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온 여체화......입니다. 알렐루야......동물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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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연로하진 않으시지만 술을 워낙 즐기셔서 가끔 손이 떨려서 문제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성격 좋고 일 잘하고 서글서글한 처녀가 살았습니다. 처녀의 이름은 록분이에요.
록분이는 혼기를 놓친 노처녀입니다. 친구들은 모두 시집을 가서 아이를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세 명이나 길에서 뛰어놀만큼 키워놓도록 시집을 못 갔어요. 일 잘하고 성격 좋고 피부도 뽀얗고 얼굴도 곱죠. 다 좋아요, 좋은데, 록분이에게 장가들고 싶어 하는 총각이 없는 거예요. 얼굴이 봐줄만 하면 뭐 하나요. 백옥같이 뽀얀 피부면 뭐하나요. 처녀가 좀 씩씩하게 생겼어야 말이죠. 어깨는 떡 벌어지고 기골은 장대하고. 싸나이죠. 치마만 입는다고 여자랍니까. 암만 좋게 봐 줘도 남자답게 잘 생긴 얼굴이지 여자답고 조신한 상은 절대로 아니었어요. 머리는 삼단은 삼단 같죠, 숱 많다는 점에서만. 그걸 대충 땋아다가 댕기도 댕기 같지도 않은 걸로 질끈 묶어다가 통치마는 단이 다 터져있어요-왜 터졌을 것 같아요? 감자밭 매다가 막 주저앉아서 자기 발로 자기 치마를 밟아대니까 그렇죠. 예, 여자를 얼굴로 평가하는 게 아니죠. 얼굴 삼 년 뜯어먹으면 오래 가는 거라는 옛말 틀린 게 없죠. 하지만 록분이보다 객관적으로 보다 못한 처자들이 줄줄이 시집을 가는데도 록분이는 노처녀인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록분이는 껍데기만 싸나이가 아니거든요. 성격도 좋게 말해 서글서글한 거지, 혼기 꽉 찬 처녀가 동네 어지간한 노는 형님들보다 더 형님 태가 나면 말 다한 거 아닙니까. 당신 같으면 당신보다 저격도 잘 하고(뭔 놈의 처자가 새총질은 그렇게 잘 하는지 누워서 막걸리 푸다가 새총으로 하늘을 나는 참새를 잡았대요. 그날 그 놈으로 술안주 해먹었답니다.)당신보다 쌈질도 잘 하고 예리하기는 죽도록 예리한데다가 당신보다 더 싸나이 같고 당신보다 더 형님 같은 여자한테 장가 들고 싶냐는 마을 청년들의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요. '록분아, 술내기 하자!' '록분아, 이따 뒷산에 토끼 잡으러 가자, 아니 토끼가 다 뭐냐, 넌 사슴 좀 잡아봐라 술안주 하자!' '록분아, 팔씨름하자! 진 놈이 술 사기다' 이런 소리를 하는 놈은 있어도 '록분아, 나하고 살자!' 소리를 하는 놈은 없으니 그 인기가 다 헛거죠. 어머니가 마시는 술은 나날이 도수가 높아졌으나 -그래, 이것이 딸년 치울 때 따르는 고통......이 아니잖아. 록분이 이놈의 계집애 청소하랬더니 또 사내놈들이랑 어울려 놀러 나갔냐! 안 마실래야 안 마실 수가 없잖아. 쳇. 이렇게 오늘도 또 한 병이 비네.- 록분이는 어머니 드시고 남는 술은 자기 거라고 희희낙락 즐겁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록분이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에 감자 내다팔아서 먹을 쌀 팔고 어머니 드실 술도 사러 갔어요. 어머니께선 숙취가 심하니 약을 사 오라고 하신 걸 잊지 않고 록분이는 해장약을 사러 갔어요. 약국 간판에는 인혁련이라고 적혀있었고, 언제나처럼 아라사에서 물 건너온 기기묘묘한 약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약사 세르게이 아저씨는 뚱한 얼굴로 딸인 소마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었어야 하는데……어쩐 일인지 아저씨가 가게 밖에 나와 있었어요. 손가락 끝으로 두꺼비 다리를 집어 들고 있었고, 두꺼비는 처량맞은 소리로 울고 있었는데 세상에 두꺼비 주제에 눈이 금은요동인 겁니다. 거기다 사납고 튼실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울망한 눈으로 훌쩍훌쩍 울고 있었어요. 두꺼비도 눈물 흘리면서 우는 게 정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눈매가 마음에 들었던 록분이는 세르게이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그 두꺼비 버릴 거유?"
