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란 것은 5. 7. 5의 음수율을 원칙으로 하는 정형시입니다. 본래 일본에는 5. 7. 5. 7. 7. 의 정형시인 와카라는 것이 있었고, 중세에 와서 와카를 여럿이 이어 읊는 렌가(連歌라고 합니다. 한자를 보면 아시겠죠. 이어 부르는 노 래)가 대유행했어요. 한 수씩 읊는 게 아니고 5. 7. 5 한 수 읊으면 7. 7 하나 부르고 이렇게 주욱 시를 이어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 렌가라는 것이 종류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일본 고전 문학 강의가 될 거 같고 아무튼, 중세 지나 근세 오면서 하이카이가 유행합니다. 렌카의 개그 버전이에요. 패러디 버전이기도 하고. 형식은 같은데 까다로운 와카에 비해서 좀 더 널널하고 소재도 개그를 많이 써요. 그런데 앞쪽 5. 7. 5를 홋쿠(發句)라고 합니다. 이게 독립된 것이 하이쿠예요. 하이쿠라는 이름은 마사오카 시키라는, 메이지 시대 시인에 이르러 처음 생긴 이름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가 있어야 하며, 짧은 시라서 기레지(切字), 즉 끊어읽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당장 다음의 하이쿠를 봅시다.

일단 봄.
落花枝にかえるとみれば胡蝶かな
낙화, 가지로 돌아가나 봤더니 나비였구나(모리다케)

마지막 구의 かな같은 것이 기레지입니다. 시를 끊어주며 여운을 주지요. 계절어는 나비. 다 져서 떨어져 썩은내를 풍기는 꽃인 줄 알았는데 꽃이 살랑거리며 일어나 날아가 가지에 앉은 겁니다. 자세히 보니 꽃이 아니고 나비인 거죠. 시취를 풍기는 꽃인지, 이미 죽어버린 뭔가인지 아무도 모를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썩어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비였어요. 시체에서 피어난 나비가 가지로 돌아가 이쪽을 향해 무심한 듯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행간에서 그 나비에게 마음을 뺏긴 티가 나죠.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죠? 그럼 계절별로 하나씩 봅시다.

여름
雨後の月誰そや夜ぶりの脛白き
비 개인 달밤 누가 밤낚시하나 하얀 종아리(부손)

장마도 끝날 무렵, 비가 그쳐 맑기는 맑은데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밤, 더워서 물가에 나왔는데 밝은 달 아래 누군가 물 속에 다리를 걷고 앉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종아리가 선명하군요.대체 누구를 무얼로 낚아 뭘 하려는 걸까요. 낚시대도 없이 하얀 발목으로 낚을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가을
我星はどこに旅寝や天の川
내 별 어디서 한뎃잠 자고 있나 은하수 저쪽(잇사)

부모의 마음이랄까. 누군가와 떨어진 사람이 쓴 하이쿠임에 틀림없습니다. 내 새끼 잠은 잘 자고 끼니는 안 거르는지, 한뎃잠 자며 추워하진 않는지. 먼 하늘을 보며 청승을 떨고 있군요. 여러분의 눈에도 보이십니까. 밤하늘을 우러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청승을 떠는, 자기가 보호자인 줄 아는 흑장발 청년의 모습.

夜窃ニ虫は月下の夜を穿ツ
한밤에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바쇼의 시를 응용해 보았습니다. 원래 밤(夜)이 아니고 밤(栗)이었는데 고쳤습니다.
흉흉한 달빛 아래, '빛에 모여든 벌레'가 밤을 갉고, 세상을 갉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게 하이쿠의 기본입니다. 어떠셨습니까. 여러분도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숱한 하이쿠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동인질에는 여러 방법이 있어, 스스로 창작이 안 되면 남이 지은 작품을 내 망상에 대입하는 법도 괜찮습니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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