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중 10번, 미안합니다.
.......이런 거 올려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걸로 끝.......;;
......낼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아빠들 미워!"
라고 외치며 뛰쳐나가는 어린 딸의 뒷모습을 보며, 두 남자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막 입구에 막 들어서려던 남자는 천막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남자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 거야?"
"벌써 저럴 나이냐, 내 참."
천막 안에 있던 남자 라스는 질문을 회피했다.
"여섯 살이면 저러고 남을 나이야. 그건 그렇고 아빠들 미워-라니, 왜 나까지 밉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이야기 좀 해 주겠나?"
"......로탄."
"왜 그래? 나도 저 애 아빠잖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딸이 아빠들 미워! 라는데 이유 정도는 알아야지."
"말 많은 건 알겠는데, 그만 해라. 우울하다."
로탄과 라스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일의 발단은 우연히 유안이 마을 꼬마들의 놀림을 들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빠, 정말로 우리 엄마 맞아 죽었어?"
천막 안에서 내다 팔 약재를 다듬고 있던 라스는 천막 입구에 서서 씩씩거리고 있는 유안을 발견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그래?"
"저-기 마을 애들이 그랬어. 엄마 정말 맞아 죽었어?"
"유안."
라스는 손을 멈추고 딸을 쳐다보았다.
"남의 말에 신경쓰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 녀석들은 우리랑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아빠들은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 없잖아. 엄마 정말 맞아 죽었어?"
"아빠 지금 바빠."
"손만 바쁘잖아? 응, 정말 엄마 맞아 죽었어?"
"로탄한테 물어봐."
"로탄 아빠한테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뭐. 아빠아, 응?"
"그래서, 그 어린 것한테 조용히 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그렇지만-"
"라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번엔 네가 심했어. 아직 여섯 살이고 엄마가 보고 싶을 나이인데, 당연히 그런 게 궁금하겠지. 더군다나 미첼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야."
"애한테 그런 걸 어떻게 이야기하나!"
말수 적기로 유명한 라스는 아마 딸에게 제국의 역사와 부족의 역사가 얽히고 섥힌 그 복잡한 문제를 설명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리라고 로탄은 막연히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딸은 엄연한 부족민이었고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유안은 미첼 딸이잖아, 라스."
"우리도 미첼 남편이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미첼이 맞아 죽은 건 사실이지 않은가? 난 그런 거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 하고 싶지도 않아."
말 많기로 유명한 로탄도 그 순간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못 잊고 있군?"
"그걸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까스로 라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꼭 쥐고 말할 수 있었다.
"4년이야, 4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 때 죽은 사람은 우리 부족만 137명이고, 그 때 가족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몇 명인데? 당장 우리만 봐도 어떤가? 지금 남은 부족민이라곤 우리와 다른 가족 둘 뿐이잖은가. 이건 멸족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어. 미첼 이야기를 하면 우리 부족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라고? 로탄 넌 그럴 수 있냐?"
로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랬지. 아직도 끔찍한 기분이니까."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진정해라. 누군들 슬프지 않겠어. 지난 일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리고 누가 애한테 그런 어려운 이야기 해 주랬냐? 그것도 지금 그런 이야기를?"
"그럼 뭐라고 설명해주면 되냐?"
라스는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뭐- 일단은 달래줘야지.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만 이야기해 주면 돼. 어떻게 죽었냐고 물으면 싸우다 죽었다고 하면 되는 거고. 다 사실이잖아? 그리고 조금 더 커서 사람 말을 제대로 알아먹을 수 있는 나이 되면 설명해주자. 부족의 어두운 역사를 설명해 주는 건 언제 해도 늦지 않아. 어쩄거나 자기가 슬프다고 애한테 화풀이 하는 건 옳지 않아. 데리러 가자."
라스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로탄 너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나."
"음, 우리가 싸우면 유안이 걱정한다고. 어려도 눈치 하난 빠르잖아?"
"쳇, 그러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애 친아버진 너야."
라스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로탄은 피식 웃으며 친구이자 연적이며 동시에 가족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소리,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런 말 하지 마. 그 애는 우리 딸이야. 자- 가자. 딸 찾아와야지?"
두 아버지는 아이를 찾으러 천막 밖으로 나갔다.
유안이 있는 곳을 찾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그 아이는 혼자서 천막 뒤에 있는 우물가에 앉아서 땅이 기괴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혼자 중얼대며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안은 혼자 우물 가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유안?"
로탄이 먼저 아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 아빠?"
"뭐 그렸어?"
땅에는 기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의 형상-머리와 팔과 다리가 붙어있으므로 사람이라고 불러야겠지만, 로탄은 그것이 머리와 팔과 다리가 있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을 한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컸다. 작은 것은 큰 것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응, 이거 나고 이거 라스 아빠. 내가 미안합니다- 하는 거."
로탄은 유안을 멍하게 바라보았고 아이는 아빠가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로탄 아빠가 그랬잖아. 남이 나 때문에 슬퍼하면, 꼭 사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사과할거야."
".......아빠가 슬퍼하는 걸로 보였어?"
라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한참 후에 말했다. 유안은 고개를 위로 젖히고 라스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응, 조금."
"왜 그런지는 알아?"
"아니, 몰라. 그래도 슬픈 건 알아.그러니까 아빠, 미안. 앞으론 안 그럴게."
"유안-"
로탄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말수 적고 무뚝뚝하기 그지 없지만 사실은 섬세한 성격인 라스는 그만 어린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하지만 라스는 울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됐어, 사과는 무슨? 들어가자, 저녁 먹을 시간이야!"
솔직한 딸과 솔직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눈물 많은 아버지. 두 아버지는 양 쪽에서 딸의 손을 잡고 천막으로 갔다. 딸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둘이서 유안에게 엄마 이야기를 꼭 해 줘야겠다고 로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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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라고 해봐야, 음, 2003년 7월 정도로군요. 유안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올라오겠지요.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있답니다.
유안의 부족은 유목민이었습니다. 일처다부 풍습이 있지요. 뭐 지금은 없는 부족이지만요.
2004년 1월 16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