"그래."
“왜요? 이렇게 귀여운데.”
“모르는 소리 마라. 얘가 얼마나 흉폭한데. 약 팔러 갔는데 다른 차력사네 사자를 죽였지 뭐냐. 이름이 타오츠였나 뭐였나…….”
록분이가 말을 잘랐습니다.
"그래도 아깝잖아요. 그럴 거면 그냥 절 주쇼, 이거랑 바꿔드릴게."
록분이는 어머니 안주로 싸들고 가던 떡꼬치 세 개와 두꺼비를 맞바꾸었습니다. 세르게이 아저씨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소마가 떡꼬치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아버지를 쳐다보는 통에 마음을 바꿨지요.
“이거 내가 남는 장사인 것 같은데……조심해라. 위험하면 바로 버리고.”
“네, 참. 근데 얘 이름 뭐예요?”
“응? 알섬(蟾)이.”
“와, 이름 재밌다.”
록분이가 피식 웃자 세르게이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록분이는 뭐 멀쩡하냐? 옛다. 어서 데리고 가거라.”
록분이는 두꺼비를 받아, 가슴팍에 소중히 안고 길을 갔습니다. 어쩐지 두꺼비가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착각이겠지요.
해가 다 져서 집에 가니 두꺼비는 발그레한 얼굴로 쌕쌕 자고 있습니다. 장 본 걸 부엌에다 부려놓고 방에 들어가서 두꺼비를 내려놓고 어머니를 모셔오니 어머니가 난리가 났습니다.
“딸아……내가 장 봐오랬지 애완동물 사 오랬던 적이 있었니?”
“에이 엄마도. 내가 잘 키울게. 걱정하지 마.”
어머니가 인상을 쓰고 목소리를 깔아도 딸은 천하태평입니다.
“쟤는 뭐 공기만 마시고 사냐? 먹는 건?”
“내 밥 나눠주면 되잖아요. 잘 키울게, 응?”
자식 이기는 부모님 없지요. 어머니 스메라기 여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두꺼비를 보며 혀를 찹니다.
“하지만 영 불길한걸……아니,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아유 참, 엄마가 무슨 점쟁이유? 괜찮아. 두꺼비 한 마린데 뭐.”“내가 이럴 때 틀리는 거 봤냐? 모내기 때마다 내가 가서 비 올 때 안 올 때 다 예보하는 거 몰라? 거 참. 아 몰라. 이제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
어머니도 허락하셨겠다, 록분이는 두꺼비를 곱게 들어다가 자기 머리맡에 놓아둡니다. 잘 때는 끌어안고 자고 먹을 땐 자기 먹던 밥을 나눠먹어요. 두꺼비는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고 좋아하는 것도 같습니다. 얼굴을 붉히면서 록분이 손에 머리를 부비다가도 가끔 허공에 머리를 휘저으며 1두꺼비2역을 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귀엽고 밥도 잘 먹고 청소까지 잘 합니다. 밭에 던져놓으면 밭도 잘 갈아요. 반듯하게 갈아놓은 밭을 어머니가 보신 다음날부터 록분이네 집 밭이며 논을 낮에는 한 마리 두꺼비가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몸에 큼지막한 쟁기를 도대체 어떻게 메는지 모르겠는데 여튼 메고 도도도도 두다다다 밭을 갑니다. 간혹 두꺼비 등에서 쟁기가 떨어지면 보고 있던 어머니가 쟁기를 고쳐매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인사를 하고는 또 밭을 도도도도 갑니다. 어머니는 올해 안주값 정도는 건진 것 같다며 만족해 하고 계세요.
