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 언니 생일 리퀘입니다. 29일이지만 오늘 저녁엔 좀 할 일이 있어서 미리 써 올렸어요. 늦는 거 보단 낫겠다 싶어서. 아무튼 언니 올해도 축하드립니다.
11:00 - 01:00 카페 6.9
달리의 그림을 본따 만든 게 틀림없는 시계 아래 날카로운 손글씨로 적힌 표지판에는 영업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카페 안에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두 시간 째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괴상한 커플 하나, 구석 자리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레포트 채점을 하고 있는 여름 양복 입은 안경 쓴 청년이 하나, 그 근처에서 노트북을 끼고 마우스를 열심히 클릭하고 있는 히피 같이 생긴 바가지 머리가 하나, 그리고 검은 폴로 셔츠를 입은 척 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하나, 이렇게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커피 주전자를 들고 가게 안을 돌던-커플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웃으며 늦은 시간엔 커피 리필도 추가라고 대답했다-페도라를 쓴 청년이 마침내 검은 셔츠 소년 앞에서 마지막으로 커피를 따르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지용이, 집에 안 가니.” “어 유정이 형.” 무슨 책인지 뭘 진지하게 읽고 있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너 자취방 부천에 있잖아.” “아, 태원 형님이 재워주신대요. 뭐 빌릴 책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형이랑 같이 왔어? 근데 왜 따로 앉아 있어?” “인터넷 하신다고 바쁘대요.” “맨날 바쁘다, 저 형.” 유정이 태원 쪽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일은 언제 하나 몰라. 유능하긴 진짜 유능한가?” “그러게요. 근데 유정이 형, 대체 저 시계 누가 만든 거예요?” 지용이 벽시계를 가리켰다. “어, 몰라. 본웅이 형이 개업선물이라고 줬는데.” “그 형이 만드신 거 아니고요?” “회화과지 디자인과는 아니니까 그건 아닐 걸……어 손님 가시네.” 아까까지 손을 꼭 잡고 있던 커플이 손을 놓고 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유정이 계산대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주방에서 검은 앞치마를 맨 마른 청년이 터벅터벅 걸어나와 계산대 앞의 커플을 맞았다. 계산이 끝나고 커플이 나가자 청년이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이, 김유정, 손님 안 받고 뭐 하냐……지용이 아직 안 갔어?.” “해경이 형.” 지용이 뒤늦게 나타난 청년에게 웃어보였다. 해경-가게 단골 중 몇은 다른 손님들처럼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청년은 지용이 입은 옷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너 그 티 이번 주 내내 입지 않았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마, 좀 갈아입어라, 쯧.” “에이 형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5월이라도 요즘은 덥잖냐.” 지용은 해맑게 웃었다. “자기 전에 빨아서 아침에 입고 나오니까 괜찮아요.” “…….” 해경의 얼굴이 굉장히 험악해졌다. 미간에 주름을 잡은 청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쿵쿵 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뛰다시피 들어갔다. 지용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 거 아닌데. 그냥 이게 좋은 건데 해경이 형 오해하셨나봐요. 어쩌나.” “아, 괜찮아 걱정 안 해도.” 유정이 주방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아마 해경이, 화난 게 아니고 슬퍼서 저러는 걸 거다. 내버려 둬도 돼.” “와 유정이 형, 어떻게 아세요?” “쟤가 보기보다 심성이 곱다니까.” “거기 시끄러운 셋, 나 이거 채점하게 조용히 좀 해 주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레포트 뭉치를 끌어안고 씨름하던 양복 차림의 청년이었다. “아, 효석 씨 미안합니다. 시끄러웠어요?” 유정이 그 쪽을 향해 사과를 했다. 효석은 신경질적인 한숨을 쉬며 레포트 뭉치를 손가락으로 탁탁 쳐 보였다. “얘네가 내 학점에 불만 있다고 찾아 오면 자네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애들이 글은 또 얼마나 끔찍하게들 못 쓰는지, 논점도 없고 내용도 없는데 각주만 잔뜩 달린 글을 읽고 있자니 내가 다 죽을 거 같아. 거기 유정 군, 나 커피 한 잔만 리필 좀. 부디 아메리카노로 해 주게. 저 친구 핸드드립은 빼고.” “네.” 유정이 주방으로 들어가고, 주방에서 두 청년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있던 바가지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아- 어째 시끄러운데, 지금 몇 시야……11시가 넘었다고?” 시계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태원이 넷북을 덮고 지용 쪽을 보았다. “지용이 너 책 빌릴 거 있다고 했잖아. 그만 일어나자. 내일 부천까지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네 형님. 이거 정리 마저 하고요.” 탁자 위에 놓여진 책을 치우는데 어쩐지 눈이 좀 벌개진 해경이 주방에서 나왔다. “어, 태원 형도 가요? 거 잘 됐네. 오늘은 장사할 맛이 안 나니 일찍 문 닫고 가서 잘랍니다. 거기 손님도 슬슬 일어나시우.” “어 왜. 상이 너 어디 아프냐? 울었어?” “울긴 누가 울어요! 아무튼 우리 일찍 나갈 겁니다. 얼른 나가요.” 해경이 괜히 버럭 소리를 질렀고 레포트 뭉치를 끌어안은 효석이 이 가게 왜 이리 불친절하냐 다시는 안 오겠다 투덜거렸으나 해경은 그 소리를 듣지도 않았다. 유정이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 주자 효석은 이걸 어디 가서 채점하냐며 유정에게 하소연을 했다. 유정은 웃으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는데 답이 없는 걸 보니 대충 들은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끝났고 며칠 후 알바생들 주려다 관 뒀다면서 해경이 지용에게 비닐 꾸러미를 내밀었다. 검정 V넥 셔츠가 한 장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