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쓴 글은 비공개로 돌려놓을게요 리플 달아준 윈디 언니, 론, 미니, 은이 미안해요.
팔성현 현립도서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된 작은 건물로 지상에 000번, 700번에서 900번까지 20000여권의 책과 3000권 정도 되는 정기간행물을, 지하에 그 나머지 15000여권의 책과 사서 사무실-을 빙자한 창고를 둔 조그마한 도서관이었다. 40000여권에 가까운 책을 구비한 도서관이 작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은, 이 도서관이 그냥 도서관이 아닌 현립도서관이라는 점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지도상에서야 큰 현이었지만 산이 많고 농지가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인구수도 적었고, 취학연령이 된 인구수는 다른 현에 비해 더더욱 적었으므로 그 작은 도서관은 그 현에 단 하나뿐인 도서관이었다. 그러므로 그 도서관에 근무하는 정 9품 사서관인 이유원 여사(女士) 또한 그 현의 유일한 사서였다.
품계가 정 9품밖에 안 되기는 하나 나라의 녹을 먹는 어엿한 관리요, 사서관이기는 해도 과거시험에 합격을 하였으니 학당에 있는 훈장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재일 이유원 여사는, 전혀 마을 주민들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현의 중심지에서 떨어진 그 작은 도서관에 상주하여 주민들도 그의 얼굴을 본 이가 드물기 때문이 그 첫째 이유요 그를 한 번이라도 보면 도무지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는 커녕 예의상으로라도 국가의 동량이라고는 못 부를 그의 행태가 그 둘째 이유이다.
도서관에서 4개월 정도 일을 한 팔성현 양수현에 거주하는 강수련 양(19세)은 그를 떠올리면 처음 구한 직장에서 맞은 어색하고 황당한 기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저, 사서님.
그날 처음으로 사서보조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강수련 양이 울상을 지으며 도서관 구석 책꽂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혼자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다 책꽂이를 봤다 하는 사서에게 다가갔다.
-예.
이유원 사서는 눈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저 퇴근해야 하는데요.
처음 자신을 보자마자 이따 점심시간에 여기 책꽂이 정리 한 번 해 주시고, 마치기 전에 1층이랑 지하 책꽂이 정리 해 주시고 가면 됩니다. 대출 권수는 무조건 한 번에 세 권 이상은 안 되고요, 라는 말을 남기고 표표히 1층으로 사라져버린 사서를 겨우 만났더니 사서는 책꽂이에 눈을 박고 책과 눈싸움이라도 하듯 책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겨우 용기를 내서 꺼낸 말에 사서는 짧은 대답을 던졌다.
-하세요.
-사서님이 안 가시면 문을 못 잠급니다.
기가 막힌 강수련 양이 항의를 해 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책등에다 소리 지르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사서는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만 내밀며 말했다.
-열쇠 저 주세요.
열쇠를 내밀자 사서는 열쇠를 쥐고 책과의 대화를 다시 시도했다. 무슨 접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도서관 정리와 대출 반납을 돕는 것이 사서보조라고 알고 일을 하게 된 강수련 양은 첫날 퇴근을 하면서도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마차를 기다리다 만난 마을 사람들이 그의 황당함을 더해주었다.
-아, 아가씨도 도서관에서 일하는가?
-하이고, 그럼 그 사서님이랑 일하는 게야?
-사서님이 사람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좀……그 뭐냐, 좀 별나지?
-말은 바로 해라. 좀 별난 거냐? 많이 별난 거지.
-자넨 도서관 가 본 적도 없잖은가?
-안 가면 몰라? 동네에 소문이 짜아한데?
강수련 양은 직장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는 근무시간에 사서와 제대로 대화해 보지도 못 하고, 일도 많이 배우지 못 하고, 게다가 밥까지 혼자 먹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사서는 근무시간 동안에는 1층 서가를 왔다갔다 하며 책을 정리하고 대출을 하는 등, 입은 한 마디도 안 뗄지언정 월급만큼 일은 했지만 근무시간이 끝나면 책꽂이와 책과 대화를 시도하며 시간을 보냈고 강수련 양과는 말 섞는 날이 드물었다. 사람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크나큰 비극이었다. 물론 도서관 이용자들은 즐거웠다. 도서관에 이유원 사서가 발령받아 온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사서를 본 적이 없는 탓이다. 강수련 양이 사서보조를 그만두던 날, 도서관 이용객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즉 이유원 사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직업인으로서는 실격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지만 위의 기록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 기가 막힐 뿐이다.
