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 언니 리퀘글입니다.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오후라 햇빛이 살짝 노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떨어진 햇빛이 툭 하고 튀어올라 녹슨 철제 난간에 둔하게 부서졌다. 조각난 햇빛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던지 옥상 철제 난간에 등을 걸치듯 기대고 숨을 몰아쉬던 남자가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 따가우세요?”
“새끼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옥상에 서 있는 남자는 두 명이었다. 두 남자의 손목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오른손목에 수갑이 묶인 남자가 더 젊었다. 색이 바랜 듯 엷은 갈색 머리에 입술이 얇았고, 검은 셔츠에 바지가 퍽이나 수상해 보였다.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남자가 으르렁거리자 갈색 머리 남자가 대꾸했다.
“그럼 좀 쉬세요. 왜 계속 씩씩거리고 계세요?”
“너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왼손목에 수갑을 찬 남자가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언뜻 보기에도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입을 일그러뜨리고 얼굴을 쓸어내린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내 손이랑 네 손이 같이 묶이는데?”
“제 말이요. 저 그만 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나요?”
갈색머리 남자는 짐짓 괴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왼쪽 어깨를 으쓱했다.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짧은 검은머리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가긴 어딜 가! 오늘은 결판 좀 내야 쓰겠다. 도둑놈이 어딜 가?”
“에이 형사님도. 괴도라면 도망가는 게 정석이죠.”
“내가 오늘 너 묶어놓은 건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있다.”
“묶여있는 게 좋으신가봐요?”
괴도가 느물거리듯 말하자 스포츠머리에 가까운 짧은 검은머리 남자, 형사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 주먹을 노려보았다.
“그냥 사기를 치지, 혀 돌아가는 거 보니까 아주 적성에 딱이네.”
형사가 혀를 차자 괴도는 피식 웃었다. 웃자 눈이 반달모양으로 가늘어져 형사는 그 눈부터가 참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떻게 사람을 갖고 놉니까?”
형사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괴도를 노려보았다.
“씹새야 너 이거 풀리면 보자.”
“예, 예. 맘대로 하세요.”
형사가 노려보던 말던 상관하지 않고, 괴도는 난간에 머리를 기대고 다리를 쭉 뻗은 자세를 잡았다. 한숨을 쉬고 형사도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폈다.
“그런데 너 정말 이거 못 푸냐?”
“형사님은 열쇠 없으세요?”
형사가 왼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괴도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저번처럼 주머니 뒤져서 수갑 열까봐 두고 왔지.”
괴도는 오른쪽을 보며 생긋 웃었다.
“에이. 사람을 못 믿으니까 둘이서 이 꼴이잖아요.”
형사는 웃는 얼굴이 꼭 여우새끼 같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어떻게 하면 이게 난간에 연결이 될 수 있냐?”
“그러게 누가 수갑을 두 개 들고 오시랬나요.”
“저번처럼 네놈이 수갑을 박살낼까봐 그랬지 나야.”
“형사님은 저한테 애정이 너무 부족하시다니까요. 그렇게 절 못 믿으세요?”
괴도가 입을 삐죽거리자 형사가 주먹을 쥐고 괴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미친 새끼야, 경찰이 도둑놈을 믿냐? 믿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죠!”
괴도는 머리를 마구 내저으며 주먹을 피했다. 잠시 공방전이 이어지고 형사가 한숨을 쉬며 주먹을 내렸다.
“너랑 말 섞은 내가 바보지. 됐다. 무전 쳤으니까 조만간 누가 오겠지. 좀 쉬자. 그런데 너 진짜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저도 몰라요. 실수한 거죠.”
“꼴 좋~다. 그러게 누가 방심하래.”
괴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형사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날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2년째 쫓아다니던 놈을 잡으니 속이 시원해서 날씨가 좋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놈이 뭐라고 깐죽대도 진심으로 화가 나지 않는 것도 분명 그래서일 거라고 형사는 막연히 생각했다.
“형사님?”
괴도가 형사를 불렀고, 멍하니 딴 생각을 하던 형사는 놀라 팔을 당기다 말고 씃, 소리를 내며 팔을 움츠렸다. 괴도가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다쳤어요?”
눈살을 찌푸리며 형사가 말했다.
