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세이야는 잘 몰라서 쓰느라 힘들었어요 크흑.
아무튼 흉측한 개그입니다; 보시고 난 뒤에 항의하셔도 전 몰라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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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세요, 홍보해 주세요. 부디, Please, お願い!
카페 6.9 카운터 앞에 B4 사이즈의 종이가 수북히 쌓였다. 그리고 그 앞에 이상한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동글동글한 글자체로 적힌 작은 팻말이었다.
"뭐야 이거. 포스터? .......금홍아 금홍아? 밴드 이름이 왜 이러냐?"
"아 어때서, 곱잖아요! 운율도 살아있구만."
수북히 쌓인 종이 중 한 장을 집어든 효석이 종이에 적힌 문구를 읽자 이상이 버럭 화를 냈다. 효석은 한숨을 푹 쉬고, 포스터를 끌어안고 쉿쉿거리는 이상은 무시한 다음, 바로 유정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 아가씨가 그 아가씨?"
"......부탁이니 아무 말씀 마시고 포스터 가져가세요. 안 가져가면 해경 형 낙심한단 말이에요."
유정은 먼 산을 쳐다보았다. 13장이 줄어서 남은 포스터는 487장.

"해경아, 이거 어디서 구했어?"
"인쇄소 아저씨한테 부탁했어요. 500장만 더 뽑아달라고."
"어떻게 알고 부탁했냐......돈은 네가 내고?"
"우연히요. 뭐 어때요, 예쁘잖아. 태원 형도 가져가요. 회사에도 붙이고, 응?"
"아니 그건 좀......"
이상은 단골들에게 포스터를 강제로 안기기 시작했다. 지용이 서른 장을 들고 갔고, 효석은 내가 이걸 왜 붙여야 되냐며 투덜거리며 들고 갔으면서 연구실 입구에 곱게 붙여주었는데 이상에게는 붙였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구본좌, 아니 본웅은 즐거워하며-그러나 포스터를 이상이 가져온 것 자체는 대놓고 짜증을 내며 포스터를 들고 가 미술과 연습실을 도배해놓고 후배들에게 공연 관람을 종용했다. 구본좌는 법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울고 불며 후배들은 표를 샀다.
그리고 공연 사흘 전.
"네 카페 6.9입니다. 네? 네.......아, 네. .......네, 죄송합니다. 철거할게요. 예, 다음엔 그러지 않게 주의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정이 심각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고, 커피를 손으로 쥐어짜던 이상을 노려보았다.
"해경이 형."
"왜, 왜 그래?"
유정의 등 뒤에서 묘한 오라와 기백이 피어오르는 것을 이상은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옥 바닥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포스터 말인데."
"포스터? 그게 왜?"
"금홍 씨한테 이야기했어? 형이 그거 홍보하는 거 알고 있냐고. 말하고 들고 온 거 맞아?"
"......아."
이상이 무릎을 쳤다.
"형은 도대체가!"
이 뒤는 여백이 없어 적지 않노라......가 아니고, 유정이 수라로 변신하는 장면을 묘사할 수 없어 적지 않는다. 아무튼 포스터는 모두 수거했다. 이상이. 울면서. 끗.

그리고 덤.
"다 수거한 거죠?"
"응, 철거된 거랑 지용이가 가져간 거 빼고."
"그러고 보니 지용이가 서른 장 들고 갔죠, 걔 왜 그렇게 많이 들고 갔대?"
"지용이도 금홍 씨 좋아하나?"
"세상 남자가 다 해경이 형 같은 줄 알아요? 적당히 하지?"
".........그래, 미안타."
"아니 다행이네."
유정에게 사흘 정도 은근히 볶이느라 진이 다 빠진 이상은 반박 한 마디 못 해보고 풀 죽은 목소리로 금방 사과했다. 그러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왜 서른 장이지?

"지용아, 너 그 포스터 다 어쨌냐?"
"아 그거요?"
학교 앞 자취생의 모범이라 할 만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비치된 브라운 슈거를 사탕처럼 먹고 있던 지용은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다.
"자취방이 우풍이 심해요. 그래서 창문 막는다고. 형 그거 종이가 두꺼워서 그런가, 문 막아놓으니까 바람도 안 들고 되게 따뜻해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이상은 지용을 한참 응시하다, 얼른 뒤돌아서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한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뛰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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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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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에는 노동권 같은 현대적인 인권 개념은 없다, 특히 황금들에겐.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없다. 설령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들었다 쳐도 그걸 자기들에게 적용할 용자는 없다. 현 교황 아이올로스에게 개길 용자도 없거니와 개기기 이전에 아이올로스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전 교황 시온부터 사이비교황 사가나 성역의 한 송이 꽃인 알데바란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만에 하나 간이 땡땡 붓다못해 푸아그라화한 어느 황금이 아이올로스에게 반항이라는 이름의 소심한 건의를 할 마음을 먹었다 쳐도, 성역에는 아이올리아가 있다. 그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아, 내 인생은 괜찮은 인생이었구나. 저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세인트의 귀감을 두고 내가 감히 교황께 그런 걸 요구할 마음을 먹다니 반성하자. 구체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나에겐 제자도 있고 시베리아의 벌판도 있지/나에겐 거해궁의 유령들이라도 있지/나에겐 이야기할 노사라도 계셨지/난 그래도 형한테 대들기나 했지 저놈은, 크흑- 아무튼 저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황금들은 오늘도 착취당한다. 그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것은 성역의 일부에서 아이올리아 효과라고 불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작 나머지 황금들이 짠한 눈으로 보거나 말거나 아이올리아는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누군가 아이올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고 힘들지, 불평해도 돼, 라고 말한다 쳐도 아이올리아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황금으로서 내 삶에 만족합니다. 라고 말할 거다. 사실 아이올리아는 만족이 뭔지 모른다. 평생에 한 번도 제대로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형이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라고 인정해 줬을 때 빼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불평이 뭔지, 불만이 뭔지, 회의가 뭔지 모른다. 특히 형에 관한 일이라면 더 그렇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이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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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올린 글 수정했습니다. 중국어와 싸우는 마스라오 님 힘내시라고 쓴 건데 힘이 나셨을까나;
제목이 저 지경인건 요새 보는 글이 죄다 저래서입니다 크흑.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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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디 언니 생일 리퀘입니다. 29일이지만 오늘 저녁엔 좀 할 일이 있어서 미리 써 올렸어요. 늦는 거 보단 낫겠다 싶어서. 아무튼 언니 올해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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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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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디 언니 리퀘, 꽃놀이 하는 T.A
1차 창작을 간만에 하려니 글이 안 나옵니다ㅠㅠ 요 근래 삶이 고달프신 우리 언니를 위해서.
그리고 밤에 꽃구경 가고 싶었는데 못 간 나를 위해서. 꽃은 밤에 보면 더 좋아요 흑흑.

