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 세츠알렐세츠? 아무튼 둘이 나옵니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만화에서 따 왔고, 친절하게 책을 주며 언니가 쓰셔야하지 않겠냐고 우겨댄 얄미운 모 고양이의 의뢰를 받고 썼습니다. 저기서 안 썼어야 하는 건데 야마시타 토모코가 좋았어요 쳇. 게다가 그해 12월이면 한창 일할 때라 현실도피도 좀 했었고;
……동아자디스탄 지구에서 폭탄 테러가……자살폭탄……범인은 열네 살 난 소년으로……
먼 곳에서 들리는 BGM처럼 뉴스를 전하는 목소리가 휙휙 흘러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무실에 남아있는 건 나 하나였다. TV만 혼자 웅웅대고 있었고 화면에는 쑥대밭이 된 거리가 비치고 있었다.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6년 전과 똑같은 거리가 그 때처럼 불타고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할렐루야가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그때 분명, 네가 바란 거였지. 하다못해 죽은 다음에는 그 혼을 나에게, 조금이라도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해 준다면, 그리고 그 죽음이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오기를.
그런 걸 바란 거 아니었느냐고.
그리고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소란이-
그때를 떠올리면 6년 전에 출연했던 토크쇼가 생각난다.
-사진작가 알렐루야 합티즘씨를 모시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분열된 자아상, 구원 등 추상적인 주제로 작품을 해 오셨습니다만 최근 1년간 작품 성향이 많이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동의 소년병을 찍은 사진집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병사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 보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은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진작가로서 생각했습니다. 분열과 싸움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작가로서 올바른 태도가 무엇인가 하고요. 개인적인 어두움도 좋지만 우리 주위의 어두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일단은 예의바르게 대답했지만 쓸데없는 걸 물어본다고 할렐루야가 투덜대는 모습이 남들의 눈에 띄일까봐 무서운 시간이었다.
-평소 합티즘 씨의 사진집을 관심있게 보던 사람입니다. 이번 사진집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작년을 경계로 작품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무슨 계기라도 있습니까?
-작년, 테러로 반려자였던 마리 페버시 씨를 잃은 후 재기한 합티즘 씨의 사진전은 이달 말부터 슈헨베르크 기념관 2층에서 열립니다.
나중에 녹화된 방송을 보고 나서 편집되지 않은 질문과 나중에 사회자가 추가한 멘트를 보고 급기야 할렐루야가 이를 갈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하지만 나만 애써 침착하게 대답하느라 애썼던 그 토크쇼를 생각하면 지금도 충분히 기쁘다.
-의미있는 시도였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친구도 생겼고요.
이 한 마디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날 방송에 의미는 충분했다.
-소년병들을 이끌고 있던 소년이었습니다. 소란 이브라힘.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할겁니다.
썰렁한 방이었다. 소년병들의 숙소인 듯 흙바닥 위에 긴 나무침상이 하나 놓여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거기 소년병들의 리더라고 했던 소년이 앉아있었다. 나를 그리로 데려온 아이들이 설명을 했다.
-사진작가? 기자가 아닌가?
그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응. 그래. 사진작가야. 보도사진이 아니고……저, 그냥 너희들의 평소 생활을 찍고 싶어서…….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말이 능숙하군. 배웠나?
-어, 어.
-우리들의 평소 생활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다. 전쟁은 그냥 전쟁일 뿐이야.
-…….
-흔한 일이다. 그래도 좋은가.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는 사이 침상에 앉아있던 소년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체구였다. 고개를 한껏 들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시아인을 보는 건 처음이군.
고개를 숙이니 까만 얼굴에 치켜뜬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보듯 보고 있었다.
-금색 눈동자라, 좋다. 우리는 너를 환영한다.
그 눈과 마주친 순간,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 강렬한 눈빛이 좋았다.
-20대라고?
그는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표정이 극히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눈을 보면 안다.
-생각보다 어리게 보이는 얼굴이군. 눈은 그렇지 않은데.
-아시아계라 그래. 아, 소란 너는 생각보다 어려서 놀랐어. 올해 열넷이라고?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선 열네 살이면 모두 어른인 셈이다. 자기 목숨을 책임지는 나이지.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침중했다.
-평화로운 곳에서 살면 우리랑 다른 표정일 줄 알았는데 너는 다르다.
-응? 뭐가?
-너는 어쩐지 이런 풍경이 익숙해 보여.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서로 살갑게 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비슷한 데가 있었다. 긴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할렐루야는 소란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할렐루야는 종종 이 아이에게 싸움을 걸곤 했다. 너도 저놈들과 다를 게 없어! 그러면 소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주문처럼 되뇌는 말에 할렐루야가 질린 듯 너 같은 놈은 답도 없다며 다시는 소란의 앞에 나오지 않았고 소란은 나에게 너도 우리와 같다는 말을 던졌다.
긍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걸로는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었지만 일 관계로는 꽤 많은 편지를 썼다. 이 곳에서 다른 연락수단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한 번은 그 편지를 소란에게 부탁했다.
-편지인가.
