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야 말로 죽은 남자 좋아하는 이 놈의 취향 좀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아주 거창하게 실패를 했지 뭡니까, 하하.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죽은 남자니까 제가 좋아한 거였어요.

록온은 다들 아시다시피 23화에서 죽었습니다. 눈 앞에 복수의 대상이 나타난 순간, 앞뒤 생각도 못 할만큼-저이가 저래뵈도 건담 마이스터들의 리더였고 덩치만 컸지 세상 어떻게 살지 난감한 꼬맹이들의 형님이자 유사가족이었거든요. 그런데 나름 10년간 만들어 온 자신을 버리고 죽은 겁니다. 그의 죽음을 기점으로 셀레스티얼 빙은 붕괴하기 시작했고(이건 록온이 죽어서 조직이 붕괴했다는 소리는 아니랍니다.) 그리고 건담 마이스터들은 나름대로 성장했습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히긴 했지만요.
어른인 척 한 주제에 거기서 허무하게 죽었죠. 그런데 죽을 수 밖에 없었어요. 앞으로도 살아 돌아올 리가 없죠. (살아돌아오면 제가 더블오를 끊을 겁니다.)
왜냐면 록온은 애초에 죽으려고 산 인생이자 작품의 완성을 위한 거름이라고 보거든요. :)

19화에서 세츠나에게 총을 겨누던 건 닐 디란디였습니다. 록온 스트라토스는 꼬맹이의 형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형님이 동생같이 예뻐하던 애한테 총을 겨눈 거예요. 저격수가 겨누는 총이니 의미가 각별하죠. 그런데 거기서 난데 없이 닐이 튀어나온 것 자체가 복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아이들이 록온 때문에 자라는 것을 보여주어 나중에 비극성을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그래요 기왕 죽이려면 한 건 하고 죽여야지.

그러니까 서셰스는 살아있었죠. 록온이 죽은 건 순전히 테러리스트로서 자신을 죽인 것밖에 안 된다고 봐요. 복수를 완료하고도 살아남았으면 록온은 그나마 자기에게 주어진 이름, 자리를 잃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복수를 결의한 순간부터 테러리스트였는데 닐이 테러리스트인 록온을 용서할 리 없죠. 더군다나 이미 그 자리에 건담 마이스터인 록온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로에게 인사를 하고 태양로를 돌려보낸 순간 그 사람은 테러로 가족을 잃고 살인자가 된 닐 디란디일 뿐. 닐 디란디가 치러야 할 죗값이라면 테러리스트니까 테러리스트답게 자기를 필요로하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 스스로 죽는 길밖에 없었을 거예요. 일종의 자살이죠. 닐은 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몰라요. 죽는 게 아쉽냐, 저 아이들을 버리고 가서 슬프고 복수 빼고 완수한 게 하나도 없으니 아쉽냐, 그럼 죽어라. 뭐 이런 거. (도대체 죽으면서 뭔 생각을 했을지가 참 궁금합니다. 복수를 시도한 것 만으로도 좋았냐, 이 열 네 살아! 하면서 목줄을 흔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서셰스가 죽으면 록온이 그간 건담 마이스터로, 애들 형님으로 살았던 과거를 다 버리고 죽은 충격이 감쇄될 텐데 작가가 그렇게 순할 리 없다고도 생각했고, 사실 서셰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세츠나 몫이잖아요. 과거를 정리하고 어른이 되어야지 소년. 록온이 서셰스를 죽일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예요. 저기서 죽으면 세츠나는 어떡합니까.
생각해 보면 록온은 세츠나가 자라기 위한 거름일지도 모릅니다. 형님의 허무한 생을 먹이삼아 세츠나는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츠나가 살아남아 자신이 지은 죗값도 치르고 과거도 정리하고 죽은 형의 그림자도 제 것으로 하든 떨치든 어떻게나마 정리하고, 제 나름대로 싸움에 대한 답도 찾고 나면 이 이야기는 배드엔딩이 아닌 거겠죠.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되건 말건. (감독이 배드엔딩 아니라고 그랬을 때 저는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빨간반지 님이 쓰신 글 중에 참 명언이 있었어요.록온 이 콜라만도 못한 놈. 동의합니다. 콜라사워보다 못한 놈이에요.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건데.
아니 저 록온 좋아해요, 정말로. 그런데 제가 좋아한다고 저 인간이 한 짓을 변명해 줄 생각은 별로 없거든요. 쟤는 죽으려고 산 인생인데요 뭘. 죽어서 작품의 완성도에 빛을 더했으니 사랑해 줄 수 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추신 : 죽은 남자를 위한 변명 2는 루저입니다. (저 사람 이름 뒤에 존칭 빼고 쓰긴 처음이에요. 무서워서 그런가.)

추추신 : 채널파이브에서 저는 서비스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죽어서 동인녀를 잡은 미인.

추추추신 : 제가 취향이 나쁘죠. 압니다. 저 여자 지금 뭐 하냐고 모니터 너머에서 혀를 차시는 분, 죄송해요. 저는 이래서 이영도를 좋아합니다. 잘 죽여요.

추추추추신 : 적고도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알렐루야 이야기를 안 해서 그런가; 사실 제가 지금 제정신은 아니거든요. 지적하실 점 있으면 답글달아 주세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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