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풍 군 전학 생각 있습니까?
여름방학 끝무렵, 가게에 불쑥 찾아온 과장이 동풍에게 물었다.
-음......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데요?
-거 괜히 물었군요. 그럼 시열 양이랑 같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건 어때요?
-별 상관 없어요.
동풍이는 언제나처럼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학수속을 밟아볼까요, 하던 과장의 말이 순간 튀어나온 목소리에 묻혔다.
-우리 학교요? 왜요?
어쩐 일로 안 자고 한 구석에 앉아서 깨작깨작 영어 숙제라나, 문제집을 끌어안고 씨름하고 있던 시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중하고 공부하라니까.
-오빠는, 지금 집중이 문제가 아니잖아.
옆에 앉아서 설탕통에 설탕을 채워넣고 있던 휘안이 시열에게 타박을 주었으나 시열의 관심사는 이미 동풍과 과장의 대화로 옮겨간 후였다.
-과장님, 왜 동풍이 오빠가 우리 학교에 전학와요?
-아 뭐, 별 거 아닙니다. 두 사람 다 일 때문에 가끔 학교를 빠질 때가 있는데, 두 학교에 다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다고 그래서들 말이죠. 관리직은 귀찮아요, 특히 공무원은 더.
-그럼 행정상의 편의 때문에 저의 학교생활을 희생하라는 말씀이세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특히 학교생활과 관련된 일이면 매사 무관심일변도로 나가던 시열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동풍이 오빠 거주지 주소 여기로 되어있잖아요! 친척이랑 한 학교면 귀찮은 일이 엄청 생길텐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싫어요.
-어......그럼 귀찮게 안 하고 다닐게.
-그게 오빠 맘대로 될 거 같아?
-시열 양, 동풍 군이 시열 양을 귀찮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아, 정말! 과장님은 졸업하신지 오래되어서 기억 못 하시는 거죠? 진짜 귀찮단 말이에요!
수상하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수상하다! 휘안은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은 없지만, 과거 사관학교에 다니던 자신을 떠올리며 시열의 행동을 분석해보았다. 1학년이랬으니까 군기가 안 잡혀서 기합이라도 받는 걸까? 복장불량이라고 뒤뜰에 불려가서 구르나? 왼손에 들랬던 가방 오른손에 들어서 혼났나? 칼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았나?
-휘안이 오빠. 뭐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무슨 표정을 어떻게 지었는지 시열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빠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요. 대신 나 귀찮게 하면 알아서들 해요.
귀찮다는 표정으로 던지듯 말을 하고, 시열은 다시 영어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동풍이 오빠. 조심하는 게 좋아. 오빠한테도 귀찮은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어, 어.
새로 입은 교복이 어색해다는 생각을 하며 동풍은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책상 위에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새 담임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쯤으로 보이고 조금 구겨진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교사는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 빼고는 그렇게 인상이 나빠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동풍.......교과서는 행정실에서 받아 왔고?
-예.
-그으래. 그럼 이따 쉬는 시간에 교실로 가라. 자리 하나 만들어놨으니까.
-예.
-아따, 그 놈 참 얌전하네. 그런데 남고에서 공학으로 전학와서 적응하기 힘들겠어. 내신 관리하기 힘들텐데 왜 이리로 왔어?
-이 학교에 사촌이 있어서요.
-친척 누구?
-아실지 모르겠는데 1학년 한시열이라고......
-어, 너 한시열이네 친척이야?
서류를 읽던 교사의 눈이 갑자기 멈추었다.
-어.......네. 아세요?
-작년에 수업 들어갔지. 내 교직생활 14년 동안 체육 시간에 실기연습 하는 동안 선생 눈 피해서 운동장 구석에서 자는 놈은 또 처음 봤다는 거 아니냐. 너도 많이 자냐?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에 앉아 국어교과서를 보고 있던 여자 교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한시열요? 그 50분 수업시간 중 30분은 자고 20분은 깨어있는 한시열?
그 소리를 필두로,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 중 서너명이 갑자기 정말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시간에는 20분은 깨어있어요? 제 시간에는 안 일어난 적도 있어요. 그러고보니 시열이 작년에 권 선생님 반이었죠?
-아아. 시열이? 종례하러 들어갔는데 안 일어나서 꺠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누구요? 시열이? 걔 사촌오빠라고?
시열아, 유명인사였구나. 동풍은 무의식중에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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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이었나, 미니네서 자고 오던 날, 미니와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소재입니다.
뒷이야기는 미니가 써도 좋다고 하면 쓰겠습니다. 왜냐면 이 이야기의 절반은 미니 아이디어였어요.
전학이나 시열이네 학교 이야기는 그냥 써 본 거니 사뿐히 무시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여름방학 끝무렵, 가게에 불쑥 찾아온 과장이 동풍에게 물었다.
