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크님 리퀘입니다. 재미있는 소재를 갖고 재미없게 써서 죄송합니다ㅠㅠ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발단은 빈 교실에서 샤미센을 연습하던 다카스기의 옆에 긴토키가 와서 앉은 것이었다. 늘 자던 낮잠도 안 자고 그냥 다카스기의 옆에 앉아서 샤미센 연습하는 것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풀린 눈으로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다카스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뭘 보냐.”
“그냥 본다.”
다카스기의 퉁명스러운 질문을 긴토키는 더 퉁명스럽게 받아쳤고 다카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왜 힐끔힐끔 쳐다 보고 있냐.”
“어, 이건 또 웬 근자감이래? 세상 사람들이 다 너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쳇.”
언성을 높이려다 다카스기가 얼굴을 찌푸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탓이리라. 긴토키도 수 개월 전부터 겪고 있는 증상이고 다카스기도 최근 겪기 시작한 증상이었다. 선생님은 변성기가 오는 거라고 하셨다. 소리를 지르거나 목 관리를 잘 못 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멋진 목소리가 안 나오니 주의하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후로 긴토키가 어떤 헛소리를 하고 시비를 걸어대도 다카스기는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긴토키의 헛소리는 점점 강도가 높아졌다.
“너 목소리 진짜 이상해. 까마귀가 동생 삼자고 덤벼들겠어.”
“너도 만만찮거든.”
긴토키의 헛소리에 대처하는 법이라면 이제 몇 년을 겪어서 다카스기도 조금은 안다. 투덜거리는 긴토키를 두고 다카스기는 무릎 위에 올려뒀던 발목을 다시 잡고 샤미센을 고쳐잡았다. 긴토키가 전에 샤미센 발목을 숨긴 뒤로 항상 조심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다카스기가 현을 튕기는 소리가 빈 교실을 꽉 채웠다. 긴토키는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연주가 이어지고 긴토키는 조용히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잠이 들었나보다고 생각한 다카스기가 연주에 몰두하려는 순간,
“야, 신짱.”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신스케.”
“이름 막 부르지 말랬잖아.”
다카스기는 열두 살이 되면서부터 자기를 이름으로만 부를 때면 화를 내곤 했다. 긴토키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이름으로만 부르며 다카스기가 화를 내는 것을 보며 낄낄대곤 한다는 걸 다카스기도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손가락을 잘못 짚었는지 소리가 균형을 잃고 삐걱거렸다. 연주를 방해받은 다카스기가 투덜거렸다.
"너 때문에 틀렸잖아."
"내가 뭐?"
키들키들 웃는 긴토키를 보고 다시 혀를 찬 다카스기는 아예 조율부터 새로 하겠다고 결심한 듯 현을 조이며 음에 귀를 기울였다. 긴토키가 뭔 말을 하건 나는 샤미센에 집중을 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자세에서 전해졌다. 긴토키가 뭐라고 뭐라고 말했지만 말은 귓가에서 미끄러지듯 사라져 다카스기의 머릿속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긴토키가 한 말은 내가 널 언제 방해했냐 웃긴다, 근데 너 뭐 하냐, 사람이 옆에 있는데 악기나 두드리냐, 대강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어느새 다카스기는 연주에 몰입해 있었고 긴토키는 말을 멈추고 다카스기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벽에 기대 앉아 현을 짚어가는 왼손과, 현을 튕기는 오른손을, 구부러졌다 펴지는 오른손목과 현 위를 스치는 왼손가락을 쳐다보았다. 하얀 손가락이 나비처럼 팔랑대며 현 위에 앉는 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쳐다본 거 맞잖아.”
정신을 차려보니 연주는 멈췄고 다카스기가 긴토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카스기는 표정이 부족한 편이지만, 긴토키도 다카스기를 오래 보면서 표정을 읽는 법 정도는 배웠다. 자주 보던 표정과는 조금 다른데, 이건 분명히 짜증나하는 표정이다. 긴토키는 내심 즐거웠다. 다카스기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쳐다봐.”