그런데 하루는 록분이의 있지도 않은 가슴골에 머리를 디밀고 자는 걸 본 어머니께서 저 놈의 밝힘증 두꺼비 부엌에 갖다놓으라고 해서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참 이상한 일이죠- 하는 수 없이 록분이는 부뚜막에다가 알섬이를 올려놓고, 배고프면 먹으라고 감자도 하나 갖다놓고, 어머니 구박 받으면서 장작 좀 패 놓고 다시 부엌에 와 보니 두꺼비는 어디가고 웬 덩치 좋은-어지간한 남정네들보다 큰 록분이보다 더 클 것 같은데요?-남정네가 부뚜막에 쭈그리고 앉아 자고 있네요?
“못 보던 사람인데……누구지? 이봐요. 이봐요?”
록분이가 어깨를 흔들어 깨우자 자던 남정네가 눈을 뜹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보다 잔잔하게 웃으며,
“어, 록분 아씨, 안녕하세…….”
말을 하다 갑자기 말을 멈춥니다. 그러더니 자기 몸을 살펴보네요. 어째 자기가 더 놀란 표정이네요. 눈을 꿈벅꿈벅 하더니 갑자기,
“얼레, 이게 뭐야? 사람 손이랑 팔이네? 왜 이런 게 붙어있지? 할섬아, 대체 이건 뭘까? 세상의 악의? 아니 선읜가? 대체 이게 뭐지?”
라며 혼자 허공을 보고 중얼거립니다. 기가 막힌 록분이가 멀거니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이 남정네, 혼잣말을 그칠 줄을 모릅니다.
“할섬아, 그래도 그렇지 그런 반응은 실례야. 록분 아씨는 좋은 분이시잖아. 아, 맞다! 고마워. 이야기 꼭 할게.”
하더니 록분이를 쳐다보며 방긋 웃습니다.
“음, 놀라셨죠. 록분 아씨. 저 두꺼비예요.”
이제 록분이가 눈을 꿈벅거릴 차례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걔라고?”
“네! 저예요, 알섬이.”
이 무슨 베다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두꺼비가 어떻게 변신을 하면 저렇게 되죠?
“그러니까 네가 알섬이라고?”
“네. 전에 세르게이 씨한테 저 사 오셨잖아요. 떡꼬치 세 개 주고.”
그래서 안주가 모자랐냐? 하며 노려보는 어머니의 시선은 록분이에겐 안 먹히나 봅니다. 비딱하게 앉아서 턱을 괴고 남정네를 노려보고 있네요.
“으흠, 진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기, 눈 좀 걷어봐라?”
“이, 이렇게요?”
남정네는 양 손으로 눈을 덮은 머리카락을 머리 위로 쓸어넘겼습니다. 금은요동의 눈동자가 드러나네요.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던 록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으흠, 맞는 것도 같네? 그런데 왜 변신하는데?”
록분이가 얼굴을 붙잡자 얼굴을 빨갛게 붉히던 알섬이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근데 밤에만 이렇게 되는 거 같네요.”
록분이가 어머니 귀에 대고 소근거립니다.
“혹시 부뚜막 힘인가? 엄마, 저 부뚜막 그 때 빌리 아저씨가 해 준 거 맞지?”
“그 놈 연애는 쑥맥이더니 이런 쪽에 제법이구나.”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립니다. 두 사람이 수근대는 걸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알섬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냅니다.
“저기요, 저 이제 여기서 못 사는 거예요?”
여자 둘만 사는 집에 남정네가 얹혀 살면 동네에 말이 나기 마련이죠. 알섬이라고 모르겠습니까. 록분이 혼사 문제로 어머니가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 정도야 알죠. 암만 털털한 록분이라도 이건 안 된다는 건 압니다.하지만 록분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알섬이는 전에도 약국에서 못 살고 이리 왔었지요. 아마 지금 쫓겨나면 충격이 클 거예요. 록분이가 어머니를 쳐다보고, 어머니는 재미있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 어떻게 안 될까?”
“흐흠, 글쎄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시키시는 건 뭐든지 할게요.”
알섬이는 유순한 표정으로-덩치며 생긴 거에 안 어울리게 참 얌전했습니다.-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필사적이기도 해요. 록분이와 어머니는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표정이 수상쩍군요.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표정입니다, 저건. 전에 이웃집 그라함 씨랑 논에 물대기 싸움을 할 때 어머니 표정이 딱 저랬죠. 록분이가 뭐라 말하기 전에 어머니는 히죽 웃었습니다. 분명히 지금 뭔가 생각하는 게 있어, 하고 록분이는 짐작해 봅니다.
