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가.....는 결국 거의 못 써먹었습니다만; 아무튼 셋이 나와서 떠들고 한 놈은 잡니다.
요새 하도 서로 피폐한 긴토키랑 신스케만 건드렸더니 제가 피폐해져서 안 되겠습니다. 좀 평온한 걸 써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도 치유계를 쓰고 싶다니까요. 아무도 안 믿겠지만.
시험 치시기 전에 올리려고 노력했어요. 시험 끝나고 보시려나.
잘 치고 돌아오세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3차 치실 땐 정말 지도안을 연성하겠습니다.
마드무아젤 사이고의 가게는 의외로 양이활동에 자주 이용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맨정신으로는 무서워서 들여다보기 힘든 곳인데다 특이한 성적취향과 양이활동을 연결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 타이틀이 붙는 순간 다른 모든 개성은 표백되고 성적 소수자라는 부분만 확대되고 과장되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인양 보이기 마련이다. 양이지사도 오카마도 이 사회의 음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니 당연히 연대할 수 있는 거고 그들 중에서 교집합이 나올 수도 있는 건데 소수자들의 저항에 대해 뭘 모르는 놈들이라고 가게의 나방들-본인들은 아가씨들이라고 불러달랬다-이 비웃곤 했다. 어쨌건 이 가게에 들르는 단골들조차, 심지어 이 가게를 접선장소로 이용하는 양이지사들 중 일부조차 사이고 토쿠모리가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양이지사라는 생각도 못 하고 이 가게에서 가끔 춤을 추며 만담을 하는 미인이 지금도 이름을 날리는 양이지사라는 생각도 못 한다. 맹점이란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며 카츠라는 눈가와 입가에 파운데이션이 밀리도록 호탕하게 웃어댔고 그의 휘하 양이지사들은 제발 곱게 입고 화장했으면 좀 곱게 있으라고, 그렇게 웃지 말라고 속으로만 외쳐댔다.
물론 마드무아젤 사이고가 과거 양이지사였으므로 이런 활동가들에게 관대한 덕도 있어서,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이곳을 접선장소나 연락처로 사용하는 양이지사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모든 접선장소는 그런 법이다. 어떻게든 연줄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게릴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사이고를 위해서 가끔 나와서 영업을 도와준다. 이 정도면 훌륭한 상부상조 아니겠는가.
“그래서, 밖에 진선조 애들이 바글바글 돌아다니는데 여기서 이러고 앉아서 춤이나 추고 있다고?”
“즈라 아니고 즈라코다. 긴토키 자네는 여기 웬일인가.”
“묻지 마. 말하기 싫다.”
“파코 쟤 파칭코 하다가 털려서 마담 언니한테 빚 졌대~ 빚 갚으러 몸으로 뛰는 거래~.”
옆에서 수염을 다듬고 있던 아가씨들이 깔깔 웃어댔다.
“치사하게 그걸 다 부냐!”
“불기는, 사실인걸~ 파코도 얼른 옷 입고 나와. 좀 있으면 영업 시작해.”
“있어 봐. 일단 면도부터 하고. 아, 깔끔하게 안 밀리네.”
요로즈야(万事屋)-말 그대로 뭐든지 하는 게 일이므로 뭐든지 시키면 하고, 뭐든지 중간 이상은 한다. 그게 프로의 자세라고 긴토키가 언젠가 주장했던 것이 기억나서 카츠라는 피식 웃었다.
“왜.”
“아니, 자네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반가워서 그랬네.”
“웬 헛소리야, 간지럽게. 즈라는 즈라답게 굴라고 좀.”
“즈라 아니고 즈라코라고 하지 않았나.”
“아이고 그러셔. 참 여러 가지 한다.”
“오늘따라 수상한 놈들이 많다?”
“그럴 리가. 평소보다 두셋 정도밖에 더 눈에 안 띄는데.”
서빙을 돕던 중 어쩐지 살기가 흉흉한 녀석들이 눈에 띄이는 게 신경쓰였던 긴토키가 카츠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자 카츠라는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 가게 평소 돌아가는 꼴을 알겠네. 그래서 아까 진선조 애들이 그렇게 많았던 건가.”
“자주 있는 일이네만. 오늘은 거물급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었네. 나도 들었지. 조금 걱정되는군.”
긴토키가 카츠라를 노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나.”
“너 또 그 새 달고 눈에 확 띄는 꼴로 나타난 거 아냐? 또 카메라라도 달고 온 거 아니냐?”