“새끼, 짜게 굴기는. 좀 보면 닳냐.”
“왜 보냐고 물었는데.”
다카스기 신스케는 뭐 하나 그냥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 귀찮게. 긴토키는 그래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기집애 같아서 봤다. 생긴 것부터 기집애 같더라니 노는 꼴 하곤. 너 달린 거 맞냐?”
“오늘은 왜 싸웠죠.”
“…….”
“…….”
긴토키와 다카스기는 먼지 묻고 구겨진 차림에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엉망인 차림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앉음새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다카스기는 차마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자기 무릎을 보며 이를 악 물고 있었고 긴토키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견이 다르다고 폭력을 쓰는 게 얼마나 나쁜 짓인지 몇 번을 이야기했었나요.”
교사의 한숨에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선생님, 긴토키가 놀린다고 폭력을 쓴 제가 나빴던 건 맞지만, 전 긴토키한테 사과를 꼭 받고 싶습니다.”
분한 표정으로 다카스기가 입을 열었다.
“신스케 말이 맞나요?”
“…….”
“뭐라고 했습니까.”
“샤미센 켜는 게 기집애 같다고요.”
“사람 외모에 편견 가지는 것도 나쁘다고,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것도 나쁘다고 이틀 전에 이야기 했어요. 게다가 긴토키가 그러면 더 안 된다고도 이야기 했을텐데.”
요시다 쇼요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긴토키가 나빴지만 신스케도 잘 한 게 없어요. 신스케는 벌로 소학에서 친구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다섯 번 필사해 오세요.”
“저 소학은 이미…….”
“압니다.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건 공부가 아니라고 했지요.”
“……네.”
신스케의 목소리가 푹 잠겼다. 신스케는 긴토키와 관련된 일만 아니면 결코 야단맞는 법이 없었다. 그러므로 야단을 맞는다는 상황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존경하는 선생님이 화를 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이만하면 꽤 보람찬 하루였다. 긴토키는 옆을 보며 내심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올 벌을 기다렸다.
“그리고 긴토키. 신스케에게 샤미센 연주법을 배우세요.”
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긴토키가 눈이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싫어요!”
“누가 벌을 좋아서 받습니까.”
단호한 말투에 긴토키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신스케를 괴롭히며 느꼈던 즐거움에 재라도 끼얹어진 기분이 들었지만, 선생님의 말은 들어야 한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이니 잘 따라야 한다. 긴토키는 머리를 숙였다.
“…….”
“대답이 안 들리는데.”
“네.”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였다. 해야 한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것이 하고 싶은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요시다 쇼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자기 행동을 반성해보세요. 아, 그리고-”
이제 겨우 해가 떠서 주위가 조금 어둑어둑하기는 했지만 새가 울고 아침이슬이 예쁘게 풀잎 위에 앉아있는 좋은 아침이었다. 요시다 쇼요의 학당을 겸한 작은 집의 정원에도 목가적인 아침이 와야 했지만, 목가는 고사하고 폭력적인 아침이 도래한 정원 구석에서 먼지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씨발! 너 때문에 이게 뭐야. 먼지도 졸라 많아요 거미들은 다 이 동네 정원에만 줄을 치냐? 야 왜 대답이 없어? 청소하니까 좋냐? 넌 아침잠도 없지? 아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앞으로 사흘 동안 아침에 정원 청소를 하게 된 긴토키가 빗자루로 먼지를 일으키며 툴툴거리거나 말거나 다카스기는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마당 구석의 낙엽을 조심스럽게 쓸고 있었다. 긴토키가 이번엔 무슨 소리를 해서 속을 긁어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카스기가 입을 열었다.
“이거 다 하고 가르쳐줄테니까 손이나 씻고 와.”
“뭘 가르쳐?”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셨잖아.”