아, 그리고 하루에 리퀘를 두 개 받은 이유. 양다리를 걸칠 땐 두 상대 모두에게 극진하게 해야 나중에 칼침을 안 맞는대요(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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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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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더러워서 슬픈 여인이여
언제나 버닝하며 말이 많구나
눈이 번쩍이는 너는
무척 죄 많은 족속이었나 보다
모니터 속의 연성을 들여다보며
머릿속 커플링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망상에
맛간 눈을 하고 마구 자판을 두드려댄다

원작 : 말 안 해도 아시겠지만 노천명의 <사슴>

일복이 터질 대로 터져 한 주에 이틀 밤을 새우며 지내시는 키사라 님께 선물입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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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라파엘의 고서점에 손님 따위는 안 든다. 뭐 가끔 양복에 선글라스 차림의 수상쩍은 남자가 왔다 가긴 하는데 책은 절대 안 사간다. 주위에선 저 사람 저래서 밥이나 먹고 사냐고들 수군대지만 기실 말이 고서점이지 자기가 좋아서 책 모으다 생긴 가게이니 아지라파엘은 이러나 저러나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게다가 크롤리가 오는 건 언제든 대환영이고.
이웃집에서 고서점 주인 총각인지 아저씬지 알고보니 호모였다더라고 수군거리고 있는 것 따위 아지라파엘의 오래 되어 어두운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가게도 아니고 아지라파엘의 사적 공간 안에 웬 남자 하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크롤리, 처음 뵙는 분인데 저 분은 어떤 악마이신가?
-여기 나 말고 악마가 누가 있단 건가, 엔젤.
-어라 그럼 저 분은 뉘신가?
-손님이겠지.
-가게 문 닫은지 좀 됐는데.
-.......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그 쪽을 노려보는 진귀한 장면임에도 박력도 기백도 요만큼도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캔버스에 수트라는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아 이런, 내가 방해했나요? 그럴 마음 없었는데? 하던 거 마저 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럼 전 이만.
하고 몸을 돌려 사라지려는 순간,
-이봐 이봐 이봐, 어딜 가?
크롤리가 잽싸게 헤드락을 걸고 아지라파엘이 뒤이어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잡게 크롤리, 어쨌건 몇 년 만의 손님이야!
-책 사러 온 거 아닌데요!!!
-알 게 뭔가. 손님은 잡아야지!
타디스가 잠시 돌아버리는 바람에 평행우주에 잘못 떨어진 닥터는 대충 통성명을 마친 다음, 천사와 악마의 티타임에 초대되어 종교적이며 길고 꽤나 소모적이기까지 한 종교논쟁을 몇 시간 들어주는 가엾은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까, 사운드 오브 뮤직이 뭐가 어떻느냔 말일세.
-자네도 싫어하잖나, 엔젤.
-그거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고, 처음 들어보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단 말이지.
-결국 많이 들으면 질린단 이야기잖나.
-하지만 크롤리, 신학적 견지에서 생각해 보세나. 따분한 곳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천국에 가려는 이유가 뭐겠나. 따분한 걸 상회하는 좋은 게 있기 때문 아니겠나.
-하긴 뭐.
-다음엔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도 같이 보러 가세. 천국에 온 기분일 거야.
-그거 졸립단 말을 바꾼 거 아닌가. 뭐 좋아. 표는 자네가 내나?
-대신 저녁은 자네가 내는 걸세, 늘 그렇듯.
-그러지 엔젤.
-저기요 죄송합니다만, 거기 두 분.
 -뭔가.
둘 중 좀 더 부르주아 티가 나게 생긴 검은 머리 쪽이 불퉁하게 답했다.
-저 슬슬 일어나고 싶은데요.
-티타임일세. 그 정도 예의는 갖춰야지.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900살이면 젊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인상을 팍 쓴 악마-라고 하던 사람 쪽이 닥터를 노려보았다.
-900 가지고 어디서 폼을 잡나,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 된단 말이지. 나와 엔젤이 자네 또래일 땐 좀 더 겸허했다네.
-이봐, 겸허함은 우리 쪽 덕목이라고.
-상관없잖은가.
천사라고 말했던 사람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재인지 먼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자 악마는 심플하게 말을 씹었다.
-새벽 두 신데요?
-차를 사랑하는 마음엔 시간 같은 거 없네. 그래서 말인데 엔젤.......

아, 네. 세상에 신이니 악마니 하는 게 정말 있다면 어떨까 생각은 해 봤지만 그 어떤 상상 속에도 이런 웃기는 존재는 등장한 적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두 분 무슨 사이십니까. 닥터는 너무 오래 잔에 남아 쓰고 차가워진 홍차를 후룩 들이켰다.