“사람을 뭘로 보나. 내가 양이활동만 몇 년인데.”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빈 자리를 찾아 이쪽으로 다가와 앉자 카츠라, 아니 즈라코가 얼른 다가갔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누가 손을 들고 이쪽을 불렀다.
“언니 주문 좀!”
“네에 손니임~.”
그쪽으로 가려면 카츠라가 주문을 받는 테이블로 지나가야 한다. 가까이 가다 보니 검은 옷깃 위의 얼굴이 굉장히 하얗다. 저런 얼굴을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꼭 누가 아플 때 얼굴이 저렇게 종잇장 부럽잖게 창백했는데 말이지. 그것도 그냥 종이도 아니고 서예할 때 쓰는 결 고운 화지 같은 색. 뭐냐 나님 지금 시 쓰니? 긴토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그 가게에선 드물게 하카마에 하오리까지 갖춰입은 손님의 얼굴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서 오세……다카스기?”
착각이 아니었나. 카츠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얼굴이 그러고보 니 놈의 얼굴이다. 저 놈은 변장 같은 것도 안 하고 참 당당하게 돌아다니네. 그게 문제가 아닌가. 카츠라가 흠칫 굳었고, 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카츠라가 굳는 것을 보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순식간에 가게 구석구석에서 살기를 담은 긴장감이 떠돌았다. 이상한 데 말려들었나. 탄식하며 무기로 쓸 만한 게 없을까 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있는데, 다카스기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
그러고 보니 인사에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카스기의 입꼬리가 경련하더니 결국 기묘하게 비틀리고 말았다. 웃지 않으려고 한참을 부들부들 떨던 다카스기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 쪽으로 눈을 뜬 거냐.”
“무슨 소리인가. 이것도 다 일이라네.”
“뭐야, 저건 긴토키 아냐?”
조심히 주문을 받으러 가려던 긴토키의 뒤통수에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따가웠다. 그것도 비웃는 시선일 게다. 돌아보면 안 된다, 그러면 저 놈이 분명히 날 보고 낄낄대고 웃을 거다……속으로야 온갖 생각이 다 나건 말건 주문을 받고 무사히 아닌 척 피해갔는데, 저 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하얀 옷 언니, 주문 받지?”
“내가 저 잡놈의 새끼를 콱!”
긴토키가 버럭거리고, 끝내 다카스기가 폭소하고 말았다. 동시에 가게 안에 감돌던 살기가 흩어졌다. 뭐냐 그냥 아는 사이인 건가. 귀병대 총독이구먼.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는데. 거물이 납신다더니 저 자였나. 구석구석에서 혹시 남이 들을새라 비밀스럽게 웅성대는 소리였지만 긴토키의 귀에는 잘 들렸다. 영문 모를 분위기에 당황하던 평범한 손님들이 별 거 아닌가 하고 다시 자기들끼리 하던 일로 돌아간 것도 보였다. 아, 어느 정도는 계산된 움직임이었군. 자신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쨌건 이런 중요한 거점을 망치거나 포기하는 건 행동에 이롭지 않다. 카츠라가 등 뒤에서 안도하고 있었다.
“왜, 잘 어울리고 좋네.”
키들키들 웃으면서 다카스기가 웃어댔다. 분위기가 나아진 건 좋은데, 저 놈 한 대만 때리면 안 될까, 급소로.
"여긴 웬일이냐."
"글쎄. 즈라 네가 있는 줄은 몰랐다만."
"큰 일이 있을 거라고 해서 보러 왔지. 네놈이었더냐.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온 거냐."
"내가 뭘. 난 그저 이야기를 하러 왔을 뿐인데. 그보다 긴토키 저 놈이 왜 여기 있는 거냐."
"여기엔 동지들 말고도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저놈이 여기 끼어들어서야 될 일이냐."
정말로 패면 어떨까. 자기를 향한 적의가 담긴 시선을 맞받아치며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덮쳤다. 놀라서 돌아보니 마드무아젤 사이고였다.
“파코, 나갔다 와라.”
“왜요.”
“왜요는 무슨 놈의 왜요. 반항하냐? 이거 오토세한테 주고 와.”
거물이 오는 게 아니었다. 거물들이 오는 거였나보다. 그래서 즈라도 일부러 여기 온 거고. 그러면 자기를 더 이상 여기에 놓아두기 싫은 것도 이해는 간다.
