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한테 리퀘를 받았습니다. 별로 안 깁니다 OTL 그리고 원래 이런 건 일 하면서 써야 제 맛입니다. 제 마음이 바빠서 좀 비약이 심합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성년 기준이 만 18세였나, 19세였나, 20세였나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떨 때는 20세고 또 어떨 때는 18세고 바뀌기도 자주 바뀌고 해서. 아무튼 내가 있던 곳에선 몇 살 부터 술을 마실 수 있었더라. 기억이 희미한 과거를 떠올리며 휘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얘 여기선 미성년인데 여기서 술 마시게 놔 둬도 되는 거냐. 문이야 닫았다고 해도 여기는 다과를 파는 가겐데.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혼자 술을 따라 안주도 없이 홀짝홀짝 술잔을 비우고 있는 월영이 보였다. 쟤 도대체 언제 부터 저기서 저러고 있었지. 사실 잔이라고 해 봐야 가게에서 에스프레소를 낼 때 쓰는 잔이고 그러니까 거기에 소주를 담아마시면 정말로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마신다. 술병을 잡고 잔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목을 살짝 구부려 잔에 다르는데 넘치지도 않는다. 조르륵, 잔을 한 절반쯤 채웠을까. 그렇게 흐르듯 술을 따라 역시 눈은 먼 데 두고 잔을 잡아 한 두 모금에 넘기고, 잠시 인상을 쓰고, 술병을 쳐다보다 다시 술을 따라 마시고. 자세히 보니 녹색 병은 소주병이 아니었다. 색은 녹색인데 병이 네모졌다.
저거 이름이 그러니까, 아, 그래. 고량주. 굉장히 독했지 아마?
그리고 빈 병이 하나, 술이 찬 병이 하나 있는 것을 본 휘안은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취하면 실수를 한 적도 있다는 거,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런 술을 왜 혼자 홀짝거리면서 마시고 있냐고, 안주도 없이, 같이 마실 사람도 없이.

-야, 월영아!
-왜, 오빠?
휘안이 부르자 월영이 탁자에 기댄 몸을 일으켜 사람을 쳐다본다. 목소리는 좀 잠겼지만 알코올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돌아다본 얼굴도 눈 빼고는 말짱하다. 그래, 본래 알코올은 증발하는 물질......이 아니고 월영이 쟤 정말 술 세구나. 아니아니 이것도 아니다. 휘안은 월영의 얼굴에서 위화감을 감지했다. 어떻게 독주를 마시고 눈 빼고는 다 말짱할 수 있냐고. 한 부분만 처져 있는 건 뭔가 잘못된 거다. 이건 그러니까, 놔둘 문제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휘안은 월영에게 다가갔다. 여차하면 술병을 뺏아버릴 생각을 하고.
-왜 그래. 안 마시던 술을 마시고.
-음, 그냥.
-이제 그만 마시고 올라가. 가게는 내가 정리할테니까, 응?
휘안이 말하자 월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조금만 더 마시고 갈게. 잠시 나 좀 놔두면 안 될까?
-뭣 땜에 그래?
월영은 휘안의 얼굴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빈 그릇을 털어내듯 아무 것도 얹혀있지 않은 얼굴을 조금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별 거 아냐. 그냥 옛날 생각도 좀 나고 해서.
이계에서 온 멤버들 치고 옛날 생각이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거가 괴로운 것도 종류가 여러가지다. 자신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사람, 그 곳에서 살 수 없어서 이리로 온 사람, 그리고 월영이처럼 정말로 좋아하고 아끼던 것들을 모두 두고 와서 미련이 남고 회한이 남는 사람.
하필 가게에 남은 사람은 자기 뿐이었다. 고로 월영이를 말릴 사람도 자기 뿐이다. 휘안은 잔을 하나 가져와서 월영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의자를 하나 빼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 오빠?
-먹어 없애면 줄어들테고, 그럼 가서 자겠지. 오빠도 한 잔 줘라.
월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휘안의 잔에 넘실넘실,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잘 안 먹던 독주를 마시고 잠든 휘안을 월영이 '오빠는 술이 약해서 큰일이야.'라며 방에 데려다줬다는 후일담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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