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 그건."
"니트로글리세린."
"에 또 그 옆에 건?"
"블랙파우더라고 하네. 자세한 건 묻지 마. 귀찮으니까."
".......즈라야, 아니 카츠라야, 뭐가 불만이냐.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어? 즈라라고 불러서 힘들었냐? 사흘째 반찬이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었어? 그런 거냐? 미안, 사실 너 잘 때 침낭에 돌 집어넣은 거 나야, 내가 잘못했어. 실은 그저께 네 발도 내가 걸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요. 어-이, 신스케, 내가 즈라 지갑에서 돈 꺼내서 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사실 그 술 2/3은 내가 마셨지만, 참 그거 맛있었어. 아 그리고 타츠마가 쳤다던 사고 사실 내가 쳤.......컥!"
"한 마디만 더 하면 다음엔 이걸 입에 처박아주겠네."
폭탄의 몸체로 쓸 요량이었는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야구공보다 좀 큰 플라스틱 덩어리를 집어 긴토키의 눈 앞에 들이미는 카츠라의 표정이 흉흉했다. 더 불었다간 폭탄에 불 붙여 입에 물려 줄 기세다. 저쪽에서 신스케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는지 기분나쁜 표정으로 이 쪽을 주시하고 있다. 긴토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요거 압수."
대신 폭탄 속재료가 될 것들을 싹 나꿔채서 들고 튀었다.
"섞이면 큰일이네! 내놓게!"
"내가 미쳤냐!"
즈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잘 뛴다. 머리끄댕이를 잡히기 일보 직전이다. 급한 김에 식수통에 던져버렸다. 그랬더니,
"내 소중한 화약에 뭐 하는 짓인가!"
"사람이 마시는 물에 뭐 하는 짓이냐!"
즈라가 등을 걷어찼다. 게다가 물을 뜨려던 참인지 물통을 들고 있던 신스케가 옆구리를 찍었다. 덤으로 물통으로 머리도 내리찍은 것 같다. 바닥과 얼굴이 만나니 무지하게 아프다.
"그러니까 폭탄이 아니라고 했잖나."
"미안한데 언제?"
"폭탄이 아니라고 했잖나."
"얘가 이젠 사람 말을 씹기까지 해?"
즈라의 말을 들어보면-이라기보단 즈라가 하는 말을 대충 종합해 보면-마침 여름이니 불꽃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풍류라나 뭐라나. 아무튼 신이 나서 막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토키가 튀어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대더니만 화약을 물에 적셔버렸다는 거다.
"불꽃?"
신스케가 눈쌀을 찌푸렸다.
"그래, 신 네가 어릴 때 그랬잖나. 여름밤에는 불꽃이 풍류라고."
".......쓸 데 없는 것만 잘 기억하는 꼴 하곤."
카츠라가 진지한 얼굴로 눈을 빛내며 답하자 신스케가 쓴웃음을 지었다. 긴토키는 둘의 대화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말을 하려니 꿇고 있는 무릎을 밟고 있는 신스케의 발에 힘이 들어가 매우 아팠다. 신스케의 이마에 '바보는 닥치고 무릎 꿇고 반성해'라고 적혀 있어서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쓸 데 없지 않다, 신. 전장에서도 꽃은 피는 법이야."
"하지만 지금은 꽃을 볼 때가 아니지."
신스케의 냉소적인 표정이 긴토키의 눈에도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특히나 요즘은 더 많이들 죽어갔다. 죽어가고 지쳐가고 쓰러져가서 죽지 않으면,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둘 중 하나였다. 하나 둘씩 죽어갈때마다 신스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졌고, 사카모토는 항상 밤마다 혼자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카츠라조차 힘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띌 때가 있었다. 그리고 긴토키 자신은.......그러고보니 이렇게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떠든 게 얼마만이었더라. 긴토키는 가만히 속으로 손을 꼽아보다 그만 두었다. 너무 많이 세야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가장 못 버티고 있는 것이 자기자신이었다. 자신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카츠라와 신스케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꽃이 필요한 거라고 보네."
".......맘대로 해라."