“수갑에 손목이 쓸려서 그런다. 아까 좀 난동을 피웠어야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형사가 괴도의 한 팔을 꺾으려는 순간, 괴도가 형사의 주머니에서 수갑을 하나 더 꺼냈다. 놀란 형사와 티격태격 싸우는 사이에 어찌된 일인지 수갑은 한쪽 끝이 형사의 수갑에, 한 쪽 끝이 난간에 잘 채워져 있었고, 형사와 괴도는 잠시 멍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조금 후, 둘은 손목을 미친 듯 흔들어대며 이럴 수는 없다고 외쳐대며 10여분을 반광란 상태로 보냈다. 그러다 무전을 치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형사였다. 괴도 잡기에 혼을 바쳤으나 혼만 바치고 소득은 없는 그를 위해 보내줄 순찰차는 없었는지 묘하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했다.
아무튼 수갑을 풀겠다고 무리한 짓을 해서인지 손목엔 금속이 스쳐서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몇 개 있었다. 살이 심하게 쓸린 탓인지 핏방울도 조금 비쳤다. 형사의 손목을 보던 괴도가 왼손을 뻗어 묶여있는 형사의 팔을 잡고, 자기 쪽으로 팔을 당겼다.
“뭐 하려고?”
“치료요.”
괴도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놔라.”
형사가 팔에 힘을 주었다. 괴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손목을 내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다.
“싫습니다.”
괴로가 머리를 숙이고 가슴으로 형사의 팔을 잡아 눌렀다. 잠시 다리와 가슴 사이에 팔이 갇힌 형국이 된 형사가 팔을 빼려고 당기려는 순간, 괴도가 턱으로 수갑을 밀고 상처에 혀끝을 내밀어 부은 곳을 핥았다. 축축한 혀가 스치고 지나가자 잠시 뜨거운 느낌이 들다, 타액이 식으며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의외의 행동에 허를 찔린 형사가 잠시 힘을 풀자 괴도는 그 기세를 타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며 손목을 당겼다. 팔이 당겨지자 형사의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괴도는 형사의 팔목에 맺힌 피를 살짝 핥더니 피가 맺힌 부위를 빨고, 피 섞인 타액은 괴도의 혀를 타고 목으로 넘어갔다. 팔목에 댄 입술을 옆으로 밀듯 옮기고 다시 부은 부위를 핥았다. 혀가 지나가자 형사는 등을 움찔했고, 형사가 움찔거리지 않으려고 몸을 긴장시키자 괴도의 혀끝이 상처를 쓸듯 훑었다. 미묘한 감각에 팔목이 간지럽다고 형사는 생각했다.
상처를 핥던 괴도가 고개를 들고 형사를 쳐다보며 웃었다.
“상처에선 참 묘한 맛이 나지 않아요?”
“핥지 마라.”
형사는 고개를 돌렸고 괴도는 입끝을 들어올리고 웃었다.
“형사님 얼굴 빨갛네요?”
“그럼 이 상황에서 얼굴이 빨개지지 파래지냐?”
형사 자신이 생각해도 참 말이 안 되는 발언이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고 옆을 보자 괴도가 킥킥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자식이 못 웃게 할까 고민하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형사가 반색했다.
“저 소리 들리냐?”
“네, 들려요.”
풀이 죽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생한 괴도의 목소리가 한참 위에서 들렸다. 앉은키가 나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위에서 들릴까, 하고 옆을 본 형사는 놀랐다.
“어, 어?”
어느새 괴도는 수갑을 풀고 일어나 있었다. 물론 형사의 손목은 그대로인 채로, 게다가 도망갈 채비를 완전히 갖추고.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형사를 향해 괴도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야, 너!”
“형사님,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 주세요.”
괴도는 슬쩍 형사의 손을 잡고, 놀란 형사가 허둥대는 사이 형사의 눈에 눈을 맞추고 손바닥에 입술을 갖다 댔다. 손바닥에 닿는 따뜻한 기운에 한 번 놀라고, 사람의 날숨이 만드는 간지러움에 당황하고, 입술을 누르는 감촉에 굳은 형사를 놀리듯 괴도는 웃었다.
“다음엔 다른 플레이하고 놀아요. 그럼 안녕~.”
이새끼야 죽을래! 라고 외치려고 입을 움직이는 순간 괴도는 사라졌다. 동료들이 도착해서 본 것은 수갑에 묶여 난간에 매달려서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형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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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위성도 없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늘 이런 식이어서 더 죄송할 것도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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