직장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은 이유원 사서도 자주 했다. 책을 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월급은 원하는 만큼 책을 사 보기엔 적었다. 그나마 가장 책과 가깝고 책을 빌려보기 좋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도서관 지하에 있는 사무실을 사택 삼아 먹고 자고 뒹굴며 책을 보고, 휴관일엔 창문 앞에 누워 빛을 받으며 책을 보는 것이 이유원이 업무 시간이 아닐 때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잠드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책을 보다 쓰러져 잠들었고, 음식은 잡화점에서 손닿는 대로 사서 대충 먹었으며 요리는 환경상 못 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귀찮아서 안 한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청소는 책을 보다 책표지에 먼지가 묻으면 가끔 했고, 관복 이외의 옷을 입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을 빌려주거나 연체된 책을 받을 때 빼고 유원이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도서관을 그나마 자주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 마을 사서님은 혹시 아주 권세 높은 집안 따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돈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인물도 안 따라주고 성격이 저래서 시집가기 글렀으니 집안에서 음직으로 아무 자리나 던져준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고, 그 설은 매우 신빙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도서관 앞에서 음울한 얼굴로 책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모습은 남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량은 그나마 유흥업에 돈이라도 쓰니 하다못해 지하경제라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나 하지-라는 소리는, 유원이 책을 찾거나 책장 정리를 하는 모습 앞에서는 쑥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어쨌거나 맡은 일은 해냈다. 일을 빨리 해 놓고 책을 보며 즐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속사정이야 주민들이 알 바 아니었지만. 아무튼 유원은 세도가의 자제도 아니었고 부모의 권세로 도서관에 틀어박히게 된 것도 아니었다. 유원은 그런 소문은 듣지 못했지만, 진작부터 내가 부모 권세로 직업을 구했으면 차라리 1년 내내 책만 읽고 책 감상 써서 돈 버는 직업을 찾겠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으니 확실한 말이리라.
1년 4개월 전. 그러니까 이유원이 과거를 보기 1개월 전에 벌어진 일이다. 유원의 아버지 정 6품 행정관 이성택 공이 어느 날 저녁, 딸을 사랑으로 불렀다. 전에 없던 일이라 궁금하게 여기면서도 유원은 읽던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사랑으로 건너갔다. 이성택 공은 정좌를 하고 딸을 맞았다.
-유원아.
-네.
인사를 올리자마자 공은 평온한 얼굴로 첫마디를 던졌다.
-너 다음 1일 되거든 나가라.
-네?
기가 막힌 유원이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공의 얼굴은 물처럼 담담한 것이 평정심의 극치였다.
-나가라고, 물론 돈 같은 거 부쳐줄 거라고 기대하는 거 아니지?
-어, 어,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공은 온화하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과년한 딸애 먹이고 재우는 돈이 아까워서 그런다. 나가.
아버지의 충격적인 언사에 유원이 기껏 항의한답시고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저는 사회성도 없고 돈도 벌 줄 모릅니다!
-안다. 나도 다 큰 딸내미 평생 먹여주고 입혀주며 끼고 사는 법 몰라.
-아니 나가라고 하시려면 대책은 세우게 해 주시고 나가라 하셔야죠! 제가 장사를 할 줄 압니까, 재주가 있어 뭘 만들 줄 압니까, 그렇다고 과거를 봐서 벼슬살이 할 능력이 된답니까? 어디 가엾은 남자 하나 잡아다 저 떠넘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성격 괴팍하다 소문나서 혼담도 안 들어오는 거 아시잖습니까. 하다못해 가게에서 물 따르는 일도 못 하는 애가 저잖습니까. 아버지, 갑자기 왜 이러세요?