뭘 가르치겠다는 건지는 말하지 않고, 다카스기는 부루퉁한 얼굴로 입을 뗐다. 긴토키는 잠시 멍한 얼굴로 다카스기를 바라보다, 간신히 입을 뗐다.
“너 나한테 그걸 그렇게 가르치고 싶었냐? 그런 거야?”
“새끼야 집어쳐. 누가 너 따위 가르치고 싶은 줄 아냐?”
다카스기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다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긴토키를 향해 손짓을 했다. 까닥거리는 손가락을 따라 가까이 가자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코가 부딪히기 직전까지 가자 다카스기가 양손으로 긴토키의 어깨를 짚고 이마를 마주대고, 긴토키의 눈을 보며 미소하며 속삭였다.
“선생님이 뭘 싫어하시는지 생각해봐라 꼴통.”
“…….”
“알았으면 얼른 하고 손 씻고 먼지 털어.”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의 신성함이 찬란히 빛을 발했다. 긴토키는 얌전히 마당을 쓸고 손을 씻었다. 아침해가 조금씩 밝아오는지 주위 풍경이 점점 제 색을 띠기 시작할 무렵 다카스기가 꾸러미 두 개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일단 이거.”
다카스기는 보자기를 풀어 샤미센 한 대를 꺼냈다.
“연습용으로 하나 얻어 왔어. 일단 잡아 봐라.”
“어……이렇게?”
“야, 그렇게 잡으면 안 돼!”
샤미센을 목검 잡듯, 그것도 현이 손바닥 쪽으로 가게 꽈악 움켜쥔 긴토키를 보고 다카스기가 소리를 질렀다. 긴토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받지 말고 땅에 놓으리?”
악기를 땅에 떨어뜨릴 듯 손가락을 하나 하나 펴는 긴토키를 보고 다카스기도 얼굴을 찌푸렸다.
“맘대로 하던가. 대신 깨지면 네가 새로 사는 거다?”
“악기 따위 얼마나 한다고?”
다카스기는 조용히 가격을 일러주었고 긴토키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다카스기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다카스기가 샤미센 잡는 법을 가르치느라 자세를 잡고 시범을 보이는 동안 긴토키는 다카스기보다 좀 더 음흉한 웃음을 웃었다.
“……부서지면 자기 악기 망가진 거보다 더 많이 화낸단 거네?”
“뭐라고 했냐?”
“아니 아무 것도. 어 왼손은 어떻게 하라고?”
“잘 좀 보라니까, 오른손으로 몸체 잡고 왼손으로 목 잡고!”
“오른손으로 몸, 왼손으로 목…….”
“응, 나 하는 거 보고 하면……히익!”
샤미센을 잡고 있던 다카스기는 긴토키가 샤미센은 바닥에 던져두고 다카스기의 뒤로 다가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손에 들린 샤미센 때문에 허리를 감은 오른손을 떼어 낼 수가 없었다.
“부수면 안 된다면서, 좀 잘 잡고 있어 봐.”
대답하는 목소리에 의욕이라곤 개미 다리만큼도 없는 주제에 목덜미를 더듬는 손길 하나는 집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척추를 타고 스멀스멀 기분나쁜 느낌이 올라왔다. 다카스기는 긴토키를 떼어 내려고 몸을 비틀어봤으나 이미 긴토키에게 제압당하다시피한 후라 방어가 별 소용이 없었다. 겨우 샤미센을 놓고 오른손을 떼어내려 했을 때는 이미 왼손이 목덜미를 쓸더니 옷깃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오호라 이렇게 잡으면 되는 거냐.”
“야 이 새끼야 어딜 만져!”
“아니 목 잡으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긴토키의 손이 목 밑으로 내려갔다. 이걸 어떻게 떼내고 어떻게 패대기를 치면 좋을지 궁리하는 다카스기의 귀에 엉뚱한 소리가 들렸다.
