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카츠라는 치고 받는 두 아이의 머리를 들고 있던 양동이로 한 대씩 때려 싸움을 멈추게 했다.
"야 목에 얼굴 좀 묻은 게 어때서!"
"거기서 그걸 왜 하냐고!"
이걸 선생님께 일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카츠라는 그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이번에는 주먹으로 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긴토키의 머리는 딱 소리가 나도록, 다카스기의 머리는 톡 소리가 나도록.

"리본으로 목이라도 조르지 그랬나."
"미쳤냐, 이 예쁜 걸로 저 재수없는 백발 목을 조르게."
싸우는 도중에도 리본만은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은 걸을 카츠라가 지적하자 다카스기는 부루퉁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툴툴대며 방을 나섰다.
"그 녀석, 선물로 준 게 내심 기쁜가 보군."
카츠라가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문 밖에서 즈라는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으라는 요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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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예 님 리퀘였습니다. 리퀘 내용은 맨 끝에 적어놓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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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가 서류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다.
예산 지원 신청서, 경위서, 등등의 제목이 붙은 서류가 결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내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서류일 거다. 가게 하나를 날려먹고 신문에 얼굴이 난 건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사고였는데. 이 인간은 그냥 한숨을 푹 쉬고 한참 잔소리를 하더니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니 동생이냐.
대체 저 인간은 내가 무슨 사고를 쳐야 나한테 진지하게 화를 낼지 모르겠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설교를 하고 야단은 쳐도 화는 내지 않으니 뭐 저런 병신이 다 있나 모르겠다. 심지어 이것 좀 보라지. 어지간히 졸렸는지 볼펜으로 입 주위를 그어놨다. 입술 한 귀퉁이에 괴상한 검은 도형을 그려놓고도 속편하게 잘도 쳐자네. 얼굴에 뭐가 묻어도 꼭 저렇게 웃기고 폼 안나게 묻는 것도 재주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킬킬거리는데도 깨질 않는다. 자는 얼굴은 참 평온해 보인다. 평소엔 미간에 주름 잡고 인상 구긴 얼굴밖에 못 하면서. 이 인간은 계속 나나 곤도 씨, 떨거지 새끼들이 치는 사고나 수습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이렇게 자는 게 일상이지. 이번엔 어디 가서 머리를 숙이고 어디 가서 수습할 거리를 조달해 왔을라나. 나로선 짐작도 안 가는 일이다.
아마 계속 이런 식일 거다. 그리고 요령 없는 인간에겐 사람 화를 돋구는 데가 있다.
굳이 내가 S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 내가 S라서 더 화가 나는 거겠지. 그게 맞을 거다. 이 인간은 사람이 멍청할 수 있는 한 멍청하게 구는 꼴을 봤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멍청한 짓을 해 댄다. 그러라고 치는 사고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화를 좀 내 봐라 제발. 진지하게 나한테 화를 내 보라고.
그냥 충동적으로 달려든 거다. 그리고 마침 입술에 난 볼펜 자국이 어지간히 짜증나던 참이었다. 그래서 물어뜯었다. 순간 히지카타가 신음 반 비명 반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 손으로 내 등짝을 후려갈겼다. 심심하면 나가서 애들하고 놀 일이지 뭐 하냐고 그런다. 이 인간 봐라.
입술에 피가 벌겋게 맺혀 있는 걸 입으로 닦아줬더니 이젠 굳었다. 그리고 정확히 6초 후에 폭발했다. 그 순간에도 검집에서 칼을 뽑지 않고 달려드는 덴 정말이지 질렸다. 이러니 내가 이 인간을 괴롭히고 싶지 않겠냐고. 언제고 진검을 뽑아들고 날 죽일 자세로 덤빌 때까지 집요하게 괴롭혀 주마. 평생이 걸리더라도. 다음엔 좀 더 세게 물어뜯어봐야지. 그런데 왜 내가 하필 입술을 물어뜯었을까, 에잇 모르겠다. 생각하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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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는 원래, 오키히지 키스신이었습니다.
......저것들이 첫키스는 레몬맛☆ 이러고 있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오키타는 자기가 히지카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도 못 할 거예요. 그런 놈 치고 저만하면 진도 많이 나가지 않았어요? (딴청)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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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란 것은 5. 7. 5의 음수율을 원칙으로 하는 정형시입니다. 본래 일본에는 5. 7. 5. 7. 7. 의 정형시인 와카라는 것이 있었고, 중세에 와서 와카를 여럿이 이어 읊는 렌가(連歌라고 합니다. 한자를 보면 아시겠죠. 이어 부르는 노 래)가 대유행했어요. 한 수씩 읊는 게 아니고 5. 7. 5 한 수 읊으면 7. 7 하나 부르고 이렇게 주욱 시를 이어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렌가라는 것이 종류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일본 고전 문학 강의가 될 거 같고 아무튼, 중세 지나 근세 오면서 하이카이가 유행합니다. 렌카의 개그 버전이에요. 패러디 버전이기도 하고. 형식은 같은데 까다로운 와카에 비해서 좀 더 널널하고 소재도 개그를 많이 써요. 그런데 앞쪽 5. 7. 5를 홋쿠(發句)라고 합니다. 이게 독립된 것이 하이쿠예요. 하이쿠라는 이름은 마사오카 시키라는, 메이지 시대 시인에 이르러 처음 생긴 이름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가 있어야 하며, 짧은 시라서 기레지(切字), 즉 끊어읽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당장 다음의 하이쿠를 봅시다.

