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제 23번 쌍둥이입니다.
파푸와 관련 글이라서 뱀딸기, 로 분류했습니다. (카테고리 이름이 저런 식입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전투가 또 한 차례 끝났다. 이번에도 살아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허기와 피곤과 혐오감과 그리움과 배덕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 상태로 집으로 돌아간다. 본부로 돌아가는 비행정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깬 하렘이 제복 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을 보고, 옆에서 졸고 있던 고참단원이 말을 붙인다.
-가족사진인가?
-그렇수다~ 딱히 볼 게 있어야 말이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겪고 난 후의 심적 공황을 달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가 가족 사진을 보는 것인데, 평소의 하렘은 가족 사진을 보느니 술과 깊은 관계를 맺는 쪽을 더 좋아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개 가족사진을 보는 것을 들키면 꽤 쑥스러워 하곤 한다. 총수가 한 번 바뀌었는데도 아직 살아서 격전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고참단원은 그냥 한 번 씩 웃어주고는 하렘이 보고 있는 사진에 관심을 표한다.
-총수님과.....이 사람은?
-본부 연구소에 있는 루저 박사. 작은 형이라우.
-형제가 넷이나 되나? 좋구만. 어릴 때 꽤 시끌벅적했겠어.
-뭐 그렇죠.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다들 가족사진을 보면서 뭔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라는 것도 아는 고참은 열심히 사진을 구경한다.
-이 사람은 누군가?
-아, 서비스? 내 동생. 어때요?
-자네랑 꽤 닮았는데.
-나랑 닮아요? 농담 마쇼. 얘가 내 어디를 닮았다고?
쌍둥이 동생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마다 정말 쌍둥이가 맞냐고 물어서 조금 슬펐던 어린 시절을 보낸 하렘은 자신과 서비스가 닮았다고 말하는 그 고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고참은 꽤 진지하게 사진에 찍힌 두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여기, 눈초리가 닮았잖아. 분위기는 좀 많이 다르지만.
-성격이 아주 딴판이라구요.
-그건 그래 보이네. 하지만 이 쪽도 보기만큼 얌전하기만 할 것 같지는 않은데. 꽤 격렬한 성격이지 않나?
-으음, 하긴 샌님은 아닌 건 분명하죠.
잘못해서 서비스의 성격을 건드렸다가 험한 꼴도 몇 번 당했던 하렘이다. 생각하면 꽤 무서웠던 일도 있다. 물론 어릴 때의 일이고 지금이야 별로 무섭진 않지만.
-동생은 뭘 하나?
-사관학교 다녀요.
-나이가 어릴텐데?
-쌍둥이. 그런 것 치곤 안 닮았지요?
하지만 고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아니, 꽤나 닮았대도.
-어디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눈초리가 닮았다니까. 그리고 뭐라 집어 말하기가 어려운데, 여기 말이야-
말하면서 사진을 가리킨다,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자신과 동생이 있다.
-이렇게 둘이 서 있는 걸 보면 그렇구나~ 싶은 게 있어. 실은 아까 처음에 봤을떄 부터 아주 친한 형제간이 아닌가 생각했거든.
-정말로 그렇게 보이는 거요?
-그럼, 난 농담 같은 거 안 해.
-흥, 이 자식이 나랑 자기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꽤나 실망할걸요.
사진을 제복 가슴주머니에 대충 갈무리해 넣으면서 하렘은 미소지었다. 하렘과 서너 차례 같은 전투에 참가한 고참은 방금 그 얼굴이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편안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다.
며칠 휴가를 받자. 사관학교에 들러서 서비스를 만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라도 하자. 서비스도 휴가를 받을 수 있으면 같이 낚시를 하거나 어디 놀러가는 것도 괜찮겠지. 형들이랑 동생이랑 같이 저녁도 먹고, 밤에는 팔에 난 아주 조그만 상처자국이라도 보여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해주자. 다들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면 기뻐하겠지, 그리고......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하렘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에 어린 서비스와 자신이 나와서 또 사소한 걸로 치고 받고 싸우는 걸 큰 형이 한탄하면서 뜯어말리고, 작은 형은 옆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는 장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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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와 DEDO 본에 실린 형제의 어린 시절 단편을 보고 떠오른 망상입니다. 하렘이 가족사진 같은 걸 저렇게 들고 다닐 리는 없겠지만 열여섯 먹은 하렘이라면, 한 번쯤은 사진을 들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만.
길을 가다 멍하게 피아노를 구경하고 있으니 동행인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유를 말해주기가 귀찮아서 그냥, 이라고 한 마디로 줄였지만, 피아노의 B음이 공명하면 바이올린의 B음이 공명한다는 어느 소설의 한 대목이 마음에 오래 남게 된 후 부터 길을 가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은 아니다. 손이 건반 위에서 멋대로 움직여서 치고 싶은 건반을 칠 수 없다. 특히나 화음을 내야 할 때는 더더욱. 건반을 몇 개씩 짚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만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소리가 일그러진다. 깨진 화음은 듣기 괴롭고, 잘못 쳐서 끊겨버린 곡은 쓰레기다. 연주란 이미 들어버린 이상엔 좋든 싫든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래서인지 내가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소리가 귀에 착착 붙지를 않고, 툭툭 되는 대로 내지르는 소리마냥 시끄럽다는 말을 많이들 했다. 좀 곱게 건반을 칠 수 없냐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건반을 세게 치고 약하게 치는 문제가 아니다. 악기 소리란 연주자의 심성을 반영하는 법. 나는 악기소리에 마음을 담을 줄 모른다. 그래서 음표와 음표 사이의 섬세한 무언가를 살릴 줄 모른다.