“당근이 좋댄다.”
“뭐?”
“먹고 가슴 좀 키워. 이렇게 판판해서 어디 쓰겠냐.”
“…….”
가슴팍을 주물럭거리며 긴토키가 말했다.
“난 볼륨 있는 몸매가 좋은데, 암만 빈유가 스테이터스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잖아. 내가 앞으로 종종 주물러……커헉!”
다카스기가 긴토키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이 새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예뻐해 줘도 지랄이냐!”
둘이 치고 받고 싸워대는 것을 말려준 사람은 늘 제일 먼저 와서 교실 정리를 맡아 하는, 좀 과하게 모범적이고 고지식한 게 죄라면 죄인 가엾은 반장 카츠라였다. 그러나 카츠라도 긴토키가 다카스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결국 첫날은 악기를 잡고, 현을 조율하는 법을 다 가르치지도 못한 채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리고 혼조시(本調子)-기본음계를 그렇게 부른다고 하자 긴토키는 정말 쓸데 없이 이름 같은 거나 지어서 외울 걸 늘린다고 투덜댔다-를 가르치는 데 이틀이 걸렸다. 정확한 위치를 짚어 소리를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현을 짚는 위치를 가르치는 데만 이틀이었다.
“야 이 미친 놈아! 그거 목도 아니라고 했잖아!”
“누가 신스케냐, 재수없으니까 성으로 불러 성!”
“그걸 뜯어봐야 아냐? 야 그럼 네놈이 뒤집어쓴 게 인두겁이 맞는지 콱 뜯어봐주랴?”
“야 이 새끼야 누가 현 뜯어서 낚시하라더냐!”
“어딜 더듬어!”
“눈알이 썩었냐 이 썩은 파마머리가.”
“이 미친 새끼가, 누가 샤미센을 두들기래?”
“선생님만 아니었어도 내가……아이씨!”
다카스기가 그 이틀 동안 긴토키에게 한 말이 주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틀 동안 긴토키는 이런 소리를 하고 다녔다.
“아니 딱 패기 좋길래. 근데 이번엔 즈라가 나빴다? 아니 내가 죽어도 팥고물 묻은 경단은 싫다고 그랬는데 굳이 그걸 사 와서 먹으라고 들이밀지 뭐겠어. 이건 패야 된다니까? 신스케 군 그렇게 생각 안 해?”
"빼기는, 나랑 즈라 말고 친구도 없는 주제에."
“고양이 가죽이라며? 고양이 맞나 뜯어보려고.”
“고기가 잘 잡힐 거 같아서.”
“너 손도 참 예쁘다?”
“어허 왜 이러시나. 이 형은 네 하얀 피부랑 가느다란 골격이랑 여자 같은 어깨가 취향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냐.”
“발상의 전환도 모르십니까 요녀석아. 이게 현악기라는 고정관념을 버려, 그러면 되잖아. 내가 타악기로 잘 써 줄테니까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왜, 그래서 화 났어? 그럼 때려치던가.”
말 끝에 항상 긴토키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였고 신스케는 그 즈음에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발도술을 시험해 보겠다며 목도를 뽑아대기 일쑤였다. 그리고 수업 둘째 날 긴토키한테 샤미센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후 뭔가 감을 잡았는지 종종 남아있던 카츠라가 둘 사이를 중재해줬다. 그리고 진중한 카츠라의 중재로 둘이 싸우는 일은 줄었다.
“즈라, 말리지 마, 저거 오늘 죽었어.”
“즈라 아니고 카츠라다!”
“얼씨구? 맘대로 해라? 계집애 주제에 나 때릴 힘은 있냐?”
“내가 저 새끼 못 패면 사람도 아니다, 즈라 놔!”
“즈라야 놔 줘라. 저 하얀 팔로 사람 때려봐야 솜방망이지, 앙탈도 아니고.”