유원이 근 9개월 만에 세 문장 이상 되는 긴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고 이 공은 피식 웃었다.
-뭐 방법은 하나지.
이성택 공은 서안에 올려놓은 종이를 한 장 딸에게 내밀었다.
-한 달 뒤에 과거 본다더라. 쳐 봐라. 달리 방법이 없잖느냐.
이유원이 결코 적지 않은 집안 서가의 책을 모두 읽어치운 것은-읽다 읽다 읽을 것이 없어 아버지가 종종 다 못 끝내고 집에까지 들고 오는 공문서를 읽어치우고 어린 동생이 읽는 그림책도 싹싹 읽어치우고 심지어 유원의 세 오라비가 고이고이 숨겨놓은 도색서적까지 모두 독파한 것은 계례도 올리기 전의 일이었다. 속 모르는 친척들은 신동이 났다고 좋아했으나 이 공과 유원의 어머니 되는 전씨 부인의 입장은 달랐다. 저건 신동이 아니고 간서치라오, 라고 말을 할 수도 없으니.
서당에 다닐 때는 워낙 읽어둔 것이 많아 딱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어 학당에 진학할 성적이 되느냐 마느냐로 고민할 일은 없었으나 학당에 진학하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수업 시간 중에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교과서만 읽고 있었으며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가리지 않아서 가뜩이나 좁은 인간관계 폭은 더 좁아져 학교에서 부모님을 호출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 책과 자기자신 밖에 모르는 골치아픈 딸은 아예 현실도피를 책으로 해 버릴 작정을 하고 책에 파고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대학에는 입학을 하였으나 그의 책에 대한 편집증을 어여삐 여긴 교수들의 연이은 간절한 초청을 차 버린 것도 이유원 자신이었다. 책 읽는 건 좋지만 연구는 자신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 스물 셋이 되도록 집에서 먹고 자며 책만 읽는 간서치 중의 간서치가 지금 이성택 공의 눈앞에 있는 하나뿐인 딸이었다.
-아버지.
종이를 슬쩍 보고 유원이 아버지를 불렀다.
-왜 그러냐.
-진사과가 아니네요?
이 공은 건방만 늘어가는 딸을 노려보았다.
-너 정 7품 이상 가는 관직은 못 할 거다. 지금 공부해서 되겠냐?
높은 자리일 수록 시험도 어려워지는 법.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요?
-거기 잘 봐라.
유원이 종이를 찬찬히 읽어보더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삼과 아닙니까?
-그래.
-설마 아전과나 사범과는 아니죠?
-할 수나 있냐?
-아뇨.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사서과면 네가 대학에서 공부한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느냐.
-하지만 아버지, 취미가 직업이 되면 불행해진다던데요.
-해 보지도 않고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이 공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유원은 조금 불안해졌는지 고개를 숙이고 종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자신 없다는 소리는 듣지도 않을 테니 꺼내지도 말거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원의 대답이 이 공은 피식 웃었다. 널 스물 세 해 동안 키우고 돌본 사람이 누군데 그걸 모를까.
-일단 가서 쳐 봐라. 시험 붙으면 집에서 안 쫓아낼 테니.
일단 쳐 보라는 말로 시작된 이성택 공의 딸을 회유하기 위한 말은 계곡에 물 흐르듯 쉬지 않고 이어졌다. 물론 이 공은, 너를 쫓아내려면 집에 있는 책을 몽땅 들어내야 해서 귀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유원은 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쨌는지 시험을 쳐 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전과, 사서과, 사범과, 합쳐서 삼과라고 부르는 시험은 한 달 뒤였다.
