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었던 저는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저기, 세츠나가 어린애입맛이잖아요? 핫도그나 먹고. 그런데 사실 핫도그 먹는 거 보면 종교 버린 거 보여주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거든요. (규범에 맞게 도축된 것도 아니고 무려 돼지고기) 돼지고기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세츠나는 돼지 좋아할 거 같고. 그래서 인혁련 소속 모 반도국에 와서 짜장면 먹는 세츠나를 망상했습니다.
-이 음식은 이런 곳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다고 한다.
세츠나는 어디서 배웠는지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현지인으로 위장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아이였다.-면을 비비고 있었다. 검고 기름진 소스가 면에 묻어났다. 채소와 고기를 볶아넣은 듯, 돼지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리고 식초냄새가 진동하는, 얇게 썬 반달모양의 채소와 양파가 검은 소스와 함께 놓여있었다. 식전 전채인가 하고 입에 물어 봤다 후회했다. 식초에 절인 무였다. 그 옆에는 양념통이 세 개-무언지 확인해 볼 마음도 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붉은 장식을 한 가게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했다. 인혁련 전래의 글자라는 괴상한 문자가 벽에 붙어있었고-세츠나에게 묻자 입춘대길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건 또 무슨 뜻인데?- 벽에 붙은 긴 메뉴판은 네모지게 생긴 글씨로 읽을 수 없는 메뉴 이름이 주욱 적혀있었다.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며 사람을 데려오더니 마음대로 이상한 국수를 주문하고, 난 젓가락질 할 줄 모른단 말이다....... 젓가락을 들고 부들부들 거리던 라일은 항의했다.
-야, 하필 여기냐?
-여기가 어떤가. 면 불어터지니 어서 먹어라.
세츠나는 오늘도 근엄했다. 예, 어련하시겠어요. 그렇지만 난 얌전히 못 먹겠다 어쩔래. 라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빡빡 머리를 깎고, 세월의 변화에 뒤쳐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검은 색 국수를 먹고 있었다. 하나같이 짐보따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옆에선 희고 네모진 뭔가를 손에 들고 훌쩍이는 노모, 그 앞에선 화를 내며 국수 먹는 남자를 노려보는 여자........
-짜장면은 교도소 앞이 제일 맛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테러리스트가 교도소 앞에서 밥을 먹냐? 뭐 하는 짓인데? 전직 카탈론 멤버이자 현직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청년을 노려보았다.
-짜장면은 또 뭔데?
들은 척도 않고 세츠나는 하던 말만 계속했다.
-이 나라에선 300년전부터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짜장면이었다고 한다. 이 나라만의 독특한 국수지. 그래서 교도소 앞 짜장면집은 다 맛있다고 한다. 이 집은 대대로 교도소 앞에서 짜장면을 팔았다고 한다.어서 먹어라.
아, 그렇구나. 자신이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먹여주려는 배려였던 거다. 어느새 자신의 면을 다 비빈 세츠나는 언제 봐도 대인배다운 근엄한 얼굴로 라일의 그릇을 당겨와 면을 비벼주었다. 야, 그거 내 거........하던 라일은 입을 꾹 다물고 세츠나의 손만 쳐다보았다,주위를 둘러보니 면을 비벼주는 쪽은 모두 형이거나 아버지거나, 혹은 애인이었고 면을 비비는 상대를 보며 어쩜 잘 비비기도 하지 하며 감탄하는 쪽은 어린 동생이거나 아이거나 뭐 그랬다는 건 넘어가자.
세츠나가 열심히 비벼준 국수는, 짭짤하고 달고 기름졌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맛이었다. 남기지 말고 먹으라는 세츠나의 말을 들으며 라일은 뭔가 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뭐 어떠랴. 눈 앞의 청년이 보여주는 무뚝뚝한 배려는 기꺼웠다.
잠시후 젖소마냥 검은 얼룩을 온 얼굴에 묻히고 라일이 귀함하자마자 베다는 풋, 웃음소리만 남기고 접속을 종료했다는 건 비밀이고. 얼룩을 지우겠다고 허둥대는 라일의 얼굴에 묻은 것을 세츠나가 입으로 닦아준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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