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 : Wenn Ich tanzen will / Elisabeth

다시 눈을 뜨자 익숙한 장소였다. 콕핏 안이었다. 하지만 전과는 구조가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알렐루야와 뇌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리오스. 새 건담 안이었다.
-이거 괜찮네. 4년동안 놀고 먹지는 않은 모양인데, 공돌이들.
새 기기를 휙 둘러보고 할렐루야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 괜찮은 무기를 흡족하게 다루지 않는 알렐루야를 생각하니 더더욱 즐거웠다. 너는 내가 없으면 초인병도 아니지, 건담도 제대로 못 모는 찌질이 알렐루야를 대신해서 능력을 보여주겠어. 전보다 규모면에서나 무기의 개량도 면에서나 여러모로 많이 달라진 적들이 눈 앞에 떠 있는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다 죽었어.
-슬슬 몸 좀 풀어볼까.
조종간에 손가락을 올리고 급발진을 하려는 순간 GN 아처에서 앙칼진 고함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냐 살인마.
인혁련에 있던 망할 계집의 목소리였다.
-뭐냐 , 너 그 웃기는 년 아냐. 뭐 하냐.......알렐루야 이 멍청한 자식 쓸 데 없는 짓을!
-내가 할 말이다!
자기가 없는 동안 이 멍청한 놈은 그렇게 찾던 마리를 찾아다가 셀레스티얼 빙으로 덜렁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살림을 차리려면 아예 도망을 가란 말이다, 이 덜떨어진 새끼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알렐루야는 소마를 부정하고 마리를 긍정하는 멍청한 짓을 한 것을 알고 할렐루야는 혀를 찼다. 너 내가 뭔지 정확히 알고는 있냐? 그나저나 이 둘은 서로 한 쪽 인격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제어를 할 수 있다고 믿은 모양이었다. 웃기지도 않네. 아마 저기에 있는 싸우는 데 미친 계집애도 같은 생각이겠지. 나나 저년을 볼 수 있다는 거, 혹은 그 둘이 마주칠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한 놈이 하는 생각이 뭐 그렇고 그렇겠지만.
-그 놈 멍청한 짓을 했군. 아주 드라마를 찍네. 이 연놈들을 쌍으로 묶어서 뭘 어쩌겠단 거야.
그것도 전장에서, 손에 무기를 쥐고 말이지. 하지만 불행히도 이 기체로 그 쪽을 공격하기는 힘든 모양이고 분위기를 보니 그 쪽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게 매우 애석한 모양이었다. 저 쪽 멀리 어로우즈라나 자신들만큼이나 어이없는 조직에서 대량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멀리 파란색 건담도 녹색 건담도 다 있다. 그 놈들이군. 파란색 건담이 빨갛게 빛나고 있었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휙휙 움직이고 있었다. 트란잠인가. 그래서 잠시 내가 나올 수 있었구만. 시간이 없다. 할 수 있는 한 즐겨보자고 중얼거리며 적을 베려 튀어나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고함소리가 계속 들렸다.
-E-57! 얌전히 있어. 팀워크나 단결 같은 건 모르는 덜떨어진 불완전체. 저기 너희 편도 있잖아.
할렐루야는 코웃음을 쳤다.
-얼씨구 이년 말하는 꼬라지 좀 보게. 야 이년아, 이거 내 기체다. 보조기체에 탔으면 입 다물고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전장이 좋은 거냐.
비웃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네 본체는 네가 나타날 것도 모른 모양이군. 그래서 마리......나를 여기 데려온 거고. 그 멍청한 뇌로 뭘 판단하겠단 거냐. 여긴 전장이야. 흥분해서 날뛰는 어린애 같은 짓을 하지 마라.
할렐루야가 비웃음을 돌려주었다.
-자기도 싸우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웃기고 있네. 닥쳐. 돕기나 해. 이 상황에서 그것말고 네가 뭘 할 수 있냐?
-이래서 난 네가 싫다.
 할렐루야의 움직임을 제어하려고 한들 보조기체는 보조기체일 뿐이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소마가 으르렁댔다. 으르렁거려봐야 간지럽지도 아프지도 않아요, 어설프긴.
-싫어봤자 뭘 할 건데. 이 쪽 동력이라도 끊어 보시지? 아니면 날 죽이러 오던가. 왜, 안 되겠냐?
-싸구려 도발밖에 할 줄 모르냐.
소마 필리스가 뛰쳐나가고 싶은 자신을 억제라도 하듯 억눌린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기회만 닿으면 네놈은 내가 죽인다. 마리를 위해서라도 넌 없어지는 게 좋아.
-마리, 라.
할렐루야는 피식피식 웃었다.
-나도 너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지. 그 때 죽여버렸어야 하는데 참 아깝단 말이야.
멍청한 놈. 내가 너듯 저게 너의 마리다. 성모님이 아냐. 우리는 기회만 닿으면 서로의 목을 물고 숨통을 끊고 명줄을 끊어버릴 투견같은 거지. 여기에 성모가 어디있고 구원이 어디있냐, 바보 같이 상냥한 알렐루야, 이 도움 안 되는 종자야.
-너는 그냥 네 생존에 도움이 안 되는 내가 싫은 거겠지. 맞나?
뇌내 통신은 좋다. 음성으로 어감을 전달할 수 있둣 뇌양자파로 말을 걸면 마음의 느낌도 고스란히 옮겨준다. 마리라고 했나 소마라고 했나, 이를 빠드득 갈아대는 소리가 머리속에 울렸다. 저것도 지금 나처럼 한탄하며 이를 갈아대고 있갰지. 야, 알렐루야. 너 도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건지 알긴 아냐?
알렐루야는 그 자신에게 독이 될 상황에 대해 모르고 있다. 알려줄 길도 없고, 당분간은 알지 않는 것이 좋겠지. 나중에 실컷 후회해 보라고. 할렐루야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비웃고 싶었다.
-쳇, 너 때문에 좋은 게 하나도 없잖아. 이제 한계야. 잘 가라 계집.
머릿속에 울리는 여러가지 욕설은 무시하고 할렐루야는 빗발치는 전격을 피해 방어선에 섰다. 트란잠은 한계시간이 있다. 눈을 뜬 알렐루야는 분명 위화감에 당황하겠지. 이 정도는 도와주는 게 도리 아니겠냐. 그럼 친하게 지내고들 있으라고. 언젠가 나와서 박살내 주고 말테니까. 눈을 감았다 뜨면 아마 또 다른 어딘가에서 저 여자와 마주쳐 싸우고 있겠지, 할렐루야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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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님 : 오오 감사합니다. 언제나 피드백이 빠르셔요. 좀 부족하다 싶어서 5분씩 시간 쪼개서 고치고 있어요.
저 할렐루야와 소마 커플 좋다고 생각해요. 둘이 치고 받는 것도 좋고 어쩔 수 없이 서로 못 밟아주고 이 가는 것도 좋고 아예 작정하고 서로 밟는 것도 참 좋아요. 저 곡 치곤 쟤들 참 에로도 떨어지는 커플이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긴장관계는 충분하니까요. 저 둘이 좀 더 잘 치고 받는 걸 쓰고 싶네요.

백야 님 : 사람이 넷이고 동성끼리 이어질 가능성 배제하면 커플링도 넷입니다. 와하하, 착각하신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서로 가진 감정이 애정은 아닌데 관심은 차고 넘치죠. 내 반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반신인 셈이잖아요. 이런 관계도 재밌지 않나요. 저도 그래서 이 둘 관계를 참 좋아해요. 본편에서 이 둘 화끈하게 충돌하는 거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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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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