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박 이일 치열하게 이어지던 전투가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머리가 가렵다는 것이었다. 손으로 긁었더니 벌건 가루가 묻어나왔다. 피가 굳어서 가려웠구나. 긴토키는 아무 생각 없이 바지에 손을 문질렀으나 손에 묻은 가루는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느 놈들 피길래 이렇게 말라서 엉겼을까. 자기 꼴이 어떨지야 안 봐도 뻔했다. 하얀 머리카락에 피가 군데군데 거멓게 엉겨붙어 얼룩덜룩하겠지. 게다가 옷에도 점점이 피얼룩이다. 신스케 녀석을 족쳐서 옷 색깔 좀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긴토키는 입밖으로 소리내어 투덜거렸다. 흰 옷이 빨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요녀석, 전쟁 중에 흰 옷은 무슨 흰 옷이야 내 옷 네가 빨아줄 것도 아니면서 쳇. 그러다 어릴 때 나비를 잡았더니 온 손에 나비의 날개 가루가 묻었던 것이 생각났다. 반짝거리는 가루가 조금이라도 많이 남아있도록 손을 위로 받쳐 들고 새침하니 잘 삐치던 신스케 녀석에게 달려가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어뜨렸던 기억이 따라오자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마침 저 쪽에서 귀병대라나 뭐라나, 녀석이 자기 목숨하고 비슷하게 아끼는 녀석들을 이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반짝거리는 더벅머리를 하고는 화를 내길래 그 가루 평생 안 지워진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울었었지, 아마? 그땐 내가 하는 거짓말을 다 믿었고, 나중에 그게 거짓말인 걸 알면 토라져서 난리를 쳤던 주제에 진지하기는 또 엄청나게 진지해서 도대체가 그놈이랑은 뭐 하나 맞는 게 없었지. 지금이라고 다를까마는. 생각하니 웃겨서 피식피식 웃고 있자니 어느새 그놈이 눈 앞에 다가와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폐허 한가운데, 피 묻은 옷과 머리에 칼 든 남자, 거기다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라니 기괴하기도 하겠지. “긴토키, 뭐 하나.” “오~ 신짱 잘 왔어.” “신짱 신짱 하지 말라고 했……야!” 긴토키는 신속무비한 동작으로 신스케의 머리를 휘적거렸다. 순식간에 전선에서 날뛰던 녀석 치곤 단정하게 붙어있던 머리카락이 사방 팔방으로 엉켰다. 뒤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귀병대 녀석들과 눈이 마주치자 상냥하게 웃어주니 금방 눈을 내리깐다. 게다가 신스케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뭐 하는 짓이냐.” 이놈이고 저놈이고 유머를 몰라요. 긴토키는 탄식했다. “감동의 표현 겸 추억의 재현.” “미친놈.” “미친놈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대명사예요 다카스기 군. 적어도 여기선 말이지. 그러니까 미친 놈 그러면 여기 있는 놈들이 전부 돌아본다? 그러니까 부를 땐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면 고맙겠어.” “네놈의 혀는 부상도 안 입냐. 한 며칠 푹 쉬는 꼴을 보고 싶다.” “응 그러게, 나도 한 번 보고 싶어.” “머리에 뭘 이렇게 묻혀놨어……남의 머리에 뭔 짓이냐.” 머리를 털며 정리하던 신스케가 손에 묻어나는 붉은 가루를 보고 투덜거렸다. “야, 그거 평생 안 지워진다.” “웃기네, 네놈 거짓말에 또 속을 거 같냐. 십 년 넘게 묵은 레퍼토리 지겹다 못해 썩겠다. 좀 바꿔라.” “어허, 형님 말씀을 안 믿네, 진짜야.” “형님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됐고, 즈라가 부른다. 일단 다음 작전 회의하재.” “네이네이.” 그래서 정작 신스케에게 왜 내 복장을 하얗게 만들어서 이렇게 피가 튀도록 만들었느냐는 원망은 끝까지 해 보지 못했다. 아마 튄 피가 하얀 바탕에 묻어난 것이 무섭게 보인다는 점이 중요했겠지. 사실은 흰 옷도 아니었다. 피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았지만 튀긴 피 때문에 그나마 다른 부분은 하얗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따라 머리에 묻은 핏자국은 금방 지워졌지만 머리를 긁다 손톱 밑에 엉긴 핏가루는 손을 씻어도 잘 빠지지 않았다. 농담이 진담 되겠네, 하고 잠깐 웃었다.
책더미 속에서 잠시 기분전환. 내 방학 시작하면 대출 한도까지 소설책만 빌려서 방에 틀어박혀 3일동안 나가지 않고 책을 읽어주지. 좀 재밌는 게 읽고 싶다고! 최근 읽은 것 중에 그나마 재미있는 소설은 돈키호테 뿐이었어! 그것도 과제하려고 읽었지. 그 전에 읽은 건 토마스 하디의 주드였다고! 인간이 어떻게 아무 나쁜 의도 없이 한 행동 때문에 저지경으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소설만 골라 쓸 수 있냐 이 앵스트 서커야! 그리고 그 전에 읽은 건 역시 과제용, 오만과 편견이었지 아 다아시 경의 츤데레질은 치유계였어...... 이러고 삽니다. 방학하면 소설만 읽을 겁니다 흥핏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