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이 뜬금없는 전개를 이해할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극장판에서 그 엔딩까지 가기까지 뭔 일이 났는지 설명해 주면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지요. 전 관대하답니다.
아니면 극장판에서 완벽하게 정리를 하던가요.
허무하고 허무합니다. 내려가서 책이나 읽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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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이런 엔딩에 익숙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밍이 이짓을 한 두번 했어야 말이죠. 아는 분은 아실 '가자, 미카즈키'사건이나 진짜 뒷골 때리는 라스트 보스가 나왔던 파푸와나 기타등등. 어지간한 엔딩은 다 봐줄 수 있어요. 정말입니다. 저 코드기어스 엔딩도 납득했어요. 마크로스도 아밍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아밍의 역작 탬버린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 엔딩을 모르면 말을 말아요.
그런데 더블오에서 이렇게 힘을 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납득을 못 하겠어요.
확실히 군부는 정상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군인이죠. 결혼 같은 평화적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미스터 무(...) 아니 아무튼 그레이엄이 정상적인 인간이 된 것만 봐도 그렇고 책임자가 일본식으로 책임지고 배도 갈랐고. 그것만 해도 저 세계는 굉장히 많은 왜곡을 해결했다고 봅니다. 아자디스탄도 평화롭고요.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희망이 생긴 게 어딥니까. 애들이 총을 안 들고 웃고 있어요! 세츠나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입니다. 세츠나는 자기 같은 아이들이 안 생기는 세상을 바랐잖아요.
알렐루야도 변호를 듣고 나니 납득이 가고요. 걔 1기에서 마약밭 불태웠잖아요. 이제 본인이 화전민이 되어 보고 그 틈에서 살아 보면 자기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묘비에서 인사하는 거, 라일의 각오를 보여주는 방법이죠. 무덤 좋잖아요. 지구에서 잠든 아뉴 하며 형 무덤에 성묘 온 라일이며.
세계 도처에 널린 이노베이터? 이제 그 짓 안 하고 잘 살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어요.
깔끔하게 정리 잘 했습니다. 맞아요. 1기 1화에서 이오리아 영감의 뭣 같은 선언이 나오던 그 자리에서 세계정부 출범 선언이 나왔습니다. 저 그 장면 의미깊게 봤어요.
다만 제가 어제 막 짜증을 내면서 메신저에서 이를 간 것은.......
제가 더블오에서 아밍식 뒤통수맞기를 당할 줄 몰라서 그랬습니다. 저 정말 찡한 마음으로 봤단 말이에요 5시 15분까지. 그런데 제가 납득할 만한 게 없었던 거예요. 도대체 이거 어떻게 정리한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1기에서 스스로 파괴한 세상을 2기에서 재구축했으니 이제 죄값을 치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얘가 또 무력근절하겠다면서 함에 타고 있는 거예요 근엄하게. 거기서부터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런 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해요. 싸움이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상징이고 그래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저거 원점은 아니죠. 원점일 리 없어요. 인류는 무력개입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독재를 경험했고, 신인류 개조계획을 경험했습니다. 한 번 뭔가 겪어보고 돌아간 과거가 절대로 원점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감독도 그 이야길 하고 싶었을 거예요. 싸움 없는 세계는 있을 수 없다고. 마지막에 근엄하게 서서 톨레미를 지휘하는 포즈이던 세츠나가 들은 답이 그것이겠죠.
지금 생각하면, 글로 정리하면 마음에 드는 건 참 많은데 그래도 허무했어요. 대체 뭘 본 건가 싶고. 이거 탈덕하란 신의 계시인가 싶고.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래서 끝나고 나니까 허무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폭이라고도 부르죠.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랬죠.
한 마디로 기대치에 못 미쳤다 이겁니다. 이제 제가 어제 느꼈던 게 뭔지 좀 알겠네요. 가지스파게티를 만들었는데 가지가 없을 때 느꼈던 그 기분 같기도 하고 나한테 작업 걸던 인간이 양다리 걸쳤을 때 느꼈던 감정 같기도 하고. 이거 세츠나가 정의의 편이란 말이냐 쿠오오 욕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니까 말이에요. 이 불친절한 인간들.
그래도 그 허무한 정리는 좀, 지금도 좀 많이, 그래요.
하룻밤 자고 나니까 마음정리가 되었습니다. 충공깽이나 현시창 같은 건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생각해도 참 관대한 여자인 거 같습니다.
게다가 성불할 좋을 기회가 생겨서 기쁘네요. 이제 깔끔하게 회지 하나 내고 더블오에 대해 할 말을 모두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저의 더블오 버닝은 이제 슬슬 끝을 낼 때가 되었어요. 잘 불탔으니 잘 완결짓고 싶었는데 그 점 기대에 못 미쳐서 아쉬웠나 봅니다.
물론 록온 스트라토스 이야기는 정말로 훌륭히 완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납득이 가니까 더 황당한 거예요. 캐릭터만 파려고 한 거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냥 그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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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간이 지난 지금,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았지. 음. 하면서 납득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쪽팔림에 몸부림치다 혼자 이런 증상을 겪는 거 아닌 거 알고 안심했습니다.
탈덕은 면했으니 이거 다행인지 불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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