“조심해서 다녀 오고, 모르는 아저씨가 길 묻거든 대답해주면 안 된다.”
“네, 네 알겠수다. 다녀오죠.”
그리고 바깥에 있는 경찰들의 동향도 살피고 기왕 하는 거, 이쪽으로 못 오게 시선도 좀 끌어달라 이거겠지. 긴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일은 쉽게 해결됐다. 밤에 공터에서 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달래며 자던 노숙자들의 습관이 몸에 배인 하세가와가 그만 실수로 불을 피워 공원에 불이 날 뻔 했다. 하세가와가 그 불을 피우기 전에 자기가 그 옆에서 담배 한 갑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것도 같고 신문지 한 뭉치를 놓고 왔던 것도 같은데 자세한 건 모르지. 긴토키는 어깨를 움츠리고 가게 문을 열었다.
“다녀왔수다- 어라 영업 끝났어요?”
가게 안은 조용했다.
“네가 오래 있다 온 거겠지. 오늘 영업 끝났다. 가서 씻고 퇴근해도 돼.”
“일찍 끝났네요.”
평소 같으면 한창 영업할 시간은 아니더라도 손님이 끊길 시간은 아니었다. 무슨 수를 쓴 거지. 영업시간이 끝나고도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떠들던 아가씨들도 간 데가 없었다. 의자를 정리하고 바닥 청소를 도운 다음 마드무아젤 사이고에게 인사하고 탈의실에 갔다. 아무도 없겠거니 하고 세게 문을 열어젖히고 불꺼진 방 안으로 발을 들이자, 안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하라는 뜻인가. 어둠에 적응이 안 된 눈으로 유심히 살펴보니 카츠라가 앉아있었다. 허리와 무릎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자세로.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자세히 보니 다리가 두 개다. 불을 켜려고 손을 올린 순간 매서운 시선이 날아와 기겁을 하고 다시 봤더니 다카스기가 하오리를 이불처럼 덮고 카츠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카츠라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긴토키는 소리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앉아있을 공간이 부족한 탈의실 바닥을 다카스기가 차지하고 누워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이게 왜 여깄냐?"
"자는데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게. 상태가 좋지 않아."
“다친 거냐? 칼부림이라도 냈나? 다카스기답군.”
“그런 게 아니다. 여기선 아무도 칼부림을 하지 않아. 알잖은가."
"그럼?"
"피곤했었던 모양이야. 아까 나가려고 하는데 걸음걸이가 영 위태롭더군. 낚아채서 데리고 왔더니 잠들었네.”
자세히 보니 미간을 찡그리고 자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프면 저렇게 얼굴을 찡그려붙이고 괴로워하면서 잤다. 꼭 어릴 때 얼굴이랑 똑같아서 괜히 기분이 나빴다. 자는 얼굴 하나만 변하지 않았다니 이런 기괴한 일이 어디있나.
“다음에 보면 벤다던 놈은 어디 갔냐.”
“그건 카츠라고 나는 즈라코잖은가.”
카츠라는 태연히 대꾸하며 하오리를 들어 다카스기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그놈 참.”
긴토키가 얼굴을 찌푸리자 카츠라는 보란 듯이 다카스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꼭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처럼 보였지만, 그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미련이 많은 것도 문제야.”
“뭐가. 일단 이렇게 잘 자니 됐지 않은가. 마드무아젤 사이고의 가게에서 피를 볼 수는 없다네.”
“그러냐?”
말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다카스기가 눈을 떴다.
“……시끄러.”
다카스기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긴토키의 손이 자동으로 허리춤으로 이동했다. 목검을 뽑으려는 찰나, 카츠라가 다카스기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즈라……비켜.”
“즈라 아니고 카츠라다. 비키기 싫다. 자던 거나 마저 자라.”
“……긴토키……죽이지 않으면…….”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이건 자면서도 날 죽이겠다고 야단이냐. 원 재수가 없어서.”
“자네도 그건 마찬가지면서 뭘 그러나. 손부터 내리게.”
아직도 토야코에 손을 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긴토키가 혀를 찼다.
“아, 결국 못 베었네.”
“목검으론 사람을 못 벤다네.”
“나도 알아.”
다카스기는 흉흉한 대화를 자장가 삼아 자고 있을 테다. 푹 자도록 비켜 주자. 긴토키는 몸을 일으켰다. 아마 문 밖에는 그 선글라스 쓴 재수없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누군가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좀 자게 내버려 두자. 다음에 만나면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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