신스케도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리라.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하고 신스케는 등을 돌렸다. 저건 분명한 승낙의 표시이다. 신스케의 발이 떨어지자 마자 긴토키는 엇차, 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오오 다리야......그나저나 화약 없어서 이제 어떡하냐?"
"괜찮네, 아직 이만큼 있어."
카츠라는 주머니에서 화약을 몇 무더기 꺼내 보였다. 저 옷의 어디서 저런 것들이 줄줄이사탕처럼 튀어 나오는지, 긴토키는 멍하니 카츠라의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즈라야 너 혹시 도라에몽이었냐."
"나를 그 퍼런 괴생물체 취급하지 말게."
그리고 그날 밤,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을 때 카츠라는 정말로 불꽃놀이 세트를 만들어 냈다. 찌그러진 양동이에 젖은 모래까지 담아와서는 자랑스럽게 내미는 불꽃들을 보고 신스케는 작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사카모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웠노? 잘 만들었네 진짜. 팔아도 되겠다."
"음 뭐 어쩌다보니 익혔다네."
카츠라가 드물게 말을 흐렸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알고 있었다. 불꽃 제조 기술을 알면, 폭약도 만들 수 있다. 즈라가 폭탄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도 다들 알고 있었다. 사카모토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
"자 그럼 불 붙이자. 신스케 니 성냥 갖고 있제, 꺼내라."
환하게 웃으며 불꽃놀이의 시작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밤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몇몇 장면들은 너무도 선명해서 지금도 여름날 밤, 잠들지 못하고 눈을 뜨게 되어 하늘을 보면 그 날의 불꽃이 눈 앞에 보일 듯 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 하얗게 증발한 기억들이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불꽃과 함께 태워버렸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즈라가 쏘아올리는 불꽃은 굉장히 밝고 눈부셔서 하늘이 하얗게 물들다 푸슬푸슬 무너져내리는 것은 착각마저 들었으니까.
그걸 아무 말도 없이 보던 사카모토가 미친 듯 웃으며 높은 데 올라가 불꽃을 쥐고 흔들어댔고, 처음엔 마른 고목에 불 옮겨 붙는다고 잔소리하던 카츠라가 나중엔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불꽃을 쏘아댔고, 신스케마저 양 손에 불꽃을 들고 황량한 들판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을 때, 어느새 자신의 손에도 퍼렇게 번쩍이는 불꽃이 들려 있었고, 그걸 들고 마구 뛰어다니는 자신이 매우 낯설었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자신이 뭐라고 했는지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하늘아 콱 타다가 무너져 버려라 아하하하 하며 웃어제끼던 사카모토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와 아무 말도 없이 정말로 뭐든 태워버릴 듯 불꽃을 날리던 카츠라의 가라앉은 표정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춤추듯 불꽃을 여기 저기 흩뿌리고 있던 신스케의 얼굴은 생생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카츠라가 하늘로 마지막 불꽃을 쏘아올렸다.
하늘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것들은, 그저 화약의 잔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답고 덧없어서
그냥 목놓아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불꽃이 다 타 없어지고 나니 하늘빛이 엷어지고 먼 데서 동이 터 왔다.
혼자 전장을 떠돌 때도 친구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미친 듯한 불꽃이었다.
"그 때 배운 기술이 이리 유용할 줄 몰랐네."
먼 데를 보며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옛 친구를 보고 긴토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 때 화약을 아주 못 쓰게 몽땅 물에 처박아야 했는데. 고작 하는 게 이 따위 폭탄테러질이냐, 요녀석아."
"이 따위라니, 테러리즘에도 도리가 있다네."
"테러에 도리가 있다고 쳐도 너한텐 없다 임마."
"너무하지 않나."
결국 다시 만난 친구는 폭탄테러범이 되어 있었고, 못 만난 동안 놈의 삶이 어떠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것을 누르느라 바빴던 탓에, 물어보지 못했다. 그 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는.
저에게 영감인지 독인지를 마구마구 부어주시는 키사라 님 손에 이끌려 본 모종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나온 글입니다. 개그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