그래서 협주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가끔 생각하는 건데."
"응?"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서, 합주나 협주란 참 신기한 거지."
"그건 그래. 마음도 잘 맞아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런 것도 신기하지만 제일 신기한 건 역시 소리가 어울리는 거지."
"사람도 그런 법이지."
"혹시 너도 읽었어? 카와바타 야스나리, '서정가'."
갑자기 동행이 던진 익숙한 단어.
"너도 읽었구나."
옆을 쳐다보자 동행은 나를 보면서 씩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웃는 얼굴은 어쩐지 기분나쁘게 보였다.
"피아노의 B음이 공명하면 바이올린의 B음도 공명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장을 잊기란 어렵지. 그렇긴 해도 역시 덜 자란 인간은 어쩔 수 없군. 안 어울리게 웬 신파야."
"남이야 신파물에 환장하든 말든. 그리고 이런 걸 보면서 두근거리는 것도 취향이라고."
"취향 좋아한다. 찍은 사람한테 매달리지도 못하는 인간이 취향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
"누구나 짝사랑할 권리는 있는 법이야."
"웃기네. 그 시간에 좀 더 건설적인 일을 하기를 권한다. 그나저나 뭘 살 거라고?"
"등나무. 집 마당에 심으려고. 그런데 이거 묘목을 사야 하냐, 씨앗을 사야 하냐?"
"그런 것도 모르고 물건 사러 나온 네년의 유치찬란한 신파조 취향을 저주하는 바야."
"......망할 것, 그런 소리 할 거면 왜 따라왔냐."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중이다만, 불만 있으면 다시는 나한테 뭐 사러 같이가자는 소리를 하시지 말던가."
동행은 묘목, 분재, 종자, 이런 간판이 주욱 늘어서 있는 상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빨리 와, 이것저것 둘러보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나는 웃으면서 천천히 간판을 둘러보았다.
애초에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악기가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나는 한 가지 악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혹시 기회가 된다면 등나무가 자라듯, 덩굴이 얽히듯 잘 섞여서 두 개의 소리를 구분할 수 없는 연주를 해 보고 싶었고, 서정가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첫사랑이던 사람과 더 가까워질 방법은 없었고, 그녀가 가끔 보여주는 애인 사진을 볼 때마다 머리에 빨갛게 달군 철사를 하나씩 꽂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좀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으면 재미있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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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물......일리가 없죠; 덜 자란 인간의 미숙한 연애담, 정도로 생각하시면 딱 좋을 듯.
1.
아홉 살 때,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아주 더웠으며, 집까지 가려면 20분은 더 걸어야 했다. 나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생각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참 궁금했다. 그걸 알 수 있다면 죽어도 좋으련만, 죽고 난 뒤에 다시 돌아와서 내가 느꼈던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없다면-소용이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죽기 전에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일단 영혼의 유무가 제일 중요하다. 죽고 난 다음에 아무 것도 없다면, 그 아무 것도 없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아무 것도 의식 못 하게 되는 걸까 생각도 못 하고, 남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내가 못 하는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나의 싫은 점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속상해하지 않아도 되고,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나는 하던 생각을 싹 날려버렸다. 저 생각과 함께 가지를 치던 다른 많은 생각들도 뿌리채 뽑혀 사라졌다. 어제 읽었던 책에 대한 것도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본 재미있어 보이는 책에 대한 것도 저 세상에 대한 것도, 나 자신에 대한 것도.
-같이 가자!
내 어깨를 치는 손을 보면서, 처음으로 사람이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애는 우리 반 회장이었고 내 친구였고, 날 괴롭히던 내 짝을 나 대신 시원하게 두들겨패준, 정말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좋은 아이였던 우리 반 회장과 날씨에 대해서 반 애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도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이야기를 하다 갈림길에서 그 아이와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가면서 깨달았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는 절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2.
-왜 다들 뭔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걸까.
나는 그냥저냥 아무 생각 없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고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제서야 나는 학교란 데를 끔찍하리만큼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옆에서 서로서로 어긋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싫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의심스러운 소비적인 욕망 뿐인 관계는 더 싫었다. 검정고시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직장을 구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 리는 없었고, 고등학교를 싫어하듯 대학에도 직장에도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일찍 학교를 벗어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뭐가 되지 않으면.
내 말을 받아 준 사람은 나와 같은 반인 아이로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이였다.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지만 항상 웃고 있었고 농담을 즐겨서 아무도 그 아이가 주위 사물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는 인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그 아이의 그 무관심함이 좋아서 항상 말을 붙이곤 했다. 나를 귀찮아 하지 않을 만큼 조용히 다가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그걸로 끝인 사이였다.
-쟤는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데 그 이유는 대학생이 되면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믿거든.
-호오.
