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중 46번, Moon입니다.
(More 기능을 안 쓰고 그냥 올려버렸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달을 키우고 싶을 때는, 어항에 맑은 물을 가득 담아라. 대야도 좋고 그릇도 좋다. 여튼 넓고 넉넉한 용기에 물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달빛이 좋은 밤, 창문을 열고 창가에 물을 담은 용기를 놓아 두자.
물 속에 달이 슥, 들어온다. 혹시 바람이 불어서 물이 찰랑대면 달도 흔들거리고, 한 잔 하다가 달을 만져보고 싶어서 물에 손을 담그면 달이 도망을 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어항에 담아 놓으면, 달을 사랑한 금붕어의 이야기-엘리너 파전이 쓴 동화로 결국 바다에서 달을 보면서 애태우던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달과 같이 빛나는 은색 물고기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 여튼 그런 것도 떠올릴 수 있다.
따지지 말자. 비록 술잔에 달 띄워 마시던 조상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거라도, 하늘에 구름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달이 어항 어디에 숨었는지 통 알 수 없어도, 그리고 그 달이 어느 틈에 어떻게 사라질지 몰라도.
사실 다들 알다시피 그렇게 잡은 달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니까.
한 번만 봐 달라, 는 것이다. 말하자면.
만약 정말로 달을 키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달에 나무를 한 그루 심어서 그 나무 옆에 집을 짓고 살았으면 한다. 어항에는 진짜 금붕어를 넣어서. 이제 달은 다 자랐으니까.'
저 이야기를 나에게 써 준 사람은 어항 하나를 나에게 남겨주고, 정말 달로 가 버렸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절구질을 한다는 동화는-반 정도는 사실이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라 해야 할지 지구문명의 한계라 해야 할지, 지구는 사람이 살기 너무 복잡한 별이 되었고 건물을 지어 올리고, 올리고, 땅을 파고 파고 해 봐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다. 있는 쌀을 아껴 먹어 봐야 언젠가는 쌀독 밑바닥이 보이는 것과 같은 자명한 이치. 그리고 사람이란 열여섯 평 집에 살다 스무 평 집에서 살 수는 있어도 스물 다섯 평 집에 살다 스무 평 집에 들어가면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닌 생물이다. 개발, 발전. 지구의 경제, 사회 구조는 멈추는 것, 방향을 트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계속 뭔가를 먹어치우면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돈을 들여 우주에 위성도시를 건설하고 달과 화성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발한 건 좋았는데, 달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돈을 아무리 들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50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꽤나 고생을 한 다음에 깨달았고, 지금 달은 유형소로 쓰이고 있다. 유형수들의 손으로 달은 점점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어갈 것이고 마지막 유형수가 손에서 공구를 놓는 날, 아마 달은 신위성이라 불리게 되겠지 먼 옛날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랬듯.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공기가 희박하고 물기가 없는 흙이 버석버석 발 밑에서 소리를 내는 별에서 죽겠지. 그 땅에 묻히겠지. 그 사람이 바라던 대로 나무를 심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온전히 자신만의 달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 변화가 무섭고 성장이 무섭지만 지금의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달을 키울 마음도 없었고, 지구에서 떠나기도 싫었다. 그래서 여기에 남았고, 필요도 없는 어항을 떠맡게 되었다.
어항은 여전히 창가에 있고, 물을 오래 담아 놓은 어항답게 구석에 물때가 끼어 있었다. 그 사람이 달로 가고 몇 달이 지났고 어항에 담겨 있던 물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나는 물을 더 붓지도 않았고 어항을 닦지도 않았다. 뿌옇게 흐린 어항에서 눈을 돌려 수면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이런 것만 남겨놓고 자기는 달로 가 버렸다.
어항 속에는 달도 있고 나도 있고, 그 사람도 있고 망상도, 아집도,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항을 들어 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물과 유리와 알루미늄 틀과, 세계 하나가 박살이 났다.
그 사람이 있는 달을 내 어항 속에서 키우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을 어떻게 함부로 키우겠는가. 그래서 나는 유리와 알루미늄 틀을 버리고 물을 닦으면서, 세계는 내버려두고 왔다. 나는 이대로 살다 지구에서 수명을 다하리라. 나는 어항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바다에서 달을 보면서 애태우는 금붕어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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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1일.
포르노 그래피티의 '달키우기'를 듣고 생각난 이야기......라기보다는 노래 가사 내 식으로 재구성하기;
진짜 누구 말마따나 보컬 목소리는 김수철이요, 음악은 취향에서 좀 벗어나 있지만, 가사 하나로 점수 따고 들어가는 애들이고 저는 가사에 심히 약하지요. 멜릿사만 봐도 그렇고.
이번에도 장르가 모호한 엽편이지요. 원래는 저것보다 밝은 이야기였는데 설거지하려고 보니 물이 안 나오잖아요. 결국 한-참 기다렸답니다. 수압이 약해서 물이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이야기가 저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어느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어느 집에서 샤워를 하고 어느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 우리 집은 물이 안 나와요 으윽;;
그나저나 오늘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