-그런데 자네 여긴 왜 왔나?
-그러게 말일세. 그러고보니 자네 대체 어디서 왔나?
-그러게요......

전에 오며 가며 신학 이야길 좀 들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신적 존재 앞에서 인간은 그저 겸허할 뿐. 어찌나 말들이 많은지, 천하의 이 닥터가 끼어들 틈이 없다니, 이건 일종의 기적이라고 봐도 좋을 터. 나중에 심심하면 14세기 파리 대학에라도 가서 신학에 대해 한 마디 하겠노라고 닥터는 결심했다. 에, 여러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닥터입니다. 말하건대 신이란, 놀랍고도 신비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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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님 리퀘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저기 던져놨더니 닥터가 말을 못 해요 이를 어째;;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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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에 루저 님이 떨어졌습니다. 청의 일족이 왜 성역엘 가냐 애초에 다른 세계잖아 그보다 어떻게 하면 거기 떨어질 수 있는데? 코스모도 없잖아? 등등 질문이 쏟아집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 마세요. 성역에 코스모가 있으면 여기엔 청의 일족의 비밀이 있고 비석안이 있습니다. 이거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GN입자보다 편합니다.
"와, 여기 신기하네."
처음 보는 곳에 갑자기 떨어졌는데 이상하지도 않은가봅니다. 하긴 재밌으면 장땡인 사람이죠. 겁도 없이 여기저기 마구 헤매고 있군요. 과학자의 탐구심입니까 아니면 루저 님이라 그런 겁니까. 앗 순식간에 주위가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바뀝니다. 화려무쌍한 인도풍 벽지를 보아하니 여기는 처녀궁이군요. 루저님은 벽을 보며 마구 즐거워하고 있는데 어디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는 누구냐? 다른 궁을 거치지 않고 이 처녀궁에 들어온 자가 있다니?"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봅니다. 그랬더니 웬 반짝거리는 갑옷을 걸친, 머리도 반짝이는 금발인 미남자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습니다. 찰랑이는 머릿결이 어쩐지 동생을 닮았네요. 루저 님은 금발 미남자 앞으로 다가가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 빠직 하고 힘줄이 돋아날 때까지요.
"오호. 그거 참 예쁘군요."
"어허, 이까지 오고도 이 비르고의 샤카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 자가 있다니. 게다가 아까 누구냐 묻지 않았느냐!"
부처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20년 살며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처음 봤어요.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데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되는 건 여신이신 아테나 한 분 뿐. 황금들은 저 잘난 맛에 살거나 인지부조화 상태거나 하여간 바쁘므로 다들 예외 신과 가장 가까운 이 샤카 님의 고마우신 말씀을 들었으면 엎드려 빌며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 아니겠어요. 세인트도 아닌 주제에 어디서 뻗댑니까 뻗대기를. 잇키가 뻗대면 귀엽기나 하지요. 저 인간은 보아하니 코스모도 모르는데 뭘 믿고 저리도 방자하게 굴까요. 게다가 어쩌면 이렇게 태평할까요. 저건 겁도 없나 봅니다.
"참 신기한 곳이로군요.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니. 연구가치가 있어요."
자신에게 관심을 잃은 듯 처녀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째 기분이 나쁩니다. 결국 부처님은 화가 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놈, 자기 이름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너 이놈! 내 얼굴이 곧 인도이며 진리이거늘 무릎을 꿇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주위가 부처님의 코스모로 가득찼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저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인간도 대충 알아먹었겠지요. 이해를 못 했더라도 대충 분위기 파악은 했겠지요. 건방진 인간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슨 말씀을, 제가 법이고 진리입니다."

부처님,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잘 됐어요......일 리가 있습니까.

"뭣이 어쩌고 어째! 오냐, 그 버릇을 고쳐주마! "
"왜 화를 냅니까, 감마포!"
코스모와 감마포가 격돌했습니다. 쿠궁! 배경음악은 뭐든 쿵쾅쿵쾅 거리는 게 좋겠어요. 마음에 드는 곡으로 골라 깔아주세요.

원래 주먹으로 대화해 본 남자들은 말이 통하는 친구가 되는 게 세상 소년 만화의 법칙이지만 둘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남의 말은 안 듣거든요. 뭐 아무튼 그 후, 아테나께 송구하옵게도 처녀궁이 부서졌다며 샤카는 조금 슬퍼했으나, 루저는 청의 일족 말고도 세상엔 신비로운 사람이 많다며 근성으로 성역에 눌러앉아 애꿎은 유니콘의 세인트를 잡아다가 생체실험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 시간, 하렘은 어쩐지 루저 형의 독기가 느껴진다며 부들부들 떨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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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실 분이 테이큰 님밖에 없을까봐 슬퍼하며 썼던 건데 이제 알아보실 분이 많아요 와아 기뻐라.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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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로 나누어 놓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낮,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Taken님과 Kisara 님과 잡담을 하던 중 T 모 님이 요런 걸 그리신 겁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에요.
 



그리고 옆에서 이걸 지켜보시던 K 모 님은 저를 구축하려고 달려드셨습니다. 아니 원래 사람이 오덕 모임을 하다 흥이 나면 연성을 하기 마련이고, 연성은 지 본성대로 달리기 마련 아닙니까.
그리고 나쁜 건 모 형제입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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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제자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카뮤가 나의 제자 효가여 어쩌구 하며 다시마 같은 눈물을 쫙쫙 뽑아낼 때부터 궁금했어요. 제가가 도대체 무얼까 하고요. 노사님도 제자가 귀엽다고 가끔 말씀하시고요.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가 뭔지 물어보기로 했어요.