“돈☆마이, 저는 초두꺼비라 일 하나는 잘 한답니다.”
그 표정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알섬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알섬이를 쳐다보십니다.
“그래, 그럼 밥값은 해야지? 덩치도 좋아서 많이 먹겠는데.”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록분이네 밭이 참 진풍경이라며 수군댔습니다. 낮에는 두꺼비가 농사를 짓더니만 밤이면 웬 검정 옷 입은 총각이 나타나서 즐거운 표정으로 ‘이런 일이라면 매일 할 수도 있겠는데’어쩌고 하며 김을 매고 배추도 묶어주고 콩잎도 따고 깨도 털고 논에서 피도 뽑고 새참도 알아서 만들어 오는 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록분이는 멀거니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립니다.
"와, 좋은 두꺼비구나."
하지만 록분이는 등 뒤에서 ‘이것아, 한 집에 붙여놨으면 제발 진전이 좀 있어라, 좋은 두꺼비가 아니잖아 거기선!’ 하고 속으로 부르짖는 어머니 심정은 잘 모르는 모양이에요.
알섬이는 일도 잘 하고 설거지도 잘 하고 요리도 잘 합니다. 혹시나 일 못 하면 쫓겨날까봐 그러는지 정성을 다 해 일하고 있습니다. 잠도 부뚜막에서 자면서 한 번도 안 굴러떨어지고 조용히 잘 잡니다. 참 신비롭죠. 하지만 가끔 허공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하루는 자다가 방이 식어 추운 록분이가 불 좀 때야겠다고 부엌에 들어서는데, 이상한 이야기소리가 들립니다.
“합섬아, 그만 해.”
“짜샤, 너 하는 짓이 답답해서 내가 나왔다. 전부터 그랬잖아, 엉덩이 라인 죽인다며? 허벅지가 백만냥이라며?”
“그, 그야 그랬지만…….”
어째 두꺼비가 부끄러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알섬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쪽 눈이 드러날 때 마다 말투가 바뀌네요.
“이 새꺄 기껏 사지육신 생겨가지고 하는 짓이 밤마다 밭 가는 거냐? 이 답 없는 놈아. 힘이 남아도니? 응, 남아도냐? 그 힘 어따 쓸래, 그냥 콱 덮쳐!”
“응? 덮쳐서 뭐 할 건데?”
“우와아~ 미치겠네, 야 이 빙신아. 보기만 하면 뭐 하냐?”
“어어, 나는 그냥 보기만 해도 좋고…….”
아무래도 두꺼비가 영 맛이 간 모양입니다. 아니면 자기가 꿈을 꾸고 있거나요. 록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그냥 자던 거나 마저 자기로 했습니다. 분명 꿈일 거예요. 안 그러고서야 저렇게 서로 다른 사람인 양 이야길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역시 못 들은 척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낮에 밭에서 일 하는 걸 귀엽다고 잡아다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던 거며, 말 잘 듣는다고 상으로 뽀뽀해 준 것도 잊기로 했습니다 그 때 얼굴 붉힐 때 알아볼 걸 그랬어, 하면서요.
그러게 무방비하게 아무 데나 웃음 뿌리고 다니면 큰일 난다는 옛 어르신들 말씀이 헛게 아니라니까요. 아니나다를까 일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이 록분이 모녀를 찾아왔습니다. 마을 뒷산에는 사셰스라는 오래묵은 지네가 살고 있었는데 성정이 괴팍해서 부수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지라 마을 사람들이 지극정성으로 받들어모시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곤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그 지네가 마을 사람들에게, 처녀를 한 명 데리고 오라고 요구를 했답니다. 이야기흐름상 당연히 그 처녀는 록분이였고요.
“록분이를요?”
