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대에서 가늘게 피어나온 연기는 잠시 허공을 맴돌다 흩어지듯 사라졌다. 조명이라고는 방 구석에서 연기를 내며 피어오르고 있는 초 한 자루 밖에 없어서 공중에 피어오른 연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연기가 흩어져 사라져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남는 법. 아편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들이마신 연기를 공중으로 훅 내뿜는 순간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진 코를 자극했다.
자신은 분명 긴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입에 담뱃대를 물고 있었을 텐데 몸이 어디에 기대어 있다는 감각이 없었다. 여기서 이것을 피운지 얼마나 되었을지. 몇 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며칠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아편을 물고 있노라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을 때마저 있다. 아프던 왼쪽 눈에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별 느낌이 없는 것으로 봐서 시간이 꽤 지나긴 한 것 같다. 눈이 며칠째 계속 욱신거렸다. 긴토키와 즈라를 한 번에 보느라 눈이 무리를 했나보다고 농담을 했더니 반사이 놈이 혀를 찼더랬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피우긴 피웠던가. 확인차 혀끝으로 입에 물린 것을 살짝 핥아보았다. 손톱처럼 둥글게 휜 것을 따라 익숙하게 혀를 움직이자 입 속의 담뱃대 물부리가 경련했다. 이것이 살과 체온을 가진 뭔가가 되어 입 안을 헤집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몇 종류의 연기가 뒤섞인 방 안은 어두운데다 뿌옇기까지 했다. 나른한 대로 몸을 쿠션에 묻자, 비단천이 가는 손가락을 뻗어 팔과 목을 쓰다듬었다. 오싹하도록 부드러운 것이 몸을 쓸고 지나간다. 퍼져나가는 달콤한 향기를 따라 몸 주위를 떠다니는 열락감이 드러난 살갗에 엉겨붙었다. 눈을 감자 빨간 꽃 같은 것들이 하나씩 피어나다 점점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흘러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
어두운 굴 속에서, 널부러진 시체 위에 몸을 눕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제까지 이 빠진 칼을 들고 막부군에게 쫓기며 천인들과 중과부적인 싸움을 계속하던 놈들이었고 방금 전까지 자기 위에서 울며 신음하던 놈들이 이불이나 요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닥에 퍼져 있었다. 벌건 바닥이 구겨진 이불 같아서 밟기 꺼림칙했다. 왜 온통 빨갛지. 어느새 양귀비가 피처럼 벌겋게 피어있었다. 아, 아까 눈 앞을 지나갔던 꽃들이 저거로구나. 그런데 아까란 건 도대체 언제지. 나는 조금 전까지 백야차와 싸워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였더라. 아, 이젠 그마저 모르겠다. 그러나 백야차가 화를 냈던 건 알겠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암, 있고 말고. 그게 필요하다고 전우이자 부하이자 동지가 부탁하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내가 좋고 저 놈들이 좋다는데 뭐가 어떻다고. 너도 똑같은 걸 요구했잖아. 그랬더니 백야차의 눈이 달군 쇠처럼 벌개졌다. 왜 화를 냈을까. 지금까지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이란 건 도대체 뭐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즈라와 긴토키가 나한테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얼마전 이야긴데, 그 배에서 그놈들이 뛰어내리는 것도 봤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과거란 게 돌아서서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면 갈 수 있는 그런 데였나?
백야차가 저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다. 발치에 낙엽처럼 떨어진 손목이며 눈이며 귀며 머리 같은 것들이 구르고 있었고 꼭 수풀 사이로 걸어가듯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으로 가볍게 그것들을 밟고 있었다. 낙엽 부서지는 바스락 소리 대신 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지 마라. 아니, 그래도 돼. 아니, 그러지 마.
문이 열리자 강한 빛이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문 밖에서 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꽃인가, 구름인가, 아니면 언젠가 보았던 썩어서 흙인형처럼 푸슬푸슬 부서지던 시체인가. 세상이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내가 도는 게 아니야. 나는 바로 서 있는데 세상이 돌고 있지. 그 세상에 맞추려면 나도 돌아야 해. 상반신을 일으켜 눈 앞에서 부유하는 하얀 것에 시선을 맞췄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하얀 것은 얼굴과 드러난 손목과 손 뿐이었고 그것은 마치 해골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해골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어둠 속에 푹 잠긴 긴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신. 뭐 하고 있나."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카츠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자신을 발견한 건 그 뒤집어진 세상의 잔해 속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고 손을 짚었을 때, 따뜻한 뭔가가 잡혀서 놀라고 난 후이다. 카츠라가 푹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카츠라의 부름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 같았다.
"꿈을 좀 꿨지."
머뭇대던 손이 금방 등을 감쌌다.
"애냐."
"애는 이런 거 안 피운다, 바보야."
