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 밥 안 먹나."
천 오백 짐승들이 급식실을 향해 콧김을 내뿜으며 질주하는 환란의 급식시간에도 신유진은 움직이지 않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신유진, 밥 먹어라."
"늦으면 반찬 없다. 가라. 안 나갈거니까 열쇠 놔두고."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유진을 보고 이태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먹으면 이따 보충 때 힘들다."
"니가 우리 엄마가, 놔두고 가라니까."
문단속을 한다고 마지막에 나가려다 친구가 밥도 안 먹고 책이나 파고 있는 답답하고 옳지 않은 꼴을 본 이태일 군은 화를 내며 유진의 어깨를 쳤다.
"아 좀!"
어깨를 맞은 유진은 화를 내며 태일의 손을 뿌리쳤다.
"귀찮다고! 굶는다고 안 죽는다."
"귀찮으면 가서 앉아있기만 해라. 내가 밥 받아줄게."
"선생님이 내일까지 이거 읽어오라고 하셨단 말이다. 놔라!"
"선생님도 니 밥 굶으면서 책 읽는 건 안 바라신다."
"......"
유진은 한숨을 쉬고 책갈피를 끼운 다음 책을 덮고 일어섰다. 유진을 제압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태일은 의기양양하게 유진의 손목을 끌고 급식실로 향했다.
"근데 책은 왜 못 읽었는데."
"몰라. 김시은한테 물어봐라."
"또 싸웠나."
"싸운 게 아니고 그 새끼가 일방적으로 엉겨붙어서 귀찮게 하는 거다."
"맞나."
태일이 무심하게 대답하고 유진은 얼른 말을 돌렸다.
"근데 오늘 반찬 뭔데."
"나도 모른다."
"미역국이면 안 먹는다. 살다 살다 그래 맛없는 미역국은 처음 봤다."
"맞제. 조선간장 안 쓰고 진간장으로 간 한 거 같더라."
"두 개 다르나?"
"천지차이다. 국은 진간장으로 간하면 망한다."
"태일이 별 걸 다 아네."
"남자도 부엌일에 신경 쓰는 게 요즘 선비의 자세라고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태일이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날 급식은 다행히 미역국은 아니었으나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생선까스였고-타르타르 소스가 지독하게 기름져서 어지간한 놈들도 먹고 나면 속이 이상하다고 아우성을 치기 일쑤였다-유진은 소스 냄새를 맡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밥 안 먹겠노라 버티는 걸 달래고 두 사람 몫의 밥을 받아오고 수저를 챙기고 먹기 편한 자리를 잡아다가 앉히고 반도 못 먹고 남긴 밥에 대해 잔소리를 퍼부어 준 다음 잔반 처리에 뒷정리까지 다 한 것은 태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 밥을 받아온 다음 행복한 얼굴로 후식으로 나온 딸기맛 요구르트를 먹다 말고 그 꼴을 보고 인상이 구겨진 김시은은 애꿎은 축구공을 작살내고 축구골대를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르다 지나가던 학생부장 겸 체육교사에게 걸려서 혼났다. 신유진은 교실에서 그 꼴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성질머리 봐라 저거."

그리고 다음날.
"니 일부러 밥 안 먹었제?"
"뭐라카노. 개소리 말고 책이나 봐라."
"어제 밥 안 먹었잖아."
"어제 이야기를 오늘 하는 이유가 뭔데."
주말에는 시은의 양부 송인호 교수가 집으로 온다. 그러면 어김없이 태일이와 유진이, 가끔 마원용도 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 읽고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 셋이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다 간식거리를 준비하느라 잠시 송인호 교수가 자리를 비우고, 일을 돕겠다며 태일이 부엌으로 따라간 틈을 타, 시은이 유진의 옆구리를 찔렀다.
"태일이가 니 밥 안 먹는다 카면 그래 나올 걸 몰랐다고."
시은이 미간을 찌푸리자 유진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내한테 시위하나?"
"니가 뭐라고 내가 니한테 시위하는데? 니도 참 웃긴다."
한참 유진을 노려보던 시은이 한숨을 쉬었다.
"니 성질머리도 참 더럽다."
"니 성질 더러운 거 알고 하는 소리가."
그때 사과가 참 달다며 한 접시도 아니고 한 쟁반을 깎아온 송인호 교수의 등장으로 대화는 일단 끝이 났으나 시은과 유진은 토론 내내 날선 대화를 주고받았다. 송 교수는 얘네가 싸웠나 하고 잠시 걱정했으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고 금방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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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으로도 알콩달콩한 걸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다만 한국으로 옮겨와 학원물패러랠을 하는 이중의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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