-살도 빠지고, 안경도 벗고, 매력적이고 멋진 여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야? 저 애가 생각하는 멋진 여자라는 건 잡지에 나오는 그런 여자고 그런 건 수도 없이 널렸어. 쟤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는 절대로 못 될거야. 항상 자신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겠지. 그리고 그만큼 애를 쓸 거야. 지금도 밥 안 먹고 감자만 먹고 있잖아 다이어트 한다고. 그렇지만 평생 자신이 바라는 뭔가는 못 될걸.
-그건 뭐냐, 노력의 댓가와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는 발언이냐.
-그게 아냐- 단지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한테 하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또 왜?
-늘 그러잖아. 뭔가 되어야 한다고. 꿈을 가지라고. 하지만 그 꿈이란 것도 웃기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말을 못 하게 되어있어. 나는 평생 책만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꿈이 아니래. 그래서 나는 늘 다른 이야기를 했어, 소설가, 선생님, 도서관 직원. 다들 그렇잖아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비슷해. 하지만 그건 되고 싶은 게 아니고,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데 이바지하고 싶은가, 잖아.
-그게 다르냐?
-그럼 같아? 같은 걸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경우는 없어. 아버지랑 아빠가 같다는 증거를 댈 수 있으면 내 말을 반박해도 좋아.
-아, 그런 건가. 그래서?
-그리고 설령 그게 자기가 되고 싶은 거라고 쳐. 하지만 그런 게 되는 사람 넌 본 적 있냐?
-왜 텔레비전이고 책이고 많이 나오잖아. 성공 사례 같은 거. 그런 건 안 되냐?
-안 되지.
-왜?
-다들 착각하거든. 저 사람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게 내가 되고 싶은 거라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게 내가 되고 싶은 그거였다고. 그래서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공부해. 그런데 말이야- 우리 학년이 800명인가 그렇지?
-음, 그 정도.
-그런데 걔들 중에서 그런 게 되거나 혹은 정말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음, 일단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사람은 50명 정도도 안 되겠지. 나머지는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다 죽을 거고. 그 중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일이나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재수없으면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르지?
-그럴 지도 모르겠네.
-그것 봐. 기껏 꿈 꾸라고 하면서 조악한 상상이나 가르치더니 결국 남는 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걸 바둥바둥 따라간 추한 흔적 뿐인걸. 학교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건 우리 생각만큼 좋은 게 아냐. 정말로 되고 싶은 게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일하면 뭐해, 그 알량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잖아. 직업이 자기 정체성이라고 믿는 거라면 관둬. 그건 자신이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흔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끊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될 지는 몰라도 자신은 아냐. 일을 그만두면 자기는 끝인데, 그런 자기정체성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면 우울증에 걸리고 회사를 그만뒀다고 자살해버리는 사람이 생기는 거야. 그 사람들은 자기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정말로 자기를 없애버리는 사람들이지. 그래도 그나마 나은 거야. 그 나머지는 그런 것도 없을지도. 그냥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거나, 혹은 잊어버리고 그냥저냥 사는 거잖아. 적당히 벌다가 적당히 쓰다가 죽어버리면 끝. 아무 것도 없는 거지.
학교는 우리를 쓸데없는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어. 대충 목표를 아무 거나 쥐어주고 그까지 가려면 이런저런 걸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건 목표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야, 시계 톱니가 되는 것보다 더 나쁘지. 그건 시계라도 되지만 우리는 이 사회를 이루는 뭔가도 못 되고 죽어버릴지도.
-그럼 너는.
점심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우리는 학교 뒷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 아이가 물었다.
-응?
-그럼 너는 뭔가 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응, 있어. 학교에서 이런 게 되라 저런 게 되라 가르치는 것 말고 정말 중요한 거. 아주 어릴 때부터, 죽기 전에 그것만은 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거.
-바보 같은 년, 그럼 그렇게 되어야지. 지금 뭐 하고 있냐?
-됐네- 너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정말 죽어야겠네 끔찍해라.
매 점심시간마다 하던 긴 이야기는 저런 식으로 끝을 맺었고 사람들은 우리가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3.
나는 정말로 뭔가가 되고 싶었다.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만 원 짜리 몇 장'으로 죽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소원은 한결같다.
한 편을 쓰고 죽어도 좋으니 보는 사람들이 다들 뭔가 팍, 하고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그런 글 한 편만 쓰고 나면 정말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지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못 남기고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안다. 나는 내가 살아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소모품으로 살다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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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4일.
퀴즈. 제 이야기를 재구성한 겁니다. 어디까지가 제 이야기고 어디까지가 제가 만든 이야기일까요~
이런 걸 쓰고 보니 스터디할 때 사소설 보면서 이게 소설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떠들던 건 별로 좋은 게 아니었군요. 소설은 소설이에요.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쓰더라도 그건 진짜가 아니니까.
여튼 소원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거지만 정말 이루어질 지 알 수 없는 거죠.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심히 회의적이고, 아마 평생 자신이 정말로 쓰고 싶은 건 못 쓰고 죽을 거라는 데 뭐든 걸 수 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 때문인지 삽질이 늘었습니다마는- 정말로 자기가 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정말로 되고 싶은 게 되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훌륭한 레콘이 되고 싶습니다. 아무리 어이없는 숙원이라도 레콘은 자기가 되고 싶은 게 되는 생물이죠. 멋진 일입니다.
