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풀이 겸 감사의 마음을 표할 겸 히츠지사 님의 리퀘를 받았습니다. 록언니가 나옵니다. 여체화가 싫으신 분은 스루하시길.
거리는 온통 초록과 빨강과 하양으로 현란하게 칠해져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어떤 의미를 가진 날인지는 1년 전, 명절에는 좀 노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냐며 케이크를 구워 온 록온에게 들었다. 물론 티에리아가 건담 마이스터에게 명절은 무슨 명절이냐 그리고 서양 중심의 사고는 건전치 못하다고 바로 비난했으며 알렐루야는 케이크를 한 입 물고 솔직하게 케이크는 참 고맙다, 그런데 좀 묘한 맛이 난다고 말해서 파티고 뭐고 다 끝났지만. 그날 아무도 안 먹는 게 너무나도 아까워보여서 록온의 옆에 앉아 무너진 건물마냥 위태롭게 쓰러지기 직전에 케이크 다운 맛도 나지 않는 케이크를 먹으며 배운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참으로 독특한 것이어서, 세츠나에게는 더 강렬하게 와닿았다. 신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온 거룩한 날. 그리고 그 거룩한 날을 빙자하여 전세계 절반쯤 되는 사람들이 거하게 놀며 즐기는 날.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들뜬 사람들의 물결이 세츠나의 곁을 휩쓸었다. 세츠나는 반 정도 냉정한 정신으로 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이미 신이 인류를 위해 강림했다는 본래의 고결한 의미 따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은 달라서, 눈 앞의 인파를 보면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리고 "세츠나, 세츠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얘가 왜 이렇게 멍해. 그러다 휩쓸려 가겠네." 말과 동시에 찬 공기에 노출되어 있던 손을 따뜻한 무언가가 꼭 잡았다. 여느때와 같이 장갑을 낀 손이었지만 묘하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손이었다. 총을 다루는 저격수의 손이고 몇 번 잡아봐서 아는, 여성의 손치고는 딱딱한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정신 없지? 좀 사람 없는 데로 옮길까?" 나머지 남은 정신도 어딘가 휩쓸려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괜찮다." 살짝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여덟 살 연상의 저격수는 귀도 감도 예리해서 세츠나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신이 은근히 들떠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고작 크리스마스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손을 잡고 걸었다는 것만으로. 크리스마스에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바로 록온에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아닌 거 같은데." 록온이 세츠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곱슬곱슬하게 말아 늘어뜨린 머리에 곱게 화장한-사실 머리고 화장이고 알 바 아니다만 록온이 신바람을 내며 머리에 뜨거운 빔샤벨......이 아니고 하여간 뭐라던가 하는 것을 대는 것을 봤다.- 록온의 얼굴이 세츠나의 얼굴 앞에 다가오자 어쩐지, 늘 보는데다 1년째 한 방을 쓰고 있는 얼굴임에도 다르게 느껴져 순간 아주 살짝 심장이 내려앉았다. "괜찮다. 그저 약간 어지러울 뿐이다. 신경쓰이게 했다면 미안하다." 그럼에도 세츠나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생에 한 번도 겪을 일이 없을 감정이었고 그런 감정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이 유년기를 보내왔고, 설령 그걸 세츠나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배 마이스터이고 함께 방을 쓰며 훈련을 해 온 동료이고 1년간 함께 건담을 조종하며 전략을 가르쳐 주고 건담에 대해 가르쳐 준 귀중한 스승이었다. 그 이상의 감정을 뭐라고 부르는지 세츠나로선 알 수도 없었고 알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록온이 자신에게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발랄하고 즐겁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계속 자신의 손을 잡고 걸어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아냐아냐. 내가 괜히 이런 날 오프에 기분 내자고 애를 끌고 왔으니 문제지 뭐. 미안. 사실 오늘 약속이 있긴 했는데 그 남자가 바람을 맞혀서 말야, 하하하! 괜히 집에서 쉬는 애를 끌고 나와버렸지 뭐야. 사과라긴 뭣하지만 누나가 맛있는 거라도 쏠까? 세츠나, 뭐 먹고 싶어?" 정말로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었다.
공연히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호탕하게 웃는 록온을 보며 세츠나는 잡힌 손을 조용히 뺐다. "응? 세츠나?" "혼자 걸어갈 수 있다. 놔라." 놀란 록온에게 보란 듯 선언하고 세츠나는 남자답고 냉정하게-사실은 홱 토라져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10대 소년에 걸맞는 모습으로 혼자 걸어갔고 남겨진 록온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어머 얘가 왜 또 이럴까.......세츠나? 야! 너 길도 모르면서 혼자 어딜 간다고! 차비도 누나한테 있잖아! 야!"
사실 즐거운 크리스마스고 뭐고 그저 록언니도 나쁘고 사춘기 소년 세츠나는 귀엽고 뭐 이런 걸 쓰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