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제임스가 '컴건은 잘 지내나' 이런 대사를 읊었다는 거죠. 이멘마하서 성당 알바 한다고 옥수수를 한 짐 짊어지고 온 라키샤 양이 대사를 듣고 놀라서 이런저런 망상을 한 결과가 이거랍니다. 그리고 그 때 미*****양을 만나서 불타다가 그만.
2005.04.23 22:29
제임스 선배님께. 이멘마하는 요즘 한창 꽃이 아름답겠군요. 반호르도 반호르대로 작은 들꽃들이 눈의 재미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잘 지냅니다만 여전히 성당을 지을 자금은 잘 모이지 않습니다. 이곳 반호르는 기부금을 기대하기엔 너무도 황량하고 가난한 곳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런 곳일수록 우리 주 라이미라크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과격한 언사가 그리워집니다만, 부디 세상의 눈을 생각하셔서 처신 잘 하시길 빌겠습니다. 큰 교구를 관리하시는 입장이니만큼 신도들에게 책잡힐 언사는 피하셔야 할 줄 압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컴건 올림.
컴건 사제님께. 이멘마하의 아름다움은 해가 갈수록 더해지니 이 또한 주님의 큰 뜻이 아니겠는지요. 그건 그렇고 성당을 지을 자금이 모이지 않는다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반호르라는 곳의 지역적 특색도 특색이지만 교구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사제님의 어리신 외모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 손수 허가장을 복사해서 반호르 가는 길목마다 붙여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부담 가지실 건 전혀 없습니다. 다 우리 주님을 위한 역사에 미력한 손이나마 보태고 싶은 제 마음임을 사제님께선 이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의 언사는 언제나 온화의 극을 달리고 있다는 신도들과 여행자들의 평을 덧붙이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임스 드림.
신학교 시절부터 이상주의자였던 컴건과, 개방적인 교리관에 파격적인 신앙을 가진 제임스는 영 껄끄러운 사이였다. 선배로서 한 사람씩 후배를 맡아서 생활지도를 해 주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만날 일도 없었으리라. 그 둘이 만난 후부터 이멘마하 신학교에서는 매일 두 사람의 언쟁을 구경하는 것이 작은 행사요 일상의 큰 즐거움이 되었으니 둘의 사이가 어땠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 신학도가 되기 전에는 소문난 한량으로 격투기에도 능해서 성의 근위병들과 3 : 1로 싸워 이겼다느니 아이던도 제임스한테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느니 루카스와 호형호제하던 사이라느니 하는 전설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제임스를 컴건이 좋아할 리 없었다. 신의 뜻을 실천해야 할 사제가 어찌 저렇게 풀어진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인가. 제임스의 언동은 과격하고 신에 대한 일을 점잖지 못한-예컨데 식당의 음식이 라이미라크께서 드시고 자빠질 맛이라나-언사도 예사로 했으며 발렌타인 데이 때는 여성들이 주는 초콜릿을 꼬박꼬박 챙기는 한 편,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성취향을 시험하느냐는 폭언도 내뱉곤 했다. 제임스라고 컴건이 마음에 들었으랴.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해가지고는 늘 하는 말은 대주교 못지 않은 잔소리에,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겠다는 기특한 마음가짐과는 반대로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자신을 보는 조금 불쾌한 듯한 시선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리 편협해서 무슨 전도를 하겠다는 말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가 졸업반이 되었을 떄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성경을 읽거나 교리를 논박하거나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 있었고, 때때로 제임스가 컴건의 머리카락을 큰 손으로 엉망으로 휘저어 놓고 쿡쿡쿡 웃는 일이나, 컴건이 머리를 정리하면서 곱슬머리의 고통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머리에 손은 왜 대냐고 항의하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대성당 뒷뜰을 산책하는 모습은 대성당의 신도들의 눈에도 자주 들어와, 노부인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으며 젊은 아가씨들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켰다.
컴건이 신학교를 졸업한 지 3년,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제임스 앞으로 도착한 컴건의 편지를 보고 놀라곤 했지만 울라 대륙을 통틀어도 제임스와 컴건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제들도 드물거라고, 대주교는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