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은 아니고 아무튼 부슈 촌구석에 마츠다이라 옷상네 집 더부살이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고생하던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성질 더럽고 불만 많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옷상은 성격 나쁜 중년 호색한 아저씨였습니다. 하는 일 없이 히지카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대며 볶아댔고-토오시이이~ 일 해라, 돈 벌어 와라, 이 아저씨는 맥주가 땡긴다아~ - 양오빠 고릴라는 사람만 좋아서 사고나 치고 다니고, 양동생 야마자키는 배드민턴이나 해대는 잉여고, 그 와중에 혼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보니 어느새 로우드 기숙학원이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입학해 있네요. 어쩌다 온 건지 알 게 뭡니까. 밥은 더럽게 맛없고-게다가 마요네즈가 없어서 학원 생활은 괴로웠습니다. 그 와중에 타바스코 소스가 없다고 밥을 안 먹던 미츠바 양과 룸메가 되어 학원 소스 혁명을 꾸미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하면서 나름 백합백합한 첫사랑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결핵이 돌아 룸메 미츠바 양이 죽기 전까진요. 죽고 나서야 그 아가씨가 첫사랑인 걸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죠. 시간은 흘렀고 학교는 졸업해야 되고 갈 데는 없고-고릴라가 사고를 거하게 쳐서 말입니다.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결심한 히지카타는 어디 시골 영지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애들은 나름 착했어요. 하나는 안경걸이 주제에 주부근성이 쩔어서 히지카타의 식성에 간섭하고 야단을 쳐대고 하나는 웬 엉터리 중국인이 힘만 세서 히지카타를 죽일 기세로 덤벼드는데다 다시마초절임 같은 거나 좋다고 먹어대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애들이었습니다. 애 아버지란 작자가 집에 안 들어오니 가정교사 하기 좋은 환경 아닙니까. 월급도 안 밀리고. 2층에 올라가지 말라는 이상한 규칙만 빼면 좋은 집이었습니다. 히지카타는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성격이어서 착실하게 2층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종종 이상한 소리-검을 뽑는 소리, 샤미센 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고 가끔은 격한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지만요. 궁금하긴 했지만 가 볼 생각도 안 했어요. 훗날 그때 가 봤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건 뭐 나중 이야기고요. 어느날 길 가다가 만난 백발이랑 크게 싸우고 집에 와 보니 세상에 그 작자가 애들 아버지라지 뭡니까. 친아버진 아니고 지나가던 꼬맹이들 거둬 키우고 사는 홀아비라나 뭐라나요. 전 결혼은 실패했다는데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요. 결혼하자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키타라고. 그런데 결혼하겠다고 그 집에 출입하는 사람이 왜 히지카타만 죽어라고 괴롭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오키타가 허구한날 속을 긁어대고 긁어대는데 히지카타는 가끔 저치가 이 백발과 결혼하려고 드는 건 날 지척에서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히지카타가 어쩌다가 백발이랑 눈이 맞아버렸지 뭡니까. 눈 이전에 배부터 맞은 거 같지만 그쪽은 신경 쓰면 안 되고요. 아무튼 백발이랑 결혼하게 되었는데 나날이 2층에서 들리는 괴상한 소리가 커졌습니다. 그게 뭔지 아무리 물어봐도 백발은 거기 대해 답을 해 주지 않았어요. 아무튼 결혼식 날, 이제 혼인서약이 완료되려던 찰나에 웬 괴상한 장발청년이 나타나서 이 결혼에 이의 많소오오오 하며 꺼이꺼이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내 동생을 데려 갔으면 잘 데리고 살 것이지 이 촌스러운 놈은 뭐냐 긴토키 네놈 눈이 삐었냐로 시작하는 장광설을 읊으면서요. 그리고 결혼식장에 웬 시커먼 붕대와 베일에 싸인 시체같은 창백한 미인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시체였어요. 