“죽을래? 이거 놓고 제대로 한 판 떠 봐야 되겠냐?”
“이것들아, 즈라 아니고 카츠라라고!”
확실히 둘이 싸우는 일은 많이 줄었다. 그저 셋이서 싸웠을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방과후 예의 샤미센교습 시간이 다가오자 긴토키는 책장을 거꾸로 넘기고 붓을 들어 책상에 멋지게 한 획을 그었으며 그걸 지우다가 먹물도 엎었다. 그 모든 꼴을 수업에 집중하던 다카스기는 못 봤고 요즘 부쩍 긴토키와 다카스기에게 잔소리가 늘어가는 카츠라는 그 꼴을 봤는지 수업이 끝나자 걸레를 갖다주며 혀를 찼다.
“뭐 하는 거냐.”
“아-. 그냥.”
걸레로 무성의하게 책상을 문지르며 대꾸하는 긴토키를 보며 카츠라는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즈라.”
“즈라 아니고 카츠라다. 긴토키 너도 참 솔직하지 못하구나.”
“뭔 소리냐.”
“솔직하게 좋다고 하지 그러나.”
“아, 뭔 소리야!”
짜증을 내는 긴토키에게 카츠라는 진지하게 말했다.
“샤미센 말이다. 오죽 좋으면 그리 들떠 있나.”
“뭐? 너 미쳤냐.”
긴토키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대답을 이었다.
“……진짜 뭔 소리래. 아 몰라. 나 오늘도 연습하러 가야 되니까 나중에 이야기해라. 아 귀찮아.”
“좋아하는 걸로 보였는데?”
“즈라 같은 게 아주 즈라 같은 소리만 골라서 해요. 이게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짜증난다고 했잖아. 야, 나 간다. 저리 가.”
긴토키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딜 가나?”
“손 씻으러! 안 씻으면 그게 짜증낸단 말이야!”
희희낙락하며 달려가는 긴토키의 뒷모습을 보고 카츠라는 한숨을 쉬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네, 저 놈은. 대체 뭐가 저렇게 신나는 거지?”
일주일이나 되어서도 수업 내용은 별 차이가 없었다. 기본 음계를 연습하고 간단한 연습곡을 하나 쳐 보는 정도였다.
“제목이 뭐라고? 검은 머리? 너 지금 누구 약올리십니까?”
“원래 다 처음엔 이걸로 시작해. 그냥 해.”
다카스기는 완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근 며칠 긴토키 때문에 목에 핏대를 좀 세웠더니 목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긴토키는 얌전히 샤미센을 잡았다. 그리고 5초 후,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아 뭐! 그 소리나 이 소리나 똑같기만 한데.”
“조율 다시 하라니까. 전부 반의 반음씩 낮잖아.”
“그게 들리냐 미친놈.”
“어 잘 들린다. 더불어서 내 욕하는 소리도 잘 들리고.”
다카스기의 불만은 아무래도 긴토키의 보통 이하인 음감에 있는 것 같았다. 매일 음이 높네 낮네 아무리 설명을 해 봐야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긴토키를 보고 다카스기는 귀는 장식이냐고 화를 냈고 긴토키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걸 요구하는 네놈은 악마냐며 화를 냈다. 긴토키의 샤미센을 뺏아 든 다카스기가 현을 몇 번 튕겨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이건 멀쩡하게 조율이 되어 있는데.”
“것 봐 괜찮다니까.”
“결론 났네. 너 또 내가 짚으란 데 안 짚고 엉뚱한 데 짚었네.”
“쳇, 야 그게 말이 쉽지. 일 주일 안에 이만큼 했으면 잘 한 겁니다?”
“웃기지 마. 일단 이거 잡아봐라.”
긴토키가 다시 샤미센을 잡자 다카스기가 긴토키의 뒤로 다가와 긴토키의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야 너 다시 손 짚어봐.”
“……어?”
