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온 스트라토스. 잘 부탁해.
처음 만나자마자 붙임성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것이 록온이었다. 자기 이름만 말하고는 꼭 시험지를 채점하는 시험관 같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던 티에리아와 먼저 손을 내밀었더니만 내민 손 무색하게 제 이름만 말하고 싹 돌아선 세츠나의 반응 탓에 희대의 테러리스트가 되려면 사교성은 부족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혼자 고민했던 알렐루야에겐 또 새로운 인간형이 하나 추가되었다. 사교적인 테러리스트.
-알렐루야 합티즘입니다.
말이 끝나자 사교적인 테러리스트는 손을 내밀었다. 알렐루야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 보았다. 앞으로 자주 보아야 하는 사람과 악수를 해 보는 것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몰라 손을 잡고 가만히 서 있자 록온이 잡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런 악수는 처음이라 조금 놀란 알렐루야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록온이 손 너머로 전해지는 긴장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손을 놓으며 웃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잘 해 보자, 알렐루야.
서글서글한 사람이라는 것이 알렐루야의 록온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각 기체의 마이스터들의 훈련을 모니터하는 일이 끝나자마자 마이스터들은 건담에서 내려 제각각 사라져버렸다. 모니터 너머에서 마이스터들을 보고 있던 선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로 안도의 한숨은 아니었다.
-베다는 무슨 기준으로 마이스터를 고르는 걸까요?
-베다의 의지겠지요.
크리스티나가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던진 질문에 펠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로만 대답했다.
-그건 그런데, 쟤네가 한 팀이 되어서 잘 해나갈지가 영 의문이라서.
-크리스티나 너 저번에 다들 꽤나 미남들이라고 좋아하던 애가 며칠 만에 말 바꾸는 거 아냐.
스메라기가 웃었다.
-스메라기 씨, 마이스터들이랑 밥 먹어본 적 없으시니까 그런 거예요.
크리스티나가 스메라기 쪽으로 몸을 홱 돌리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좀 늦게 식당에 갔더니 세츠나랑 알렐루야랑 티에리아가 앉아있는 거예요, 자리는 걔네들 사이에 빈 자리 하나밖에 없고. 밥 받아서 갔는데 세상에 얘네 정말 인사도 하나 없이 먹던 밥만 계속 먹는 거예요. 거기다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숟가락이랑 입만 움직이는데, 먹다 체할 뻔 했다니까요. 자기들끼리도 한 마디도 안해! 그래서 싸웠냐고 물어보니까 그것도 아니래요. 그런데 왜 그래요 대체? 저 나이 어린애들은 붙여놓으면 알아서 친해지는 거 아니에요?
리히터도 끼어들었다.
-그뿐이 아니에요. 어찌나 서로 냉랭한지, 제대로 말 한 마디 나누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아직 애들이라 그렇겠지. 있다 보면 다 친해지게 되어 있다고.
-저희 훈련 시작한 지가 3개월인데요.
리히터가 대답했고 답이 궁해진 라쎄가 말을 돌렸다.
-으음, 그래도 치고받지는 않잖아?
-차라리 치고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면 좀 친해질 수 있잖아요.
싸운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 예의를 차리며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3개월이 지나도 티에리아는 함내 선원 전원을 성과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고, 안 그래도 된다는 스메라기에게 근무원칙 같은 것을 들먹이며 냉정하게 굴었다. 세츠나는 아예 나는 상처받은 10대요 사춘기소년이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거기에 알렐루야는 아예 대화에 끼는 법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선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나마 나이가 가장 많은 록온이 있을 때는 분위기가 그럭저럭 찬 바람은 안 도는 정도까지는 가능했지만 록온이라고 네 명의 사이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일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적응해간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뭐랄까 조금씩 조금씩 서로 적응은 해 가고 있는 것 같잖아요?
리히터가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을 돌렸고 스메라기가 이야기를 정리했다.
-하긴 애초에 우리들이 친분관계 때문에 모인 것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들 주제에 친분은 무슨 친분인가 싶기도 하다. 이야기는 관두고, 아까 훈련 자료 한 번 줘 보겠어?
그 때 해치가 열렸다.