49제 중 46번, Moon입니다.
(More 기능을 안 쓰고 그냥 올려버렸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달을 키우고 싶을 때는, 어항에 맑은 물을 가득 담아라. 대야도 좋고 그릇도 좋다. 여튼 넓고 넉넉한 용기에 물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달빛이 좋은 밤, 창문을 열고 창가에 물을 담은 용기를 놓아 두자.
물 속에 달이 슥, 들어온다. 혹시 바람이 불어서 물이 찰랑대면 달도 흔들거리고, 한 잔 하다가 달을 만져보고 싶어서 물에 손을 담그면 달이 도망을 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어항에 담아 놓으면, 달을 사랑한 금붕어의 이야기-엘리너 파전이 쓴 동화로 결국 바다에서 달을 보면서 애태우던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달과 같이 빛나는 은색 물고기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 여튼 그런 것도 떠올릴 수 있다.
따지지 말자. 비록 술잔에 달 띄워 마시던 조상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거라도, 하늘에 구름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달이 어항 어디에 숨었는지 통 알 수 없어도, 그리고 그 달이 어느 틈에 어떻게 사라질지 몰라도.
사실 다들 알다시피 그렇게 잡은 달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니까.
한 번만 봐 달라, 는 것이다. 말하자면.
만약 정말로 달을 키울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달에 나무를 한 그루 심어서 그 나무 옆에 집을 짓고 살았으면 한다. 어항에는 진짜 금붕어를 넣어서. 이제 달은 다 자랐으니까.'
저 이야기를 나에게 써 준 사람은 어항 하나를 나에게 남겨주고, 정말 달로 가 버렸다.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절구질을 한다는 동화는-반 정도는 사실이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라 해야 할지 지구문명의 한계라 해야 할지, 지구는 사람이 살기 너무 복잡한 별이 되었고 건물을 지어 올리고, 올리고, 땅을 파고 파고 해 봐도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다. 있는 쌀을 아껴 먹어 봐야 언젠가는 쌀독 밑바닥이 보이는 것과 같은 자명한 이치. 그리고 사람이란 열여섯 평 집에 살다 스무 평 집에서 살 수는 있어도 스물 다섯 평 집에 살다 스무 평 집에 들어가면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닌 생물이다. 개발, 발전. 지구의 경제, 사회 구조는 멈추는 것, 방향을 트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계속 뭔가를 먹어치우면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돈을 들여 우주에 위성도시를 건설하고 달과 화성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발한 건 좋았는데, 달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돈을 아무리 들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50년 전의 우리 조상들은 꽤나 고생을 한 다음에 깨달았고, 지금 달은 유형소로 쓰이고 있다. 유형수들의 손으로 달은 점점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어갈 것이고 마지막 유형수가 손에서 공구를 놓는 날, 아마 달은 신위성이라 불리게 되겠지 먼 옛날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랬듯.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공기가 희박하고 물기가 없는 흙이 버석버석 발 밑에서 소리를 내는 별에서 죽겠지. 그 땅에 묻히겠지. 그 사람이 바라던 대로 나무를 심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온전히 자신만의 달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에 남아 있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 변화가 무섭고 성장이 무섭지만 지금의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달을 키울 마음도 없었고, 지구에서 떠나기도 싫었다. 그래서 여기에 남았고, 필요도 없는 어항을 떠맡게 되었다.
어항은 여전히 창가에 있고, 물을 오래 담아 놓은 어항답게 구석에 물때가 끼어 있었다. 그 사람이 달로 가고 몇 달이 지났고 어항에 담겨 있던 물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나는 물을 더 붓지도 않았고 어항을 닦지도 않았다. 뿌옇게 흐린 어항에서 눈을 돌려 수면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이런 것만 남겨놓고 자기는 달로 가 버렸다.
어항 속에는 달도 있고 나도 있고, 그 사람도 있고 망상도, 아집도,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완벽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항을 들어 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물과 유리와 알루미늄 틀과, 세계 하나가 박살이 났다.
그 사람이 있는 달을 내 어항 속에서 키우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을 어떻게 함부로 키우겠는가. 그래서 나는 유리와 알루미늄 틀을 버리고 물을 닦으면서, 세계는 내버려두고 왔다. 나는 이대로 살다 지구에서 수명을 다하리라. 나는 어항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바다에서 달을 보면서 애태우는 금붕어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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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1일.
포르노 그래피티의 '달키우기'를 듣고 생각난 이야기......라기보다는 노래 가사 내 식으로 재구성하기;
진짜 누구 말마따나 보컬 목소리는 김수철이요, 음악은 취향에서 좀 벗어나 있지만, 가사 하나로 점수 따고 들어가는 애들이고 저는 가사에 심히 약하지요. 멜릿사만 봐도 그렇고.
이번에도 장르가 모호한 엽편이지요. 원래는 저것보다 밝은 이야기였는데 설거지하려고 보니 물이 안 나오잖아요. 결국 한-참 기다렸답니다. 수압이 약해서 물이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이야기가 저렇게 되어 버린 겁니다. 어느 집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어느 집에서 샤워를 하고 어느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 우리 집은 물이 안 나와요 으윽;;
그나저나 오늘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49제 중 33번, 편집증입니다.
