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가리지도 않습니다. 수치도 모르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게 전부 그레이엄 때문입니다. (응?)
선영 님이 쓰신 글이랑 모 처에서 록온 묵주반지 소재로 쓰신 글 보고 삘 받아서 이렇게 되어버렸답니다.
세츠나가 14세 정도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따로 떼서 써야 할 글인데 두 개를 묶었더니 주제가 애매모호합니다 OTL
......다른 분들이 쓰신 거 보면서 만족하고 살라는 하늘의 뜻인가요 흑.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예수님 또한 복되십니다.
머리에 하얀 베일을 쓴 여자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녁종이 울리는 걸 보니 삼종기도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성모상과 종이 있으면 여기는 성당이 아닌가. 어린 아이들도 종이 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성호를 긋고 있었다. 접선이 끝났으면 테러리스트답게 후딱 귀환할 것이지 어느 틈에 이런 곳으로 들어왔는지. 게다가 이런 이상한 골목-조용한 주택가를 이상하다고 부르면 온 세상이 테러리스트니까 그런 소리나 한다고 비웃겠지만 접선장소로는 확실히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록온의 귀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나.
-아, 아니.
발걸음이 멈추어져 있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니 수동형이라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옆을 보니 세츠나가 무표정한 얼굴에 참 이상한 일도 다 보겠다는 의문을 담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무의식중에 성호라도 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수치심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야, 여기 성당인가 봐. 성당은 처음 와 보는데.
알렐루야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당인가. 그러면 여기는 기도하는 곳이로군.
세츠나도 성당은 처음 와 보는 듯 했다. 테러리스트니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크리스트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태생에 아예 거리감으로 치면 몇 억 광년은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니 성당을 처음 보는 것이겠지. 록온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크리스트교, 라는 느낌이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분명히 이렇게 조용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분위기는 잘 경험해 보지 못 한 것이리라. 알렐루야는 아예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건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세츠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신기한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구나. 록온은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 좀 들러서 쉬었다 갈까? 5분 정도만.
-찬성. 시간도 아직 있으니까.
알렐루야가 얼른 찬성했다. 성당이 신기한 듯 했다. 록온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알렐루야가 주저없이 그 뒤를 따랐고 세츠나가 멈칫 하다가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인 듯 스테인글라스에 세월의 무게가 묻어났다. 용케 오랜 세월 버텼구나. 록온은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성모마리아를 표현한 스테인글라스를 빛이 통과해 바닥에 일그러진 무늬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몇 천 년을 싸워서 이루어낸 세계종교를. 물론 종교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 한 예로 이 아이들이 지금 이 곳에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예쁘네.
스테인글라스에 노을이 비치자 복도가 색색으로 물들었다. 붉은 색을 띤 바닥을 보며 알렐루야가 말했다.
-그렇지? 세츠나, 너도 감상 한 마디 정도는 남겨라.
-그런데 마리아란 뭔가?
기껏 말을 걸었더니만 세츠나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마리아? 아까 사람들이 외우던 게 성모송이었지. 세츠나에겐 크리스트 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지만 자세한 것은 모른다. 그저 하느님과 독생자 예수에 대한 것 정도일까. 록온이 설명했다.
-마리아란 신의 어머니야.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다고 하지.
-그러고 보니 신을 낳은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세츠나는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이슬람교에는 신이 여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없었던가, 하며 알렐루야는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모님이라니 굉장히 자비로운 분이실 것 같네.
애초에 어머니고 아버지고 있지도 않았던 알렐루야지만 어머니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안다. 유독 마리아상 앞에 머리를 조아린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한 답을 내놓자 세츠나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리스트교의 신은 재미있다.
-어떤 점이?
-신이 인간으로 강림하자 인간이 신을 십자가에 매달더군.
-세츠나, 너무한다.
지극히 신성모독적인 요약에 지나가던 사람 몇이 발걸음을 멈추었고, 세츠나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주위를 쳐다보았다. 알렐루야는 사레라도 들렸으면 했다. 그러면 저 애가 이 기막힌 심정을 이해하련만. 얘한테 교리공부를 시킨 건 누구냐, 스메라기 씨? 아니면 만에 하나, 티에리아? 어떻게 교리를 요약하면 저 지경이 되는 겁니까.
하지만 의외로 록온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래, 인간이 신을 십자가에 매달았어.