-응. 좀 부탁할게.
-알아는 보겠지만 아마 가지는 못할 거다. 고향에 보내는 건가?
-응.
그는 편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못 읽겠다.
-영어라 그래.
못 읽겠다고 불평하면서도 그는 편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족인가?
-아니, 그런 거 없어.
마리는 폭탄 테러로 죽었다.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제대한 부대에서 그녀는 내 몫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죽었다. 그녀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스미르노프 대령님과 함께 죽었으니 아마 원통하진 않았겠지. 그분의 아들이 유해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연락을 했고, 나는 유해를 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그런가.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도 가족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 곳에서 나올 때까지.
그가 자는 것을 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사흘 밤낮을 공습에 시달리고 불침번을 서는 중이었다. 불침번을 돕겠다니 소년들은 기꺼이 받아주었다. 총을 들고 옆으로 가도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걸어간 순간 인기척을 듣고 일어나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본 다음, 나인 것을 확인하고 가볍게 긴장을 풀어야 정상인데, 계속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자고 있나보다. 깨우려고 어깨에 손을 댔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린 아이의 체온은 높다더니 정말로 따뜻했다. 새삼 그가 열 네 살이라는 게 떠올랐다. 나는 이 어린아이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할렐루야가 비웃었다. 마누라 죽고 도망치더니만 이젠 어린애 상대로 속시커먼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그 말이 맞았다.
어깨에서 손을 뗀 순간 그가 눈을 떴다.
-소란.
-아, 알렐루야.
잠에서 깬 무방비한 얼굴이 소년다웠다. 정말 어린아이였다. 이 전쟁터에서 아무리 오래 굴렀어도 아이는 아이다.
-이제 공습이 시작될 시간이야.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평소의 소란으로 돌아갔다.
내게는 마리가 있었다. 그에게는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열네 살짜리 아이였다. 그가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가지고 온 필름은 모두 썼다. 이제 남은 건 현상하고 편집하는 일 뿐이었다. 차일피일 떠나는 날을 미루는 나에게 소란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기를 권했다.
-좋은 곳이었어.
-전쟁터가 뭐가 좋은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는 내 이야기가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았다. 대답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 지방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어.
-그런데 왜 여기 왔나.
-파병 나갔을 때 이 지방 출신이라는 용병을 만났지. 무서운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들이 싸우는 곳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여기에 왔나?
나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야기한 과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 소란은 앞으로 어떡하고 싶어?
-뭘 말인가.
-전쟁이 끝나면 뭘 하고 싶냐고.
-그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째서?
-이 전쟁은 신에게 바쳐진 전쟁이다. 난 여기서 내 일을 완수했으면 한다.
-그, 그래도…….
-네 이름은 신을 찬양하는 뜻이라더군.
-…….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좋은 이름이다.
-이브라힘은 신의 충실한 종이었다.
할렐루야는 그럴 줄 알았다며 냉소했고 나도 그의 뜻에 동의했다. 가장 소란 이브라힘 다운 반응이었다.
사진집은 반응이 좋았다. 그의 붉은 두 눈을 표지로 한 사진집에 사람들은 동정을,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그 사진집을 그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경우는 확실히 그랬다. 나에게 이 사진집은 실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것이었다.
그는 그 전쟁터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그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소년병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그 어린 병사들은 대부분 죽었다. 그리고 소란 이브라힘의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국경이 막히기 직전 나는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록온 스트라토스를 잃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는 그 말만을 했다. 2년 만에 그는 많이 자라 있었다. 절망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소란.
-알렐루야. 나는 이게 신의 뜻이라고 믿고 2년 동안 내 목숨을 걸었다.
-…….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소란이 절망한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이런 세상에 만족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그건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아니다. 할 수 없는 게 아냐. 못 하는 거다.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알렐루야, 네가 말해 봐라. 이 싸움은 옳은 것인가?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끝없는 싸움에 찌들어 있었지만 그의 혼만은 순수했다. 그 곧은 혼이 위태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함께 총을 들고 싸워줄 수도 없었고 그의 옆에서 죽은 사람들 대신이 될 수도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다 못해 저 혼만이라도.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가 나를 생각한다면, 그가 죽은 뒤에라도 그 혼만이라도 내가 가질 수 있기를.
분명히 그것이 그때 내 소원이었다.
나는 또 눈을 감고 도망쳤다. 4년은 순식간이었다. 다시는 그 나라에 갈 수 없었다. 언제나 뉴스 말미에 그 곳의 소식이 들릴 때가 가장 괴로웠다.
그리고 눈 앞에 그가 나타났다.
-소, 소란!
절대로 저런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자세였다. 축 늘어진 그를, 검은 차도르를 휘감은 여자가 들어 안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얗고 작은 얼굴은 죽은 마리를 닮았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알았다. 이플리타였다. 노란 눈을 빛내며 그 이플리타가 말했다. 아니 머릿속으로 말이 흘러들어왔다.
-네 소원은 분명히 이루어졌다.
빛을 잃은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확실히 알았다. 내 소원이 이런 것이었던가.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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