“잡아 보라고. 내가 교정해 줄게. 일단 왼손 짚고, 얘가 왜 이리 굼떠?”
평소 같으면 한 마디쯤 느물댔을 긴토키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카스기는 긴토키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옮겼다.
“알겠냐 이 꼴통아. 이 위치를 잡으라고 이 위치를. 아 들어보면 모르냐.”
“그건 모르겠는데……. 너 좋은 냄새 난다.”
“뭐?”
긴토키가 보라는 현은 안 보고 고개를 돌려서 다카스기의 옆얼굴을 바로 옆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미친 놈이 또 시작이네 하고 한 마디 퍼부어주려던 다카스기의 꿈은 성사되지 못했다. 긴토키는 오른손으로 다카스기의 어깨를 당겼다.
그리고 잠시 후, 괴상한 소음이 발생했다. 악기가 어디 세게 부딪히면 나는, 공명통에 뭐가 부딪혀 울리는 소리와 콰직 소리와 비명소리가 어우러진 소음이었다.
“샤, 샤미센으로 사람을 때리는 게 어딨냐?”
“……너, 너, 너!!”
샤미센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긴토키가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동안 다카스기는 두 손으로 샤미센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에이, 무슨 정조 뺏긴 처녀마냥 왜 그러냐. 그 입술 되게 비싸네.”
긴토키가 투덜대는 소리를 들은 다카스기는 분노와 경악에 찬 눈으로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좀 핥으면 닳냐?”
훗날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방아쇠를 당긴 것 같다고 긴토키는 회상한다. 그러나 그건 훗날의 일이고, 아무튼 긴토키는 샤미센을 바닥에 침착하게 내려놓고 일어서는 다카스기의 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것 봐, 별 거 아니라니까.”
“그러게.”
다카스기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그래 그래 신스케 군? 진정하고 이따 다시 해 보지 않을래?”
“응,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몰라. 너같은 꼴통 새끼한테 샤미센은 아깝지?”
그리고 다카스기의 눈이 번뜩였다.
“어, 어, 야 신스케, 잠깐만! 야!”
다카스기는 그야말로 전광속화와 같은 속도로 허리에 찬 목도를 뽑아 긴토키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방어를 한다고 했으나 그날 하늘은 다카스기의 편이었다. 긴토키의 손이 머리를 감싸는 것보다 다카스기의 발도(拔刀)가 더 빨랐다.
“죽어라 이 개새끼야!”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복날 개 잡는 처절한 비명이 온 서당에 쩌렁쩌렁 울렸다. 당연히 선생님이 뛰어오고 그때까지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던 카츠라가 함께 뛰어왔다.
“쪼그만 게 무슨 놈의 힘이 그렇게 세담.”
“신스케는 거합이 특기다. 속도라면 너보다 우위일 때가 많지. 몰랐나.”
“아 그거야 그렇지만……아, 아파!”
“상처가 나면 당연히 아프지.”
선생님께 실컷 야단을 맞고-다카스기는 긴토키가 샤미센 배우는 데 집중 안 하고 자꾸 자기를 괴롭힌다고만 했다. 그래서 긴토키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한참 벌을 서는 동안 목도로 맞은 머리에 난 혹에 약을 발라주겠다며 집에서 고약을 가지고 온 카츠라가 긴토키를 붙들었다.
“뭐 하는 짓이냐.”
“뭐가. 야, 살살 좀 발라.”
“살살 하고 있어. 신스케 말이다.”
“신스케 뭐.”
“가만 있어 봐라, 이제 여기만 바르면 끝난다……옳지. 머리는 하루 정도 감지 말거라.”
“쳇.”
“그런데 신스케한테 왜 그러나.”
“내가 뭐.”
“왜 자꾸 화를 돋구냐 그 말이다. 하지 말라는 것만 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만 하고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고 있잖아.”
약을 다 바른 카츠라가 주위를 정리하며 지나가듯 흘린 말을 들은 긴토키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카츠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즈라 너 둔한 놈 치곤 제법 예리하다?”