일단 봄.
落花枝にかえるとみれば胡蝶かな
낙화, 가지로 돌아가나 봤더니 나비였구나(모리다케)

마지막 구의 かな같은 것이 기레지입니다. 시를 끊어주며 여운을 주지요. 계절어는 나비. 다 져서 떨어져 썩은내를 풍기는 꽃인 줄 알았는데 꽃이 살랑거리며 일어나 날아가 가지에 앉은 겁니다. 자세히 보니 꽃이 아니고 나비인 거죠. 시취를 풍기는 꽃인지, 이미 죽어버린 뭔가인지 아무도 모를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썩어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비였어요. 시체에서 피어난 나비가 가지로 돌아가 이쪽을 향해 무심한 듯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행간에서 그 나비에게 마음을 뺏긴 티가 나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죠? 그럼 계절별로 하나씩 봅시다.

여름
雨後の月誰そや夜ぶりの脛白き
비 개인 달밤 누가 밤낚시하나 하얀 종아리(부손)

장마도 끝날 무렵, 비가 그쳐 맑기는 맑은데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밤, 더워서 물가에 나왔는데 밝은 달 아래 누군가 물 속에 다리를 걷고 앉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종아리가 선명하군요.대체 누구를 무얼로 낚아 뭘 하려는 걸까요. 낚시대도 없이 하얀 발목으로 낚을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을
我星はどこに旅寝や天の川
내 별 어디서 한뎃잠 자고 있나 은하수 저쪽(잇사)

부모의 마음이랄까. 누군가와 떨어진 사람이 쓴 하이쿠임에 틀림없습니다. 내 새끼 잠은 잘 자고 끼니는 안 거르는지, 한뎃잠 자며 추워하진 않는지. 먼 하늘을 보며 청승을 떨고 있군요. 여러분의 눈에도 보이십니까. 밤하늘을 우러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청승을 떠는, 자기가 보호자인 줄 아는 흑장발 청년의 모습.

