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재미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있는 거라곤 온갖 소원과 욕망과 사람뿐인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숙박비는 선불이고 한 달 이상 체류하시면 할인가격이 적용됩니다.
마을의 유일한 여관인 국경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키가 남들보다 머리 반 개 정도 크고 호리호리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마른 청년이었다. 얼굴을 감추기 위해 기른 듯한 수염이 꾀죄죄한 얼굴과 어우러져 거지 같은 꼴이었다. 큰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은 꼴도.
-빈 방 있습니까?
카운터에 앉아 빈둥대고 있던 여자아이가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큰 걸음으로 현관에서 카운터까지 한 걸음에 들어와-라고 해 봐야 여자 걸음으로도 두 걸음이면 충분했다-다짜고짜 묻는 억양이 북쪽 섬마을 사람 특유의 억센 억양이었다. 여자아이가 흘끔 쳐다보고 졸린 목소리로 달달 외운 듯한 멘트를 건넸다.
-예, 혼자 묵으시게요? 한 달 이상 계실 거면 지금 계산하시면 할인해 드려요.
-2주.
-예?
-2주만 있을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열쇠 주시면 알아서 들어가죠.
단호하게 2주라고 시간을 말하고, 요금을 계산해서 카운터에 던지다시피 두고, 청년은 배낭을 추스르고는 열쇠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카운터에 있던 소녀는 1층 구석으로 달려갔다. 1층 구석에는 여관 주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자 뒤뜰에서 여관 주인이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국경여관의 주인은 한 때 모종의 일로 국경을 넘어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으나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마을에 눌러앉으면서 여관집 아들이었던 조용하고, 성실해서 눈 앞의 일은 어떻게든 해치우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던, 혹은 못 하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였다. 덩치는 작았으나 목소리는 깡통에 돌을 넣고 흔드는 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컸고, 한 번씩 남편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볼 만하다고 동네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술버릇이 굉장히 재밌어서 가끔 술을 마시고 이 놈의 동네 후딱 망해버리라고 술주정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국경여관의 남편은 항상 손에 책이 들려 있었는데 그나마도 몇 번을 읽어 손때가 타고 탄 책이어서 표지만 봐서는 무슨 책인줄도 알 수 없었다. 마을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초급학교도 가 보지 못했던 그가 학교 선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코뼈가 부러질 만큼 맞고, 그 때 어쩌다 그 마을에 머물던 여자와, 둘 다 자포자기에 빠져 결혼한 끝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를 닮아 묘한 성격에 어머니를 닮아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카운터에 있던 소녀이다.
소녀는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남는 칼을 들고 마늘을 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손님. 그런데 2주만 있을 거래.
-행색이 어떻디?
깐 마늘을 칼로 얇게 저미며 주인여자가 물었다.
-뭐 다 똑같지. 큰 배낭 메고 꾀죄죄-한 꼬락서니 하고.
-2주? 글쎄 딸아, 네가 볼 땐 어떨 것 같으냐?
-2주는 무슨. 엄마,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잡일꾼 필요하지 않나?
-호오, 그것도 그렇다?
딸의 심드렁한 말투에 주인여자는 피식 웃었다.
남쪽 국경지역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이웃나라와 전쟁으로 이 땅이 왕국의 땅이 된 지가 100여년, 내란이 일어난 지가 40여년. 치안은 불안정했고 국가의 눈과 귀가 국가의 모든 곳을 보고 들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남쪽 국경 앞에는 사막이 있었다. 사막을 넘어선 국경지대에 광산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도 국가가 그곳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반골 기풍이 강한 남쪽 사람들에다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자 남쪽 국경지역은 거칠디 거친 사람들이 사는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광산을 노리고 모여든 광주, 노동자, 사기꾼, 장사꾼들. 거기다 모든 죄인들이 얌전히 형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보안법에 관련된 죄수들은 잘도 도망을 다녔다. 특히 국경여관에 머무는 손님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서 지난 몇 십년 간 국경여관을 거쳐간 보안법사범들을 모으면 당을 하나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농담이 지하세계에서 빈번하게 돌았다. 당을 만들면 되는데 못 만드는 이유는 그들 중 사분지삼 정도는 왕국의 감옥에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치안이 불안정하긴 해도 보안사범들은 철저하게 잡아가는 것이 왕국의 특징이었다.
아무튼 그 여관 주인의 딸인 소녀는 어려서부터 온갖 잡배들과 어울려 자라서 문을 들어서는 사람의 행색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 전체에 심심찮게 돌았다. 그리고 또 소녀에 관련된 소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여관에 묵는 사람이 그 곳에서 살게 될 지 아니면 마을을 빠져나가게 될지, 빈 손으로 돌아갈지 뭐라도 건져 돌아갈지까지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간혹 그녀가 무당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그녀가 맞힐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여관에 관련된 것들 뿐이었으므로, 그녀의 능력-능력이라면 능력을 본 사람들은 알았다. 그것은 통찰력일 뿐이라고.
그 청년이 국경여관의 잡일꾼이 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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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 이야기도 안 썼는데 이건 또 웬 새 거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어슐러 르 귄 때문에 속이 상해 쓸 수가 없어요. 젠장 조금만 틀면 오도나 디엔이나;) 생각나는 대로 일단 써 놓은 거라서-낮에 운동삼아 동네 산책하다가 떠오른 겁니다- 이야기가 더 이어질지 저걸로 끝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여관 남편 모델은 주드 맞습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닥터후 3시즌 보긴 봐야겠어요. 보신 분들 반응이 왜들 이리 환상적인지. 새 파트너 언니랑이야 당연히 잘 지내시겠죠, 닥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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