"카뮤, 뭐 하나 묻고 싶다."
"오, 샤카. 뭐든 물어보게."
"제자란 무엇인가?"
"음, 제자란 말일세……."
평온하고 냉정침착한 얼굴로 앉아 있던 카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미역 줄기 같은 눈물을 엄청난 속도로 흩뿌렸어요.
"제자란! 샤카여, 제자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또 소중하며 보배로운 것일세. 알겠나? 성역에 아테나가 있으면 세상엔 제자가 있는 것이야! 나의 제자 효가로 말할 것 같으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영특하기는 또 얼마나 영특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안다네. 코스모는 또 얼마나 맑은지! 아, 효가. 굶지 않고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속옷은 하루 한 번 갈아입고 있는지, 동상 안 걸리게 매일 꼭꼭 손발은 씻고 있는지! 아, 나의 제자 효가여!!"
참고로 카뮤가 일 때문에 보병궁에 들어온 지 겨우 이틀째랍니다. 아무튼 부처님은 한 줄로 요약해서 기억했습니다.
-제자란 이쁘다.

"교황성하. 하나 여쭙겠습니다."
"샤카인가. 신에 가깝다는 그대도 물을 것이 다 있는가. 이 스타일엔 어떻게 왔고?"
"신에 가까운 저이니 교황께서 노구를 이끌고 올라오시는 이 곳에 못 올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백 하고도 삐- 세 교황 성하. 슬슬 열이 받습니다. 그 때 사가를 쥐어패고 바로 아이올로스에게 양위를 했으면 이런 꼴은 안 봐도 좋았을 거예요. 이것들을 믿느니 내가 해처먹고, 흠흠, 아니, 세상을 다스리고 만다는 갸륵한 결심이 화근이었습니다.
"……오냐, 물어보거라."
연륜으로 교황님은 화를 다스리셨어요. 역시 교황은 아무나 하면 안 되나봐요. 샤카는 태연히 자기 할 말을 했습니다.
"제자란 무엇이옵니까?"
"뭣이?"
"제자 말입니다. 카뮤 말로는 매우 예쁜 거라더군요."
"으흠, 제자란 말이다……."
가면 속 교황님의 눈이 음흉하게 반짝였어요. 기분이 나빠도 제자 이야기에 신명을 내지 않는 성투사는 없는 법입니다.
"만만한 장난감 같은 거지. 저도 성깔 좀 있다고 종종 속을 박-박 긁어대는 꼴이 참 귀엽다만 그래봐야 고작 므우 아니냐. 네가 나에게 대적하려느냐 한 마디면 상황 종료지. 샤카여, 제자란 그런 것이다. 잘 밟아주면 기어오르지 않고 자라는 게야."
과연 교황님이세요. 부처님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자는 밟기 좋다.

"노사님."
"오오 샤카 아니냐. 어쩐 일인고?"
오로봉에서 해바라기하는 노친네처럼, 흠흠. 아무튼 조용히 앉아계시는 마스터 요다, 아니아니, 노사님이 샤카의 전파를 수신하셨습니다.
"여쭙겠습니다. 제자란 무엇인지요."
"오호, 제자라. 너도 그럴 때가 되었느냐?"
"교황님 말씀으로 제자란 좋은 것이라 하옵니다."
"그래, 좋은 것이지."
노사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내 제자 시류는 참 좋은 아이지. 어떤 훈련을 시켜도 죽지 않고 잘 버티는 근성이 있느니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제자를 키우는 게 우리 선배들이 할 일이지. 샤카여, 성투사는 옳은 마음으로 의를 행해야 하느니. 의를 행하는 길에는 무릇 강인함이 따라아 할 터. 죽여도 죽지 않는 근성은 필수이니라."
샤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자는 죽여도 안 죽는다.

"그런 고로 너. 처녀좌를 계승해라."
"뭐야? 야, 너 뭐야? 눈도 안 뜬 게 어디서 사람 얼굴도 안 보고 하라 마라 떠들어. 내 동생 어딨어, 슌!"
피닉스의 잇키. 예쁘고 밟기 좋고 죽여도 안 죽는다. 세 가지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군요.

-----------------------
테이큰 님을 만나 떠들다 세인트 이야기가 나와 몇 가지 이야기했어요. 그 중 하나입니다.
이래서 부처님은 잇키를 좋아하시는 겁니다.

실은 이거 빌미로 키사라 님 마감을 좀 쪼아볼까 했는데 이미 다 쓰셨다네요, 쳇. 절호의 기회를 놓쳐 원통합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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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보통 대답은 네, 혹은 아니요, 혹은 그건 왜 묻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게 되어 있다. 그런 답이 나오게 되어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심현은 언제나 그렇듯 별 표정없이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한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대답했다. 드문 일이었다.
-그거 사는 데 그렇게 중요한 거야?
뜻밖의 답에 허를 찔린 월영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냥 회식 같은 것이다. 아니,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모여서 뭔가 먹는 걸 빼면 일반적인 회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같은 부분은 거의 없다. 그저 두어 달에 한 번,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나오는 돈에서 일정 금액을 떼서 모아두었다-돈 관리는 초로가 했다.-다들 모여 늘 먹는 밥 말고, 각자 즐기는 간식 같은 것을 먹는 자리. 몇 명씩 모여서 술을 한 두 잔 나눠 마시고 술을 못 마시는 멤버들, 미성년들이나 심현 같은 이들은 차를 마시는 평화로운 모임이 어쩌다 꽃이 곱게 잘 피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 밖으로 이어진 것이다. 강변에는 벚나무가 하나 가득, 산에 가면 진달래가 피었다지만 가로수에 대신 철쭉이 활짝 핀 그런 좋은 밤이었다. 마침 달까지 살짝 붉은 빛을 띤 보름달이라 매우 고왔다. 풍류가 별 거냐며 호기롭게 잔을 돌리는 월광 덕에 심현도 잔을 잡았다. 못 드시는 줄 알았어요, 아니 그냥 습관상 안 마시는 거야. 사실 오늘 처음 마시는 거다. 와, 그럼 우리 사제님 첫 음주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 잔잔한 웃음이 섞인 대화가 오고 갔다. 부드럽게 부풀어오른 맥주 거품이 달처럼 둥글었다. 입 속에서 구른 거품이 목으로 둥실둥실 넘어간다. 낯선 감촉에 눈을 크게 뜬 심현에게 초로가 웃으며 소주잔을 건넸다. 이거 예쁘지 않나요. 잔을 받아들어 살짝 마신 심현이 쓰고 맑고 달고 화끈하다고 표현하자 옆에 앉아있던 동풍이 미소지었다.
기분 좋게 적당히 마시고 살짝 취기가 올라 둥실둥실 몸이 땅에서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휘적휘적 걸어가 찬물로 씻고 말간 몸과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말은 안 해도 다들 그런 기분이었으리라.