夜窃ニ虫は月下の夜を穿ツ
한밤에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바쇼의 시를 응용해 보았습니다. 원래 밤(夜)이 아니고 밤(栗)이었는데 고쳤습니다.
흉흉한 달빛 아래, '빛에 모여든 벌레'가 밤을 갉고, 세상을 갉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게 하이쿠의 기본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여러분도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숱한 하이쿠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동인질에는 여러 방법이 있어, 스스로 창작이 안 되면 남이 지은 작품을 내 망상에 대입하는 법도 괜찮습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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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 밥 안 먹나."
천 오백 짐승들이 급식실을 향해 콧김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환란의 급식시간에도 신유진은 움직이지 않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신유진, 밥 먹어라."
"늦으면 반찬 없다. 가라. 안 나갈거니까 열쇠 놔두고."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유진을 보고 이태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먹으면 이따 보충 때 힘들다."
"니가 우리 엄마가, 놔두고 가라니까."
문단속을 한다고 마지막에 나가려다 친구가 밥도 안 먹고 책이나 파고 있는 답답하고 옳지 않은 꼴을 본 이태일 군은 화를 내며 유진의 어깨를 쳤다.
"아 좀!"
어깨를 맞은 유진은 화를 내며 태일의 손을 뿌리쳤다.
"귀찮다고! 굶는다고 안 죽는다."
"귀찮으면 가서 앉아있기만 해라. 내가 밥 받아줄게."
"선생님이 내일까지 이거 읽어오라고 하셨단 말이다. 놔라!"
"선생님도 니 밥 굶으면서 책 읽는 건 안 바라신다."
"......"
유진은 한숨을 쉬고 책갈피를 끼운 다음 책을 덮고 일어섰다. 유진을 제압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태일은 의기양양하게 유진의 손목을 끌고 급식실로 향했다.
"근데 책은 왜 못 읽었는데."
"몰라. 김시은한테 물어봐라."
"또 싸웠나."
"싸운 게 아니고 그 새끼가 일방적으로 엉겨붙어서 귀찮게 하는 거다."
"맞나."
태일이 무심하게 대답하고 유진은 얼른 말을 돌렸다.
"근데 오늘 반찬 뭔데."
"나도 모른다."
"미역국이면 안 먹는다. 살다 살다 그래 맛없는 미역국은 처음 봤다."
"맞제. 조선간장 안 쓰고 진간장으로 간 한 거 같더라."
"두 개 다르나?"
"천지차이다. 국은 진간장으로 간하면 망한다."
"태일이 별 걸 다 아네."
"남자도 부엌일에 신경 쓰는 게 요즘 선비의 자세라고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태일이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날 급식은 다행히 미역국은 아니었으나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생선까스였고-타르타르 소스가 지독하게 기름져서 어지간한 놈들도 먹고 나면 속이 이상하다고 아우성을 치기 일쑤였다-유진은 소스 냄새를 맡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밥 안 먹겠노라 버티는 걸 달래고 두 사람 몫의 밥을 받아오고 수저를 챙기고 먹기 편한 자리를 잡아다가 앉히고 반도 못 먹고 남긴 밥에 대해 잔소리를 퍼부어 준 다음 잔반 처리에 뒷정리까지 다 한 것은 태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 밥을 받아온 다음 행복한 얼굴로 후식으로 나온 딸기맛 요구르트를 먹다 말고 그 꼴을 보고 인상이 구겨진 김시은은 애꿎은 축구공을 작살내고 축구골대를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르다 지나가던 학생부장 겸 체육교사에게 걸려서 혼났다. 신유진은 교실에서 그 꼴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성질머리 봐라 저거."

그리고 다음날.
"니 일부러 밥 안 먹었제?"
"뭐라카노. 개소리 말고 책이나 봐라."
"어제 밥 안 먹었잖아."
"어제 이야기를 오늘 하는 이유가 뭔데."
주말에는 시은의 양부 송인호 교수가 집으로 온다. 그러면 어김없이 태일이와 유진이, 가끔 마원용도 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 읽고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 셋이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다 간식거리를 준비하느라 잠시 송인호 교수가 자리를 비우고, 일을 돕겠다며 태일이 부엌으로 따라간 틈을 타, 시은이 유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태일이가 니 밥 안 먹는다 카면 그래 나올 걸 몰랐다고."
시은이 미간을 찌푸리자 유진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내한테 시위하나?"
"니가 뭐라고 내가 니한테 시위하는데? 니도 참 웃긴다."
한참 유진을 노려보던 시은이 한숨을 쉬었다.
"니 성질머리도 참 더럽다."
"니 성질 더러운 거 알고 하는 소리가."
그때 사과가 참 달다며 한 접시도 아니고 한 쟁반을 깎아온 송인호 교수의 등장으로 대화는 일단 끝이 났으나 시은과 유진은 토론 내내 날선 대화를 주고받았다. 송 교수는 얘네가 싸웠나 하고 잠시 걱정했으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고 금방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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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으로도 알콩달콩한 걸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다만 한국으로 옮겨와 학원물패러랠을 하는 이중의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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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님 리퀘입니다.
자장가.....는 결국 거의 못 써먹었습니다만; 아무튼 셋이 나와서 떠들고 한 놈은 잡니다.
요새 하도 서로 피폐한 긴토키랑 신스케만 건드렸더니 제가 피폐해져서 안 되겠습니다. 좀 평온한 걸 써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도 치유계를 쓰고 싶다니까요. 아무도 안 믿겠지만.