하지만 편집증이랑 상관없는 글일지도......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볼 때, 여기저기 보는 데가 참 많았다. 일단 얼굴 전체적인 생김새와 인상, 몸에 얼마나 균형이 잡혀있는가 하는 것, 그리고 손과 손목.
-난 그 사람의 손을 사랑해.
난데없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
-어?
-그 사람의 손을 사랑해. 정확히 말해서, 손 끝에서 손목까지.
나는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 결국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놀라운 말이야?
-아니, 당황했다.
-뭐가, 사랑한다는 거?
-아니, 손.
-왜? 손이 어때서?
-......너 그 남자한테 그 이야기 했냐?
-했어~당신 손이 참 좋다고.
-그랬더니 뭐라던?
-웃더라.
-......다른 이야기는 안 하고?
-왜 자꾸 그래?
그녀는 평범한 아가씨. 아동용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고 있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려고 애쓰고, 가끔 야근도 하고. 쉬는 날에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부모님에게 빨리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듣는 대한민국의 스물여섯살 난 건전유쾌한 처자.
나는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말했다.
-이상하잖아.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어디가? 라는 표정으로,
-왜?
라고 말했다.
-손목이라니, 저기......변태같아.
이번엔 그녀가 마시던 차가 목에 걸린 모양이다. 콜록콜록콜록.
-변태라니 너무해! 너도 니 애인 목소리 좋다면서?
-그렇지만 목소리 사랑한다는 말은 안 했네.
-하아-참, 설명해줄게 들어봐.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내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손가락을 척, 세우고,
-돈 보고 결혼한다고 그러면 누가 뭐라고 그래?
-음, 뭐라고는 그러지.
-이상하다고 그래?
-아니-그럴 수도 있다고들 생각해. 그런데?
-그런데 손목이 뭐가 어때서? 돈보다 훨씬 중요한 거잖아. 너 손 없이 반지낄 수 있어?
-궤변이야, 궤변. 반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거랑 이게 뭐가 달라?
-보를레르던가.
난데없이 세기말에 살았던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자, 막 열변을 토하려던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응?
-나는 그녀의 몸에 걸린 보석목걸이가 좋아요 어쩌구 하는 프랑스 시가 있다던데.......아 보를레르 맞을지도? 여튼 그 시에서 그 사람은 여자를 찬양한 게 아니고 보석을 찬양한거래.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없고 물건만 있는 거지.
-그래서?
-너도 그거 아냐?
칫, 하고 그녀가 혀를 찼다. 아마도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아무튼 그녀가 가진 사람의 손과 손목에 대한 기호는 가히 편집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너 어딜 보냐?
그녀는 내 손목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너.
-아니, 니 손목도 상당히 예쁜데, 뭔가 좀 아니거든. 역시 난 그 사람 손목을 사랑하나봐.
-이 여자가 정말!!
결국 나는 웃고 말았다.
어쨌건 그 대화가 있은 며칠 뒤에 그녀가 나에게 그 남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안녕하세요.
나에게 인사를 하는 남자는 나나 그녀보다 한두살 많을까,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정장에 녹색 넥타이가 너무나 평범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키는 조금 크지만 몸이 많이 여위었고 웃을 때 눈 가에 잡히는 주름이 선량해 보이는 것을 빼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내 친구. 전에 이야기했지? 학교 선생님이고. 이 쪽은 전에 이야기한 그 사람. 서로 인사 해야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 언뜻 보니, 손목에 상당히 멋지게 생긴 시계가 있었다. 아마도 그 손목을 좋아하는 그녀가 사 준 것이겠지. 실제로 손목은 튼튼한 뼈대에 적당히 근육이 붙어서, 꼭 잘 자란 나뭇가지마냥 튼튼하고 우아해 보였다. 그 손을 휘저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그는 대지에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나무 같았다. 그 손목에 매달린 은색의 단순한 시계는 그녀의 손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는 그의 손목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눈으로 그 손목을 꼭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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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시즘 : 인공물 또는 간단히 가공된 자연물에 주력(呪力)이 깃들인다고 믿고 이를 숭배하는 것. 영물숭배(靈物崇拜)라고도 한다. 숭배 대상은 동식물, 금석류(金石類), 주문(呪文), 주부(呪符), 주약(呪藥), 주구(呪具) 우상과 상징물 등이다. 주물을 나타내는 페티시(fetish)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라는 뜻의 팍티티우스(factitius)에서 유래했으며, 직접적으로는 포르투갈어인 페티소(fetico;부적·주물이란 뜻)에서 파생했다. 주물숭배의 대상인 페티시는 처음에는 인공물만을 가리켰으나 자연물에도 적용하게 되어 그 개념이 애매하게 되었다. 또 사령(死靈)이나 정령(精靈) 등 인격적인 존재와 결부시켜 숭배하는 것을 영물숭배, 비인격적 힘 때문에 숭배되는 것을 주물숭배라고 구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이 양자를 포함해서 주물숭배 또는 페티시즘이라 부르고 있다.