창백하고 검은 시체가 베일을 걷고 웃더니 백발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순간, 히지카타의 뇌리에 2층에서 들리던 칼소리가 떠올랐습니다. 그 소리였어요. 이게 2층에 가면 안 되는 이유였던 겁니다.백발은 홀아비가 아니었어요. 호적상으로도 현 상태를 봐도 엄연한 유부남이었습니다. 장발청년은 머나먼 카리브해 어디에서 설탕농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였던 백발이 설탕이라고 좋다고 거기 눌러붙어 잉여질을 하다 그만 그 동생을 책임질 일을 벌이고 말았다지 뭡니까. 일만 벌였으면 괜찮은데 한 번으로 못 끊고 계속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다 그만 장발청년에게 들켰대요. 그 동생이 워낙 강력한 마녀라 일대에 소문이 나서 시집갈 데가 없었다던가. 장발청년은 결혼을 요구했고 백발도 뭐 이만하면 예쁘지 속궁합도 잘 맞지, 내심 그 동생이 좋았거든요. 게다가 설탕농장도 땡겼고. 제일 큰 이유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맞아죽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지만요. 아무튼 결혼은 했지만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겠노라 이를 갈아대는 생활에 지친 백발이 결국 그, 다카스기 신스케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2층 다락방에 시체를 넣고 문을 석회로 발라버렸는데도 그는 살아났어요. 아니 죽은 상태였다고 해야 하나. 카리브해 출신의 강력한 마녀라고 했잖습니까. 시체 상태로 되살아나는 거 정도야. 아무튼 다카스기는 샤미센을 연주하고 칼을 갈며 그를 죽이겠노라 매일밤 맹세하며 벽을 두드렸습니다. 죽기 전엔 그나마 얌전한 데가 있었는데 부활하고 났더니 이성을 놓고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백발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생활에 지친 백발이 다카스기와 닮은 구석이 있는 히지카타와 재혼하겠다고 생각한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자기는 빼놓고 장발과 다카스기와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셋이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장난하나요. 히지카타는 두 놈들이 징했습니다. 허구한 날 자기를 가운데 끼고 죽이네 살리네 싸우다가 붙어먹고 또 싸우는 꼴도 징했어요. 내가 너랑 다시 살게 되면 성을 갈겠노라 이를 갈며 백발의 집을 나왔습니다. 고릴라 뒤치닥거리를 해 주며 살다가 고릴라가 참모라고 데려온 이토라는 놈과 같이 부대끼며 일하게 되었는데, 이토는 히지카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서로 으르렁대던 어느 날, 이토가 히지카타에게 청혼했습니다. 너는 매우 재수없고 기분나쁜 놈이지만 네놈이 유용하긴 하니 같이 살면 내 재능이 빛나지 않겠는가. 개소리에 열받은 히지카타가 이토를 두들겨팬 것을 시작으로 둘의 싸움이 매우 격화되었는데 고릴라가 이토 편을 들지 뭡니까. 세상 더러워서. 갈 데가 정말로 없어진 히지카타는 오타쿠질이나 하면서 동인지나 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종종 백발이 다시 나타나서 깐죽거리기도 했고 다카스기가 나타나서 속을 긁기도 하고 때론 둘이 같이 와서 자기 앞에서 싸워대곤 했습니다. 둘이서 싸우다 끝낼 것이지 자기는 사이에 왜 끼워서 이 난리를 치나요. 히지카타는 매우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끊고 싶다고 끊을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고요, 어느새 셋이서 으르렁대는 삶에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냥 이렇게 둘 사이에 끼여서 속 끓이다 죽으려나보다 하고 있는데 어느날부터 둘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다 소식이 들리기로 백발이 다카스기랑 죽어라고 싸워대다 결국 너 죽고 나 죽는 싸움 끝에 정말 서로 죽이는 걸로 끝났다나요. 백발이 죽자마자 다카스기는 광소하며 보라색 재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만 진위 여부야 모르죠.
나의 제인 에어는 이러치 아나ㅠㅠ 하며 화내실 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KISARA 님 제보로 I Walked with a Zombie라는 옛 영화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제인 에어에서 차용한 게 많은 영화고 제인 에어를 가장 잘 살린 패러디(...)물이라는 말을 듣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