-사제님, 화 나셨어요?
그런 중에 술김에 흘린 질문에 돌아온 답이 너무도 뜻밖이라 놀란 월영이 물었다.
-아니, 그냥 좀 취한 거 같은데.
짤막하게 대답하고 심현은 보일듯 말듯 미소지었다. 원래 저 세계 사람들은 얼굴 근육이 부족해서 표정 만드는 게 힘든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을 아소가 해 본 적 있을 만큼 표정이라 할 만한 것이 적은 얼굴이었다.
-그럼 사제님 정말 안 행복한 거예요? 심각한 얼굴로 묻는 아소의 머리를 심현이 살짝 쓰다듬었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취한 거 맞다. 사제님은 취하면 감정이 풍부해진다. 시열은 마음속에 메모했다.
-그거 아냐. 이다, 아니다로 나누기 복잡해서 그래.
오, 우리 사제님이 긴 이야기를 하실 모양이군. 초로가 웃으며 거들자 잠시 쑥스러운 듯 먼 데를 보고 있던 심현이 헛기침을 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니?
-안 돼요. 월영이 놀래키셨잖아요. 쟤 오늘 잠 못자면 사제님 책임.
월광이 반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그녀는 진지했다.
-그러네. 설명이 너무 작았나봐.
그럴 땐 적었구나, 인데요. 드물게 휘안이 그녀의 어눌한 한국어를 지적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들 조금씩 평소보다 정신을 풀어헤치고 있는 그런 밤이었다.
-뭣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그래, 내가 아직 월광이보다 어릴 때 이야긴데
다들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낮은 목소리가 마치 연설을 할 때처럼 독특한 발성으로 울렸다.
-소원을 이루는 꿈을 꾼 적이 있었지.
언제나 그렇듯 낯선 단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제가 되고 싶었어. 그걸 해야만 했고 또 그걸 하고 싶었거든. 정말로 사제가 되었지. 지금도 내 이름은 사제잖아?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중얼거리자 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되고 보니,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이 맞는데도 가끔 생각이 드는 거야. 이 모든 걸 다시 되돌린다면 좋을 텐데, 하고.
-사제 일이 싫으셨나요?
솔직한 어린아이의 화법이 이럴 땐 고마운 법이다. 이미 나이든 어른이라면 묻기 힘들 질문을 동풍이 대신 해 주었다. 그 사제는 웃었다.
-아니. 난 사제가 되고 싶었대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데? 음,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지. 그냥 차라리 계속 소원을 이루는 꿈을 꾸었으면 하고 바랐어.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 순간에도. 어쩌면 그 일을 하고 싶은 꿈을 꾸고, 그 일을 하게 되는 꿈을 꾸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닌가 하고.
아, 하고 휘안과 월광이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사제가 아니게 되었지.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은 금새 묻혔다. 대체 사제가 아니게 되는 건 무슨 뜻일까, 잠시 생각하던 월영은 이어지는 말에 머릿속에서 구르던 생각을 놓쳐버렸다.
-그 때 나는 불행하거나 행복하냐고 내게 물을 여유가 없었어. 여기에 와서 처음엔, 다들 그랬겠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을 배우고, 이름들을 새로 배우고, 새로운 생활습관을 익히고, 오늘처럼 처음 먹어보는 것들을 먹어보고. 이러느라 바빴어. 지금도 그러고 있잖니. 그 틈틈이 가끔 생각하는 거야. 나는 또 다시 소원을 이루는 꿈을 꾸게 되었구나, 하고.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열의 머리를 심현이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럼 또 다시 꾸게 될 꿈은 뭐냐고, 용기를 내어 물어볼 요량으로 동풍이 심현을 쳐다보자 그녀는 입에 손가락 하나를 댔다.
-진달래가 좋은데, 철쭉이라 아쉽다. 이 꽃 철쭉 맞지, 응, 그래. 내년엔 진달래 보러 가자.
-사제님 지금 얼렁뚱땅 말 넘겼죠! 아 진짜, 이럴 때만 치사하게, 어른들 진짜 치사해요!
월광이 칭얼거리듯 화를 내자 심현은 유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나 안 치사해. 그냥 부끄러워서 그래. 그럼 다음에 또 술 마시러 나와요. 왜 그래야 하는데. 웃음 섞인 대화가 한 차례 파도치고 아까 하던 말들은 말에 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심현은 혼자 생각했다. 행복하건 불행하건 여기가 내가 살아야 하는 세계고 여기서 새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러므로 그런 건 물어도 대답해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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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고파요. 누구 나랑 소주 두 병만 나눠마십시다. 한 병은 아저씨들 따르듯 꽉꽉 눌러 담으면 일곱 잔이니까 나눠 마시면 아쉽고 딱 한 병씩이 적당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저의 특기 중 하나는 어색한 자리에 가면 술 따위 마셔본 적도 없다는 듯 소주잔으로 입술만 적시면서 인상 쓰기, 술 못 마신다고 주장하기.......입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전 기분 좋은 날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나 마음 편한 데 아니면 술 못 마셔요.