변태의 사전적 의미는 이상 성욕자. 흔히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특정한 물건이나 상황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페티시즘(fetishism), 채찍·촛농 등으로 상징되는 SM(Sado-Masochism·가학 피학 성애 증후군), 동물과의 성적 접촉을 통해 흥분을 느끼는 ‘동물애호증(zoophilia)’ 등을 ‘변태’라고 부른다. ‘분변애호증(corophi-lia)’이나 목을 졸리는 것을 즐기는 ‘저산소애호증(hypoxyphilia), ‘시체애호증(necrophilia)’처럼 좀더 널리 ‘변태’라고 인정받는 성적 취향도 있다. (계속)
정신분석학자들은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성행위를 ‘도착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인격 발달 과정이 초기단계인 구순기나 항문기에서 멈췄기 때문’이라거나 ‘아버지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가 있는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성폭력이나 포르노 영화 등으로 인한 충격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 나타난 정신질환의 일종이므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 상의 만화나 애니 팬 사이트 등에서 자주 쓰이는 펫치-라는 말은, 전과 다르게 취향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안경 펫치라면 안경을 쓴 캐릭터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다. 흑발 펫치라면 흑발 캐릭터에게 좀 더 점수를 주고, 다른 캐릭터들보다 좀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페티시즘이나 로리타 컴플렉스 같은 성적 의미를 함유한 단어가 가볍게 쓰이고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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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나온 '페티시즘'이라는 말을 보면서 그녀를 떠올렸다. 이미 1년 전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해서 내년 봄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아마 그녀의 남편은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겠지. 그녀는 그 남자와 어떤 방법으로든, 죽거나, 혹은 무슨 다른 일이거나 여튼, 헤어지는 날까지 그의 손목을 놓지 않을 것이다.
-뭐 해?
-아, 별 거 아냐. 그냥 친구 생각.
-그런 책 읽으면서 친구 생각해? 취미도 참.
나의 애인은 나와 동갑이고 나는 잘 모르는, 기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 작년에 만났 사람과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아마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할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스물일곱 살이고, 집에서는 슬슬 시집 좀 가라는 잔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친척들은 가끔 선 보라면서 이런저런 꼬리표가 붙은 남자 사진을 들고 온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고, 결혼할 나이에 만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통감하고 있다.
나는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옆에 있는 사람의 팔을 톡톡 건드렸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페티시즘은 변태성욕일까?
-페티시즘? 글쎄.......음, 여자애 속옷 보면서 딸딸이 치는 남자는 확실히 변태라고 부를 수 있겠지.
-그런 거 말고 그냥-음, 이 책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대. 이 말의 뜻을 넓게 써서, 그냥 취향을 펫치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 그런가? 하지만 일단 성적 의미가 들어있는 단어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어디 보자......음, 흑발 펫치? 흑발이 아니면 안 선대?
-그런 거 아냐~당신이 더 변태 같아. 정말....... 내 친구 하나는 지금 사는 남자, 손목 보고 반해서 살거든. 그런 것도 변태일까?
-뭐 어때? 취향이란 게 있잖아. 당신이 아까 이야기한 그런 거 아닐까?
-아니, 좀 달라. 조금 더 끈적끈적한 것도 같고, 기묘한 기분이야 하여튼.
-그런가.......당신은 내 뭘 보고 나랑 사귀고 있는데?
-음, 글쎄?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이 사람을 고른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나즈막하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그녀를 떠올렸고,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떠올렸다.
-안 바쁘면 그만 자자.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서 목덜미 안에 들어왔다. 간지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별로 좋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한 기분이다. 가끔은 귀찮기까지 하다.
-피곤해 피곤해~ 도대체가 말이야 당신은 내 몸 보고 나랑 사귀는 거 아냐?
-글쎄-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뭐 어때? 상관없잖아.
-상관.....없나?
-당신 친구도 잘 살고 있다면서, 그럼 됐지.
-알았어 알았어. 대신 이름 불러주는 거 잊지 말고.
-당신도 참.
그는 쿡쿡 소리내어 웃었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섹스 도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이 사람의 목소리를 나는 정말로,
소리를 잡아매어 놓고 평생 듣고 싶다고 생각할만큼 사랑한다.
목소리에는 달아놓을 시계가 없는 게 유감일 정도로.
이제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손목은 그 사람이 될 수 없고 목소리도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법. 하지만 그냥, 그런 게 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뭐가 어떻게 되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목이면 어떻고 지갑이면 어떻고 또 다른 뭔가면 어떤가. 아무 상관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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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를 쓰고 싶었던 건지 저도 잘 몰라요, 으하하.
원래 그녀는, 손목이 아니고 머리카락 펫치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머리카락을 묶는 걸로는 부족한 것 같고......또 평범한 직장인이 머리 기르는 게 용서가 되는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노예의 표시가 발목의 발찌라는 데서 착안한 펫치입니다.