오래된 전통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꼭 쓸데없는 전통은 끝까지 남는 법이다.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처럼 십 몇 년을 공부해야 붙네 마네 하는 일은 이제는 없어졌지만 일단 사서오경에 대한 기본지식과 언어구사력, 역사상식을 묻고, 각 과목별로 다양한 것들의 물어보는 것이 과거의 기본이다. 진사과나 생원과쯤 되면 사람을 각 과목별 수험서를 한 권씩 들고 와서 사람이 자는 데 위에 덮어놓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날 정도니 공부할 양으로 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 과거인 것이다. 삼과도 명색이 과거라 수험서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도 사람을 노이로제에 걸리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이 공은 시시때때로 요즘 방값이 비싸다느니, 혼자 살면 생활비는 얼마가 든다느니, 큰 방 얻을 돈 없을 테니 네 책은 두고 가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딸에게 조근조근 들려주었고, 이유원은 앞의 두 마디에는 불퉁하게 알았어요, 공부하고 있습니다를 반복하다가도 마지막 한 마디에는 아버지 제발! 최선을 다 할 테니 책에는 손대지 마세요! 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다섯 살 아래인 남동생마저 누나 책은 내가 잘 보겠다며 이기죽대면 유원은 너 그 책 안 보고 다 팔아 술 마실 거잖아! 라며 화를 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도, 한 달 동안 공부를 한 덕인지, 이유원은 끝에서 두 번째로 사서과에 합격했다. 무려 면접까지 합격한 것이다. 유원의 합격통지를 들은 이 공의 첫 마디는 "도대체 꼴찌가 누군지 궁금하다. 내 딸 보다 못 친 녀석이 있다니 뉘 댁 자제인지 참." 이었으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여튼 유원은 팔성현 현립도서관의 사서로 발령이 났고, 그제야 그러고 보니 시험 붙으면 전국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거였는데 그 생각을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못 읽은 책, 즉 새로 산 책만 몇 보따리 챙겨 집을 떠날 차비를 마친 날, 유원의 어머니는 유원의 방에 있는 책 위에 큰 천을 덮어 먼지가 안 들어가게 싸 두었다. 사실은 그 책꽂이가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라며 유원은 웃었으나 어머니는 웃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말은 사실인 듯 했다.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여동생이 집을 떠나는 건 섭섭했는지 장가를 들어 분가한 유원의 큰오빠가 축하를 하러 왔고, 한 집에 사는 유원의 둘째 오빠와 그 아내가 축하차 떡을 했다. 대학에서 접장을 맡은 셋째 오빠도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와 제법 분위기가 오붓해지자 유원의 동생이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이러지 않더니 어찌 이리 차별이 심하냐며 잠시 투덜댔으나 그건 사소한 문제였다. 가족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뜬 후, 유원은 이 공의 방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 공은 정좌를 하고 서안 앞에 앉아 있다 유원을 보고 읽던 책을 덮었다.
"유원아."
"네."
"제발 책 본다고 일 안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밥은 제 때 먹고."
이 공의 목소리에는 시험 공부 안 한다고 딸을 볶을 때 만큼이나 절실함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유원은 아버지야 절실하건 말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쫓아내려가 하셨던 거 다 압니다, 아버지.”
“들켰구나.”
이 공은 맥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뻔한 이야기죠. 뭐 걸려든 저도 접니다만 저 내쫓으려고 마음 먹으셨잖습니까. 그 시점에서 저런 자잘한 걱정은 접으셨어야죠."
"그리 속이 좁아서야……아비야 너 혼자 먹고 살 길 걱정되니까 극약처방을 한 거 아니냐."
이 공이 머쓱하게 웃자 유원이 아버지를 쳐다보고 피식 웃었다.
"그걸 속 좁게 생각하면 내쫓는 거죠. 마음 비우십시오. 그래야 걱정을 덜 하십니다."
"걱정하지 말란 소리를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느냐?“
“걱정하지 마시라는 게 아니고 마음을 비우시란 말입니다.”
“내 딸이지만 정말 네 성격도 문제다."
"저도 그래서 앞으로 어찌 살지 걱정입니다."
이 공이 기가 막혀 던진 말에 유원은 태연히 대답을 하고 여행길에 소용될 물건들을 챙겨 짐을 꾸리기 위해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원이 다음 날 임지로 부임하기 전 임금을 만나-라기보다 모든 관료들과 신진관료들이 모이는 어전회의에 참석했을 때 이 공은 딸을 보았지만 반가운 기색을 비치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딸의 옆을 지나갔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이유원 사서가 도서관에 발령을 받은 지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유원은 여전히 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자기 전엔 책을 읽고 식사를 할 때도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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