-음......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데요?
-거 괜히 물었군요. 그럼 시열 양이랑 같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건 어때요?
-별 상관 없어요.
동풍이는 언제나처럼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학수속을 밟아볼까요, 하던 과장의 말이 순간 튀어나온 목소리에 묻혔다.
-우리 학교요? 왜요?
어쩐 일로 안 자고 한 구석에 앉아서 깨작깨작 영어 숙제라나, 문제집을 끌어안고 씨름하고 있던 시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집중하고 공부하라니까.
-오빠는, 지금 집중이 문제가 아니잖아.
옆에 앉아서 설탕통에 설탕을 채워넣고 있던 휘안이 시열에게 타박을 주었으나 시열의 관심사는 이미 동풍과 과장의 대화로 옮겨간 후였다.
-과장님, 왜 동풍이 오빠가 우리 학교에 전학와요?
-아 뭐, 별 거 아닙니다. 두 사람 다 일 때문에 가끔 학교를 빠질 때가 있는데, 두 학교에 다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다고 그래서들 말이죠. 관리직은 귀찮아요, 특히 공무원은 더.
-그럼 행정상의 편의 때문에 저의 학교생활을 희생하라는 말씀이세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특히 학교생활과 관련된 일이면 매사 무관심일변도로 나가던 시열의 반응은 의외로 강경했다.
-동풍이 오빠 거주지 주소 여기로 되어있잖아요! 친척이랑 한 학교면 귀찮은 일이 엄청 생길텐데 나보고 어쩌라고요, 싫어요.
-어......그럼 귀찮게 안 하고 다닐게.
-그게 오빠 맘대로 될 거 같아?
-시열 양, 동풍 군이 시열 양을 귀찮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아, 정말! 과장님은 졸업하신지 오래되어서 기억 못 하시는 거죠? 진짜 귀찮단 말이에요!
수상하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수상하다! 휘안은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은 없지만, 과거 사관학교에 다니던 자신을 떠올리며 시열의 행동을 분석해보았다. 1학년이랬으니까 군기가 안 잡혀서 기합이라도 받는 걸까? 복장불량이라고 뒤뜰에 불려가서 구르나? 왼손에 들랬던 가방 오른손에 들어서 혼났나? 칼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았나?
-휘안이 오빠. 뭐 생각하는지 대충 알겠는데,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무슨 표정을 어떻게 지었는지 시열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았어요. 오빠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요. 대신 나 귀찮게 하면 알아서들 해요.
귀찮다는 표정으로 던지듯 말을 하고, 시열은 다시 영어문제집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동풍이 오빠. 조심하는 게 좋아. 오빠한테도 귀찮은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어, 어.
새로 입은 교복이 어색해다는 생각을 하며 동풍은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책상 위에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새 담임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쯤으로 보이고 조금 구겨진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교사는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 빼고는 그렇게 인상이 나빠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동풍.......교과서는 행정실에서 받아 왔고?
-예.
-그으래. 그럼 이따 쉬는 시간에 교실로 가라. 자리 하나 만들어놨으니까.
-예.
-아따, 그 놈 참 얌전하네. 그런데 남고에서 공학으로 전학와서 적응하기 힘들겠어. 내신 관리하기 힘들텐데 왜 이리로 왔어?
-이 학교에 사촌이 있어서요.
-친척 누구?
-아실지 모르겠는데 1학년 한시열이라고......
-어, 너 한시열이네 친척이야?
서류를 읽던 교사의 눈이 갑자기 멈추었다.
-어.......네. 아세요?
-작년에 수업 들어갔지. 내 교직생활 14년 동안 체육 시간에 실기연습 하는 동안 선생 눈 피해서 운동장 구석에서 자는 놈은 또 처음 봤다는 거 아니냐. 너도 많이 자냐?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에 앉아 국어교과서를 보고 있던 여자 교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한시열요? 그 50분 수업시간 중 30분은 자고 20분은 깨어있는 한시열?
그 소리를 필두로,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 중 서너명이 갑자기 정말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 시간에는 20분은 깨어있어요? 제 시간에는 안 일어난 적도 있어요. 그러고보니 시열이 작년에 권 선생님 반이었죠?
-아아. 시열이? 종례하러 들어갔는데 안 일어나서 꺠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다고요.
-누구요? 시열이? 걔 사촌오빠라고?
시열아, 유명인사였구나. 동풍은 무의식중에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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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이었나, 미니네서 자고 오던 날, 미니와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소재입니다.
뒷이야기는 미니가 써도 좋다고 하면 쓰겠습니다. 왜냐면 이 이야기의 절반은 미니 아이디어였어요.
전학이나 시열이네 학교 이야기는 그냥 써 본 거니 사뿐히 무시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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