시험 치시기 전에 올리려고 노력했어요. 시험 끝나고 보시려나.
잘 치고 돌아오세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3차 치실 땐 정말 지도안을 연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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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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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2010. 10. 30.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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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시은이 니 신유진하고 진짜 사귀나."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편 나눠서 공을 차느라 땀 범벅이 된 남자애들이 예비종이 치자 복도가 무너져라 교실로 질주하던 길에 나온 뜬금없는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 전원이 석화되었다.
"씹새야, 개소리하지 마라. 니 시은이가 호모새끼로 보이나?"
"입 닥쳐라 개새야. 시은이가 뭐가 아쉬워서 호모질을 하는데? 니 눈깔이 썩었나? 야가 호모로 보이게?"
간신히 석화에서 풀린 남자아이들이 투덜투덜거리며 질문을 한 남자애를 쥐어박고(그러니까 니킥으로 배를 걷어차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퍽 소리가 나도록 찌르고 목을 졸라대는 다정하고도 훈훈한 장면이었다. 맞는 놈은 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있었다.) 다시 계단참을 돌아 복도를 질주하려고 하는데 교복에 묻은 발자국을 털어내던 엷은 머리색의 남자애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끼 눈 좋네? 우리 사귀는 거 보통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는데?"
".......야 김시은, 뭐라고?"
부산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모두 굳었다. 질문한 아이가 말을 더듬어도 시은이는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니 내 신유진 가하고 사귄지 한 3년 됐다.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아들도 모르는데 눈치 졸라 빠르네."
굳어 있던, 흙과 땀에 푹 전 남자애들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소를 터뜨렸다.
"지랄한다 씹새야, 농담도 가려가면서 해라."
"사귀냐고 먼저 물은 게 니다, 이 개새끼야."
질문한 아이도 배를 잡고 웃어댔고 나머지 애들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복도에서 한참 웃고 있었다. 그때, 종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 씨발, 종 쳤다! 수학책 못 빌렸는데!!!"
"우리는 영어다. 오늘 시킨다고 미리 풀어오라 캤는데! 클났네."
"뭐 수학? 야 오늘 며칠인데? 내 걸릴 날짜 아이가?"
아까까지 태연하게 농담을 하던 김시은이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21일!"
시은이가 머리를 감싸쥐고 투덜거렸다.
"씨발 좆됐다! 수학 그새끼 각목 새로 맞췄다 카던데."
"쓰던 거 우짜고?"
"마원용 쳐자다가 뒤지게 맞고 부러졌다. 그런데 그새끼 졸라 맞고도 웃더라. 미친 새끼."
"야 근데 마원용이란 놈도 우리 학교에 있나?"
"니 짝이다."
"........아, 그새끼가 마원용이가."
"눈깔에 좆 박힌 새끼. 내 3반 갔다 올게! 수학 오거든 내 보건실 갔다 캐라!"
"오냐, 후딱 가라."
그렇게 5교시가 지나갔다. 5분 늦은 김시은이 각목으로 얻어터지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고 그날은 수학 선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앉은자리대로 문제를 풀리다 4분단 맨 가에 앉은 더벅머리를 보고 전학 왔으면 전학을 왔다고 이야기를 했어야 하지 않냐고 화를 내자 실장 이태일이 심각한 얼굴로 손을 들고 일어나 그 학생 마원용이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해서 모두가 어색해졌다. 어찌나 어색했던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수업이 끝났고, 그 덕에 조금 길어진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려고 일어난 김시은에게 실장이 다가갔다.
"시은이, 왜 늦었는데."
"책 없어서 빌리러 갔다."
"내가 예비종 치면 교실 들어와서 손 씻고 수업 준비하라고 몇 번 이야기했노."
"아 이태일 이새끼 졸라 말많네. 니가 우리 아버지가?"
"내가 왜 느거 아버진데. 난 유진이 같은 아들이 좋지 니 같은 아들 줘도 안 한다."
진지한 얼굴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태일을 향해 시은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보였다.
"가는 니가 개소리하고 다니는 거 아나?"
"사람이 말하는데 개소리라니. 말 좀 곱게 해라."
"개소리지. 그러면 니가 내 장인인데 나도 니같은 장인 싫거든?"
분필가루가 풀풀 날리는 칠판을 배경 삼아 교탁 앞에서 우아하게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김시은의 머리에 수학의 정석이 날아오고 이태일의 머리에는 사회 교과서가 날아왔다. (교과서 중에서야 사회 교과서가 제일 두껍지만, 중요한 것은 수학의 정석은 그것보다 더 두꺼운 데다 하드커버라는 것이다.)
"둘 다 작작해라. 내 없는데서 내 이야기 하지 말라고!"
"아 유진이 왔다!! 두 시간만에 보는데 여전히 이쁘네."
남자애 치고 골격이 가는 하얀 피부의 남자애가 귀찮아 죽겠다는 듯 나른한 동작으로 수학 정석책을 탈탈 털며 있는대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태일, 이새끼 보건실로 끌고 가라. 약 처먹는 거 또 까먹었네."
"이쁘니까 이쁘다 카는데 뭐가 불만인데?"
툴툴대고 있는 유진의 어깨에 김시은이 팔을 둘렀다.
"살 빠졌나? 어깨가 이래 얇아가 우짜노. "
"씨발! 놔라 이 개새끼야!"
"생리한다고 티 내지 말라니까. 난 까칠한 마누라 싫다."
이번에는 수학의 정석이 모서리째로 김시은의 머리에 박혔다. 짐짓 엄살을 떨며 머리를 잡고 괴로워하는 시은의 배에 양말바람의 발이 날아오고, 머리에는 255 사이즈 삼디다스 실내화가 날아왔다.
"악!!!!!!!!!! 마누라가 남편 팬다! 가정폭력이다!"
"가정 폭력 좋아한다. 씹새끼. 내가 니 패면 가정법원 안 가고 형사사건으로 넘어가거든?"
"시은이 니 유진이 자꾸 괴롭힐래?"
이태일이 가세해서 둘이 먼지가 풀풀 올라오도록 김시은을 밟고 차고 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오 싸움났다 좋은 구경이다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었고 옆반 애들까지 가세해서 셋의 싸움-이라기보단 둘이서 하나를 두들겨 패는 꼴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교실 뒷문과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남자아이들이 그 꼴을 보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야, 저래 죽도록 패면서도 마누라란 소리는 부정 안 하는 거 보면 사귀는 거 맞다."
"이 미친 새끼야, 니 아직도 느거 누나 보는 그거 못 끊었나? 호모새끼들 씹질하는 그거? 니 그카다가 병 옮는데이. 작작 봐라. 세상에 우리 학교에 호모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맞다. 그리고 자들이 호모일 리가 있나. 시은이가 얼마나 사내다운데 호모라니."
"그리고 유진이 자가 쪼끄맣고 마르고 곱상해서 그렇지 보기보다 세다. 니 자한테 맞아본 적 있나? 내 중학교 때 자한테 맞은 게 아직도 아프다."
"맞은 게 자랑이라고 떠드나. 근데 니 왜 맞았는데?"
"체육시간에 옷 갈아입다가 다리 봤는데 털도 하나 없고 예쁘데. 그래서 본 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누가 목소리 쫙 깔고 내 이름 부르더라고. 봤더니 신유진이 어디서 구했는지 야구배트 들고 덤비더라. 그 다음부터 우리 학교에서 야구 금지였다."
"그래서 느거 학교 아들이 야구 하고 싶다고 그 난리를 쳤나?"
"결국 배드민턴 채로 야구했잖아. 생각하니까 존나 눈물난다. 그때 우리 엄마가 학교 찾아갔는데 신유진이랑 이야기하고 오더니 빗자루 들고 내 방으로 들어오데? 느거 플라스틱 빗자루 부러지도록 맞아봤나? 방 쓰는 거 말고 마당 쓰는 빗자루. 씨발 신유진 개새끼. 우리 엄마가 동네 시장에서 말싸움으로 져 본 적이 없는 독한 아줌만데. 저새끼 뭔데?"
"야 김시은하고 신유진하고 이태일하고 말빨 장난 아니다. 저새끼 국어하고 사회 시간에 말 하는 거 못 들었나."
"재수없다. 근데 아무튼 자들 호모는 아니다. 호모가 저래 싸움도 잘 하고 말도 잘 할 리가 없다."
"맞제. 그런 가시나 같은 재수없는 것들이랑 자들이 같나."
"그래도 신유진 가 이쁘긴 졸라 이쁘잖아."
아까 신유진에게 두들겨맞았다고 투덜거리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내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혀를 찼다.
"등신새끼. 니가 호모가. 남자보고 이쁘다가 뭐고."
"야 개새끼야, 니도 남자면서 남자보고 그래야 되겠나? 들으면 진짜 기분나쁜 거 알면서 그러면 안 된다."
그때 종이 쳐서 그 토론은 끝나고, 대구 수성구 모처에 위치한 대은고등학교의 하루도 저물어갔다.