-알렐루야?
-아 저기, 음, 안녕하세요.
알렐루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이럴 때 인사말은 뭐라고 하는 게 좋은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 다 끝나신 것 같아서 왔어요. 여기, 아까 찾으시던 시뮬레이션 자료요.
-뭐야, 다 듣고 있었냐?
-네.
소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파일을 스메라기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럼 가서 쉬겠습니다.
-알렐루야.
-네?
스메라기는 알렐루야의 얼굴을 살폈다. 참으로 평온한 얼굴이고 자신을 왜 불러세웠는지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스메라기는 전부터 궁금했지만 물어보나마나 답이 뻔한 것을 물어보고 말았다.
-혹시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어?
-네? 없는데요. 그런데 왜 물으시나요?
-아무 것도 아냐. 그럼 가서 쉬어.
해치가 열리고 알렐루야가 나가자마자 스메라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저렇게까지도 못 알아듣는데 면전에 대고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이라는 소리를 해 줄 만한 인물도 주위에 없었으리라.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물론 건담 마이스터에 관련된 거 일급보안사항이긴 한데, 저 애 말이야.
-알렐루야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안 해 봤다, 그런 분위기 아냐?
-자자, 잡담 금물. 더 이상 이야기하면 곤란해요.
건담 마이스터들을 뽑을 때 인성은 고려사항에 들어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불협화음의 화신 같은 녀석들이 세 명이나 모여있을까. 불협화음도 둘 이상이 모여야 나는 거라지만 저 셋은 혼자만 있어도 능히 주위와 불협화음을 낼 수 있는 재주를 갖춘, 말하자면 기인 같은 존재들이었다.

-쟤들 왜 저러냐?
-그, 글쎄.
록온이 기체적응훈련을 마치고 마이스터 세 명이 모여있는 곳에 와 보니 아까까지 거기 있다던 세츠나는 자리에 없고 티에리아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건드리는 놈은 물어버린다는 듯 으르렁대고 있었다. 알렐루야는 둘을 어떡하면 좋을까 하는 표정으로 난감해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서로 냉담했던 녀석들이 웬일로 싸웠을까, 록온이 알렐루야에게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티에리아가 화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어떻게 봐도 세츠나 F 세이에이는 건담 마이스터로 실격입니다.
-티에리아. 무슨 말이야 그게?
-아, 아까 둘이 좀 싸웠…….
-알렐루야 합티즘, 너는 끼어들지 마라. 록온 스트라토스. 우리는 베다의 의지에 따라 건담 마이스터가 된 겁니다. 저 녀석은 너무 제멋대로예요.
-저기 티에리아, 아직은 좀 판단하기 이르지 않을까?
-알렐루야 합티즘.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강경한 어조로 세츠나를 성토하는 티에리아를 말리려던 알렐루야에게 불똥이 튀었다. 으르렁거리는 티에리아와 당황한 알렐루야의 어깨에 록온이 손을 짚었다.
-티에리아, 나사 좀 풀어라.
-하지만 저건 아니잖습니까. 록온 스트라토스도 아까 그 행동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저 아이를 고른 것도 베다의 의지 아니겠어? 다 이유가 있겠지. 일단 좀 진정하고 여기 좀 앉아봐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록온은 티에리아를 진정시키고 세츠나를 따로 불러서 한 마디 해 주고 그날분의 훈련내용을 정리까지 했으며 두 사람을 형식적이나마 화해까지 시켰다. 옆에서 그 모든 것을 구경한 알렐루야는 그저 록온의 행동이 신기할 뿐이었다. 내가 말을 걸면 안 듣고 록온이 말을 걸면 듣는 이유는 뭘까, 하며 신기해하던 알렐루야는 그제서야 얼마 전, 브릿지에 모인 선원들이 하던 말을 기억했고, 선원들이 자신을 가리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도 기억해냈다. 록온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있고 남을 대하는 법도 사람에게 웃어주는 법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 많았지만, 남이 가진 것이 신기해 보이기는 그 날이 처음이었다. 혼자 우주를 내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록온을 발견하고 알렐루야가 날다시피 달려간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 오지랖도 넓어요, 나도.