아니 이런 단순한 데서 시작했는데 저 언니는 왜 또 츤데레질이래요 기분나쁘게.

한동안 패러디만 죽어라 써 댔더니 이런 것도 쓰고 싶네요. 결론은 술 고프단 거였는데 뭐죠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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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온통 어두운 청회색 세계였다. 아직 날 밝으려면 좀 남았나 하고 몸을 돌려 핸드폰을 여니 오전 여섯시가 좀 덜 되었다. 오늘은 날이 흐린가 하고 멀거니 핸드폰을 보고 있으려니 밝은 빛이 눈에 비쳤는지 자던 형우가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뒤틀었다. 평소엔 예민과 담을 쌓고 사는 놈이 잠 잘 때는 인기척에 예민하다. 얼른 핸드폰을 접었음에도 형우가 부시시 눈을 뜨고 신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몇 신데?
-이제 여섯 시.
-어, 여섯 시?
형우가 후닥닥 몸을 일으켰다. 이불 밖으로 빠져 나가 간밤에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걸치더니 얼른 밖으로 나갔다. 얼굴에 물이라도 축이러 가려는 게지. 신재가 바지를 꿰어 입고 이불 위에 주저앉아 티셔츠에 목을 밀어넣고 나서 눈을 들어 보니 형우는 아직도 문 안에 있었다. 문고리만 잡고 있었다. 문을 열며 복도를 슬쩍 살피는 모양이 꼭 죄 진 놈 같아 웃겼다. 신재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옆방 사는 놈 나가고 없다고 어제 안 카더나. 그냥 나가라.
-그래도.
-수상하게 생각할 놈 아무도 없거든? 남자 자취방에 남자가 와서 자는데 뭐 문젠데? 아줌마한테 허락도 받았잖아.
-어 뭐.
눈치만 슬슬 살피고 있는 꼴이 우습다 못해 짜증이 난 신재는 이불 밖으로 나가 아직도 문고리를 잡고 복도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형우의 등을 펵 소리가 나도록 걷어찼다.
-야, 아프잖아!
-아프라고 차지 아프지 말라고 차나?
등을 쓰다듬으며 형우가 불평을 하건 말건 신재는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 걸려있는 형우의 상의와 목도리를 팔에 걸고 방구석에 놓여있던 형우의 가방을 발로 차던졌다. 상의와 목도리는 형우의 등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 머리와 어깨 위에 얹혔다. 졸지에 옷을 뒤집어쓰게 된 형우가 뒤로 돌아 신재를 노려보았다.
-뭐고?
-씻고 나가라고.
-야, 밥은 먹여 보내라!
-웃기네. 가다 니 알아 사먹어라.
부당한 대우라도 받은 듯 항의하던 형우는 신재의 대꾸를 듣고 멀거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 묻었나?
-니 오늘은 또 뭐 땜에 카는데.
-뭘? 니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학교 간다더니. 얼른 가라.
-거 참.
옷을 입고 가방을 멘 형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간다. 나중에 보자.
뒤도 안 돌아보고 자취방을 빠져나가는 발소리와 대문을 여는 금속성 소리가 났다가 멎고 한참을 있다가 신재는 창문을 열고 이불을 퍽퍽 소리가 나게 털기 시작했다. 내가 미친 놈이지, 내가 정신이 나갔지 하는 추임새를 넣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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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정초에 썼던 얘들 둘 나오는 외전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려나. 아무튼 그겁니다. 올해는 꼭 다 쓰고야 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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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선 여자에게 잘 하라고 가르치셨고 그 결과 여성의 호의를 거절할 줄 모르는 아이로 자라서 코찔찔이 10대 시절에 누님들 손에 총각딱지는 떼이고 말았지만 그래도 남자한테까지 홀랑 먹힌 기억은 없었다. 이럴 땐 이불 돌돌 말고 누워서 훌쩍훌쩍 울어야 하나요 아니면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다리를 세워 앉은 자세로 무릎에 머리를 얹고 엉엉 울어야 하나요 아니 왜 전부 이불이야?
루시퍼는 왜 나는 감정이 부족해서 이럴 때 슬퍼하지도 않는걸까 하고 한탄하고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들었다간 멱살을 틀어쥐고 싶어지는 생각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 날 덮칠 마음을 먹은 거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나 해 주지, 몰랐잖아. 말도 안 하고 덮치는 게 어딨어. 같은 거 달린 놈하고 할 마음도 없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아니 뭐 싫은 건 아냐. 닥터는 예쁘고 키스도 참 잘 하고.......스톱, 내가 미쳤나. 그런데 왜 닥터가 내 침실을 습격한 거야? 왜 닥터가 공이야? 누가 봐도 내가 공 아니냐고.......역시 라일라 말이 맞아. 퍼플헤븐 그만 봐야겠다. 정서에 해로운가봐. 그런데 일단 덮치고 나면 끝이라니 그거 가르친 것도 라일라 너야? 심심하면 잠자리를 습격하곤 하는 부관의 이름부터 생각이 났다. 그래, 일단 덮치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는 게 남자라 이거지. 우리가 무슨 짐승이냐, 아니 이런 경우엔 덮치러 오는 쪽이 짐승 아냐? 게다가 뭐? 마음에 들면 일단 덮치고 보라니 우리 남자한테 인권은 없는 건가요? 그런 거예요?
-물론 그런 거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읽었는지 옆에 누워있던 살라딘이 대답을 했다.
-그치만 닥터도 남자잖아.
언제 깬 건지, 생각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인권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그러나 봉래인 군의관은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눈치없는 남자가 인권 같은 걸 찾으면 3대가 벌 받는답니다. 입 다물고 얌전히 잠이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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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월도 안 된 애도 아니고 어떻게 인간이 열 네 시간을 잘 수가 있을까요? 아무튼 자다가 요상한 꿈도 많이 꾸고 요상한 네타도 많이 생각나서 기억난 김에 하나 써 봅니다.
살라딘이 루시퍼드를 덮치러 가면 저 작품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BL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 저 삼천세계 좋아해요. BL 아니라는 사람들 많은데 BL 맞다고 생각해요. BL을 비웃는 BL이라 그렇지; 대놓고 BL을 비웃으면서도 그걸 인정하는 자세는 소중하죠. 사실 BL은 여성의 욕망의 결정체고,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는 거 사실 잘 못 봤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웃기긴 웃기잖아요.......저도 소비층이지만.