그리고 3년 후. 금요일 저녁이라 길거리는 술에 떡이 된 학생들로 넘쳐났고, 거기서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화 내용이 조금씩 평소 같으면 말하지 못할 것들로 옮겨갔고, 어쩐 일로 김시은의 입에서 솔직한 소리가 나오는 중이었다.
"야, 너네 중학교 때부터 사귀었다면서? 남자 고등학교 다녔다더니 용케 안 들키고 버텼네?"
"아, 그거. 쉽다. 장난처럼 진짜 사귄다고 카면 다 웃고 넘어간다."
"하긴. 근데 너넨 오래 사귀었으니까 티가 났을 거 같은데."
"니가 뭘 모르네. 머시마들은 다 단순하다. 근데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더 덜떨어지게 굴거든."
김시은이 키들키들 웃으면서 대꾸했다.
"응. 여자애들은 의심하기도 하던데 남자애들은 그런 거 의외로 없더라."
"가들은 지 옆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서워서 그런 생각을 못 한다."
한 무리의 남자들은 키득키득거리면서 웃어댔다. 그러다 그중 한 녀석이 시은에게 물었다.
"너 애인 미국에 있다 그랬지."
"어."
"떨어지니까 좀 슬프지 않냐?"
"슬프기는, 하루에 한 번 싸우던 거 사흘에 한 번 메일하고 전화로 싸우니까 재미도 없고 심심해 죽겠다."
"야, 그런데 너네 그렇게 싸우고 욕하고 하면서 왜 사귀냐?"
시은은 죽은 물고기 같은 눈을 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새끼야, 나도 모른다."
다들 키들키들 웃어댔다.