-록온!
혼잣말을 하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서 놀랐는지 록온이 얼른 등 뒤를 돌아보았다.
-어, 알렐루야.
-오늘 수고했어.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요.
-돈마이☆ (Don't mind.)
알렐루야의 어색한 존댓말에 록온은 잠깐 놀란 듯 알렐루야를 쳐다보다가 씩 웃으며 알렐루야의 어깨를 한 대 쳤다.
-고마워요. 록온.
-아니 뭘. 나도 별로 한 건 없는데.
-아니에요,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 녀석 괜히 사람 띄워주기는. 그래봐야 별로 나오는 것도 없어. 아냐?
-아뇨, 몰랐어요. 충고 감사합니다.
-농담은 좀 농담같이 들어라. 그럼 이만-.
록온이 점프하듯 살랑거리는 움직임으로 그의 옆으로 돌아갔다. 알렐루야는 록온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의전을 해 보는 날이었다. 큐리오스와 듀나메스가 한 팀, 엑시아와 버체가 한 팀으로. 물론 팀 구성을 짠 것은 록온이었다. 며칠 전에 싸웠던 세츠나와 티에리아가 연계플레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사이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스메라기의 각본대로 듀나메스가 멀리서 숨어 저격을 하고, 엑시아와 버체는 듀나메스의 위치를 찾아 듀나메스를 공격하고, 큐리오스는 두 기체를 방어했다. 어느정도까지는 각본에 따른 기계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덕에 처음에는 훈련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지구전에 들어가면서 엑시아가 고전하기 시작했고, 버체와 엑시아의 움직임이 점차 손발이 안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알렐루야가 여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 하던 차에 재미도 없네, 이딴 걸 해 봐야 무슨 소용이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은 자신에게 말을 잘 걸지 않던 할렐루야였다. 모의전을 열심히 해 봐야 나중에 미션을 수행할 때 별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다른 인격을 타일러 보았으나 인격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때 록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큐리오스, 그게 무슨 짓이야!
화면을 보니 큐리오스의 방어망을 뚫고 엑시아가 접근해 있었다. 큐리오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버체가 쓰러진 큐리오스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할렐루야를 원망해 보았으나 그의 다른 인격은 이미 뇌 속에 숨어서 그를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알렐루야는 당황했다. 록온이 나무라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티에리아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 그러니까!
-알렐루야 합티즘, 변명은 소용없다.
도대체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들어줄까? 알렐루야는 머릿속을 뒤져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명대사를 입 밖에 꺼내었다.
-돈마이☆!
화면에 떠 있던 건담 세 대가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잠시 후, 끅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록온이 정말로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었다.
-알렐루야 합티즘. 헛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티에리아가 언성을 살짝 높여 잔소리를 시작했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세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록온은 어느새 웃음을 멈추고 알렐루야를 짐짓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거기서 나올 대사가 아니잖아! 너 때문에 나까지 엉망이다. 어떡할래?
-아하하하, 뭐 그렇죠?
록온이 재미있어 해 주어서 기뻤다. 농담이란 무엇보다 들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웃어주는 맛에 하는 거 아닌가. 알렐루야는 다음번에도 이 사람들이 들어주고 웃어준다면 또 똑같은 말을 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난생 처음으로 농담에 성공한 날이라고 뇌리에 기록해두려고 하자 할렐루야가 너는 바보냐며 비웃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렇게나 기뻤던 것이다.

그리고 훈련을 모니터하려고 모인 선원 전원은 폭소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니고 미소도 아닌 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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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알렐루야는 바보인 모양입니다.
돈마이☆는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저렇게 쓰고 말았답니다.

그 뭐냐, 알렐루야가 좀 특이한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전부다 록온 한정이에요. 게다가 록온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고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은 록온에게 말을 배운 건 아닌가 하고요. 쟤한테 인간사회에 적응할 시간 같은 게 있었겠어요. 여기 와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운 거겠죠.
알렐루야는 왜 저렇게 핀트 안 맞는 농담을 하는가, 를 생각해 보려고 썼는데 뭔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듭니다. 으음.......록온이 록온이 아니고 알렐이가 알렐이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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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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