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 글이고, 할로윈 기념입니다.
윈디 언니가 할로윈 글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언니께 드리는 거여요. 이거 받고 힘을 내셔요.
-할로윈?
-네,
카페에서 설거지를 하고 쉬러 들어온 심현이 ‘얼굴에 온통 하얀 칠을 하고 이는 뾰족하게 하고 시커먼 천을 둘둘 말고 있는’ 아소와 ‘이상한 까만 옷을 입고 이마에 노란 종이를 붙이고 눈 밑을 시커멓게 칠한’ 동풍이를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페로 뛰어 들어와 초로와 휘안이와 월광이를 향해 애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말하자 아이들을 보고 온 휘안이가 피식피식 웃으면서 할로윈이에요, 라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저럴 때 보면 사제님 언어적응 잘 안 된다는 말이 거짓말 같다니까.
-그러게나 말일세. 저렇게 유창하면서.
-많이 놀랐단 말입니다.
월광이와 초로가 웃으며 그녀를 놀렸고 심현은 자신이 놀란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아니 그러니까 아소가 하얀 얼굴인 것도 놀랄 일인데 말이에요, 동풍이가 눈밑이 시-커먼 겁니다, 어쩌고 저쩌고. 월광이가 깔깔 웃었다.
-사제님, 할로윈은요. 다른 나라 명절이에요. 귀신 복장을 한 아이들이 과자 줄까, 장난 칠까 하면서 노는 날이라고요. 쟤들도 지금 할로윈 파티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는 거고요.
-귀신?
-네, 그러니까 어디 보자아……. 켈트, 아니아니 아무튼 다른 나라 명절이에요. 귀신과 유령들의 밤인 거죠.
-아, 그러니까 귀신들의 날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월광이 설명했고 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심현이 이 행사를 잘 이해했거니 생각하며, 초로는 다시 호박파이 만들기에 열중했고 휘안이는 과자를 굽고 초콜릿을 만들었으며 월광은 한지로 잭-오-랜턴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심현이 살짝 사라져도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찍 카페 문을 닫고, 어른들은 파티에 쓸 음식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행사장을 만들고 분장을 했다. 카페 2층의 거실을 온통 잭-오-랜턴과 박쥐 모양, 해골 모양 풍선과 호박과 검은 천으로 장식해 놓고 있었다. 갈색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반바지 정장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흡혈귀 분장을 한 아소가 들떠서 꺅꺅거리며 동풍이의 얼굴을 창백하게 칠해주고 있었다. 강시 분장을 한 동풍이가 이마에 붙인 부적이 간지럽다고 투덜대자 월영이가 분장이 지워진다며 동풍이를 달랬다. 월영이는 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한 손에 금을 들고 있었다. 한복과 금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냐고 시열이가 한 마디 하긴 했지만 마녀 분장에 평소대로 약간 졸린 듯한 얼굴인 시열이도 조금은 즐거워 보였다.
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네 명은 동시에 현관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Trick or Treat!
문 앞에는 커다란 호박파이를 든 초로가 서 있었다. 초로의 뒤에는 호박 속을 파서 만든 잭-오-랜턴을 안고 있는 휘안이가 있었고, 까맣고 레이스가 풍성한 원피스에 입술을 까맣게 칠한 월광이가 실크햇 안에다 막대사탕이며 초콜릿을 담아 들고 있었다.
-장난보단 과자가 좋지 않아?
월광이가 모자에 담긴 과자를 내밀었고 아이들은 모두 모자로 달려들었다. 아소와 동풍이는행여 모자가 망가질까 조심조심, 과자를 꺼내어 살펴보았고 월영이는 월광을 보며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와, 언니 예쁘다!
-당연하지. 할로윈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휘안이가 탁자 한가운데 호박 잭-오-랜턴을 놓고 뚜껑을 열었다. 호박 안에 든 것은 유령 모양, 호박 모양의 쿠키와 젤리.
-어이쿠, 너희 참 예쁘구나?
-아저씨, 귀신한테 예쁘다니 너무하세요!
초로가 하하, 하고 웃자 아소가 쪼르르 달려와 항의했다. 꽤나 즐거워 보였고, 아소가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동풍이의 분장을 초로가 칭찬하자 동풍이도 행복해 했다. 그런데, 시열이의 한 마디가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런데, 저기 사제님 어딨어?
-늦어서 미안해요.
문을 스르륵 열고 심현이 들어오는 순간, 실내의 온도가 사악 하고 식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벽에 걸어놓은 등불이 흔들렸고 커튼이 화악, 하고 부풀어올라 펄럭거렸다. 아소가 입술을 꼭 깨물었고 시열이 불길한 느낌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탁자와 접시들 뿐이었다. 예민한 동풍이의 눈에는 보였다. 서울 시내 여기저기 사고현장에서 떠도는 유령이란 유령이 모두 거실에 모여들어서 엉킬대로 엉킨 팔다리를 휘젓고 고개를 빙빙 돌리며 방 안을 떠도는 모습이.
-사제님!!
월광이의 비명이 들리고 거실의 불이 꺼졌다.
-이게 뭐예요!
간신히 실내를 정리하고 월광이를 달래놓고 나서 휘안이가 심현에게 물었다.
-뭐냐니, 유령들의 밤이라면서?
-아니 사제님,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
휘안은 아까의 대화를 떠올렸다. 귀신들, 그래 귀신들! 모두가 뜨악한 표정으로 굳있었고, 심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사준비 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