-어째서 그런 짓을 했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서?
-글쎄…….
록온은 말끝을 흐리고는 계속 걸었다. 알렐루야는 록온의 뒤를 얼른 따라갔다.
-록온. 거기선 설명을 제대로 해 줘야지!
-아니 난들 뭐 제대로 알겠어? 넘어가, 넘어가.
어린아이한테 설명을 그렇게 해 주는 법이 어딨냐고 물어도 록온은 웃으면서 나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런 곳이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데.
-그렇게 보였어?
알렐루야가 무심코 뱉은 말에 순간 록온이 조금 굳은 것을 세츠나는 보았다. 아까 성당 앞에서부터 록온이 평소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역시 이 종교는 록온에게 뭔지는 몰라도 싫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세츠나는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어? 어? 그래 뭐.
알렐루야가 잠시 내가 뭘 잘못했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세츠나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며 흘끗 본 바로는 알렐루야는 태평한 얼굴로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록온은 표정을 잘 감추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평온했다.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당을 지나는데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문을 들은 세츠나가 중얼거렸다.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세계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말이겠지.
셀레스티얼 비잉. 천상의 존재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긴 애저녁에 글러먹은 주제에 목표만은 이상향인 그들은 참으로 태평하게도 중얼거렸다.
-수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이 종교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선 많은 피가 필요했던 건 사실이야.
록온이 말을 받자 세츠나가 록온을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도 하면 된다. 우리의 무력개입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것이 셀레스티얼 비잉 아니었나.
록온이 순간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세츠나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진지했고, 록온은 잠시 웃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그냥 손을 세츠나에게 뻗었다.
-세츠나.
록온이 세츠나의 이름을 부르자 세츠나가 록온을 쳐다보았다. 록온은 그에게 한 발짝 걸어가서 세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나.
-아니 그냥. 앞으로 형님이 할 일이 없어지면 심심할 것 같았는데 아직 그건 기우인 것 같아서.
세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록온은 키들키들 웃었다.
-자기자신 보고 형님이라고 하지 마.
어린아이 취급에 세츠나가 발끈했고 알렐루야가 웃으며 세츠나를 달랬다.
-에이 두 사람 참 사이 좋아보이는데 뭐.
록온은 아무 말도 없이 세츠나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당을 나왔고 CB로 돌아갔다. 아무도 그 날 있었던 일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록온은 종종 웃으며 그 날 일을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배려해준 동지와 자기들이 걸어갈 험난한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어린 소년이 한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리고,
지상에서 천국을 보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 천상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록온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지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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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인생만 나락이지 말입니다 세츠나 F 세이에이.
천상인들에 이름은 천사. 이오리아 슈엔베르그도 참 부끄러움을 모르더군요. 민망하지도 않나. 아무튼 세츠나는 건담교의 교리 빼고는 종교에 무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록온은 집안 대대로 카톨릭 신자였음이 틀림없고요. (아일랜드 사람이라니까요!) 어려서 교리문답 좀 잘 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성경암송대회 같은 거 나갔을지도 몰라요! 복사도 해 봤을지도 모르죠. 견진성사 받기 한 달 전에 테러를 당했다 이런 설정도 좋을 것 같고요. 알렐루야? 중국과 러시아가 합작해서 만든 인혁련에 종교 따위 있을 리 없잖습니까 마르크스 가라사대 종교는 아편이랬어요. (그리고 분명히 북한은 인혁련이고 남한은 유니온일 겁니다.)
티에리아......에게 종교가 있을 리 없죠. 쟤한테 종교란 건 가족만큼이나 생소한 개념일 겁니다.
선영 님 말씀대로 록온이 작정하면 티에리아는 열성신도가 될 수 있다에 한 표 걸 수 있긴 합니다, 물론. 알렐루야도 열심히 다닐 테고 세츠나는 주일학교에서 달란트 모아 건담 준다 그러면(교회 주일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저렇게 굳어진 것은 동네 교회가 저랬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당은 좀 다르다고요? 넘어갑시다.) 분명 가고 남습니다.
티에리아는 베다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느라 못 나왔습니다. 미안 티에리아, 그런데 누나는 다른 애들도 다 쓰기 힘든데, 유독 너는 더 어렵단다. 이해해 주렴. (티에리아 이야기 잘 쓰시는 분 부럽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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