목소리 펫치인 주인공은, 저랑 상관없는 인물입니다. 사실은 저를 가지고 쓰고 싶었습니다만, 제 펫치도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에요. 모에면 모를까 펫치는......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흑발펫치인 것도 같고 목소리펫치인 것도 같고, 수염 펫치인 것도 같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닐지도 모르죠~)하지만 제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말로 자기 이름 부르는 게 좋으냐 아니냐는 저는 잘 몰라요, 혹 나중에 기회가 되거든-실험해보고 다시 이야기해드리겠습니......(쿨럭;;)
식중독으로 며칠을 앓고 나니 몸에서 지방이란 지방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남은 것은 앙상한 가죽과 뼈 뿐이었다. 몸 여기저기엔 빨간 상처들이 흉하게 드러나 있고,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상처도 숱하게 있다.
식중독으로 앓은 게 문제인건지, 상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지 상처는 며칠을 자고 난 다음에도 전혀 낫지가 않는다. 여전히 빨갛고 건드리면 아프고, 피가 나고, 심하게는 곪는 것까지 있었다. 손을 대면 하얀 진액이 끈적끈적 묻어났고, 점점 심해졌다. 팔을 구부리자, 팔꿈치 쪽에 앉아있던 딱지가 탁, 터져서 피가 났다. 비릿한 냄새가 싫었지만, 방 안은 온통 상처에서 나는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나갈 곳도 없고 나갈 수도 없다.
-점점 추해지고 있어.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완전히 돌아온 건 아냐. 추해지고 있어. 방 안에 가득찬 이 냄새랑 똑같은 거야. 어디에 가도 이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상처도 어쩌면 계속 남을지도 몰라.
혼자 중얼중얼거려도 냄새도 상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상처는 도대체 언제나 나을려나. 나날이 상처의 숫자는 늘어가고, 그에 비례해 허기는 더 심해진다. 먹을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수가 없다. 식중독에 걸렸으니까. 하지만 앙상하고 상처투성이긴 해도 아직 목숨은 붙어있다. 나는 무엇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 걸까?
-결국 제 살을 먹는 건 미친 짓이야.
거울에 비친 나는 얼굴과 목을 제외한 모든 부위에 둥근 모양의 상처를 달고 있다. 그러고보니 잇자국을 닮았다. 그래서 이런 상처가 났구나.
나는 내 살을 갉아먹다 식중독에 걸렸다. 제 살을 뜯어먹고 온전하기를 바랄까마는, 그래도 최소한 배는 덜 고플거라고 믿었다. 기묘하게도 그렇게 살을 갉아먹었지만 그런 식으로 단백질을 섭취해도 새살이 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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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던 스타일이 아니라 솔직히 좀 꺼림칙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도대체.
49제 중 10번, 미안합니다.
.......이런 거 올려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걸로 끝.......;;
......낼 정도로 좋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아빠들 미워!"
라고 외치며 뛰쳐나가는 어린 딸의 뒷모습을 보며, 두 남자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막 입구에 막 들어서려던 남자는 천막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남자에게 물었다.
"왜 저러는 거야?"
"벌써 저럴 나이냐, 내 참."
천막 안에 있던 남자 라스는 질문을 회피했다.
"여섯 살이면 저러고 남을 나이야. 그건 그렇고 아빠들 미워-라니, 왜 나까지 밉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이야기 좀 해 주겠나?"
"......로탄."
"왜 그래? 나도 저 애 아빠잖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딸이 아빠들 미워! 라는데 이유 정도는 알아야지."
"말 많은 건 알겠는데, 그만 해라. 우울하다."
로탄과 라스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일의 발단은 우연히 유안이 마을 꼬마들의 놀림을 들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빠, 정말로 우리 엄마 맞아 죽었어?"
천막 안에서 내다 팔 약재를 다듬고 있던 라스는 천막 입구에 서서 씩씩거리고 있는 유안을 발견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누가 그래?"
"저-기 마을 애들이 그랬어. 엄마 정말 맞아 죽었어?"
"유안."
라스는 손을 멈추고 딸을 쳐다보았다.
"남의 말에 신경쓰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 녀석들은 우리랑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잖아."
"그래도, 아빠들은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 없잖아. 엄마 정말 맞아 죽었어?"
"아빠 지금 바빠."
"손만 바쁘잖아? 응, 정말 엄마 맞아 죽었어?"
"로탄한테 물어봐."
"로탄 아빠한테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뭐. 아빠아, 응?"
"그래서, 그 어린 것한테 조용히 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그렇지만-"
"라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번엔 네가 심했어. 아직 여섯 살이고 엄마가 보고 싶을 나이인데, 당연히 그런 게 궁금하겠지. 더군다나 미첼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야."
"애한테 그런 걸 어떻게 이야기하나!"
말수 적기로 유명한 라스는 아마 딸에게 제국의 역사와 부족의 역사가 얽히고 섥힌 그 복잡한 문제를 설명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리라고 로탄은 막연히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딸은 엄연한 부족민이었고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유안은 미첼 딸이잖아, 라스."
"우리도 미첼 남편이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미첼이 맞아 죽은 건 사실이지 않은가? 난 그런 거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말 하고 싶지도 않아."
말 많기로 유명한 로탄도 그 순간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못 잊고 있군?"
"그걸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가까스로 라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꼭 쥐고 말할 수 있었다.