실은 이거 마감도피였습니다. 마감은 방금 끝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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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크 님 : 이제 제가 글 쓰면 다 더블오로 보이는 건가요. 하긴 제가 요새 더블오만 죽어라 파 댔죠? (쓴 거 손으로 꼽아보고 좀 놀랐어요. 게으른 제가 이렇게 써대다니!) 삼천세계랑 그 앞의 상신의 비도 카라완기 사가라도 좋아해요.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카라완기 사가라.) 삼천은 쓰다 보면 유쾌해서 좋아요.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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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힘 좀 써라. 박스가 뭐가 무거워?"
"야, 그럴 거면 네가 들어라!"
뭐 이런 계집애가 다 있나. 휘안은 책으로 꽉 찬 라면박스를 두 개째 옮기며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다. 정신줄이 본체와 접속을 해제할 때는 뚝, 소리가 납니다. 정말입니다.

"오빠-도와줄 거지?"
월광이가 음흉한-본인은 상큼하고 소녀답고 우아하다 주장하는-미소를 지으며 다가올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휘안은 경계경보를 발령시키고, 미간에 주름을 잡고 월광이를 노려보았다.
"뭘, 어떻게, 언제 도와줘야 되는지 말 안 하면 안 해 줘."
"와, 치사해! 당연히 그냥 도와줘야지! 오빠가 돼갖고 동생 부탁 하나 못 들어주냐?"
네가 날 언제 오빠로 대접이나 했었냐, 라는 말은 실체를 갖추지 못하고 사라졌다. 꺼내봐야 좋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게다가 빚도 있었고. 사실 자신은 빚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며칠 전, 월광이가 꼭 가게 문 닫고 먹겠다고 찍어놓은 호두파이를 아무 것도 모르고 팔아버린 후로 월광이가 얼마나 으르렁거리며 화를 냈는지. 장사한 것도 죄가 되나요. 휘안은 한숨을 쉬었다.
“왜, 싫어?”
“아, 아니……. 싫긴 누가 싫대. 뭐 하면 되는지 이야기 좀 해 보라구.”
월광이의 미소를 보며 휘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눈 딱 감고 하루만 이 몸을 희생하면 며칠은 편히 살 수 있을 거야.

……희생이 과하지 않나요, 이건?
월광이가 방에서 라면상자를 발로 차서 밀고 나오더니만 그 안에서 얇고 묘하게 이상한 기운이 풍기는 책을 꺼내며 한 권씩 비닐로 포장하라고 한 것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이고, 큰 우드락도 지고 양재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서-당연히 차비도 안 준다.- 책을 책상까지 운반하라는 것이다. 그 크기만 빌어먹게 큰 유리건물은 대체 뭐 하는 곳이냐. 그곳은 이상한 옷을 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심지어 한길가에서 머리 위로 토끼귀 처럼 올린 손을 파닥이며 춤을 추는 애들이 없나 동물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애들이 없나!-책상과 의자가 빽빽하게 놓여있고 택배상자가 즐비했다.
“야, 월광아……. 좀 받아는 주면 안 되냐?”
책상 위에 박스를 던지다시피 놓으려다 월광이의 눈초리에 다시 박스를 곱게 바닥에 내려놓으며 휘안이 투덜댔다.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팠다.
“그거 중요한 거야. 막 다루면 안 돼.”
아,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그리고 책 꺼내서 여기 진열하고, 여기 이거 세워서 판넬 좀 만들어.”
아까 자신이 날라온 큰 우드락판을 자르기까지 하란다. 이거 네 일 아니냐?
“넌 뭐 할 건데?”
“나? 팬시 붙이고 오빠가 세운 판넬 꾸며야지.”
아, 그래. 너 하월광이지. 내가 깜박 잊을 뻔 했구나. 월광이의 손에는 알록달록한 종이조각 코팅한 것들이 잔뜩 들려있었다.

장내는 북적였고, 월광이가 앉아있는 곳-부스라고 했다-에도 누군가가 들러 책이며 그 코팅종이를 사 갔다. 월광이는 손님들과 꺄악 **님 오랜만이에요 요즘은 뭐 버닝하세요 좋은 책 건지셨어요 등등 인사를 주고 받았고 그 동안 휘안이는 책을 건네고 돈을 받고 잔돈을 계산하고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체크도 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했다, 노는 거 빼고.
“재고 처리하러 왔어요. 그린 님은 뭐 하러 오셨어요?”
“책 사러 왔죠. 줄 안서려고 부스 냈어요. 더블오 파거든요, 요새.”
“와, 좋으시겠다. 메이저네요? 매진됐음 좋겠어요.”
그리고 월광이는 휘안이가 못 하는 그 유일한 일을 하고 있었다. 조금 화가 났다.

