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제 23번 쌍둥이입니다.
파푸와 관련 글이라서 뱀딸기, 로 분류했습니다. (카테고리 이름이 저런 식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전투가 또 한 차례 끝났다. 이번에도 살아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허기와 피곤과 혐오감과 그리움과 배덕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 상태로 집으로 돌아간다. 본부로 돌아가는 비행정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깬 하렘이 제복 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을 보고, 옆에서 졸고 있던 고참단원이 말을 붙인다.
-가족사진인가?
-그렇수다~ 딱히 볼 게 있어야 말이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겪고 난 후의 심적 공황을 달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가 가족 사진을 보는 것인데, 평소의 하렘은 가족 사진을 보느니 술과 깊은 관계를 맺는 쪽을 더 좋아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개 가족사진을 보는 것을 들키면 꽤 쑥스러워 하곤 한다. 총수가 한 번 바뀌었는데도 아직 살아서 격전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고참단원은 그냥 한 번 씩 웃어주고는 하렘이 보고 있는 사진에 관심을 표한다.
-총수님과.....이 사람은?
-본부 연구소에 있는 루저 박사. 작은 형이라우.
-형제가 넷이나 되나? 좋구만. 어릴 때 꽤 시끌벅적했겠어.
-뭐 그렇죠.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다들 가족사진을 보면서 뭔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라는 것도 아는 고참은 열심히 사진을 구경한다.
-이 사람은 누군가?
-아, 서비스? 내 동생. 어때요?
-자네랑 꽤 닮았는데.
-나랑 닮아요? 농담 마쇼. 얘가 내 어디를 닮았다고?
쌍둥이 동생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마다 정말 쌍둥이가 맞냐고 물어서 조금 슬펐던 어린 시절을 보낸 하렘은 자신과 서비스가 닮았다고 말하는 그 고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고참은 꽤 진지하게 사진에 찍힌 두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여기, 눈초리가 닮았잖아. 분위기는 좀 많이 다르지만.
-성격이 아주 딴판이라구요.
-그건 그래 보이네. 하지만 이 쪽도 보기만큼 얌전하기만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꽤 격렬한 성격이지 않나?
-으음, 하긴 샌님은 아닌 건 분명하죠.
잘못해서 서비스의 성격을 건드렸다가 험한 꼴도 몇 번 당했던 하렘이다. 생각하면 꽤 무서웠던 일도 있다. 물론 어릴 때의 일이고 지금이야 별로 무섭진 않지만.
-동생은 뭘 하나?
-사관학교 다녀요.
-나이가 어릴텐데?
-쌍둥이. 그런 것 치곤 안 닮았지요?
하지만 고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아니, 꽤나 닮았대도.
-어디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눈초리가 닮았다니까. 그리고 뭐라 집어 말하기가 어려운데, 여기 말이야-
말하면서 사진을 가리킨다,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자신과 동생이 있다.
-이렇게 둘이 서 있는 걸 보면 그렇구나~ 싶은 게 있어. 실은 아까 처음에 봤을떄 부터 아주 친한 형제간이 아닌가 생각했거든.
-정말로 그렇게 보이는 거요?
-그럼, 난 농담 같은 거 안 해.
-흥, 이 자식이 나랑 자기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꽤나 실망할걸요.
사진을 제복 가슴주머니에 대충 갈무리해 넣으면서 하렘은 미소지었다. 하렘과 서너 차례 같은 전투에 참가한 고참은 방금 그 얼굴이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편안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휴가를 받자. 사관학교에 들러서 서비스를 만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라도 하자. 서비스도 휴가를 받을 수 있으면 같이 낚시를 하거나 어디 놀러가는 것도 괜찮겠지. 형들이랑 동생이랑 같이 저녁도 먹고, 밤에는 팔에 난 아주 조그만 상처자국이라도 보여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해주자. 다들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면 기뻐하겠지, 그리고......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하렘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에 어린 서비스와 자신이 나와서 또 사소한 걸로 치고 받고 싸우는 걸 큰 형이 한탄하면서 뜯어말리고, 작은 형은 옆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는 장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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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와 DEDO 본에 실린 형제의 어린 시절 단편을 보고 떠오른 망상입니다. 하렘이 가족사진 같은 걸 저렇게 들고 다닐 리는 없겠지만 열여섯 먹은 하렘이라면, 한 번쯤은 사진을 들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