"4년이야, 4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 때 죽은 사람은 우리 부족만 137명이고, 그 때 가족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몇 명인데? 당장 우리만 봐도 어떤가? 지금 남은 부족민이라곤 우리와 다른 가족 둘 뿐이잖은가. 이건 멸족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어. 미첼 이야기를 하면 우리 부족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라고? 로탄 넌 그럴 수 있냐?"
로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랬지. 아직도 끔찍한 기분이니까."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진정해라. 누군들 슬프지 않겠어. 지난 일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리고 누가 애한테 그런 어려운 이야기 해 주랬냐? 그것도 지금 그런 이야기를?"
"그럼 뭐라고 설명해주면 되냐?"
라스는 핏발 선 눈으로 말했다.
"뭐- 일단은 달래줘야지.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만 이야기해 주면 돼. 어떻게 죽었냐고 물으면 싸우다 죽었다고 하면 되는 거고. 다 사실이잖아? 그리고 조금 더 커서 사람 말을 제대로 알아먹을 수 있는 나이 되면 설명해주자. 부족의 어두운 역사를 설명해 주는 건 언제 해도 늦지 않아. 어쩄거나 자기가 슬프다고 애한테 화풀이 하는 건 옳지 않아. 데리러 가자."
라스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로탄 너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나."
"음, 우리가 싸우면 유안이 걱정한다고. 어려도 눈치 하난 빠르잖아?"
"쳇, 그러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애 친아버진 너야."
라스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로탄은 피식 웃으며 친구이자 연적이며 동시에 가족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소리,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런 말 하지 마. 그 애는 우리 딸이야. 자- 가자. 딸 찾아와야지?"
두 아버지는 아이를 찾으러 천막 밖으로 나갔다.
유안이 있는 곳을 찾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 그 아이는 혼자서 천막 뒤에 있는 우물가에 앉아서 땅이 기괴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혼자 중얼대며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안은 혼자 우물 가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유안?"
로탄이 먼저 아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 아빠?"
"뭐 그렸어?"
땅에는 기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의 형상-머리와 팔과 다리가 붙어있으므로 사람이라고 불러야겠지만, 로탄은 그것이 머리와 팔과 다리가 있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을 한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컸다. 작은 것은 큰 것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응, 이거 나고 이거 라스 아빠. 내가 미안합니다- 하는 거."
로탄은 유안을 멍하게 바라보았고 아이는 아빠가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로탄 아빠가 그랬잖아. 남이 나 때문에 슬퍼하면, 꼭 사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도 사과할거야."
".......아빠가 슬퍼하는 걸로 보였어?"
라스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한참 후에 말했다. 유안은 고개를 위로 젖히고 라스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응, 조금."
"왜 그런지는 알아?"
"아니, 몰라. 그래도 슬픈 건 알아.그러니까 아빠, 미안. 앞으론 안 그럴게."
"유안-"
로탄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말수 적고 무뚝뚝하기 그지 없지만 사실은 섬세한 성격인 라스는 그만 어린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하지만 라스는 울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됐어, 사과는 무슨? 들어가자, 저녁 먹을 시간이야!"
솔직한 딸과 솔직하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눈물 많은 아버지. 두 아버지는 양 쪽에서 딸의 손을 잡고 천막으로 갔다. 딸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둘이서 유안에게 엄마 이야기를 꼭 해 줘야겠다고 로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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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라고 해봐야, 음, 2003년 7월 정도로군요. 유안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올라오겠지요.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있답니다.
유안의 부족은 유목민이었습니다. 일처다부 풍습이 있지요. 뭐 지금은 없는 부족이지만요.
2004년 1월 16 일
조금씩 썼던 글을 올릴까 합니다.
49제라고, 아마 약재상 2호를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습작 수준의 글이라 별로 볼 건 못 되지만, 이런 거 쓰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도 해 보고 싶고, 이런 부분은 이렇게 고쳐 봐라, 이 글 주제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것도 들어보고 싶고요. (사실 칭찬 듣는 게 더 좋은 인간이지만 그런 거 들을 수준은 못 되니까요.......)
지금까지 쓴 건 얼마 안 되지만 글 쓰는 연습도 할 겸 해서요. 그러고보면 약재상 1호점은 팬워크/창작작문 사이트였지요.......창작글은 윈디 언니 것 뿐이었지만. 결국 제 글은 하나도 올리지 못했어요. 이번엔 좀 열심히 해야죠.
01. 불꽃놀이
02. 전화
03. 솜사탕
04. 가정(if)
05. 동료
06. 모자
07. 15년
08. song
09. 유리잔
10. 미안합니다
11. 수신자부담
12. 졸업
13. 묘지 앞에서
14. 홈페이지
15. 공주님
16. 할머니
17. 새벽 3시 반
18. 장마
19. Fantasy
20. 발렌타인 초콜릿
21. 맥주
22. 소꿉친구
23. 쌍둥이
24. 기면증
25. 푸른색 원피스
26. 명동
27. 제야의 종소리
28. 엘리베이터
29. 시한부인생
30. 통학버스
31. 기차여행
32. 만우절
33. 편집증
34. 이방인
35. 열대야
36. 식중독
37. 액자
38. 백야
39. 제사
40. 서점
41. 거울
42. 말
43. White
44. ID
45. 기말고사
46. Moon
47. 피아노
48. 소원
49. 동그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