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더블오 25화를 다시 봤습니다.
저 처음에 봤을 떄 전반 15분은 정말 숨도 못 쉬고 지켜봤거든요. 다시 봐도 두근거리던데요, 리본즈와 세츠나의 접전. 아버지 죽이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인이 될 수 없는 법이죠. 전 이 작품을 성장물로서도 상당히 즐겁게 봤거든요. 지금까지 믿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 태어나는 거- 그거 제법 오래된 소년성장물의 도식 아닙니까.
게다가 하필 엑시아. 드라마CD에서 그랬잖아요. 건담을 구축하는 건담 엑시아. 쿠로다가 이런 걸 일부러 흘렸을 리가 없죠. 새삼 그 악랄함에 치를 떨며, 참 즐겁게 봤습니다. 엑시아가 자신의 신이었던 오건담의 목을 뚫는 장면 진짜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퍼스트건담을 보고 있는 입장에선 다시 보니까 30년만에 건담 탄 소감이 어떠시오 아무로,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티에리아는 인간도 이노베이드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신의 어미오리인 베다가 되었으니 얼마나 잘 성장했습니까. 1기의 티에리아가 남고생 같다는 소리가 괜한 게 아니었어요. 세상을 눈 아래에 깔고 보는 거, 오만한 10대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세상 무섭다는 말을 이해하는 고등학생 봤습니까.) 그런 거대한 에고, 거기에 걸맞는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결벽증, 결국 어리니까 그런 거죠. 멘토를 잘 만났어요. 멘토가 충격요법을 좀 과하게 시전하시긴 했지만. 록온이 보는 눈이 있었죠. 쟤가 원래 자질이 괜찮은 앤데 어려서 걸핏하면 버럭대는 걸 알아본 걸지도. 남고생 시절을 거쳐 이제 티에리아도 진짜 어른이 된거죠. 무려 육신을 바꿔서.
딱 정-반-합 구도지 않나요? 난 인간이 아니야- 나는 인간이야- 나는 베다요 우주요(...) 아니 이건 농담이고요;
저는 더블오에서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게 사지는 조용히 잘 살게 될 거라는 점이었어요. 끝내 그 미친놈들 집단에 투신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전 절대 사지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지가 무기를 잡고 일어나는 순간이 저 동네에 망조가 드는 순간입니다. 실제로 자기 행복이 무너지려는 순간에는 무기를 들었고요. (더블오라이저) 민간인이 손에 짱돌이랑 소주병으로 만든 화염병 드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우리 일본인 아니고 한국인이잖아요. 우리는 저거 보고 고개 끄덕거릴 수 있어요. 민간인이 손에 무기 든 비극적인 역사가 없는 나라 아니잖아요.
우리와 같은 민간인 사지 크로스로드가, 주위에 무관심하고 조금 비겁하기도 한 소시민이 세상에 짱돌(치고는 좀 사이즈가 크죠?)을 들고 달려드는 인간들을 이해하는 순간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모순은 있지만, 그들을 인정해 주었어요. 긍정이 아니고 인정.
그런 일을 겪고도 끝끝내 사지는 소시민으로 남아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런 장면을 보여준 것 만으로도 저한텐 의의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다성성이 마음에 들어요. 역시 21세기라 그런가. 다성성이란 게 한 작품 내에 여러 가지 목소리가 등장한다는 건데, 당장 주인공인 세츠나의 목소리가 정의가 아니잖아요. 세츠나의 방법일 뿐. 이 작품은 마리나의 목소리도 사지의 목소리도 동등하게 다루고 있어요. 14화부터 농담으로라도 마리나를 거지공주라고는 부를 수 없었거든요. 공기히로인이라고도 못 부르겠고. 마리나의 노래는 그냥저냥 지나가는 노래가 아니었잖아요. 그녀가 다시 아자디스탄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그녀가 끝끝내 싸우지 않고도 싸움을 하는 방식이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끝까지 자기 의지 관철시키는 거 보통 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마지막에 굉장히 시원스러운 얼굴로 웃는 걸 보니 이 분도 전장을 구르면서 많이 성장하셨구나 싶고- 애초에 어른이긴 했지만요.
그래서 마리나의 편지는 인상깊었습니다. 세츠나가 1기 마지막에서 편지했잖아요. 세상 왜 이렇냐고. 거기에 대한 답이 2기 마지막에 나오는 것도 꽤나. 서로 이해하고 있지만 가는 길은 다르다는 것까지도. 저 분은 진짜 히로인이 맞아요. 이 작품의 여자주인공이니까.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다성성이 드러난 작품은 참 오랜만이에요.
록온즈는.......됐어요. 그냥 동인지나 쓸래요. 라일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서 죽은 게 닐인데 동생이란 놈은 형 뒤를 고대로 이었어요. 와 록온 스트라토스가 된 라일이 기체에 총 박아넣고 쏘는 장면에선 이 놈이 그 라일 맞나 싶더라니까요; 그래봐야 라일 디란디지만 뭐. 형의 뒤를 잇는 게 저 놈이 어른이 되는 방식이라니 뭡니까 이거, 형님이 빨치산하다 죽으니까 다니던 대학에서 삐라 만들고 운동하다가 화끈하게 방향전환해서 지리산에 짱박힌 동생? 무서우니까 그만 좀 하라고 그래요.
굳이 추가하자면 닐 디란디 당장 와서 꿇어라 누나한테 열 대만 맞자. 이 정도? 이 작품 부제는 록온스트라토스傳입니다. 히로인 소리도 괜한 게 아니에요. 세츠나의 이야기 다음으로 미친 듯 공을 들였잖아요 주인공도 아닌 애들을;
근데 진짜 알렐루야 어쩔 겁니까. 이러니까 어디 가서 건담 스루라는 소리를 듣죠! 2기 와서 떡밥의 희생양이 된 듯한 저 할렐루야를 어쩝니까. 알렐루야로 할 이야기가 저 정도가 아니었을텐데 분명히!
그리고 전, 알렐루야는 아직 속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리랑 하는 여행은 일종의 순례? 저 애는 인생이 속죄겠죠. 마리가 이름 참 잘 지었어요......하지만 속죄한다는 게 손 씻는 거랑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 분명히 돌아옵니다. 다른 데서 속죄할 수 없어요 쟤는.
그리고 그레이엄. ......저 사람의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할텐데, 어쩜 저렇게 그 중요함이 무색할만큼 스루하고 넘어가 버릴 수 있는 겁니까 너무했어요. 기존체제의 수호자였다가 확 나락에 떨어진 후의 이야기도 제대로 해 줘야!!!
사실 엔딩 보면서 뿜었던 거 쿠로다한테 살짝 미안해질 정도로 재미있게 잘 봤어요. 제가 마음에 들어했던 부분은 잘 남아있었고요. (사지나 마리나나.) 1년간 참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완급 조절 실패, 라고 해야 할까, 캐릭터를 다 풀어먹지 못해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했다 다 보여주지 못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스루한 건 지금도 많이 아쉽습니다. 잘 할 수 있는 아이가 기대에 못 미칠 때 이런 기분이 들겠죠. 어쨌건 애니에서 시작한 건 애니에서 끝을 내 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알았어 그래 노벨라이즈 보면 될 거 아니냐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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