“즈라 아니라니까. 카츠라라고. 신스케 화내는 게 좋으냐?”
긴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지. 난 걔 화내는 얼굴이 제일 좋은데.”
“친우를 왜 화나게 만드나.”
“어떡하냐. 쟤는 화내고 주먹 휘두를 때가 제일 예쁜데”
긴토키는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뭘 자랑이라도 하듯 대답했다. 카츠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거였냐.”
“암, 그런 거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답하는 긴토키를 보고 카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다만……한 마디만 하마.”
“뭔데? 잘 되라는 응원 아니면 사절이다.”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수가 있다네.”
카츠라의 진지한 얼굴을 한참 진지하게 쳐다보던 긴토키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들고 히죽 웃으며 의욕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그때 일이고.”
“맘대로 하던가. 신스케가 화를 내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너나 신경 끄셔. 난 잘란다.”
카츠라가 짐을 챙겨 일어나자,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히죽히죽 웃으며 잠든 긴토키를 보며 카츠라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내 주위엔 왜 바보 밖에 없는 건지 원.”
까맣게 탄 재와 섞인 흙이 발에 밟혔다. 이 자리엔 분명히 키 작은 감나무가 있었는데. 감이 열리면 선생님이 감을 따 주시며 원숭이와 게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게 몇 년 전의 이야기였더라. 이제 이 집에 남은 것은 타다 남은 기둥과 대문 뿐이었다. 이제 다시는 신스케나 즈라와 어울려 싸운 죄로 선생님께 혼나지 못하리라. 긴토키는 주먹으로 눈가를 닦았다.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도 모자랐다. 손가락 끝이 따가운 걸 보니 아까 땅을 치고 긁을 때 상처가 났나보다, 고 그냥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긴토키가 샤미센을 배우기 시작한 지 3주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카스기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뒤늦게 달려온 카츠라가 긴토키와 다카스기를 끌어안았다. 그 때는 다들 눈물이 말라서,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고 퉁퉁 붓고 벌건 눈을 하고 꺽꺽거리며 울었다.
"아니 아니 턱순이 언니 그게 아니라니까. 샤미센은 그렇게 연주하는 거 아니라고!"
"아 진짜 춤도 못 추고 애교도 없는 파코 주제에 뭘 안다고 참견질이니! 그렇게 잘 알면 니가 해 봐라."
마드모아젤 사이고의 가게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나방 언니들의 미모보다는 어설픈 춤 실력과 연주 실력에 있는게 분명하다고 긴토키는 한숨을 푹푹 쉬며 투덜대곤 했고 카츠라는 그 말을 들으며 종종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 좀 이른 시간에 놀러 갔더니 아즈미가 혼자 샤미센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연주를 듣다 긴토키가 훈수를 두었고, 아즈미가 발끈했다.
"아 난 켤 줄 모르고! 아무튼 집게손가락을 위로 1cm만 옮겨봐 소리가 다를 거다."
"웃겨 진짜 파코 주제에......어, 얼레? 진짜 되네?"
긴토키의 훈수대로 현을 다시 잡자, 아까까지 끼익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던 샤미센이 맑은 소리를 냈다. 아즈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어머 파코, 어디서 샤미센을 배운 거야?"
"몰라, 켤 줄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어."
"뭐야~"
"모른다니까, 그런 거."
아즈미와 긴토키가 실랑이를 하는데, 카츠라가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즈라코, 어디 가?"
놀란 아즈미가 묻자 카츠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속 터지니 가서 자겠네. 긴토키, 당분간 네 얼굴을 보면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으니 서로 만나지 말지."
"어, 나도 어째 너 보면 속 터질 거 같으니까 당분간 보지 말자, 안녕-"
그리고 둘은 서로 얼굴도 안 보고 평온한 말투로 인사를 주고 받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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