“네. 허벅지가 마음에 든다고…….”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내 엉덩이랑 허벅지가 뭐 어쨌는데! 록분이는 혀를 찼습니다만 어쩌겠어요. 두꺼비랑 지네니까 사람보다 낮은 데 눈이 달려있으니 바닥에 있으면 허벅지랑 엉덩이가 당연히 보이는 거죠. 어머니의 반대며 온갖 부정적인 예측은 무시당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당연히 알죠. 지네가 록분이를 곱게 보내줄 리 없잖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록분이 하나만 희생하면 온 마을이 조용한 것을요. 록분이도 그 정도는 압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가 줘야죠. 하지만 조용히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중에 무슨 말을 듣더라도, 마을 사람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그 값은 그 때 치르면 되고, 지금은 그냥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라고요. 가서 지네를 두들기건 찌르건 뭐라도 해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알섬아, 그럼 난 간다. 저기 부엌에 밥 차려놨으니까 저거 먹고, 나 없는 동안 우리 어머니 잘 부탁한다.”
낮이라 알섬이는 아무 말도 못 하지만 울망한 눈으로 록분이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려는 듯 합니다.
“괜찮아. 금방 올게.”
록분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뒤돌아섭니다. 어쩐지 뒷모습이 영 위태로워보이네요. 금방 온다고 말하는 사람 치고 정말 금방 오는 사람 없는데. 알섬이가 안절부절 못 하며 중얼거리는데, 알섬이의 머릿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등신. 그러게 있을 때 잘 하란 말이다.”
“할섬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록분 아씨를 구하지 않으면!”
마음 속 또 다른 인격, 아니 섬격(纖格) 할섬이가 비웃는 소리가 알섬이의 귀에는 똑똑히 들립니다.
“아, 진짜! 그래서 지금 구하러 가겠다고?”
“그래.”
아무리 결연히 다짐해보아도 할섬이의 비웃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무슨 수로? 지네를 어떻게 이길 거지?”
“합섬이 너만 도와주면 돼. 한 번만 도와줘.”
알섬이는 진지하게 부탁해 봅니다. 그러자 재 보듯, 할섬이는 뜸을 들이며 말합니다.
“도와주면 뭐가 좋은데? 내게 뭐 좋은 거라도 있냐?”
“……합섬아, 한 번만.”
할섬이가 노려보는 시선이 따갑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할섬이를 붙잡고 늘어져 봅니다. 알섬이 자신의 일부이고, 지금 알섬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입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던 할섬이가 한숨을 쉽니다.
“알겠다, 알겠어. 내가 알섬이 넌 못 이기겠다니까.”
“할섬아…….”
기쁨에 환호나는 알섬이의 머릿속에서 할렐루야가 고개를 외로 꼬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신 너, 이번에 구해주고도 기회 놓치면 내가 나와서 확 저질러버릴 테다. 알아서 잘 해.”
“응, 뭔진 모르겠지만 잘 할게!”
알섬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 본 것처럼 할섬이가 혀를 찹니다.
“아 이 등신은 답이 없어, 몰라, 가자!”
알섬이가 헐레벌떡 지네동굴로 들어가자, 초주검이 되어 늘어진 록분이가 보입니다. 지네에게 맞았는지 온 몸이 상처투성이네요. 저러다 무슨 일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지네가 록분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턱을 끌어당긴 포즈로 소 있고 록분이는 축 늘어져 있습니다.
“거 간만에 재미난 거 하나 건졌네. 좀 팔팔하니 앙탈도 부려야 제 맛이긴 하단 말이야. 그런데 좀 과했어. 나도 슬슬 기분나빠지려는 참이거든?”
록분이가 한 눈으로 지네를 노려봅니다.
“헛소리 마. 이게 그냥 앙탈로 보이냐? 난 네가 싫어서 전심전력으로 반항하는 건데?”
“그래, 그게 앙탈이라니까?”
지네가 머리채를 놓고 쓰러진 록분이의 한쪽 눈을 정통으로 가격합니다. 록분이가 얼른 눈을 감쌌지만, 알섬이 눈에는 똑똑히 보입니다. 출혈이 심해요. 저러다 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습니다.
“록분 아씨!”
알섬이가 소리를 지르며 지네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록분이를 가리고 선 알섬이를 보고 지네가 한쪽 입가를 비딱하게 끌어당기듯 웃습니다.