그 때.
“어! 월광아!”
“언니, 오빠!”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리고 월광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세상에. 아저씨? 사제님? ……월영이랑 시열이, 동풍이에……누가 아소를 여기 데려왔어?” 비명으로 시작한 말이 분노로 끝났다.
주위를 돌아보며 아시아에 이렇게 게이가 많았냐며 신기해 하는 초로와 이런 거 파는 건가요, 재미있겠는데 나도 해 볼까 하며 즐겁게 부스를 구경하는 심현과 파랗게 질린 동풍이와 노멀 에로본을 사고 얼굴 붉히는 월영이와 무심한 표정으로 월광의 부스로 척척 걸어와서 의자에 앉아 자는 시열이와 팬시 보고 신나하고 나도 동물 잠옷 입고 싶다고 조르는 아소를 보고 놀라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월광의 반응은 휘안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누가 여기 가르쳐줬어요? 뭐? 거실 컴퓨터에 약도가 남아있어? 아소 너 누가 언니 하던 거 훔쳐보래? 그리고 사제님 하긴 뭘 해요오! 그림 그리고 글쓰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심현은 나 그림도 글도 자신없는데 하며 동인계 진출의 꿈을 접었다.- 야 월영이 너 그거 사 가라 그냥! 보기만 하지 말고! 그리고 누가 동풍이 데리고 나가란 말야, 아저씨 여기 게이 페스티벌 아니라고요!”
살짝,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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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에서 썼습니다. 저건 진짜 삼돌이네요.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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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한테 리퀘를 받았습니다. 별로 안 깁니다 OTL 그리고 원래 이런 건 일 하면서 써야 제 맛입니다. 제 마음이 바빠서 좀 비약이 심합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성년 기준이 만 18세였나, 19세였나, 20세였나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떨 때는 20세고 또 어떨 때는 18세고 바뀌기도 자주 바뀌고 해서. 아무튼 내가 있던 곳에선 몇 살 부터 술을 마실 수 있었더라. 기억이 희미한 과거를 떠올리며 휘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얘 여기선 미성년인데 여기서 술 마시게 놔 둬도 되는 거냐. 문이야 닫았다고 해도 여기는 다과를 파는 가겐데.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혼자 술을 따라 안주도 없이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고 있는 월영이 보였다. 쟤 도대체 언제 부터 저기서 저러고 있었지. 사실 잔이라고 해 봐야 가게에서 에스프레소를 낼 때 쓰는 잔이고 그러니까 거기에 소주를 담아마시면 정말로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마신다. 술병을 잡고 잔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목을 살짝 구부려 잔에 다르는데 넘치지도 않는다. 조르륵, 잔을 한 절반쯤 채웠을까. 그렇게 흐르듯 술을 따라 역시 눈은 먼 데 두고 잔을 잡아 한 두 모금에 넘기고, 잠시 인상을 쓰고, 술병을 쳐다보다 다시 술을 따라 마시고. 자세히 보니 녹색 병은 소주병이 아니었다. 색은 녹색인데 병이 네모졌다.
저거 이름이 그러니까, 아, 그래. 고량주. 굉장히 독했지 아마?
그리고 빈 병이 하나, 술이 찬 병이 하나 있는 것을 본 휘안은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취하면 실수를 한 적도 있다는 거,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런 술을 왜 혼자 홀짝거리면서 마시고 있냐고, 안주도 없이, 같이 마실 사람도 없이.

-야, 월영아!
-왜, 오빠?
휘안이 부르자 월영이 탁자에 기댄 몸을 일으켜 사람을 쳐다본다. 목소리는 좀 잠겼지만 알코올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돌아다본 얼굴도 눈 빼고는 말짱하다. 그래, 본래 알코올은 증발하는 물질......이 아니고 월영이 쟤 정말 술 세구나. 아니아니 이것도 아니다. 휘안은 월영의 얼굴에서 위화감을 감지했다. 어떻게 독주를 마시고 눈 빼고는 다 말짱할 수 있냐고. 한 부분만 처져 있는 건 뭔가 잘못된 거다. 이건 그러니까, 놔둘 문제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휘안은 월영에게 다가갔다. 여차하면 술병을 뺏아버릴 생각을 하고.
-왜 그래.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음, 그냥.
-이제 그만 마시고 올라가. 가게는 내가 정리할테니까, 응?
휘안이 말하자 월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조금만 더 마시고 갈게. 잠시 나 좀 놔두면 안 될까?
-뭣 땜에 그래?
월영은 휘안의 얼굴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빈 그릇을 털어내듯 아무 것도 얹혀있지 않은 얼굴을 조금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별 거 아냐. 그냥 옛날 생각도 좀 나고 해서.
이계에서 온 멤버들 치고 옛날 생각이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거가 괴로운 것도 종류가 여러가지다. 자신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사람, 그 곳에서 살 수 없어서 이리로 온 사람, 그리고 월영이처럼 정말로 좋아하고 아끼던 것들을 모두 두고 와서 미련이 남고 회한이 남는 사람.
하필 가게에 남은 사람은 자기 뿐이었다. 고로 월영이를 말릴 사람도 자기 뿐이다. 휘안은 잔을 하나 가져와서 월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의자를 하나 빼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 오빠?
-먹어 없애면 줄어들테고, 그럼 가서 자겠지. 오빠도 한 잔 줘라.
월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휘안의 잔에 넘실넘실,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잘 안 먹던 독주를 마시고 잠든 휘안을 월영이 '오빠는 술이 약해서 큰일이야.'라며 방에 데려다줬다는 후일담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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