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쓰는 원인이 뭔지 알았으면 부지런히 뭐든 써야죠. 재주가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며칠 전 웹서핑을 하다 번뜩 떠올랐습니다. 물론 악의 쌍둥이들이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체인질링? -응, 아일랜드 전설인데 요정이 와서 아이를 바꿔치기 하는 거야. 엄마아빠가 나갔다 와 보면 집엔 요정의 아이만 남아있대. 갈색머리카락을 목 뒤로 쓸어넘기며 남자는 말했다. 소년은 그 말을 하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뜬금없이 말을 꺼낸 남자는 소년의 얼굴을 빤히 마주보았다. 도대체 저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뭘까. 바로 질문을 하는 대신 소년은 말을 받아쳤다. -왜 바꾸는데? -모르지. 아이가 탐이 났으려나. 말을 꺼내놓고 딴청을 피우기를 잘 한다. 저 남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겉만 봐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소년은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바뀐 아이는 어떻게 되지? -가족들이 눈치를 채고 수를 써서 아이를 데려오기도 하고 가끔 점잖은 요정이 아이를 안고 찾아오기도 하지. -요정의 아이인지는 어떻게 아나? -아이가 아주 못생겼다고들 하더라. 아니면 말을 걸어보면 대답을 한다네 글쎄?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게 말을 하면 어느 엄마가 안 놀라겠냐고.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옛날 이야기를 하듯 소년을 향해 말을 건넸다. 별 거 아닌 전설일 뿐이다. 저 남자의 고향이 아일랜드라고 했던가. 그러나 남자의 녹색 눈은 소년의 등 뒤 쪽의 무언가를 보는 듯, 시선이 붕 떠 있었다. -그런가. 그런데 그 이야기는 지금 왜 하지? 누구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인지, 왜 지금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소년은 궁금해졌고, 남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글쎄, 갑자기 생각이 났어. 어째 기분이 묘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 아무 일도. 그런데 갑자기 이게 생각나더라. 남자는 시선을 먼 곳에 준 채로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서 마치 석고조각상 같은 얼굴이었다. 소년은 남자의 이마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을 뻗어 넘겨주었다. 머리카락 그림자가 사라지는 동시에 남자가 눈을 깜박였다. -안색이 좋지 않아. -그치? 남자는 파리한 얼굴로 억지로 입끝을 당겼다. -참 이상하지? 그런데 그 이야기가 생각난 후로 기분이 계속 이러네. -아까 그 이야기 말인가. 소년은 남자가 두서없이 꺼낸 이야기를 떠올렸다. -누군가 해 준 이야긴가? -아니, 생각이 안 나. 남자는 소년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가 드물게 보여주는 열의에 조금 놀란 탓인지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어려서 잃어버린 형제라도 있었나? -알잖아, 나랑 여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이 없어진 건 다른 일이었고.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소년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이 남자는 테러로 가족을 잃고도 오늘 이 시간까지 자신의 앞에서 한 번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뭔가 정말 큰 일이 있는데 본인도 그게 뭔지 모르나 보다. 소년은 남자의 등을 한 번 가볍게 두드렸다. -라일,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좀 쉬어라. 정신적인 문제라면 스트레스가 원인일지도 몰라. -응, 고마워, 윌. 라일 디란디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상냥한 후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의 본함선이 붕괴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어린 소년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어린 소년에게 며칠 전 읽은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체인질링이라고 그런대. -근데 엄마가 어떻게 자기 애를 못 알아보지? -그러니까 요정이 하는 짓이지. 그런데 라일, 내 생각에 진짜 못된 요정은 따로 있는 것 같아. 이야기를 듣던 어린 소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요정인데? -아이를 아예 데려가버리는 거야.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애 엄마가 금방 알텐데? 바보도 아니고? -아냐.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아무 것도 모르는 거야. 이야기를 하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가장 질이 나쁜 시도라고 말하려는 듯. -몰라? -응. -왜 모르는데? -야 그래서 아까 그랬잖아, 요정이 하는 짓이라고. -근데 어떻게 모르는 거야? 애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거야? -응.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잊고 그냥 사는 거야. 뭐가 없는 것 같이 허전한데 그게 뭔지 모르는 거지. 그래도 그냥 까맣게 잊고 살아. 그러다 가끔은 뭔가 떠오를지도 모르지. 지나가다 어린애 옷을 보거나, 유모차를 보거나 하면 잊었던 뭔가가 기억날락 말락 하는 거야. 그런데 아무 것도 떠오르지는 않고, 마음만 답답한 거지. 이야기를 듣던 소년은 이야기를 하던 소년을 째려보았다. 이 자식, 요새 뭘 읽고 다녔길래 이딴 이야기나 쓰고 있는 거지? -야, 닐. -왜, 라일? -너 어디 가서 나랑 쌍둥이란 소리 하지 마라. 나도 너 같은 놈으로 보일까봐 겁난다. 닐은 라일의 옆구리를 한 대 주먹으로 쳤고 라일은 닐의 가슴팍에 발을 날려주었다. 이게 지금 해 보자는 거냐며 둘은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곧 여동생이 뛰어들어와 엄마, 오빠들이 또 치고 받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곧 뛰어올라온 어머니의 손에 각각 한 귀를 잡힌 채 끌려간 쌍둥이는 왜 싸웠냐는 질문에 싸운 건 기억 나는데 이유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 한 대씩 쥐어박혔고 쥐어박히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