“어, 저건 뭐야. 사람 꼴을 한 두꺼비잖아?”
척 봐도 알섬이보다 지네가 세 보입니다. 록분이가 몽롱한 정신으로 봐도 그래요.
“알섬이 넌 왜 여기 왔어……. 오지 않아도 되는데.”
“이럴 땐 제발 자기 몸부터 챙기세요.”
알섬이는 지네를 노려봅니다. 그리고 평소 한쪽 눈-금색 눈이었어요, 주로. 혼잣말을 할 때는 간혹 은색 눈도 나왔습니다만.-을 가리고 있던 알섬이가 갑자기 양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척 넘기며 중얼거립니다.
“야, 지네, 나랑 좀 붙자?”
지네가 코웃음을 칩니다.
“두꺼비 주제에 날 이기겠다?”
“그냥 두꺼비 아니다. 완전한 초두꺼비가 뭔지 보여주지.”
록분이는 몽롱한 정신에 알섬이랑 할섬이니까 합치면 합섬인가, 근데 초두꺼비 되게 웃긴다……하는 생각을 하다 그만 정신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 뒤는 말 하나 안 하나 해피엔딩. 싸우는 와중에 할섬이는 먼저 간다며 가 버렸대요. 이 부분만 해피엔딩이 아닌 듯 하지만. 알섬이는 지네를 이겼고요, 록분이의 눈은 무사했습니다. 부상을 입은 다음 날 부상이 심한 록분이를 치료한다고 동굴에서 밤을 새고 내려가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마을 의사 모레노 씨 말로는 치료가 조금 늦은 듯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라나요. 도대체 뭘 했길래 치료가 늦었냐는 말에 록분이가 허공을 보며 헛웃음을 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가 알섬이를 붙들고 우리 딸을 책임지라며 알섬이를 몰아붙여서 그 해 가을 추수가 끝나자마자 둘은 혼례를 올렸습니다. 록분이는 뭐 그 정도 가지고 책임지라 마라 하냐며 웃더니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혼례 하면 나는 좋다고 그래서 알섬이는 얼떨결에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자기가 왜 책임을 져야 되는지는 잘 몰랐지만 뭐 어때요, 록분이랑 산다는데 이런 기회를 거부하면 할섬이가 화를 낼 겁니다. 전에 말했던 게 아마 이런 뜻인가 보죠.
아무튼 그 겨울에 알섬이와 록분네, 어머니가 사는 집 앞에 베다의 뜻이니 잘 키우라는 쪽지와 함께 예쁘장한 보라색머리 여자애가 놓여진 걸 거둬 키워 식구가 넷, 이듬해 태어나 알섬이가 세츠나라고 이름을 붙인 아들까지 다섯 식구가 오글오글 모여 즐겁게 잘 살았답니다. 여전히 어머니는 술을 과하게 드시고, 여전히 록분네는 싸나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메신저에서 이야기 하던 중, 토끼 님 아이디어 내시고 리린 님 이야기를 이어 가셔서 알섬이와 록분이 이야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 분 아이디어 받아 쓴 거 밖에 없어요. 이게 재미있으면 다 두분 덕입니다.
근데 글재주도 없으면서 제가 굳이 이걸 쓴 데는 치사한 이유가 있었으니-
L 모 님 지네를 물리치고 해피엔딩 찍어도 참 볼만한 장면 나올 듯
L 모 님 걱실한 록분네로 업그레이드한 낭자와 바지런한 알서방으로 업그레이드한 두꺼비총각의
L 모 님 견실한 농촌드라마가......
L 모 님 이듬해 누가 업둥이로 버리고 간 보라머리 여자애와
T 모 님 전oo일기.......
L 모 님 그 이듬해 마침내 태어난 천하대장군감 옥동자 츠나도령
L 모 님 술메라기엄니를 모시고 사는 단란한 네 가족.... 죽겠다 ;ㅁ;
L 모 님 누구든 이거 써주심 팬아트 그리겠어요 <-
이니셜 처리해 봐야 소용 없는데, 그날 대화 중에 저런 대목이 있었답니다. 증거품으로 올려놓아 봅니다. (도주) 잘 써야 된다는 말은 분명 없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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