"바보는 누가 바보인지 원."
어깨를 감싼 팔이, 등을 두드리는 손이 따뜻했다. 아직 약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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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신스케 따위.
자신은 분명 긴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입에 담뱃대를 물고 있었을 텐데 몸이 어디에 기대어 있다는 감각이 없었다. 여기서 이것을 피운지 얼마나 되었을지. 몇 시간이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며칠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아편을 물고 있노라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을 때마저 있다. 아프던 왼쪽 눈에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별 느낌이 없는 것으로 봐서 시간이 꽤 지나긴 한 것 같다. 눈이 며칠째 계속 욱신거렸다. 긴토키와 즈라를 한 번에 보느라 눈이 무리를 했나보다고 농담을 했더니 반사이 놈이 혀를 찼더랬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피우긴 피웠던가. 확인차 혀끝으로 입에 물린 것을 살짝 핥아보았다. 손톱처럼 둥글게 휜 것을 따라 익숙하게 혀를 움직이자 입 속의 담뱃대 물부리가 경련했다. 이것이 살과 체온을 가진 뭔가가 되어 입 안을 헤집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몇 종류의 연기가 뒤섞인 방 안은 어두운데다 뿌옇기까지 했다. 나른한 대로 몸을 쿠션에 묻자, 비단천이 가는 손가락을 뻗어 팔과 목을 쓰다듬었다. 오싹하도록 부드러운 것이 몸을 쓸고 지나간다. 퍼져나가는 달콤한 향기를 따라 몸 주위를 떠다니는 열락감이 드러난 살갗에 엉겨붙었다. 눈을 감자 빨간 꽃 같은 것들이 하나씩 피어나다 점점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흘러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
어두운 굴 속에서, 널부러진 시체 위에 몸을 눕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제까지 이 빠진 칼을 들고 막부군에게 쫓기며 천인들과 중과부적인 싸움을 계속하던 놈들이었고 방금 전까지 자기 위에서 울며 신음하던 놈들이 이불이나 요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닥에 퍼져 있었다. 벌건 바닥이 구겨진 이불 같아서 밟기 꺼림칙했다. 왜 온통 빨갛지. 어느새 양귀비가 피처럼 벌겋게 피어있었다. 아, 아까 눈 앞을 지나갔던 꽃들이 저거로구나. 그런데 아까란 건 도대체 언제지. 나는 조금 전까지 백야차와 싸워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였더라. 아, 이젠 그마저 모르겠다. 그러나 백야차가 화를 냈던 건 알겠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암, 있고 말고. 그게 필요하다고 전우이자 부하이자 동지가 부탁하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내가 좋고 저 놈들이 좋다는데 뭐가 어떻다고. 너도 똑같은 걸 요구했잖아. 그랬더니 백야차의 눈이 달군 쇠처럼 벌개졌다. 왜 화를 냈을까. 지금까지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이란 건 도대체 뭐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즈라와 긴토키가 나한테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얼마전 이야긴데, 그 배에서 그놈들이 뛰어내리는 것도 봤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과거란 게 돌아서서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면 갈 수 있는 그런 데였나?
백야차가 저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다. 발치에 낙엽처럼 떨어진 손목이며 눈이며 귀며 머리 같은 것들이 구르고 있었고 꼭 수풀 사이로 걸어가듯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으로 가볍게 그것들을 밟고 있었다. 낙엽 부서지는 바스락 소리 대신 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지 마라. 아니, 그래도 돼. 아니, 그러지 마.
문이 열리자 강한 빛이 쏟아져서 눈이 부셨다. 문 밖에서 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꽃인가, 구름인가, 아니면 언젠가 보았던 썩어서 흙인형처럼 푸슬푸슬 부서지던 시체인가. 세상이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내가 도는 게 아니야. 나는 바로 서 있는데 세상이 돌고 있지. 그 세상에 맞추려면 나도 돌아야 해. 상반신을 일으켜 눈 앞에서 부유하는 하얀 것에 시선을 맞췄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하얀 것은 얼굴과 드러난 손목과 손 뿐이었고 그것은 마치 해골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해골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어둠 속에 푹 잠긴 긴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신. 뭐 하고 있나."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카츠라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자신을 발견한 건 그 뒤집어진 세상의 잔해 속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고 손을 짚었을 때, 따뜻한 뭔가가 잡혀서 놀라고 난 후이다. 카츠라가 푹 잠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카츠라의 부름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 같았다.
"꿈을 좀 꿨지."
머뭇대던 손이 금방 등을 감쌌다.
"애냐."
"애는 이런 거 안 피운다, 바보야."
"바보는 누가 바보인지 원."
어깨를 감싼 팔이, 등을 두드리는 손이 따뜻했다. 아직 약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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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신스케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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