그리고 오전 7시 반, 미국 동부.
"유진, 궁금한 게 있소."
"응, 뭐냐?"
"한국에 두고 왔다는 애인 말이오. 시은이라고 했나?"
"아 걔?"
벤자민 T. 코지마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 알 수 없는 천재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동양에서 온 애들은 다 그렇냐고 누가 본인에게 물었는데, 자기도 일본인 3세라 미국에서 태어나서 일본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데 알 게 뭐냐. 평소 궁금했던 김에 말을 꺼내자마자 신유진이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구겨박았다. 그리고 벤자민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가 몇 마디 흘러나왔다. 아마 욕이겠지. 신유진에게 가끔 투덜대는 한국어가 무슨 뜻이고, 꼭 그걸 한국어로 해야겠냐고 물었더니 신유진은 피식 웃으면서 한국어에는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욕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비속어로 투덜투덜거리던 유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 이야긴 왜 물어."
"그렇게 욕을 하고도 아직도 사귀고 있소? 여기도 애인이라면 많잖소."
신유진이 벤자민 쪽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로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괴상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새로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그의 얼굴 쪽에 훅 내뿜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벤자민 T. 코지마."
"왜 그러시오?"
"한국어에는 속궁합이란 말이 있어. 혹시 아냐?"
"........그게 뭐요?"
"음, 몸정이라고도 하고......이건 해 봐야 아는 건데 말이지......."
벤자민은 자기 입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내가 왜 그걸 물어서 이런 끈적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를 아침부터 10분씩이나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그의 인생에 한 가지 복이 있다면, 그걸 신유진 쪽에 물어봐서 10분만에 이야기가 끝났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같은 이야기를 어떤 눈치 없는 놈이 물었을 때, 김시은은 한 시간 반 동안 자신들의 성생활에 대해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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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도 아닌 주제에 벤자민 군이 유진이와 저 시간에 같이 있었던 이유는 같이 잤기 때문입니다. 잠만. 음악 이야기를 너무 오래 해서 집에 못 가고 저기서 잤어요.
누가 누구인지는 알아서 캐치하시길. 은혼 경상도 버전이라는 건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아시겠죠?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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